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고전문학

수영 야류(水營野遊)

Jobs 9 2021. 4. 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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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야류(水營野遊)
                                            <강용권(康龍權) 채록>

제 1과장 양반과장(생략)
제 2과장 영노과장(생략)

제 3 과장 : 할미․영감
― 할미․영감․제대각시의 장 ―
  초라한 옷차림에 죽장을 짚고 피로한 기색이 보이는 할미가 등장하여 털썩 주저앉는다. 할미는 면경 파편을 앞에 놓고 노끈으로 털을 밀며 화장한 연후에 일어난다.

할  미 : 영감이여. (창)(영감이 뒤따라 등장하는데 오광대의 가면 중 셋째 양반이나 넷째 양반의 것을 사용한다.)
영  감 : 할마닌가 ――. (창) (서로 영감, 할미를 호창(互唱)하면서 장내를 빙빙 돌다가 할미는 영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할  미 : 애얼레 망건(網巾) 쥐꼬리 당줄 대모 관자(玳瑁貫子) 호박 풍잠(琥珀風簪) 통영(統營) 갓은 어데 두고 파립 파관(破笠破冠)이 웬일이오. (창)
영  감 : 그것도 내 팔자라, 팔자 소관을 어리하리. (창)
할  미 : 줄변자 가죽신은 어이하고, 헌 신짝이 웬일이오. (창)
영  감 : 그것도 팔자라, 팔자 소관을 어이하리. (창) (영감이 퇴장해 버린다.)
할  미 : (할미가 악대 앞에 와서 일장 무용을 하다가 악사에게) 여부시오. 우리 영감 못 보았소?
악  사 : 당신 영감이 어떻게 생겼소?
할  미 : 우리 영감이 훌륭하고 깨끗하고 이마가 투-ㄱ 터지고, 사모(紗帽) 꼴 나고, 점잔하고, 양반답고, 말소리가 알곰삼삼하오.
악  사 : 방금 그런 양반 이리로 지나갔소.
할  미 : 영감이여. (창) (할미 퇴장한다.) (영감과 소실인 제대각시가 등장하여 긴 장단에 쌍무(雙舞)를 추고 놀 때, 할미가 다시 등장하여 멀리서 그 모양을 자세히 살피다가 영감과 눈총이 마주치면 영감이 할미의 앞을 가리운다. 이 틈을 타서 제대각시는 피신하듯 퇴장한다.)
(할미가 질투에 북받쳐 시비를 건다.)
할  미 : 이제 그년이 어떤 년이고?
영  감 : 아무 년이면 어때……(시비가 설왕 설래(說往說來) 한참 다툰다.)
영  감 : 그래 내가 집을 나올 때 삼존당(三尊堂)이며 자식 삼형제를 살기 좋게 마련해 주고, 혈혈단신(孑孑單身) 나온 나를 왜 추잡하게 이리고 찾아다닌단 말고.
할  미 : (할미 기가 막혀 손바닥을 치며) 그래 그 돈 한 돈 팔 푼은 이핀(당신) 떠날 적에 하도 섭섭해서 청어 한 뭇 사서 당신 한 마리 나 아홉 마리 안 먹었는기오.
영  감 : 너 아홉 마리, 나 한 마리를! 그래 자식 셋은 다 어쨌노?
할  미 : (후유 탄식하며 가슴팍을 치고 눈물을 닦은 후에) 큰놈은 나무하러 가서 정자나무 밑에서 자다가 솔방구(솔방울)에 맞아 죽고, 둘째놈은 앞도랑에서 미꼬라지 잡다가 불행이도 물에 빠져 죽고, 셋째놈은 하도 좋아 어르다가 놀라 정기로 청풍에 죽었소.
(할미는 엉엉 통곡한다.)
(통곡하는 할미를 영감이 발길로 차니, 할미가 실성(失性)하여 졸도한다.)
(당황한 영감은 악사에게 근처에 있는 의원을 불러 달라고 간청한다.)
악  사 : 의원, 의원!
(의원은 가면 없이 갓을 쓰고 두루막을 입고 등장한다.)
의  원 : (맥을 짚는 등 진찰하고)  급상한(急傷寒)이라 난치병이로군.
(침만 한 대 놓고 퇴장한다.)
(영감은 다시 악사에게 근처의 봉사를 불러 달라고 청한다.)
악  사 : 봉사, 봉사님 ――.
(봉사, 평복으로 지팡이를 짚으며 등장하는데, 소고(小鼓)를 들고 있다.)
봉  사 : 어디서 불렀소?
영  감 : 여기요, 여기 어서 죽은 사람 살아나는 경을 일러 주오.
봉  사 : (소고를 두드리며 독경한다.)
     해동 조선국 경상 남도 부산 수영동 거주 심달래[沈月川]. 신운이 불행하여 우연 졸도 명재경각(命在頃刻)하였으니 천지 신명(天地神明)은 대자 대비(大慈大悲)하옵소서.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광대원만(廣大圓滿) 무애대비심대다라니(無碍大悲心大多羅尼) 일쇄동방결도량(一灑東方潔道場) 이쇄남방득청량(二灑南方得淸涼) 삼쇄서방구정토(三灑西方俱淨土) 사쇄북방영안강(四灑北方永安康)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 아금지송묘진언(我今持誦妙眞言) 원사자비밀가호(願賜慈悲密加護)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독경 도중 할미가 절명함에 봉사는 무안하여 급히 퇴장한다.)
(영감은 하는 수 없이 악사에게 가서 향도군을 불러 달라고 청한다.)
(두건을 쓴 향도군이 7․8명 등장한다.)
(향도군은 시체를 둘러메고 염불을 부르며 출상한다.)

<염불가>
① 저 건너 저것이 북망산이냐.
   어서 가고 바삐 가자.
  (후렴) 니난실 난뇨 니난실 난뇨
   나무아미타불이라.
② 다시 갔다 못 오는 길을 속히 가면 무엇하리.
③ 황령 추존 북망산에 만고 영웅 토(土)일부라.
④ 고적 무의(孤寂無依)한 이 영혼을 극락 세계로 모셔 보자.
(이 때 영감은 두건(頭巾)을 쓰고 작지를 짚고 후행하며, 악사들도 후행 퇴장한다.)
                                         ― 파장 ―

제 4 과장 : 사자무(獅子舞)
― 사자와 범(담비)의 장 ―
  거대한 사자가 춤을 추며 등장한다. 사자 가면은 수영야류가면 중 가장 큰데, 사자의 두부(頭部)는 탈을 쓴 사람으로 형성되고, 동부(胴部)는 보자기(담요나 이불보)를 둘러쓴 사람(2인 내지 3인)으로 형성된다. 그러니까 자연히 보자기 속에 들어간 사람들끼리 조화된 춤을 추어야 한다. 악곡에 맞추어 사자가 사자춤을 한참 추고 있을 때, 범이 범춤을 추면서 등장한다. 사자와 범은 서로 으르렁대며 격투 난무(格鬪亂舞)한다.
  일장 투무(鬪舞)하다가 마침내는 범이 사자에게 잡아먹히게 되는 웅장한 무용극이다.
                       ― 파장 ―


수영야류 
 문헌이나 증빙할만한 물증으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이곳 고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250여 년 전에 좌수영 수사가 군졸을의 사기를 앙양시키기 위해 초계 밤마리(현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의 대광대 패를 데려다가 혹자는 그곳에 가서 배워 연희하게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밤마리는 낙동강변의 수로요지로 어엽상선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로써 큰 장터이었으며 그로 인해 놀이 패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 후 1930년대 일제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광복후 1946년 정월 대보름날 연희를 다시 시작했고 1960년대부터 많은 학자들이 이곳 수영을 수차 방문하여 고로들의 구전을 수집, 대사를 채록 발표하게 되었고, 민속극을 전공하시던 강용권 박사(동아대 교수)께서는 1963년 이후 수영야류의 전 4과장의 대사, 가면, 연기 등을 야류계의 원로인 최한복씨, 조두영씨, 조재준씨, 태명준씨 등을 주축으로 하여 완성하게 되었다. 이들 중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 태명준 (1904~1979)씨 일가는 지금 4대째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  


구성
 약 20분정도 군무가 끝나면 제 1과장인 양반과장이 시작되는데 주로 막뚝이와 수양반의 독설과 음흉하고도 시탈한 풍자로서 양반의 이면상을 폭로하고 양반계급의 무능과 허세를 조롱하며 계급타파와 인권의 해방을 절규한다. 마지막 막뚝이 대사에서 수양반의 대부인 마누라와 간통하였음을 폭로하니 양반들은 망했네 망했네 양반의 집이 망했네 연창하고 해산타령을 부르며 1과장은 퇴장한다.  
 
 제 2과장 영노과장은 양반과장에서 양반에 대한 도전에 만족하지 않아 천상에서 내려왔다는 괴물이 양반을 잡아먹는다. 이것은 양반과장에서 통쾌한 조롱과 야욕에도 만족하지 못한 울분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였다. " 즉 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겁 나는 것이 무엇이고" 할 때 영노가 "진짜 양반인 참양반이 호령을 하면 물려 가겠다." 양반 " 올치 영노야 듣거라 우리고조 할아버지는 영의정... 나는 한림학사를 지냈으니 내야말로 참 양반이다. 속히 물러 나거라" 영노 "옳치 그런 양반을 잡아 먹어야 하늘에 등천한다. " 영노가 양반을 잡아 끌고 퇴장한다. 

 제 3과장 할미, 영감과장은 봉건사회의 일부다처제에 따르는 가정불화를 주제로 하여 처, 첩의 삼각관계를 형상한 가정비극과 곤궁상을 나타낸 것이다.  
 
 제 4과장 사자, 담보(담비)는 사자에게 잡아 먹히는 무언극이니 대사가 없다. 이 사자춤은 타지방과 달라 (봉산탈춤, 강릉탈춤, 은율탈춤, 통영오광대, 북청사자놀이) 수영지방의 지세에 연유하고 있다. 수영본동의 동남쪽에 백산이 있는데 수영으로서는 앞산임으로 그 형상이 마치 사자가 마을을 등지고 달아나는 모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자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범(담보)를 제수로 치제하는 내용으로 연희된 것이다. 수영사자무는 타지방 것처럼 원래 채구의 사반적 색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점차 민속예술의 예능 오락으로 전환한 듯하다. 이로써 수영야류 전과장이 끝나면 이미 자정 전후가 된다. 촛불이 희미해지고 사방의 모닥불이 이글거린다. 배역들은 고사를 지내고 가면을 소각하면서 수영부락의 일년내의 제액과 만사형통의 행운을 축원한다. 음악은 굿거리 장단에 덧백이춤이다.  

* 뒷처리 4과장의 탈놀음이 끝날 무렵이면 자정 전후가 되어 아녀자들은 귀가한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모든 마을 사람들은 놀이마당에 들어와 한바탕 가무로써 즐긴다. 그런 뒤에, 연희자들은 가면 소각제를 올린다. 고사상을 차려 놓고, 국태민안과 마을의 평온 그리고 각 가정의 행운을 빌며 여러 번 배례를 하면서 가면을 소각하니, 이는 가면 신성시 사상에서 비롯된 소치이다. 


  역사적 유래 및 연희 준비
 수영야류는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전승되고 있는 한국 민속가면극의 하나인 영남 일대에 분포된 남부형의 대표적인 탈놀음이다. 연희 직후에 탈을 소각해 버리는 습속 때문에 1962년까지는 전통적 탈 모습을 볼 수 없었으며 대사도 구구 전승했으므로 필사본조차도 없었다. 1935년 일제의 민속문화 말살 정책으로 중단되었다가 8.15 광복 후 복원. 최한복, 조두영씨에 의해 옛 모습의 탈을 만들었다. 1964년부터 대사가 완성 복원되었고, 1971년 2월 26일 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다. 그 발상지는 낙동강변의 경상남도 협천군 초계면 율곡리(밤바리) 또는 덕곡면 율지리라하며 구전에 의하면 250여년 전에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이였던 수영수사가 그곳 밤마리에서 오광대 노래패를 붙잡아다가 놀게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일설에 따르면 수영수사가 졸병을 데리고 가서 놀이를 배웠다는 설도 있다.  
그러므로 수영야류는 초계 밤마리 직계이며 동래와 부산진으로 전파 되었다고 한다. 수영야류는 년례행사로서 음력 정월대보름에 산신제와 함께 거행하는 민속극이다.

 이행사의 준비도 정월초 3일부터 2, 3일간 동리의 야류패 꾼들이 주동이되여 가가호호를 방문 순회하면서 지신밟기(백사진경)로 걸입한다. 즉 수영야류의 행사에 수반하는 경비를 자금으로 조달하여 부락의 태평과 각 가정의 일년간의 번영 및 안가태평을 위한 기원을 하는 축제행사이다.

 지신밟기는 수양반을 중심으로 연희자 및 동리 사람들이 합심이 되어 가가호호를 순방하면서 음악에 맞추어 선주풀이부터 시작하여 조왕풀이, 장독풀이, 마구풀이, 고방풀이, 대문풀이로 끝맺는다. 한편 지신밟기하는 기간동안 야류 행사에 사용될 소도구 및 의상 가면제작들을 준비하는데 완료가 되면 탈제를 지내고 정월 보름날 수영야류 행사가 무사히 끝나도록 기원한다.

 이행사의 준비도 정월초 3일부터 2, 3일간 동리의 야류패 꾼들이 주동이 되어 가가호호를 방문 순회하면서 지신밟기(백사진경)로 걸입한다. 즉 수영야류의 행사에 수반하는 경비를 자금으로 조달하여 부락의 태평과 각 가정의 일년간의 번영 및 안가태평을 위한 기원을 하는 축제행사이다. 지신밟기는 수양반을 중심으로 연희자 및 동리 사람들이 합심이 되어 가가호호를 순방하면서 음악에 맞추어 선주풀이부터 시작하여 조왕풀이, 장독풀이, 마구풀이, 고방풀이, 대문풀이로 끝맺는다. 한편 지신밟기하는 기간동안 야류 행사에 사용될 소도구 및 의상 가면제작들을 준비하는데 완료가 되면 탈제를 지내고 정월 보름날 수영야류 행사가 무사히 끝나도록 기원한다.

 시박제(탈제)는 정월 14일 밤 지내고 총연습을 한다. 각기 연습한 연기 실력을 배역별로 결정하는데 원로들이 심사하여 자기 배역을 확정한다. 주역인 수양반과 막뚝이역은 제일 어려운 재담과 춤에 능숙한 자가 담당한다. 수영야류는 4 과장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길군악(행진악)으로부터 시작된다. 행진이 끝난 뒤 탈판에 등장하면 군무로 시작 군무는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참관한 전원이 대부분 참여하여 흥을 돋우고 합무한다  


  해설 1
 이 작품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민속극인 가면극으로 ‘들놀음’이라고도 한다. 가면극은 농촌 사회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신에 대한 제전이 극으로 전이된 것이고, 평민의 관점에서 양반을 풍자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각 과장은 대체로 독립되어 있고, 극적 갈등은 대사보다도 춤을 통해 더욱 역동적으로 표출된다. 그러나 모든 갈등은 과장별로 모두 해소되고, 새로운 삶의 출발로 마무리된다. 이런 점에서 가면극은 전통 계급 사회에서 피지배층이면서 일차 생산직에 종사했던 평민층의 억압된 심리를 해소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가면극을 통해 우리 전통 문화 유산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그 속에 담긴 선조들의 삶의 양상을 볼 수 있다. 가면극에 담긴 해학과 풍자, 그리고 건강한 삶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면서 점차 나약해지고 여유를 잃어 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새삼 되돌아 볼 기회를 줄 것이다. 


  해설 2
 부산직할시 남구 수영동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음으로, 수영에서는 탈놀음을 ‘들놀음' 또는 ‘들놀이'라고 하여 한자로 ‘야류(野遊)'라고 표기하며, '야루'라고 부르고 있다. 그 유래는 액 200년 전 좌수영수사가 초계 밤마리(지금의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의 대광대패를 데려다가 연희시킨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며, 또는 수영 사람이 큰 장터인 밤마리에 가서 보고 온 뒤 시작되어 그 뒤 동애와 부산진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연희 시기 및 장소 
1. 시기 
 수영야류는 고래로 상원날 아침에 동제를 지내고 그 날밤에 들놀음을 하였다. 경남지방의 동제는 정월 대보름이 약 70% 이다. 1935년 중단되었던 것을 1946년과 1953년에 복원하였고 음력 정월 상원날에 하였으나 지금은 수시로 공연을 하고 있다. 이제는 부락공동의 신앙적 사회적 행사가 아닌 오락적 예능경향으로 바뀌었고 마을 사람들과 유리되어 지금은 공연 예능이 되었다.


 2. 장소
 놀이판은 마을 한가운데 있던 시장터였으나 지금은 번화한 상가로 변했고 길놀이의 시발점이었던 먼물샘도 변하여 사용하지 않고 주로 수영 고적 민속예술보존회 놀이마당에서 연희하고 있다. 1953년까지는 길놀이 출발이 먼물샘이었고 1971년에는 마을 북쪽 서답바위였는데 수영의 도시화로 이제는 간략하게 축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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