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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 보수주의,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보수주의 정치적 사상 아닌 마음의 습관

Jobs 9 2023. 4. 17.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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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 進步主義, Progressivism

사전적인 의미로는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정치 철학을 의미한다. 정치적인 의미로는 기존 사회문화에 대항하거나, 정치나 제도 등을 '사회 개혁'을 통해 새롭게 바꾸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문화적 좌파(cultural left)와 비슷한 의미이기에 학술적으로 자유주의(liberalism)의의 한 갈래로 여겨지기도 한다. [주의] 진보주의라는 용어는 종종 보수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많이 사용된다. 

서구적 의미에서 진보주의는 복지 지향적인 혼합경제를 토대로 사회문화적 자유주의를 강하게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주의'와 '진보주의'
한국 언론이나 학술 자료에서 미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20세기 초반에 유행한 반독점, 경제개입과 노동자 처우개선, 실용주의, 내부 인권 강화 기조 등과 관련된 사회운동이나 움직임을 비롯한 progressivism을 혁신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21세기 현재의 미국의 progressivism은 한국어로 '진보주의'라고 잘만 번역하면서, 20세기 초반에 미국의 progressivism는 한국 논문이나 제도권 언론에서조차 종종 '혁신주의'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20세기 초 미국의 '혁신주의 운동'이 '진보주의 운동'과 정확히 같은 것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사실 현재의 한국어에서 혁신은 innovation이고 혁신주의는 굳이 따지자면 progressivism보다는 Innovationism이기 때문에, 현대 한국어로는 20세기의 progressivism을 혁신주의라기 보다는 진보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20세기 미국 등에서 유행한 progressivism 운동을 진보주의라고 하지 않고 혁신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인데, 이는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주의 운동'이 좌익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했으며, 이로 인해 오히려 고립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타인종의 유입에 반대한 차원에서)반제국주의 성향이였던 '보수주의 운동'보다 친제국주의적인 요소가 강했기 때문인 점도 있다. 특히 당시 미국 진보주의 운동의 거두가 시어도어 루스벨트였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철두철미한 제국주의자고 친일 성향까지 있어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주도하는 등 일본 제국의 식민통치 피해를 당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결코 곱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진보적'이라고 표현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대 시대적 한계로 봐야한다. 당연히 현대 미국 진보주의자들은 오히려 보수주의자나 온건적 자유주의자들보다 훨씬 반제국주의에 가깝고, 실제로 미국의 학자들은 초기 진보주의와 21세기 진보주의의 차이점을 언급할때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를 꼽을 정도이다. 

 

'진보주의'의 개념과 범주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용하는 progressive의 개념도 한국에서 사용하는 '진보'의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사회주의 전통과 별개로 보면, 자유주의의 좌파 전통에서, 좌익 성향이 두드러지는 이들을 가리킨다. 반면에 한국에서 '진보'는 서구에서 사용되는 엄밀한 의미가 아닌, 매우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다. 가령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 대립 얘기할때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대조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안 등에서 외신에서는 'conservative'와 'liberal'로 적절하게 의역해주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사회주의자들도 자주 진보라고 칭해왔는데, 미국이나 유럽에서 progressive는 보통 자유주의자가 '문화적으로 좌파적인 견해를 취하는 상황이나 그게 아니라면 (문화적 좌파가 아니더라도)사회자유주의자들 중에서 주류보다 경제적으로 더욱 좌파적인 케이스를 가리킨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조차 넘어선 원론적 사회주의 정당들도 '진보', '진보주의'라고 칭하는 편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용하는 progressive의 개념은 한국에서의 진보주의의 개념보다 그 범주가 좁다. 실제로 한국에선 오히려 사회주의자들이 자기들이 진보고 자유주의 리버럴이 진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영미권이나 유럽에선 정통 사회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길 꺼리는 경향이 있고 오히려 리버럴들을 진보주의자라고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미국의 사회주의 잡지인 Jacobin에서는 문재인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는데 한국 내 인식과 정반대로 오히려 너무 반공적이라는 늬양스를 보이며, 어떤 문장에선 문재인을 진보주의자라고 지칭하면서도, 문재인이 좌파가 아니라고 표현했다. 

물론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이나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 같은 원론적 사회주의나 민주사회주의의 경우도 progressive라고 불리기도 하는 등, 한국에서 사용하는 맥락에서 진보나 진보주의를 서구 정치에서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자는 좌파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의 하위조직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도 미국, 사회민주주의자들이나 그린 마운틴 평화정의당같이 아예 개별전통으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정당은 progressive라고 칭하지 않는다. 유럽에서도 보통 민주사회주의자들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문화적으로 좌파 성향이더라도 진보주의자들과 구별한다. 그리고 애초에 사회주의자들은 좌파 자유주의자 못지 않게 대부분 문화적으로도 좌파 성향을 견지한 케이스가 대부분이고 사회주의자가 사회보수주의/문화적 보수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인 케이스이다.  

이렇게 한국에서 진보주의 개념이 혁명적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같은 '사회 개혁'이 아닌 '체제 변혁'을 주도하는 사상까지 포함되는 반면, 자유주의 철학과 분리된 개념인 것처럼 심각하게 왜곡된 것은 1980년대에 혁사계열 학생운동권부터가 기점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한국에서도 사회주의의 우회적 표현은 진보주의가 아닌 혁신주의가 선호되었고, 진보주의는 서구적 의미의 progressvism와 비슷한 사회자유주의 좌파나 온건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가리켰기 때문이였다. 즉, 한국에서 '자유주의'라는 용어가 강경 우파들에 의해 그 의미가 곡해되었다면 '진보주의' 개념은 강경 좌파들에 의해서 의미가 곡해된 셈이다. 이외에도 한국의 몇몇 정치 용어는 해외에서 전혀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물론 경우에 따라 사회주의도 진보주의 범주에 포함될 수도 있다. 위에서 말한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급진좌파연합 외에도 호주의 노동당 좌파, 버몬트 진보당, 심지어 일본공산당도 progressivism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국내 일부 좌파들의 오용처럼, 사회주의가 진짜 진보주의고 자유주의는 진보주의가 아닌 것처럼, 혹은 아예 진보주의를 자유주의와 분리시키고, 사회주의와 유의어인 것처럼 표현하는건 그저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진보주의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며, 시대적ㆍ역사적 배경 및 보수주의와의 비교에 따라 상대적인 성질을 띤다. 서구 세계에 민주주의가 막 정착되었던 시대인 19세기에서는 진보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로 대표되었고, 그의 반대인 보수주의는 구체제 유지와 반동적 보수주의를 주류 이념으로 내세웠다. 이는 영국의 사례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19세기 영국의 자유당은 보수당과 양당 대립 구도를 맺었는데, 자유당이 진보좌익 정당 포지션을 맡았다는 것을 보면 그 당시만 해도 자유주의가 진보적 사상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한데, 19세기만 해도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왕정의 지배를 받고 있거나 막 벗어나기 시작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는 매우 급진적인, 좌파적인 사상이라고 생각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서 사회주의가 강력한 이념적 경쟁자로 떠올랐고, 이로 인해 (사회주의 전통이 아닌)자유주의 전통에서 발전된 진보주의 전통은 과거보다 사회민주주의 비스무리한 요소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과거에 진보주의로 간주되었던 한 예시로는 민족주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에는 진보적 이데올로기였던 민족주의는 현대에 와서 보수적인 이념으로 탈바꿈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같은 여러 유럽의 강대국들은 다른 민족들과 국가들을 복속시켜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고, 다른 유럽의 약소국들을 침략하거나 내정에 간섭해 세력을 넓히고 있었는데, 이들로부터 독립을 해 자주적인 민족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지를 약소국들은 갖고 있었다. 이 또한 기존 열강들의 침탈과 내정 간섭에 불만을 가져 저항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사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와 같은 예시로는 독일의 범게르만주의, 발칸 국가들의 범슬라브주의, 이탈리아의 통일 전쟁 등이 있었다. 이들은 기존 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새롭게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민족주의를 표방한 극우 세력들에 의해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민족주의는 보수적인 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진보'라고 분류되는 것에는 '바꾸자'와 '천천히 바꾸자'와 '바꾸지 말자' 등이 모두 혼재되어 있다. 심지어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것이 흔히 진보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굳이 진보주의적인 관념을 요약하자면, "바꿀 건 바꾸고, 지킬 건 지키고, 조심할 건 조심하자"는 상당히 상식적인 요약문만이 나오는데, 이런 요약은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의 뉘앙스 차이만 있을 뿐 보수주의자들도 똑같이 동의하는 것이다. 결국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구체적인 개별 사안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때로는 우유(偶有)적으로 분류될 뿐이다. 

정치학에서 진보주의는 보수주의와 비슷하게,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 여타 정치 이데올로기와 달리 체계적으로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편이다. 진보주의가 추구하는 내용이 학문적으로 중구난방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나, 시대적ㆍ역사적 배경에 따라 어떤 것이 진보주의적 가치인가가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서양권 국가들 기준에서, 19세기형 진보주의자들은 오늘날의 표현의 자유, 의회권한 확대, 왕권 약화,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장했다. 이것은 오늘날에 와서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가까울 것이다. 20세기의 진보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와 점차 닮아가나, 자유주의 철학 전통을 유지한 독특한 좌익 세력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기' 진보주의자들은 앞에서 상술했듯 친제국주의적 성격을 띄는 등 오늘날의 진보주의와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진보' 자체가 '앞으로 나아간다', '발전해간다'는 늬양스의 의미를 지니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보의 가치도 약간씩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진보 유래와 성향
진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가인 이마누엘 칸트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는 존 스튜어트 밀이 '진보적 존재'를 강조해 일반적인 사회주의와 구별되지만 동시에 좌파적인 자유주의를 옹호했다. 이후 현대 정치에서 진보주의는 좌파 자유주의 전통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다.

진보주의라는 용어가 근대적으로 사용하게 된 출발점은 바로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 시대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윌리엄 J. 브라이언, 존 듀이 등이 있다. 이들은 현재의 '진보주의'의 탄생에 시금석같은 역할을 하였다. 특히 듀이는 좌파 자유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민주사회주의자로도 분류되는 특이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를 이상적으로 보았다. '진보주의'는 '전통적 자유주의'에서 강조되던 자연법적 소유권과 시장적-기업적 자유에 대한 옹호라는 초점을 버리고, 대기업에 의한 권력 독점과 심각한 빈부격차가 만연하던 새로운 시대적 조건에서, 사회적으로 그리고 물질적 전제와 함께 보장되고 실현되는 어떤 '실질적 자유'에 대한 지향으로 자유주의의 정체성을 재규정하려 했다. 현재까지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 진보주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유사한 목표를 추구하는 좌파적 자유주의자들 가리킨다.

물론 서구권에서도 모든 좌파 자유주의가 진보주의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좌파 자유주의와 차이점이 있다면 중도~중도좌파에서 좌측으로 벗어난 자유주의자나 자유민주주의, 문화적 자유주의 성향 좌파를 진보주의라고 부른다. 다만 페미니즘, 소수자 운동, 생태주의, 정치적 올바름, 경제적 진보주의 등 사회적으로 자유주의적 의제들에 매우 적극적인 견해를 취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좌파 자유주의(중도~중도좌파)와 구별된다.

20세기 후반~21세기 초의 대표적인 진보주의 운동과 진보주의자는 존 F. 케네디(케네디주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룰라주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키르치네르주의), 쥐스탱 트뤼도(트뤼도주의),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폴 크루그먼 등이 꼽힌다. 

21세기 들어서는 자유주의(급진주의) 전통의 일부분이던 진보주의가, 사실상 (마르크스-레닌주의 일부와 같은 보수주의적 측면이 있는 사회주의를 제외한) 사회주의 전반과 생태주의(녹색정치), 해적정치 및 페미니즘 등을 포함하는 좌파 전반을 칭하는 걸로 의미가 넓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회주의 자체가 급진적 자유주의에서 파생된 것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진보주의 인터내셔널이 있는데, 여기에는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 단체도 일부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도 있는게, 진보주의자들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진보주의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재분배나 사회적 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문화적 좌파 의제가 대중적으로 더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들 중에 사회주의를 겸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지, 사회주의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일반적인 진보주의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진보주의자가 아닌 사회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닌 진보주의자의 사례도 많이 있다. 문화적으로 좌파라고 해서 반드시 경제적으로 좌파여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한국이야 반공을 기치로 한 우익 독재를 겪었기에 진보주의와 사회주의가 상당한 친연성을 가지지만, 과거 마르크스-레닌주의 같은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비롯한 등 좌익 독재를 겪었던 나라들의 경우 몽골 인간당이나 루마니아 구국연합 같이 온건 문화적 진보주의+선명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을 보이는 중도~중도우파 정당들도 존재한다.

 


진보 특징


아래의 특징들은 대략적인 이미지이며, 모든 진보주의자들이 아래의 모습을 따른다고 할 수 없다. 글자 그대로 보다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진보주의이지, 아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집단이면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권리, 더 나아가 보편적 인권을 중시한다. 때문에 천부인권 개념에 긍정적이다. 
큰 정부를 지향한다. 정부가 시장에 최대한 개입해서 국민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일반적으로 복지를 중요시하고 그에따른 세금과세를 찬성한다. 
권위주의에 부정적이다.
사회 정의를 중요시하고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 증진을 지지한다.
사회문화적 자유를 추구한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문화적 규제를 반대한다.
관행이나 전통보다는 적극적인 개혁과 변화를 선호한다. 진보주의(進步主義)란 단어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변화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며 보통 '진보주의'라는 틀 아래에 일정한 방향성이 부여되어 있다.
의무와 책임을 보수주의자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문화적 차별을 반대한다. 따라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처우 개선을 중시한다.
자유경쟁을 경계한다. 겉으로는 '자유' 경쟁처럼 보여도 현실적으로 사회적 강자와 약자가 똑같은 경쟁 기회를 가지기 어려움을 유념하며, 자유 경쟁만을 중시하는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효율성보다는 형평성을 더 추구한다.
결과의 평등을 중요시하게 여긴다.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기회의 평등만이 전부가 아니며 규제가 없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체제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해도 조건이 평등하지 못하면 약자들은 점차 불리해지고 결국 낙오될 수밖에 없고, 이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보주의자들은 여성 할당제나 지역 할당제같은 할당제를 주장하며 배경이나 결과에 따른 차등 대우 필요성은 인정하되, 차이가 아닌 차별로 이어지는 것을 깊이 경계한다. 
법치주의에 기반하는 도덕과 윤리를 보수주의자보단 상대적으로 덜 중시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감수성에 기반하는 도덕과 윤리를 긍정한다. 특히 젠더 감수성을 포함한 인권 감수성은 진보주의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다.
사회문화적 차별을 반대하는 문화적 좌파 사상이기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보주의가 정치적 올바름 관련 이슈에 대해서 취하는 입장은 여러모로 유동적이어서 일관되어 있지 않으며, 의외로 이 점에 있어서 보수주의와의 공통점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따금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손을 잡고 정치적 올바름을 피력하고, 극우파와 극좌파가 손을 잡고 정치적 올바름에 반감을 나타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본래 차별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이념이었기에 보통 진보주의자의 성향과 부합되지만, 동시에 도덕이나 윤리와의 연관성도 커서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자의 성향과 부합되는 일도 적지 않기에 이런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세계의 진보주의 정당
보통 중도좌파~좌익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주류이나, 일부 중도우파 정당이나 극좌 정당도 존재한다.
그리스 - 급진좌파연합
네덜란드 - 민주66
대만 - 민주진보당, 시대역량
대한민국 - 정의당, 진보당, 미래당
독일 - 동맹 90/녹색당
루마니아 - 루마니아 구국연합
몽골 - 인간당
미국 - 민주당(일부), 녹색당
베네수엘라 - 인민의지당
브라질 - 노동자당(일부), 녹색당
스페인 - 포데모스, 마스 마드리드
슬로바키아 - 진보 슬로바키아
영국 - 노동당(일부), 스코틀랜드 국민당, 녹색당
인도 - 전인도 트리나물 회의
일본 - 사회민주당(일부), 레이와 신센구미, 일본 공산당
체코 - 해적당
캐나다 - 캐나다 자유당(일부), 신민당
콜롬비아 - 인간적인 콜롬비아
태국 - 행동전진당
터키 - 인민민주당
파키스탄 - 파키스탄 인민당
폴란드 - 신좌파
헝가리 - 민주연합
호주 - 호주 노동당(일부), 호주 녹색당

 

 

세계의 대표적 진보주의자들
가브리엘 보리치
구스타보 페트로 - '콜롬비아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젊었을때는 혁명적 사회주의였으나 현재는 진보주의자 내지 사회민주주의자에 가깝다.
그레이스 애벗 (Grace Abbott) - 미국 진보시대의 사회복지사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
노회찬 -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대표적인 진보주의 인물(People)로 언급된다. #
니콜라 드 콩도르세 - 주로 경제적 자유주의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만 알려져있지만, 초기 페미니즘의 선구자로도 평가받는다.
레오나르두 보프 (Leonardo Boff) - 브라질의 자유주의 신학자로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자이다.
루이스 브랜다이스 (Louis D. Brandeis)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마사 누스바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 고전적 급진주의자로도 분류된다. 라이시테를 도입하여 강력한 세속국가로써 터키를 다지려고 했다.
버니 샌더스
소포니스바 브레킨리지 (Sophonisba Breckinridge) - 미국 진보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이자 사회과학자로, 정치학과 경제학에서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이다.
스테판 에셀 (Stéphane Hessel) - 프랑스의 작가
시어도어 루스벨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야마모토 타로
이디스 애벗 (Edith Abbott) - 미국 진보시대의 경제학자, 사회복지사
우드로 윌슨
윌리엄 O. 더글러스 (William O. Douglas) - 미국의 전 대법관으로 시민 자유지상주의의 선구자이다.
이마누엘 칸트
제인 애덤스
존 롤스
존 스튜어트 밀
저신다 아던
쥐스탱 트뤼도
차이잉원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타나톤 쯩룽르앙낏
폴 크루그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피오렐로 라과디아
허버트 조지 웰스
헨리 A. 월리스

 

 

교육학에서의 진보주의
교육사조로서의 진보주의는 1918년에 아동중심 교육을 주장하던 미국의 교육학자·심리학자들이 「진보주의 교육협회」(The Progressive Education Association)를 결성한 데서 본격적으로 출발한 교육운동을 뜻한다. 이러한 교육사조를 진보주의 교육(Progressive education)이나 연장주의(protractivism)라고 칭하기도 한다. 

진보주의는 루소(J.J. Rousseau)의 자연주의 교육사상의 영향을 입은 19세기 유럽의 「신교육운동」(The New Education Movement)과 19세기 말에 발달한 심리학과 아동에 관한 연구가 고조된 것에 관련하여 20세기의 초기에서부터 미국사회에서 전개된 교육사조이다. 전통적인 권위주의와 성인중심적 교육관에서 탈피하여, 아동의 개성·흥미·욕구·적성·자발성 등을 교육의 중요한 원리로 삼고 외부의 강제나 통제에 의한 교육을 배척하는, 이른바 아동중심 교육이 진보주의 교육운동의 동기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가 1930년경에 대공황(大恐慌)을 겪는 동안 진보주의가 사회의 비판적 여론의 대상이 되자,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관심을 높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기의 진보주의가 아동중심적 특징을 가진다면 후기의 진보주의는 사회문제 중심적 특징을 가진다. 지역사회 학교·생활중심 교육 등은 후기운동의 두드러진 특색이다. 

진보주의는 전통주의적 특색을 지닌 본질주의(本質主義, essentialism)와 항존주의(恒存主義, perennialism) 등의 저항을 받았지만, 현대의 민주적 교육의 본질을 정립하는 데 미친 공적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며, 미국사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교육 일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름이 진보주의라서 교육사조 중에서는 늦게 등장한 편일 것 같지만 정작 20세기 교육사조 중에서는 가장 일찍 등장해서 처음으로 교육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당황시키기도 하는데, 그 전에 교육사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하면 이러한 혼란은 해결된다. 즉 본래의 교육사조는 '전통적 교육'이고 진보주의는 이 전통적 교육으로부터의 진보를 내세우며 등장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편의상 교육감의 성향을 구분할 때 '보수교육감', '진보교육감'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진보교육감이 하는 정책의 방향이 대체로 이 진보주의 교육사조와 통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보수교육감과 진보교육감은 단순히 대략적인 성향에 따라 보수/진보로 나눈 것일 뿐 진보교육감이 꼭 진보주의 교육사조를 따르는 교육감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보수주의는 정치적 사상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습관






보수주의, 保守主義, Conservatism

기존 사회 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이다.

산업혁명 초기 서구 사회에서 보수주의는 자유 무역에 대한 보호 무역의 지지, 그리스도교 전통 가치의 보존 등을 강조하였다. 이후 서구의 산업 발전 수준이 일정 단계에 이르고 사회주의 운동애 태동했을 때 보수주의는 사회주의에 대한 반발, 농촌 지역의 반혁명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였다. 이 당시 보수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사유 재산의 확립, 가족 가치의 중시 등의 입장으로 압축됐다.

경제적 평등과 사회 변천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수주의는 경제 성장과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완화하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여 시장에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보수주의는 진보주의와 달리 단일한 이념 체계로 파악하기 상당히 어려우며, 각국의 문화·민족·역사·지리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양태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주장은 주로 사회에서 유지되는 도덕관에 대한 고수, 분배보다 경쟁과 성장을 중시하는 경제 관념 등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보수주의는 과거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반동주의나 어떠한 변화도 거부하는 수구와는 구별된다.  

사상적 발전
보수주의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상대적인 의미를 가진다. 보수주의에는 사상서(바이블)가 존재하지 않아서 개념이 정립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보수주의를 이름표 붙은 병에 집어넣으려 하는 것은 마치 공기를 흐르는 액체로 만들려는 것과 같다. ... 그 근본 자체로부터 나오는 문제인 것이다. 보수주의는 정치적 사상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습관, 감정적 상태, 삶의 방법에 더 가깝다. ” 
 
— R.J. White


보수주의가 하나의 사상으로서 등장한 것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전후이다. 하지만 그 전에도 고전적으로 보수주의는 존재해 왔다. 공자의 논어나 종교 개혁기의 영국 성공회 소속 신학자인 리처드 후커의 글에서 태동을 볼 수 있지만, 보수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에드먼드 버크의 논설문인 「프랑스혁명 및 이에 관한 런던 시민단체의 움직임에 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and on the Proceedings in Certain Societies in London Relative to It)이 출간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매슈 아널드의 「교양과 무질서」도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진 글이다. 

보수주의 4대 강령
미국에서는 보수주의의 다양한 해석에 따라 공통적으로 갖는 네 가지의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정하였다.

제한된 정부
자유기업
강한 국방
전통적 미국가치

 


보수주의의 대표 인물
에드먼드 버크 : 보수주의의 아버지
벤저민 디즈레일리 : 영국의 총리
매슈 아널드 : 영국의 시인·평론가
윈스턴 처칠 : 영국의 총리
마거릿 대처 : 영국의 총리
로널드 레이건 : 미국의 대통령
리콴유 : 싱가포르 총리
장제스 : 중화민국의 총통
스티븐 하퍼 : 캐나다의 총리
보리스 존슨 : 영국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 : 독일의 총리
마이클 하워드 : 영국 보수당 대표
폴 라이언 : 미국 연방 하원의장
러셀 커크: 미국의 철학적 보수주의의 대표적 인물
배리 골드워터: 미국의 보수주의 정치가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 : 미국의 보수주의 활동가
모튼 블랙웰 : 미국 보수주의 정치기술 교육가
블라디미르 푸틴 : 러시아의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 : 페루의 대통령
요안니스 메탁사스 : 그리스의 총리
프란시스코 프랑코 : 에스파냐국의 카우디요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 포르투갈의 총리

 

 

분파
자유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는 '보수적 가치'와 '고전적 자유주의 경향'이 결합된 보수주의의 분파이다. 두 개념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자유보수주의 또한 의미의 다양성이 폭넓다. 역사적으로 권위와 종교적 가치의 측면에서 세워진 전통을 중시하는 '고전적 보수주의'와 자유 방임적 시장을 지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결합을 선호하게 된다. 고전적 자유주의(경제적 자유주의)는 경제와 사회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를 지지하는 경향을 띤다. 

오랫동안, 많은 국가에서 나타난 보수주의 이념은 경제적 자유주의적 논의를 포용했고, '자유보수주의'는 단순히 '보수주의'로써 받아들여졌다. 자유경제적 사고가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미국에서는 '자유보수주의'를 보수주의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유보수주의' 운동이 정치적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탈리아나 스페인과 같은 국가에서는 '자유적(Liberal)'과 '보수적(Conservative)'이 동의어처럼 쓰인다. 미국의 자유보수주의는 에드먼드 버크의 경제적 개인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미국의 보수주의의 한 경향이 되어가고 있으며, 러셀 커크가 이 경향의 대표적 인물이다. 

유럽에서 나타난 '자유보수주의'의 두 번째 의미는 사회적 자유주의의 관점과 전통의 중요성을 낮춘 '현대적 보수주의'의 결합이다. 이는 사회주의의 성찰적 관점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와 개인의 책임성의 '보수주의 관점'과 시민권, 생태주의, 제한된 복지국가를 선호하는 '사회적 자유주의 관점'을 동시에 포함하게 된다. 이는 스웨덴의 총리인 프레드릭 라인펠트에 의해 주창되었다. 유럽에서는 때때로 '자유보수주의'가 '사회적 보수주의'로 번역되곤 한다. 

보수자유주의
보수자유주의는 '자유적 가치'와 '보수적 경향의 정책(자유주의의 우익적 정책)'이 결합된 '자유주의'의 분파이다. '보수자유주의'의 뿌리는 자유주의의 출발에서 찾을 수 있다. 제 2차 세계 대전까지 독일, 이탈리아 등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계급은 보수자유주의자들이 형성했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급진적 시각을 자유주의의 보수적 시각으로 대체하도록 만들었다. 

자유지상적 보수주의 
자유지상적 보수주의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보수주의'의 자유지상주의적 경제관이 결합된 정치이념이다. 이는 입헌주의, 고전적 자유지상주의,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자유지상주의의 하부 이념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전적 보수주의'와는 다르고, 보다 개인과 경제적 자유를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무정부적 자유주의(Agorism)는 우파적 자유주의의 '자유지상적 보수주의'를 대표한다. 

'고전적 보수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자유지상적 보수주의'는 자유무역처럼 엄격한 자유방임 정책을 지지하고, 국영은행이나 규제를 반대한다. 환경 규제에 격렬히 반대하고 다른 부분의 경제적 통제 역시 부정적이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가 '자유지상적 보수주의'의 대표적 학자이다. 또한 소극적 자유를 강조하고 있기에 낙태와 같은 도덕적 차원의 규제에도 반대한다. 

재정적 보수주의 
재정적 보수주의는 정부가 지출과 부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경제적 철학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자신의 저서인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서 "정부는 거대한 부채를 만들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며, 만약 부채를 키울 경우에 납세자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녹색보수주의 
녹색보수주의는 생태주의와 결합된 보수주의를 지칭할 때 쓴다. '녹색보수주의'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미국 공화당 소속 하원 의장인 뉴트 깅리치로, 존 케리와 환경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처음으로 언급했다. '녹색보수주의 운동'은 점차 참신한 보수주의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 공화당을 지지하는 환경단체들은 환경 이슈의 강화를 추구하고 있고, 이는 천연자원과 인적·환경적 자원의 보호로 연결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은 자동차에 대한 세금, 자동차 광고 규제 등 환경 의제를 받아들였다. 이는 녹색보수주의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기후변화에 대한 협력 강화를 뜻한다.
 
사회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는 북유럽과 대륙유럽에서 발달했는데,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자유보수주의'를 뜻하는 것이다. 사회보수주의는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고,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국가적 지원에 반대한다. 우생학과 과학적 기술을 통해 영생을 얻으려는 트랜스휴머니즘에는 반대하는 반면, '생물학적 보수주의'에는 찬성한다. 사회의 기본 단위인 핵가족 모델에서 전통적인 일부일처제를 선호한다. 종교적 의식을 하지 않는 '세속적 결혼'과 입양, 동성혼에 반대한다. 마약, 성매매, 혼전 성교, 간통, 안락사에 대한 금지를 찬성하며, 포르노와 외설에 대한 검열에 찬성한다. 

정치적 보수주의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은 자유주의, 반공주의, 법치주의, 자유시장경제 질서, 점진주의적 개혁을 핵심가치로 여긴다. 이 외에 민족문화, 도덕성, 윤리성, 생명윤리성, 애국심, 애향심, 일부일처제, 낙태반대, 동성혼인반대 등 기존 가족제도의 옹호도 중요하게 여긴다. 대한민국의 보수세력은 건국과정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이념으로 받들고 이를 공산주의로부터 지키려 했다.

'반공주의가 곧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또는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곧 반공주의'라고 잘못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근대 역사관이 왜곡된 결과이다. 보수주의 세력의 반공주의는 개화기까진 없다가 1921년 일제강점기 자유시 참변을 계기로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1945년 미군정과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 전후로 좌익과 우익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제주 4·3 사건과 여수·순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자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고, 이를 근거로 시장의 자유와 재산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반하는 공산주의 활동에 대해 국가변란이라고 하면서 반공주의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1947년 발표한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 김구는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다.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서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며 공산주의를 극단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후 1950년 발발한 한국 전쟁과 국제적인 냉전 대립으로 인해 반공주의 기조는 강화되었으며, 1964년 5.16 군사 정변으로 출범한 박정희 정부 이래 대한민국의 주류 이데올로기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반공주의는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아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언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의 시작을 1870년대에 태동한 개화파로 본다.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는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 이념이 해방 후 미군정 당국에 의한 친미정권 수립을 계기로 비로소 한반도에 도입됐다거나 오늘날 한국의 보수세력이 지킬 가치와 이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등의 일부의 주장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바탕이 되는 공화제(공화주의 이념)가 안창호 등 개화파 3세대가 주축이 돼 19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공립협회나 1907년 국내에서 조직된 비밀결사인 신민회 등을 통해 제기된 뒤 1919년 상하이임시정부에서 채택된 데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남 교수는 덧붙였다.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붉은 군대가 한인 무장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한 자유시 참변이 발생하였다.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파와 상하이파 간의 공산주의 권력다툼에 의해 민족주의 세력인 김좌진·홍범도·지청천 등의 대한독립군단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결국 와해되었으며, 이에 민족주의 세력은 공산주의 세력에 등을 돌리고 반공주의를 갖게 되었다. 특히 김좌진이 이끄는 신민부는 이동휘가 가담하고 있던 적기단도 적대시하였다.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이는 한반도 역사상 처음의 보통선거, 자유 선거, 직접 선거, 비밀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한국민주당이 제1당이 되었다(독촉국민회 소속을 건 후보자들이 가장 많이 당선됐지만 독촉국민회는 통일운동이지 정식정당은 아니어서 국회에서의 당권은 없었다).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안두희에 의해 암살되면서 한국독립당을 비롯한 김구 세력이 와해되었다. 신익희·조소앙·이시영·이범석 등 주요 인사들은 별도로 창당하거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한국민주당 등에 합류하였다. 또 다른 우익세력인 김규식 세력은 그가 1950년 6.25 전쟁 때 북한군에게 납북되면서 와해되었다. 결국 그 즈음으로 하여 대한민국 보수주의의 주류는 이승만·김구 등 개화파 및 임시정부 우익의 정통성을 잇는 보수계 정당 계보와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지주·자본가인 장덕수·김성수의 한국민주당을 전신으로 하는 민주당계 정당 계보만이 남게 되었다. 


이승만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 전쟁이 시작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1953년 10월 1일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을 발판으로 대한민국은 경제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훗날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초기의 민주당계 정당은 친이승만 세력이었으나 이승만의 농지개혁법과 자유당 창당을 계기로 반이승만 세력이 되었다. 민주당계 정당은 군사정변 이후 출범한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정치적·사회적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정치적으로 보수가 아닌 진보로 분류되었고, 군사정권 세력을 지지하는 세력이 민주화 이후에 보수를 표방하면서 계속하여 진보로 분류되고 있으나, 경제적으로는 한미FTA 등에서 기존의 보수주의 정당들과 유사한 입장도 가지고 있어 넓은 의미에서 보수주의 정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민주당계 정당은 1990년대까지 보수계 정당과 별도로 보수주의의 계보를 이어왔었으나, 2000년대 전후로 DJP연합이 파국을 맞자 운동권 출신들을 대거 흡수하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서는 직접적으로 진보주의를 표방하기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에서 상당히 이탈하였다.

1993년 2월 25일에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정권 후반기부터 노동 시장의 유연화, 작은 정부, 자유시장경제의 중시, 규제 완화, 자유 무역 협정(FTA)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

2000년대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를 전후해서 기존의 우파와는 차별성을 주장하는 뉴라이트라는 단체가 등장했다. 뉴라이트를 이끄는 상당수 인사들은 기존의 우파가 아닌 진보세력과 주사파 등 운동권 출신에서 전향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진보세력의 정치적 주도권 확보에 대한 반작용과 기존 보수세력의 퇴행적 행태와 성격에 대한 자성 등을 내세운 것이 뉴라이트가 태동한 요인이다. 대표적인 단체로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자유주의연대 등이 있다. 뉴라이트는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극단적인 반좌익 세력으로 변하여서 기존의 친박, 기독교 우파와 함께 대표적인 극우 세력이 되었다. 이러한 경력과 성향 때문에 진보세력은 뉴라이트를 극도로 혐오하며, 정통보수세력도 뉴라이트를 '가짜우파', '위장보수'라 부르며 선을 긋고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으로는 한국독립당,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조선민주당, 한국민주당, 대한국민당, 자유당, 민주공화당, 유신정우회, 한국국민당,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자유한국당, 우리공화당, 바른미래당 등이 있다. 

비판
첫째, '자유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보수주의자들의 상당수는 시장에서의 승자로 하여금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경제적 자유는 충분히 인정하는 반면, 과거 공산주의자들의 반민족행위 역사(6.25 전쟁 등)를 근거로 하여 현재까지도 공산주의를 추종하려는 개인과 집단의 정치적 자유는 대체로 인정하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 정치적 자유를 제한했던 권위주의 정권을 예찬 내지 두둔하는 성향을 보여 비판을 받는다.

둘째, '반공주의'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보수주의자들의 상당수로부터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와 냉전의 시대적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켜준 핵심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NLPDR계열은 반공주의와 한미동맹의 결과 신식민지사회가 구축되어서 개인의 정치적·시민권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비판을 한다. 

셋째,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및 1980년대의 재정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장 원리의 강조, 구조조정, 민영화, 재벌 내지 대기업 중심의 감세를 특징으로 하는 전 세계적 변화에 따라 한국 사회에 확산된 이데올로기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행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권위주의 시대에 이어 현 시대에도 유산층을 위해 서민과 중산층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한미상호방호조약과 한미동맹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국가의 자주성 보다 대미 굴종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강남좌파라는 별명을 가진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21세기북스)에서 말한 보수주의의 가치는 법치주의, 원리원칙, 개인의 도덕성이라고 밝히면서 보수주의자에 대해 "법치주의와 원리원칙을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면서 반칙과 특권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하였으나 조국이 2019년 법무부 장관 지명된 이후 "진보의 최대 가치가 도덕성인지 과연 의심스럽다."고 비판받기도 했다. 

김성호는 보수주의의 4대 특성으로 1. 개혁의 이상에 공감하면서도 그 비용을 현실적으로 따져보는 현실주의 2. 해방의 명분 뒤에 숨어 있는 사익의 준동을 경계하고 공동체의 규범적 통합을 중시하는 공동체주의 3. 어떤 물질적, 도덕적 성과도 수단과 과정을 정당화 할 수 없다고 믿는 원칙론 4. 항상 권리 주장에 앞서 자기 의무를 돌아보는 의무론 등을 들었다. 이렇게 볼 때 한국에는 진정한 보수가 없었다.


미국의 보수주의
신보수주의
신보수주의는 1970년대에 등장하여 미국의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념이다. '힘이 곧 정의'라는 힘의 논리를 중시하고 신자유주의를 지향한다. 미국의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세계에 널리 퍼뜨리는 것을 이상으로 삼으며, 외교 및 국방정책에 있어서 신현실주의 노선을 취한다. 핵무기전략에 대해서는 앨버트 월스테터의 학문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보수적 복음주의
보수적 복음주의는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미국의 폭력을 종교적으로 정당화시키는 이념이다. 미국은 하느님이 뜻을 펼치기 위해 선택한 나라이므로, 미국에 대한 도전은 폭력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 및 유산층 기독교인을 기반으로, 진보적인 정치·종교사상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반공주의, 창조론, 호모포비아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영국의 보수주의
영국은 보수주의의 기원이기 때문에 많은 보수주의 정치가를 배출했다. 대표적으로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가 꼽힌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제국주의와 결합된 보수주의를, 윈스턴 처칠은 소련에 대항한 반공주의와 결합한 보수주의를 추구했다.

마거릿 대처는 흔히 '대처주의'라고 표현되는 보수주의 정책을 펼쳤다. 정치적으로는 반공주의를 추구했으며, 경제적으로는 친시장주의적 경제정책을 도입하여 영국의 복지병을 해결하고자 했다. 장기간의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고 주요 국영 기업을 민영화였으며 사회 복지 혜택을 감축했다. 외교적으로는 영국의 유럽 공동체(EC) 가입을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2007년, 보수당이 정권을 탈환하게 된 계기는 2004년 마이클 하워드가 보수주의 강령 16개조항을 발표한 이후였다.

영국 보수당 마이클 하워드가 발표한 보수주의 강령 16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부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누군가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무식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국민이 인간 본연의 야망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국민은 그들의 삶의 주인인고 간섭과 지나친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관료주의, 형식주의, 갖가지 규정과 조사관, 각종 위원회와 독립적인 정부기관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국민은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책임 없는 자유는 없으며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불공평은 우리를 분노하게 하며 기회 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나는 믿는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받았던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어린이는 노후에 자신들의 부모가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나는 믿는다.
영국인들은 그들이 자유로울 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영국은 언제나 영국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행운과 타고난 재능과 노력, 그리고 부의 다양성을 통해서만이 섬나라인 영국이 고귀한 과거와 약동하는 미래를 가진 위대한 사람들의 고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들의 종이 되는 것이 행복하다고 믿지 않는다.
누군가 건강하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병들게 됐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문화적·사회적 보수주의
문화적·사회적 보수주의는 한 국가나 한 문화권 내의 문화적·사회적 유산을 보존하려는 이념이다. 문화권은 '서구문화, 중동문화, 동양문화' 등 다양하다. 문화적 보수주의는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전통적 방식이 굳게 유지되는 것이다.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은 전통적 가치와 전통적 정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간혹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사회적 보수주의는 문화적 보수주의와 겹치는 측면도 있지만 대체로 구분된다.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정부가 전통적 가치나 행동을 권장하고 강화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보수주의는 전통적 도덕성과 사회적 관습을 보호하길 원하기에, 때로는 법과 규제를 통한 방법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변화'는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종교적 보수주의
종교적 보수주의는 특정한 종교적 가치를 정치에 반영하려는 추구이다. 유대교 정통파, 기독교 우파, 기독교 근본주의처럼 특정한 이념의 교리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종교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지역에서는 법을 통해 그들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강제하기도 한다. 종교적 보수주의는 세속적인 관습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반대로 그 관습을 지지할 수도 있다.




Q1. 좌파 우파 헷갈려 죽겠다. 도대체 뭐냐 그게?

A1. 혁명기 프랑스의 자코뱅당 어쩌고 그런 세계사 수업은 대충 건너뛰자. 기본적으로 좌우 구분은 기존 체제에 대한 입장에서 시작한다. 물론 여러가지 기준이 있고 혼란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한 기본적인 동력이 되어준다는 측면에서 ‘nature vs nurture’에 대한 입장을 살펴봐야 한다고 본다.

우선 좌파는, 사회적 힘을 통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있다. 덕분에 종종 개인의 각성과 변화에 대한 (종종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긍정적 시선을 보내며, 규제와 진흥을 통해서 인과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전제를 하곤 한다. 그에 비해서 우파는 의도적 변화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따라서 여하튼 굴러가고는 있는 현 체제에서 무언가를 해보자는 발상에 가까워진다.

이렇게 놓고 보자면 사실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좌파적 성향을 지니는 것은 거의 직업병인 셈인데 – 사회의 힘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그 분야를 공부할 이유조차 없으니까 – 동시에 공부할수록 그게 얼마나 단순하지 않은지를 알기 때문에 변화의 정도와 방식에 있어서 신중해진다(종종 그 과정에서 회색분자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다만 성향이라는 것은 현실을 모델링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에 포함되는 세부 내용들은 종종 바뀐다. 프랑스 혁명기의 자유평등박애 좌파들이 히피 미국의 생태주의 좌파를 상상이나 했겠는가. 여하튼 액면가로 놓고 보면 좌파는 자꾸 사회적 힘으로 뭔가를 하자는 쪽, 우파는 너무 건드리지 말자는 쪽으로 간다. 반면 좌파는 쓸만한데 자꾸 버리는 것, 우파는 버려야할만한데 자꾸 껴안고 버티는 것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러다보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진보가 좌파적 입장과, 보수가 우파적 입장과 종종 연동되는 것은 사실 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두 기준이 항상 일치한다는 보장은 물론 없으며, 내역이 자꾸 바뀌기 때문에 일대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아가, 좌파/우파는(그리고 뒤에 나올 진보/보수도) 종족특성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파 성향의 정당 안에서 좌파 우파가 나누어진다든지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Q2. 그런데 그렇게 깔끔하게 나누기에는 좌파/우파라고 해놓고 전혀 이상한 짓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A2. 좌파-우파 같은 범주를 부여하는 것이 무척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많은 경우 사람들이 기본 전제를 잘못 이해하곤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수많은 세상 속 사안에 대해서, 각 사안별로 취하는 입장들이 있다. 이런 입장들은 가족의 양육, 학교의 교육, 일부는 생물학적 요인 등 여러 변인에 의해서 형성되는데, 가능성의 조합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그런 사안별 입장으로부터 어떤 러프한 방향성을 종합해내는 것이 바로 가치관이고 성향이다. 즉 하나의 통일된 이념으로부터 모든 것에 대한 생활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판단의 총합으로서 성향을 유추한다는 말이다. 멀리서보면 빨간색으로 보이는 모자이크도, 가까이서 보면 많은 색들이 섞여있을 수 있듯이. 물론 ‘이념’을 통해서 학습한 것으로 생활의 방향을 보강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순환적 과정이기는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념은 사회적 ‘모델링’이고, 모든 모델들이 그렇듯 단순화와 실제 이상의 논리성을 부여하면서 만들어진다(바로 그렇기 때문에 쓸모 있는 것이다). A라고 경계선을 지어서 그 안에 모든 것을 밀어넣은 것이 아니라, 흩어져있는 것들 중 특정한 클러스터를 묘사하기 위해 A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식이다.


좀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좌파이기 때문에 모든 사안에서 A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내가 많은 사안들에서 A한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기에 편의상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 정도가 합당하다. 비유하자면 혈액형별 성격유형보다는 MBTI 테스트 쪽에 가깝다고나. 하지만 그런 상향식 범주화는 단순하고 선명하지 않은 만큼 사람들이 싫어한다.

 

Q3. 뭔가 점점 복잡해지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럼 진보 보수는 또 뭐냐?

A3. 진보 보수 구분은 심지어 좌우 구분보다도 더 애매하게 쓰여온 성향 구분이다. 왜냐하면, 사회변혁의 방향성과 변화의 속도가 같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무척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자면, 아직 겪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이론적 이상향에 의해 판단할 때 더 나을 것이라 사료되는 어떤 사회로 가자는 방향성을 ‘전진방향’, 이전에 있던 것으로 돌아가자는 것을 ‘후진방향’으로 가정해 보자.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열망이 있다면 지금까지 없었던 무언가를 지향하고, 변화에 문제가 있어보이거나 단순히 변화하는 것 자체가 피곤해서 자신들이 더 편했던 어떤 상황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이전에 있던 것으로 돌아가고 싶다.

다른 척도인 변화의 속도를 이해하려면, 러프하게 말해서 조그셔틀을 생각해보자. ‘진보‘는 2배속 플레이, ‘혁명‘은 앞으로 빨리감기 정도에 비유할 수 있다. ‘수구‘는 2배속 뒤로 플레이, ‘반동(실생활에서는 ‘수구’로 부르곤 한다)’은 빨리 되감기 정도다. 여기에 비해서 ‘보수‘라는 말은 좀 더 미묘한데, 보수는 ‘쪼끔씩만 움직인다‘ 의 틀로 설명된다. 그 안에서 합리적 보수는 0.5배속 앞으로 플레이, 꼴보수는 0.5배속 뒤로 플레이 쯤이 되어준다.


그런데 문제는 뒤로 가는 꼴보수가(혹은 심지어는 수구, 나아가 자기가 수구라는 것조차 모르는 단순한 머저리들이) 종종 스스로를 앞으로 가는 합리적 보수라고 개구라를 치곤 해서 사람 헷갈리게 만들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로 보자면 ‘합리적 보수’와 ‘진보’ 사이에 있는 어디쯤인가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발전의 방향과 페이스일터. 기계적 중립이나 정지상태가 아니라, 여하튼 발전을 하고 싶다면 그 정도라는 말이다.

그럼 또 흔히 이야기되는 ‘개혁‘은 또 뭔가. 개혁이란 말은 나야말로 궁극의 딱 맞는 1배속 플레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때 종종 쓰는 용어다. 하지만 실상 어느 방향으로든지 간에(!) 뭔가 홱홱 바꾸는 행위 자체만 있으면 흔히들 개혁을 자처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헷갈리게 만들기 쉽다… 에에 여튼 이 이야기의 교훈은, 속도와 방향 두가지를 같이 봐야한다는 것.

 

Q4. 개념설명은 그냥 건너가고, 그래서 진보좌파는 뭘 주장하고 보수우파는 뭘 주장한다는거냐?

A4. 벌써 대립항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보이지? 같은 속도 다른 방향을 놓고 볼 때 진보의 반대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다. 방향은 어떻든 변화의 속도에 초점을 맞출 때 진보와 보수는 대립항이 될 수 있지만, 그것도 사회발전을 전제로 하는 합리적 보수인 경우여야 한다. 게다가 사안별로 다르기도 해서, 개인적 좌우와 경제적 좌우를 합쳐서 2차원으로 나타내는 것이 옳다는 이론도 있다(‘놀런 차트’).


여튼 2000년대 한국의 보편적인 정치지형도라는 시공간적 맥락에 고정시켜놓고 볼 때, 좌파는 경제적 분배 정책, 노동권 보장, 개인의 각종 자유권 옹호 등에 초점을 맞추고, 우파는 성장 정책, 사회 질서, 자유 무역, 역사적 정통성 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국가와 민족 같은 개념에 있어서는 좌우 모두 좀 뒤섞여 있고, 북한에 대한 시각까지 개입되면 이성적인 구분을 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해진다.

특히 구분이 난감해지는 것의 최고봉은 바로 ‘자유’라는 개념인데, 다음 문답으로 패쓰. 사실 양 방향 모두 나름대로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지지자를 지니는 것인 만큼, 좌든 우든 얼마나 정밀하고 합리적인 입장인가는 바로 자기 반대 방향 진영이 초점을 맞추는 요소들의 필요성을 얼마나 덜 무시하는가에 달려있다. 물론 “나는 나라에 대한 자긍심 너는 비루한 자학사관” 운운하는 식의 천박함은 얼마든지 무시해도 되지만.

 

Q5. 그러고보니 너도나도 자유라는데, 이상하다. 미국 자유주의는 좌파인데 한국 자유주의는 극우인가? 신자유주의는 또 어째서 ‘신’까지 붙었나? 뭐가 뭔지 모르겠다.

A5. 우선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자유’라는 말이 너무 간지가 새끈해서 그렇다… 너도나도 유용하게 써먹고 싶어지지 않나. 하지만 ‘무엇의 자유’인가가 구분의 핵심이다. 얼추 영미권 전통으로만 먼저 설명해보자면 이런 식이다: 원래의 ‘자유주의’는 순수하게, 정부는 개입하지마 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현재는 소위 고전적 자유주의라고 한다. 왕정에 저항하며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만들어나가던 당시에는, 무려 이것이 ‘좌파’였다.

그게 좀 더 극단적으로 가서 절대 개입하지마의 자유지상주의, 즉 ‘리버테리아니즘‘까지 갔다. 그런데 여러모로 시행착오를 겪은 후, 사회적으로는 경제 등에 있어서 다소간 개입을 해서 판을 짜주지만 윤리 도덕 문화에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가자고 입장을 정리한 ‘리베럴‘ 입장이 나왔다(미국의 경우 이것이 ‘좌파’적 입장이다… 그런 상황을 2-30년대부터 전통을 가꿔온 ‘진보’ 진영에서는 가끔 고깝게 생각하지만).

그런데 경제부문에서 고전적 자유주의 내지 사실상 리버테리아니즘에 가까운 일련의 논리들을 다시 새 시대의 환경에 맞추어 개조해서 들고온 이들이 네오리베럴 즉 신자유주의라는 딱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들은 리베럴에게는 방종과 국가통제의 이미지를 씌워주어 차별화를 시도하고 말이다. 즉 너도나도 자유를 찾고(자꾸 듣다보면 원조국밥집, 진짜원조국밥집, 새원조국밥집 뭐 그런 느낌도 든다) 이름에 집어 넣는데 각각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골 때리는 과정이 약간 더 있는데, 바로 공산독재에 대한 반정립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해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반공 지상의 와중에서도 진짜 이념적 사회적 지향으로서의 공산주의도 아니라 그저 현존하는 북한체제에 대한 반대였다. 그러다 보니 자유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특별히 사회 전반에 대한 국가 개입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 대한 전체주의적 충성 같은 것에 별다른 거부감도 없고… 즉 자유에 대한 특별한 합의도 뭣도 없이 이름만 깔쌈하게 자유주의로 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영미권의 네오리베럴 사상을 들여오면서 그걸 기존의 반공자유주의에 접목시키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냥 리베럴도 한국말로 번역할때도 또 자유주의라고 써먹곤 하다보니 이거 일대 혼란이다. 뭐, 원래부터 헷갈리라고 이런 식으로 용어들을 만들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여튼 좀 요약하자면, 어휘의 가치 덕분에 여러 성향에서 자유라는 말을 붙이지만, 본질은 서로 전혀 다른 것들을 추구하기 십상이다. 혹은 내용적 맥락 없이는 큰 의미 없는 용어라는 말이기도 하다. 워낙 다들 많이 쓰고 있으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결국 뭐 맥락에 따라서,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면서 잘 알아들어야 할 수 밖에.

 

Q6. 결국 이번 문답도 딱 이거다 해답을 안내려줘서, 나한테 도움된 것이 없다. 그러니까 도대체 어쩌자는거냐.

A6. 뭐 몇 가지로 압축하자면 이런 거다.

1) 우선, 좌파 우파, 진보 보수 그런 범주로 상대를 욕하기 위해 규정할 때는 최소한 10초만 더 생각하자. 아마도 당신이 욕하고 싶은 그 분은, 우파라서가 아니라 단지 사리사욕이 무엇보다 강한데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능하고 멍청해서 사고를 친 것일 가능성이 더 크다. 혹은 좌파라서가 아니라, 사이비 숭배심에 빠지고 현실개념이 저능해서 삽짓을 하고 있는 것일터. “우파/좌파라서 그래”라고 하는 순간, 구체적인 문제 해결책에 대한 궁리는 5083.38km쯤 멀어진다.

2) 내 정체성이 좌파/우파이기 때문에 상대 ‘진영’을 비웃는다는 것은 좀 웃기는 이야기다. 본래 남의 말 콧등으로도 안듣고 고집 피우기는 극우/수구의 전유물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좌파라도 도그마에 빠지면 크게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머저리들은 더 나은 세상을 설계할 지능이 없고 근시안적이기 때문에 우익화되기 쉽다고는 하지만, 머저리가 유사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하고 좌파지망생이 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다.


양비론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언제라도 꼴통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사회변화를 목표로 하는 합리적 좌파는 우파의 문제의식들을 오롯이 안아줘야 하며, 변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 합리적 우파는 좌파의 방향성과 에너지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중립’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하면서 유연하게 흡수하라는 이야기다. 그게 안되는 사람은 아무리 똑똑한 척 하고 나름대로 자료들을 트럭으로 퍼오곤 하더라도 여전히 찌질한 민폐다.

3) 진짜 필요한 것은 선명성도 기계적 중립도 아니라 바로 사안별 정밀함이다. 이 사안에서는 누가/무엇이 얼만큼 피해를 보고 누가/무엇이 얼만큼 이득을 보는가? 소요되는 사회적/금전적 재원은? 다른 정책이나 사회적 규범과의 영향관계는? 지속성은? 이념적 성향은 판단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결정타가 되어주기에는 보통은 너무나 고려할 변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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