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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녀(薛氏女)와 가실(嘉實)

Jobs 9 2021. 4. 2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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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녀(薛氏女)와 가실(嘉實)

 경주에 사는 설씨(薛氏)는 늙은 홀아비로 오직 딸 하나만 데리고 살았다. 설씨의 딸은 재색을 겸비하였다. 그런데 진평왕 때에 이 늙은 홀아비도 병역의 의무는 치르게 되었다. 국방 경비를 위한 소집 영장이 나왔다, 늙고 병든 아비를 보내느니 차라리 자기가 나가고 싶지만 여자의 몸으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사량부(沙梁部)에 설씨의 딸을 좋아하는 가실(嘉實)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가실은 설씨의 집에 딱한 사정을 알고 뛰어 와서, 자기가 대신 군대에 나가겠다고 제의했다. 설씨 부녀는 이 기적 같은 원조에 당황하기도 했으나 무척 반가웠다. 설씨는 가실에게  

 “나를 대신하여 군대에 나가겠다니 기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네. 그대의 은혜를 갚을 생각이니 만약 그대가 내 어린 딸이 어리석다고 생각지 않으면 아내로 맞아주면 어떨지?"

라고 운을 떠보았다. 이것은 가실이 원하던 바였다. 딸은 거울 하나를 꺼내어 반을 갈라 한 조각은 가실에게, 나머지 한 조각은 자기의 품에 넣고 뒷날 혼인할 때의 신표(信票)로 삼았다. 가실은 설씨녀에게 말 한 필을 주며 

 “이것은 천상(天上)의 좋은 말이니 내가 없는 동안 맡아서 기르시오." 

하고 의젓이 전쟁터로 나갔다. 3년이면 돌아오게 되어 있는 가실은 기한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나이는 아흔에 가깝고 딸의 나이도 혼기(婚期)를 넘기게 되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다른 신랑감을 찾아서 가기를 강요한다. 그럴 때마다 딸은 
 
 “신의를 저버리고 언약(言約)을 어기면 어찌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 모르게 이웃 청년과 혼약을 맺었다. 딸은 항상 가실이 두고 간 말을 쓰다듬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그 말과 함께 집을 떠나 버리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실이 돌아왔다. 그러나 몰골은 해골처럼 마르고 옷은 남루하여 집안 사람들은 그가 가실인 줄을 몰랐다. 배고픔과 싸움에 지친 가실은 전혀 딴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가실은 거울을 내던졌다. 딸이 그것을 주워 자기의 것과 맞추어 보니 꼭 맞았다. 가실이 분명했다. 기뻐하며 그들은 정식으로 혼례를 치렀다. 
<삼국사기>,권48, 열전(列傳), 설씨녀


핵심정리
* 갈래: 설화(민담)
* 성격: 사실적
* 주제: 서민 남녀의 인정과 의리
* 구성: 발단 - 전개 - 위기 - 절정 - 대단원의 5단 구성
* 출전: <삼국사기>

해설 1
  이 설화는 신라 때부터 구전되다가 고려조에 와서 <삼국사기>에 채록된 설화이다. 이 설화에는 일반 백성의 삶이 고귀한 신분의 삶 못지 않게 훌륭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 담겨 있을뿐더러 빈번한 전쟁 속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백성들의 고난도 담겨 있다. 아내를 맞기 위해 고난을 겪고 위기의 순간에 돌아와 거울을 신표로 하여 결혼하게 되는 반전으로 탄탄한 서사적 구조를 획득한 이 설화는 훗날 춘원 이광수에 의해 ‘가실’이라는 제목으로 소설화된다. 

해설 2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설씨녀(薛氏女)’로 전한다. 정사(正史)인 열전 속에 평민인 설씨녀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신분을 초월하여 한 번 약속을 맺으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신의를 지킨다는 내용에 가치를 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부친과의 갈등을 신의(信義)로 버티는 설씨녀의 인간 신뢰 정신이 돋보이며, 이러한 갈등이 위기의 순간에 해결됨으로써, 통쾌한 여운을 남겨 주는 구성도 돋보인다.

해설 3
 [설씨녀와 가실]은 원제목이 [설씨녀]로 <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다. <삼국사기>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본떠서 편찬한 삼국 시대의 정사(正史)인 바, <사기>에도 열전이 있다. 그 중 8권에 백결 선생 , 김 생, 솔거 등 과 같은 예술가 다음에 [효녀 지은],  [설씨녀], [도미 처]의 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민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여인들의 효성, 의리, 정절 등을 다루고 있어, 삼국의 일반 백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 진평왕(眞平王): 신라 26대 임금. 재위 기간 579년 - 632년. 전왕 진흥왕 때 차지한 한강 유역 때문에 고구려 백제와 전쟁이 많았음. 

원문
薛氏女, 栗里民家女子也. 雖寒門單族, 而顔色端正, 志行脩整, 見者無不歆艶, 而不敢犯. 眞平王時, 其父年老, 番當防秋於正谷. 女以父衰病, 不忍遠別, 又恨女身不得侍行, 徒自愁悶. 沙梁部少年嘉實, 雖貧且窶, 而其養志貞男子也. 嘗悅美薛氏, 而不敢言. 聞薛氏憂父老而從軍, 遂請薛氏曰: “僕雖一懦夫, 而嘗以志氣自許, 願以不肖之身, 代嚴君之役.” 薛氏甚喜, 入告於父, 父引見曰: “聞公欲代老人之行, 不勝喜懼, 思所以報之. 若公不以愚陋見棄, 願薦幼女子, 以奉箕箒.” 嘉實再拜曰: “非敢望也, 是所願焉.” 於是, 嘉實退而請期. 薛氏曰: “婚姻人之大倫, 不可以倉猝. 妾旣以心許, 有死無易, 願君赴防, 交代而歸, 然後卜日成禮, 未晩也.” 乃取鏡分半, 各執一片云, “此所以爲信, 後日當合之.” 嘉實有一馬. 謂薛氏曰: “此天下良馬, 後必有用. 今我徒行, 無人爲養, 請留之, 以爲用耳.” 遂辭而行.
會國有故, 不使人交代, 淹六年未還. 父謂女曰: “始以三年爲期, 今旣踰矣. 可歸于他族矣.” 薛氏曰: “向, 以安親, 故强與嘉實約. 嘉實信之, 故從軍累年, 飢寒辛苦, 況迫賊境, 手不釋兵, 如近虎口, 恒恐見咥, 而棄信食言, 豈人情乎? 終不敢從父之命, 請無復言.” 其父老且耄, 以其女壯而無伉儷, 欲强嫁之, 潛約婚於里人. 旣定日引其人. 薛氏固拒, 密圖遁去而未果. 至廐, 見嘉實所留馬, 太息流淚.
於是, 嘉實代來, 形骸枯槁, 衣裳藍縷, 室人不知, 謂爲別人. 嘉實直前, 以破鏡投之, 薛氏得之呼泣, 父及室人失喜, 遂約異日相會, 與之偕老.
<三國史記 卷48 「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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