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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역설

Jobs 9 2022. 9. 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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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역설

 

1. 스티븐 에릭 브론너(Stephen Eric Bronner)의 파시즘 분석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의 경제적 혼란과 계급갈등, 그리고 권위의 몰락에 대응하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파시즘은 권위주의에 의존했으며, 스스로가 민족의지의 표현인양 선전했고, 일탈자들을 매도하면서 항상 “희생양”을 만들어냈다. 특히 이데올로기적으로 파시즘은 “법과 질서”의 필요성과는 상관이 없었다. 파시즘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위한 이념이며, 끊임없이 대중을 열광상태로 몰아넣으려는 시도였다. 파시즘은 일관된 사상체계보다는 행동지향적인 감정, 일련의 계산된 이해관계보다는 목적 없는 희생정신, 그리고 이념에 대한 신념보다는 신화, 이성저긴 애국심보다는 감정적인 이방인 혐오증, 이성과 예지보다는 경험과 직관에 토대를 두었다. 블로흐는 “사람은 그가 이해하는 일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고 그가 사랑하는 일을 위해 죽는다”는 어느 젊은 나치주의자의 말에 주목했다. 

 

파시즘의 진정한 근원은 17-19세기에 걸친 민주주의 혁명에 대항하는 “반동의 시대”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만과 메스트르의 사상에는 반유태주의, 비합리주의, 맹목적 국수주의, 사회 유기체론, 공동체에 대한 강조, 그리고 근대성에 대한 공포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종류의 반동적 보수주의와 낭만적 이데올로기는 종종 파시즘과 잘 혼합된다. 19세기의 생기론(vitalism)과 직관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지적 조류는 형이상학과 실증주의를 경멸하는 새로운 철학사조로 여겨졌으며, 새로이 등장한 정치운동의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었다. 그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또는 전통적인 ‘좌우’ 구분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내세워진 권위주의적 민중주의의 출현과정 속에서 자라났다. 

 

바레(Barrès)의 『민족주의의 현장과 교리』에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진리는 이성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적절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특정한 지점을 요구한다 … 나는 그 지점을 찾아 나의 시야를 바로잡아야 하며, 과거의 경험이 나의 생각의 준거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 지점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프랑스인의 관점을 통해 보이는 것이다. 주어진 객체와 주어진 주체 사이의 총체적 관계로서의 진리는 프랑스적 진리이자 프랑스적 정의이다. 그리고 순수한 민족주의는 그 지점을 발견하고자 탐색하는 노력이며, 그것을 획득하게 되면 견고하게 지키면서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예술, 우리의 정치,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식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이 말에 담긴 반지성적 직관주의, 그리고 주관성을 민족공동체와 융합시키는 독단주의는 이후 모든 파시즘적 철학사조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조국(patria)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혈연과 감수성의 문제이다. 권리나 이익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며, 다만 “국가의 운명”만이 화두가 된다. 파시즘은 명확하지 않은 목적을 위한 희생과 자기 부정, 그리고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폭력의 경험을 중요시한다.

 

무솔리니는 새로운 전체주의 국가가 인민들에게 “의지”와 “도덕적 일체감”을 불어넣음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민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그가 구상한 새로운 형태의 국가는 근본적으로 인민의지의 발현이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충성은 정당의 이익이나 사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한다.

 

파시즘은 나름대로의 운동법칙이 있다. 자의적 권력은 항상 스스로를 절대권력으로 만들려 한다. 초기 파시즘의 권위주의적 형태는 질적으로 한층 억압적인 체제로 변화될 가능성을 갖는다. 감옥이 포로수용소로, 편견이 강박관념으로, 지도자 숭배가 신격화로, 제국주의가 세계 정복의 야망으로 탈바꿈되고, 대량학살이 새로운 형태로 자행되며, 반지성주의가 광기로 표출되는 시점에 이르면 비로소 파시즘이 진정으로 전체주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일부 파시스트들은 무솔리니의 가르침에 여전히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도덕”의 상실을 비판하며, 외래적인 것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또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과 “특수 이익”의 억압을 주장하면서 “완전한 민족주의”를 옹호한다. 그들은 페미니즘을 비난하고, 동성애자를 경멸하며, 유태인 대시 외국인으로부터의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여러 인종들 속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그들의 태도는 문화생활을 척박하게 만들며, 정치와 정치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

 

2. 케빈 패스모어(Kevin Passmore)의 파시즘 분석

 

강유원은 파시즘에 대한 패스모어의 정의에 동조하면서, 파시즘은 특정한 근본원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파시즘은 어떤 것을 긍정하는가 하면 동시에 그와 정반대되는 것을 긍정하여 두 개를 동시에 세운다.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표어인 ‘민족사회주의’만 해도 특정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와 노동자를 중심에 둔 사회주의가 뒤엉켜 있다. 심하게 말해 파시즘은 그때 그때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거의 즉흥적으로 가져다가 이리저리 짜 맞추면서 형성된, 그래서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항상 변화하는 역동저긴 이데올로기거니와, 바로 이것이 파시즘을 명료하게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된 요소다.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지배층, 지배기구의 구성원, 비지배집단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이념체계 실현에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바쳤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강유원은 파시즘을 규정할 때에는 치밀하고 적극적인 대중동원과 열광적이고 긍정적인 대중참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이는 파시즘이 참여 민주주의적으로 작동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고 분석한다. 

 

패스모어는 파시즘이 초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실천의 한 형태라는 ‘새로운 합의’를 받아들이면서 시작한다. 파시스트는 동원된 민족 공동체를 창출하려 하는데, 이 공동체에서는 인군의 모든 부분이 체제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영구히 드러내며 ‘새로운 파시스트적 인간’은 체제에 대한 봉사 속에서 충족감을 얻을 것이다. 파시스트는 연약하고 ‘여성적’이거나 ‘불임’인 기성 정치인들을 대신하고, 기업과 가족이 민족적 이익에 종속되어야 함을 확신시키려는 의무감에 가득 찬 새로운 ‘남성’ 엘리트를 대표한다(56쪽). 

 

파시스트들은 자신을 ‘현조의 자퐈와 우파 정당 모두로부터 무시당한 사람’으로 본다. 버림받았다는 이러한 느낌은 파시스트 급진주의를 강화한다. 파시스트들이 보기에 인민은 투표를 통해서 지도자를 선택할 능력이 없다. 선거는 단순히 이류의 대중이 이류의 대표자를 선택하는 방식일 뿐이다. 대중적 주권은 파시스트당과 지도자를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57쪽). 

 

그들은 기존체제의 붕괴를 질서회복의 선행조건으로 보았다. 그들은 혁명의 이름으로 질서를, 질서의 이름으로 혁명을 요구했다. 파시즘은 전간기 유럽과 그 시대의 사회적 갈등이라는 특정한 맥락(제1차 세계대전과 지식인들의 논의라는 유산, 즉 인간사회와 국가들 간의 관계를 자연법의 서술하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어서 ‘제3의 길’을 찾는 것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의 흔적을 깊숙하게 간직하고 있다(60쪽).

 

결국 파시즘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파시즘은 배타적인 생물학적,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서 정의된 민족을 모든 다른 충성심의 원천 위에 두려 하고 동원된 민족공동체를 창출하려는 이데올로기와 실천의 묶음이다. 파시스트 민족주의는 사회주의와 여성주의가 민족보다는 계급이나 성을 우선시한다고 간주하므로 그것들에 대해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동적이다. 파시즘이 ‘극단적인’ 우파의 운동인 까닭이 이것이다. 파시즘은 또한 ‘급진적’ 우파의 운동이기도 한데, 사회주의와 여성주의의 패배와 동원된 민족공동체의 창출이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지도되는 대중적이고 군사화된 정당에서 구현되고 인민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엘리트 권력의 출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파시스트들은 사회주의와 여성주의를 똑같이 증오하기 때문에 부소주의로 향해 가지만 민족의 이익이 요구되는 곳에서는 보수주의적 이해관계-가족, 재산, 종교, 대학, 시민부분-를 무시한다. 파시스트 급진주의는 또한 노동과 여성운동의 요구가 민족적 우선성에 합치하는 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불만족을 누그러뜨리려는 열망에서 도출되기도 한다. 파시스트는 노동자와 여성의 이익을 당의 특정한 부분 안으로 그리고 조합적 체계 안으로 동원함으로써 민족의 이익과 조화를 꾀하려 한다. 이러한 조직과 그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베푸는 혜택에 접근하는 것은 개인의 민족적, 정치적 그리고 인종적 특성에 달려 있다. 파시스트 정책의 모든 측면은 초민족주의로 가득 차 있다(62쪽).  

 

파시스트들은 부분적으로 당시에 근대적이고 과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에 의해 고무된 세계관을 지지했다. 그들은 사회적 다윈주의, 그것의 프랑스적 대안인 라마르크주의, 집단심리학, 사회생물학, 군중의 과학, 신화연구에 의존했다. 이 모든 것을 연결한 것은 민족이나 인종의 성향에 대한 ‘과학적인’ 가정이었다. 이 과학은 민족이 피할 수 없는 퇴폐적 성향을 극복하고 사활이 걸려 있는 국제적인 투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내적으로 강력하고 동질적이어야만 한다는 신념과 결합했다. 여기에서 파시스트의 사상은 예술적 모더니즘에 의해 형성되는데, 이는 세계를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어둡고 위협적인 곳으로 인식하지만, 이 세계는 이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예술가의 특별한 기술을 통해 길들여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파시스트들은 남성과 여성, 또한 모든 계급에서 인종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들이 민족적 목적을 위해 복무할 것, 그리고 제국이나 민족적 영향력의 범위 안에서 경제적 자급자족을 위한 투쟁에 복무할 것을 요청했다. 강조점은 달랐지만, 대부분의 파시스트들은 국가가 반드시 근대적인 과제를 민족적 전토오가 융화해야 한다고 믿었는데, 지방과 도시의 요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그러한 예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파시스트들은 그들의 기획을 근대세계에 필수적인 응답으로 보았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필연적으로 일어난 전통으로의 복귀로 해석했고, 다른 이들은 여전히 전통과 근대성의 화해로 해석했다. 파시즘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경쟁적인 이데올로기와 실천의 모순적인 집합이므로 이는 전통과 근대성 같은 단순한 이항대립의 관점에서 쉽게 범주화될 수 없다(248-249쪽).

 

3. 로버트 팩스턴(Robert O. Paxton)의 파시즘 해부

 

1900년에 이르러 18세기 계몽사상에 의한 과학, 이성, 진보의 힘은 유럽의 체제를 크게 바꿔놓았다. 사업화와 도시화에 의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새로운 발명, 철도와 기선의 출현으로 인해 낡은 농업사회의 자극자족 제도를 파괴하고, 철도와 기선의 출현으로 인해 낡은 농업사회의 자급자족제도를 파괴하고, 도시로 유입된 다수의 노동자 계층을 생성시켰다. 농민에게는 전통적 생산수단을 현대화하도록 강요했고, 인구의 이동성을 높여 도시의 거대화를 초래한다. 자유주의, 자유자본주의 모델은 그 물질적 장점으로 인해 정치적인 틀을 크게 변모시킨다. 언론, 상거래, 과학적 탐구의 자유, 노동의 유동성과 확대된 선거권에 기반한 민주적 자치(自治)에 대해 각성한 시대이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이즘'들은 정치가 교양인의 일이었던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상대방의 감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끈질기고 학구적인 의회 토론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었다. 고전적인 '이즘'은 그 사상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그 이즘들의 강령을 검토함으로써 설명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파시즘은 대중 정치 시대에 급조된 새로운 고안물이었다. 파시즘은 세밀하게 연출된 의식과 감정이 가득실린 수사를 적절히 사용하여 사람들의 정서에 주로 호소했다(53쪽)."

 

대중사회는 출현했으나 대중을 노동계급으로만 해석한 사회주의,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 세력으로 파악한 보수주의, 교육받은 시민들만을 정치 세력으로 인정한 자유주의 모두 대중을 정치권력의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정하지 않았다. 대중은 분명한 정치세력이었으나 이들을 단지 무지몽매한 세력으로만 파악한 기존의 정치이념들이 놓친 공백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 바로 파시즘이었다.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는 자유주의 질서의 위기였다. 파시즘이 암실에서 나와 공적인 무대로 가장 쉽게 진출했던 곳은 기존 정부의 기능이 형편없거나 아예 전무했던 곳이었다. 파시즘에 대한 토론의 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파시즘이 자유주의의 위기를 기반으로 삼아 번성했다는 사실이다. ...<중략>...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자유주의 정권이 확립돼 있었거나 자유주의 체제 확립으로 나아가던 중이었다. 자유주의 정권은 개인은 물론이요 집권당의 경쟁세력인 여러 정당에도 자유를 보장해주었으며,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정부 구성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했다. 자유주의 정부는 또한 시민과 기업에 광범위한 자유를 허용했다. ...<중략>... 이런 유형의 자유주의 국가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사라졌다. 전면전을 수행하려면 정부의 강력한 조정과 규제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 자유주의 정치 거물들이 대중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동안 파시스트들은 대중정치를 이용해 좌파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힘과 동시에 기존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노동계급을 장악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파시즘은 일관되고 논리 정연한 철학에 연결돼 있다기보다 파시즘적 행위를 형성한 일련의 ‘결집된 열정’에 연결돼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열정적인 민족주의가 깔려 있었다. 이와 연관된 것으로는 역사를 선과 악, 순수와 타락의 싸움으로 보는 음모론적이고 이분법적인 시간이 있다. 물론 자신들의 공동체나 민족은 그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왔다고 본다. 이 ‘결집된 열정’은 다음과 같은 파시즘의 정서적 기초를 놓았다(108-109쪽).

 

1. 어떤 전통적인 해결책도 소용없는 불가항력적 위기감.

2. 개인의 어떤 권리보다 집단에 대한 의무를 우선시해야 하며, 개인은 집단에 복종해야 한다는 집단 우월주의.

3.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 내부의 적이건 외부의 적이건 모든 적에 대한 법률적, 도덕적으로 한계가 없이 어떤 행동도 정당화하는 정서.

4.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계급 갈등, 외부의 영향으로 공동체가 몰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5. 가능하다면 동의를 구하겠지만 필요할 경우 배제적 폭력이라도 동원해, 공도에를 더 깨끗하게 더 긴밀히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

6. 타고난 지도자의 권위의 요청. 공동체의 운명을 단독으로 구현할 국가 지도자에 대한 갈망.

7. 지도자의 본능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8. 집단의 성공에 바쳐지는 폭력의 아름다움과 의지의 위력을 찬미하는 태도.

9. 선택된 민족이 인간의 법이건 신의 법이건 어떠한 형태의 법적 제약도 받지 않고 다른 민족을 지배할 권리. 사회진화론적 투쟁 속에서 공동체의 용맹성이라는 유일한 기준으로 결정되는 권리.

 

팩스턴은 기존에 파시즘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비판적으로 전유한다. 예를 들어, 파시즘의 출현을 ‘도덕의 퇴락’에 이은 ‘정상궤도 이탈’로 해석하는 경우, 역사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다 보니 역사의 우연성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는 역사 속에서 파시즘의 원인을 찾을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당시 공산주의의 공식 입장이었던, 자본주의의 일반위기를 파시즘의 원인으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었다. 이들에 따르면, 1차대전 이후 자본주의는 위기에 직면했고, 그에 따른 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이 강성해지고 겁먹은 부르주아는 부르주아의 꼭두각시로 파시즘이 지목되었으며, 그렇게 집권하여 노동운동을 종결시키고, 이어서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여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팩스턴은 파시즘은 처음부터 자율적인 운동이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파쇼 운동은 대중운동이었다. 파시즘은 부르주아와는 무관한 자체의 꿈을 쫒고 있었다. 또한 히틀러가 무솔리니와 같은 신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미친 놈들에 의해서 파시즘이 도래했다는 해석인데, 이는 문제가 많다. 이런 시각을 가질 경우, 히틀러를 따라다니는 대중의 존재는 사라진다. 국민 대다수는 파시즘 정권에 동의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던 것일까, 아니면 강제나 공포에 못 이겨 복종했던 것일까? 지금까지는 공포가 원인이었다고 설명하는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나치 독일과 파시즘 이탈리아 양쪽 모두에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 및 협조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도자가 미친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미쳤다고 해석한 것이 바로 유명한 빌헬름 라이히이다. 파시즘의 특징적인 현상인 “폭력적이고 남성적인 형제애가 성적 억압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독일인들, 비교적 과묵하고 내적이고 절제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독일인스러운 것”, 그것은 17-18세기에 발생한 제2의 종교개혁 운동 “경건주의”의 소산인데, 그 속에서 성적 억압의 측면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 시기 영국의 감리교 운동과 미국의 대각성운동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팩스턴은 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데, 당시 독일인과 이탈리아인의 성적 억압이 프랑스와 영국보다 더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해석으로는 아렌트의 사회의 원자화(원자화된 인간의 탄생) 때문에 파시즘이 발생했다고 보는 해석이다. 이는 1차 대전 이후 신분, 계급, 단체로부터 인간이 떨어져 나오고 그 외로운 인간들이 무리지어 합류한 것이 파시즘이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팩스턴의 비판은 통렬해 보인다. 독일은 클럽(협회, association, Verein)의 나라였다. 온통 클럽으로 뒤덮인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클럽들은 나치 집권 직전에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하지만 자유주의가 낳은 논리적 귀결이 정치에 무지한 대중을 양산했고, 자연히 신적인 정치인에게 자신의 주권을 무비판적으로 양도했다는 해석은 오늘날 많은 이들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있다.

 

팩스턴 파시즘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결론짓는다. 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487쪽).

 

4. 파시즘과 기독교

 

파시즘에 대한 본인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17-19세기에 이르는 귀족정치의 붕괴가 가져온 정치적 공백을 성숙한 시민, 대중이 채우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무지한 대중들이 자신의 주권을 통치자에게 이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급진적인 정치형태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정치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근대를 지나면서 자유주의 정치사상은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개인의 소유와 권리에만 집중하도록 훈련시켰다. 당연히 민족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갈망은 대중들의 심리적 기저에 조용히 흐르고 있었지만, 쉽게 표출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급속한 산업화와 문명화의 발전은 대중들의 정치적 열망을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아닌 강력한 주권자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합리적인 판단과 의사소통을 통한 상호주체성을 확립하기 보다는 지도자에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투사한 것이다.

 

여기에 본인이 생각하는 파시즘의 역설이 존재한다. 바로 오늘날 자유주의 정치학을 비판하는 다양한 공동체주의자들의 양면성이 그것이다. 권리담론으로 정치적, 사회적 주권을 실현하려는 기존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결국 정치에 대한 환멸과 소극적인 태도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결합하면서 시민의 덕성과 일반의지를 말살해 버리고 말았다. 애국심, 민족주의, 공화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개개인들의 권리 주장에 파묻혀 더 이상 이상국가에 대한 비전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열망의 윤리학’(ethics of aspiration)은 보다 적극적으로 공동선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여 정치적 이상을 이루고자 한다. 소극적인 시민성이 권리중심의 시민성이라면, 적극적인 시민성은 정치영역에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공공선을 고양시키는 행동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공동체주의 또는 시민적 공화주의(civic republicanism)에 기초한 이론들은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시민적 덕성이 애국심과 내적 연계성을 가지며, 이러한 내적 연계성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삶 속에서 공동체와 그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가지는 애정을 통해 성립된다는 점을 밝히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전체 집단의 가치와 권리와 자율성을 침해할 때, 공동체에 대한 충성과 개개인이 가지는 도덕적 원칙이 충돌할 때, 혹은 보편성과 대립되는 특수성이 다른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 또는 침해할 때, 공동체주의에 기초한 시민적 애국심은 지나칠 정도로 문화적 동질성과 배타적 결속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열망의 윤리학’이라 지니고 있는 폭력성이 있다. 공동체주의자들이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헌신은 자신의 뜻과 의지를 통해 결국 메시야적 천년왕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려는 과도한 열정으로 귀결될 수 있다. 세계변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메시야주의, 천년왕국 운동, 기독교 세계관, 혹은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순현주의적인 공동체를 꿈꾸고, 이를 통해 자기들만의 왕국을 꿈꾸는 요더라인은 모두 약간 과장적으로 말해서, 파시즘의 증상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논리적 귀결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의 결핍에 의한 것인가? 파시즘은 자유주의 정치사상에 근거해 결국 원자화된 개인의 무책임한 정치적 판단에 의한 결과인가? 아니면 오히려 진정한 자유주의의 이상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에 파생된 끔찍한 결론인가?

 

미국 파시즘에는 스와스티카는 없어도 대신 성조기와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있다. 또 파시스트적인 경례는 없어도 국기에 대한 맹세를 되풀이하는 의식이 있다. 물론 이러한 상징이나 의식은 그 자체로는 파시즘의 기미가 전혀 없다. 그러나 미국식 파시즘은 그러한 상징이나 의식을 내부의 적을 추려내기 위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바꾸어버릴 것이다(로버트 팩스턴, 452).

 

팩스턴은 묻는다. “종교가 파시즘의 기능적 등가물, 다시 말해서 치욕을 당한 뒤 복수심에 불타는 민족을 재생/단합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 하고.(팩스턴, 454) “종교 파시즘이 가능한가?” 하고(456). 팩스턴은 파시즘적 행동에서 공적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잠복해 있는 이념의 한 가지로 “(예외 없이 남성인) 타고난 지도자의 권위의 요청. 공동체의 운명을 단독으로 구현할 국가 지도자에 대한 갈망”을 들고 있다(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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