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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 과학 성과 중시, 分析哲學, Analytic Philosophy, 분석철학 내용과 방법론, 논리 실증주의, 일상 언어 학파

Jobs 9 2023. 8. 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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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철학, 分析哲學, Analytic Philosophy, Analytische Philosophie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이들은 전통적인 으리으리한 철학 체계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몰두하는 것은 분석으로서의 철학이다. 개별 과학들을 통해 얻은 정당한 지식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과학 연구 마냥 새로운 지식을 더하려 하는 대신, 그 의미와 함의를 분명히 하는 것에 초점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들의 철학은 경험과학만이 능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또한 경험과학의 탐구가 가능하다고, 혹은 허용된다고 하는 범위를 한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종교 혹은 사회적 구원을 대신하기 위해 철학을 추구한다면, 이와 같은 철학에선 그 어떤 원하는 바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어니스트 네이글(Ernest Nagle), "Impressions and Appraisals of Analytic Philosophy in Europe. I", 1936  

 

 

이 철학은, 체계를 세운 철학자들의 철학과 비교해 보면, 우주에 관한 학설을 무더기로 대뜸 생각해 내지 않고 한 번에 한 문제씩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유리한 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것은 과학의 방법과 비슷하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과학에 있어서처럼 계속해서 진리에 접근할 수 있고 또 그 새로운 각각의 단계는 지나간 단계에 대한 부인이 아니라 개선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논쟁을 거듭하는 광신의 혼잡 속에서 이를 종합하는 힘의 하나는 과학적인 진리성이다. 내가 말하는 과학적인 진리성이란 인간으로서 가능한 하나의 관찰-개인적이 아니면서 또한 지역적 및 기질적인 편견에서 벗어난-과 추리 위에 우리의 신조의 기초를 두는 습관을 말한다. 철학에 이와 같은 덕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철학을 알맹이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 내가 속해 있는 학파의 주요한 장점이다.  
- 버트런드 러셀

 

현대 서양철학의 대표적인 조류, 20세기 이후 영국, 미국, 호주 등 영어권 국가들과 북유럽 국가들 철학계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종 유럽의 대륙철학과 대비되는 조류로 여겨지고는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정부 수립 이후 미국에서 유학한 교수들로부터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2010년대 한국에서 다른 철학들과의 차이점을 들자면, 동양 철학 및 서양 철학, 현대 대륙철학 등이 조악하게나마 초중등 교과과정, 논술지도 과정에서도 다루어지는 등 널리 교육되고 있는 반면, 분석철학은 대학교에서의 ‘강단철학’으로서만 다루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한국에선 초기 분석철학자들의 주장을 염두에 둔 "언어분석철학", 혹은 지리적 특성을 염두에 둔 "영미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나, 이러한 명명 방식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분석철학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한 일반적 인식
흔히 분석철학은 19세기 후반에 출현한 이후 줄곧 그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정체성은 특히 헤겔 이전의 전통 서양철학 그리고 헤겔 이후의 대륙철학 전통과 대조적으로 부각되고는 한다. 이러한 시각은 분석철학이 어떠한지를 잘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 분석철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 내용과는 배치되는 면도 없지 않다.

종종 "언어분석철학"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데서 나타나듯, 분석철학은 대개 언어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언어란 한국어, 영어 같은 자연 언어와 인공어를 망라한다. 실제로 20세기 이후 놈 촘스키의 생성언어학으로 대표되는 언어학 연구는 분석철학의 언어철학적 연구와 밀접한 상호 교류를 통하여 발전해왔다. 

또한 분석철학은 형식논리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분석철학의 시초인 고틀로프 프레게가 <개념표기법 Begriffsschrift>의 출판을 통해 현대 논리학을 창시한 것을 시작으로, 20세기 초반 많은 논리학자들이 철학과 수리논리학을 넘나드는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특히 분석철학 초기에 수리논리학은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대안으로 간주된 바 있다. 지금도 분석철학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1차 논리(명제논리 및 술어논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반드시 갖추어야만 한다. 분석철학의 많은 논문들이나 저서들에서는 논리식들이 별다른 해설 없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논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어느 단계에서는 막힌다. 물론 정상적으로 배우면 다 같이 배우고 그렇게 부담되는 내용도 아니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분석철학은 언어 및 논리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분석적인 연구 태도를 취한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때 "분석적"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초기 분석철학자들이 무어가 실천한 분석의 방법을 주로 한 "언어의 분석"을 통하여 철학적 주제들을 연구하고자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의 분석철학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엔 명료한 논증을 강력하게 추구하는 경향으로 받아들여진다. "명료한 논증"이란 논리학이나 수학의 증명 과정이 그러하듯, 애매하거나 모호한 표현 없이 논리적으로 타당한 논증을 뜻한다. 그래서 분석철학의 영향력 있는 저작들은 흔히 전통적인 철학 고전들이나 현대 대륙철학의 저작들에 비하여 분량이 짧으며, 아예 책 대신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잦다. 그럼에도 이러한 특징지움이 적절한지에 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전통철학 및 대륙철학은 명료하지 않은가?', '뛰어난 분석철학자는 다 명료한 글을 쓰는가? 등의 반론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분석철학은 흔히 현대 과학의 성과를 중시한다고 알려져있다. 이는 특히 현대 대륙철학이 과학전쟁 등과 관련하여 현대 과학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과 대비된다. 이러한 인식은 분석철학이 초기부터 논리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분석철학에 중요한 전기를 제공한 빈 학파에 여러 과학자들이 속해있었으며 그 이론 또한 자연과학에 친화적이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로도 분석철학 전통은 '인지과학'에 관한 초학제적 연구 참여 및 과학적 방법론에 관한 과학철학 연구 등에서 나타나듯, 지금도 과학과 상당히 가까운 관계를 지니는 듯하다. 

 

분석철학이 뭐지? 철학적 조류? 학파? 분야? 방법론?
분석철학은 흔히 대륙철학과 대립하는 조류로 알려져있다. 1992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로 알려진 자크 데리다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려는 것을 두고 여러 분석철학자들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했던 것은 그 대표적인 일화다

하지만 분석철학이 전통철학이나 대륙철학과 정말로 배치되는 조류인지에 관해선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아가 "분석철학"이 하나의 독립적인 조류인지, 어쩌면 명백하게 정의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여부 또한 여전히 확실치 않다. 

1920-1930년대엔 분석철학은 하나의 조류/학파로서 확실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빈 학파의 '논리 실증주의'로 대표되는 바, 당대 분석철학계는 '전통 형이상학의 논파'와 같은 일련의 주제에 대해 수리 논리학 및 언어철학을 기반으로 한 통일된 방법론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0년대 나치의 탄압으로 인해 빈 학파의 구성원들이 전세계로 흩어지고 논리 실증주의의 기조 또한 후배 철학자들에 의해 논파된 이후, 분석철학계가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주제 및 방법론 등이 정말로 있는지에 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므로 현대에 "철학자 x가 분석철학자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대개 별로 영양가 있는 질문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분석철학'을 정의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마땅치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대에 들어 분석철학과 현대철학간의 경계 또한 점점 옅어짐에 따라, 분석철학의 기준을 세우려 하는 것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분석철학에 대한 오해들
"언어분석철학"이라는 별칭에서 나타나듯, 분석철학은 흔히 '철학은 다 말장난임 말만 분석하면 다 끝장남'이라는 주장을 하는 학파로 간주되고는 한다.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펼친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실제로 분석철학사에서 중요한 전기를 차지하기는 한다. 다만 현대의 대부분의 분석철학자들은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분석철학에 관한 이런 식의 오해들의 대표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다


영미철학이다.
반-형이상학적 경험론이다.
언어철학이다.
철학사에 반대한다.
분석철학자는 도덕과 윤리를 부정한다!
분석철학자는 경험론자이며, 과학자들의 졸개다!
플라톤과 칸트를 무시한다.

저명한 철학사가인 힐쉬베르거 또한 자신의 『서양철학사』에서 분석철학에 대한 다음과 같은 비판을 제기한다:
분석철학은 기호논리학에 치중한 나머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상실했다.
분석철학은 그 스스로 경험론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대상이 아닌 요소들, 예컨대 논리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한다.
분석철학은 언어분석을 통해 철학을 해체하여 모든 진지한 것들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를 함축한다.

이러한 주장들이 아예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힐쉬베르거는 독일(대륙철학 계통)의 독실한 신학자이자 교황의 집사이기도 했으며, 그의 저서 『서양철학사』는 1950년에 발행되었던 것으로 당시에도 여러 단점이 지적되었고, 이렇기 때문에 1950년대 이후 현대 분석철학에 대해서는 거의 틀린 서술이라고 보면 된다.

 

 

분석철학 태동기: 프레게, 러셀,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1874년부터 독일의 예나 대학교 수학과에서 교편을 잡았던 고틀로프 프레게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학자였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전을 계기로 당대 유럽 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수학의 확실성이 의심되고 있었으며, 프레게의 목표는 이에 맞서 수학의 확실성과 객관성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프레게는 정수론을 논리학으로 환원하고자 했으며, 그런 과정에서 여러 성과들을 이루어낸다. 아래는 그 중 몇 가지 예시다. 

 

양화 논리 개발: 첫 저서인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 』에서 현대에는 "2차 양화 논리"로 불리는 논리 체계를 처음으로 고안했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조지 부울 때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던 논리학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언어의 의미에 대한 분석: 프레게는 수학의 기초를 튼튼히 수립하기 위해선 수학에서 쓰이는 각종 개념들의 의미를 분명히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뜻과 의미에 대하여(Über Sinn und Bedeutung)」는 그 일환이었으며, 프레게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는 이후 현대 언어철학의 시초가 된다. 

이렇듯 프레게는 수리철학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철학적 작업을 개진했고, 이런 과정에서 다비트 힐베르트, 에드문트 후설 등과 중요한 서신 왕래를 주고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저작 『산수의 근본 법칙(Grundgesetze der Arithmetik) 』을 편찬하던 무렵, 그 2권을 출판하려던 바로 그 때 영국의 한 젊은 학자로부터 편지 하나를 받는다. 그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게도 프레게의 기본 법칙 중 하나가 심각한 역설을 낳는다는 것이었다. 망연자실한 프레게는 러셀에게 지적받은 기본 법칙(V)을 이리저리 수정해보려고 했으나 만족할만한 결과는 끝내 얻지 못했고, 결국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프레게의 오류를 지적한 것은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버트런드 러셀이었다. 러셀은 자신의 동료이자 후일 윤리학 및 분석철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지 에드워드 무어와 힘을 합쳐 당대 영국에서 유행하던 '영국 관념론(British Idealism)'에 반기를 든 젊은 학자였고, 1899년에 주세페 페아노를 통해 프레게의 연구를 알게 됐다. 그리고 프레게의 오류를 지적했으나, 러셀은 동시에 프레게의 목표인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시킨다'는 '논리주의' 수리철학을 계승하였다. 그런 기획하에 1910년대까지 러셀은 그 예시로 다음과 같은 영향력 있는 성과를 남겼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와 공저한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이 책에서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분지 유형 이론(ramified type theory)를 제시함으로써 프레게의 난관을 피하면서도 논리주의를 입증하고자 했다. 이는 얄궂게도 불완전성 정리가 발견되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산학에서 유형 이론의 효시가 되기도 했다. 
언어의 지칭에 관한 이론: "프랑스의 현재 왕" 같은 한정기술어구(Definite Description)은 플라톤 이래 여러 철학적인 문제를 야기한다고 여겨졌다. 러셀은 1905년 「지칭에 대하여(On denoting)」에서 이런 이런 까다로운 언어 표현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틀을 제시했으며, 이는 이후 언어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1910년에 러셀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임용되었으며, 자신의 철학적 연구를 더욱 활발하게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무렵 오스트리아 출신 공학도 하나가 프레게의 소개를 받아 케임브리지대로 러셀을 찾아왔다. 러셀은 그 오스트리아 청년의 철학적 재능이 매우 비상하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으며, 대학원생이 된 그 독특한 청년과 학문적으로 활발히 교류했다. 1913년에 그 청년이 케임브리지를 떠나고, 1916년 러셀이 케임브리지대에서 해고된 이후 그 교류는 더이상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러셀은 그때의 교류를 바탕으로 자신의 논리적 원자론(Logical Atomism)을 발전시켰다. 

케임브리지대의 번잡함을 견디다 못해 노르웨이의 시골로 훌쩍 떠나버린 그 청년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었다. 곧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군에 장교로 임관하여 참전했고 포로 생활을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은 꾸준히 철학적인 글을 썼으며, 그렇게 완성한 자신의 논문이 모든 철학을 완성하였다고 생각했다.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이른바 '전기 비트겐슈타인'를 대표하는 저작이며, '그림 이론'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여러 입장이 제시되었다. 

러셀은 자신의 논리적 원자론을 바탕으로 『논리-철학 논고』의 초판 서문을 써주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이 자신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1920년대, 일찍이 은퇴한 프레게는 끝내 널리 이름을 알리지 못한채 사망했고, 러셀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활발한 사회적 활동과 함께 철학적 연구를 이어나갔으며, 비트겐슈타인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등 독특한 행보를 펼쳤다.

 

 

학파로서의 분석철학: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학파
과학적 세계 이해 앞에는 그 어떤 풀리지 못할 수수께끼도 없다.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명료화함으로써, 우리는 그 중 일부가 사이비 문제임을 밝혀낼 것이고, 또다른 일부는 경험적 문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실험과학의 판단에 맡길 것이다. 철학적 작업의 과제는 문제와 주장을 명료화하는 것에 있지, 어떤 특수한 '철학적' 주장을 펼치는데 있지 않다
「과학적 세계 이해: 빈 학파(Wissenschaftliche Weltauffassung: der Wiener Kreis)」

그 무렵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빈을 중심으로 여러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에른스트 마흐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는 점이었고, 그에 입각한 이들의 목표는 경험과학을 철저히 고려하는 철학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들 빈 학파는 이러한 경험주의 철학에 프레게와 러셀 등이 이룩한 현대 논리학의 성과를 접목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마르틴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당대 독일 주류 철학계를 반동이라고 비판하며 대립각을 이루었다. 모리츠 슐리크, 오토 노이라트, 쿠르트 괴델 등 그 구성원들간의 실제 견해차는 매우 컸으나, 이들은 외부적으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띤 것으로 유명해진다.
오직 검증가능한 과학적 진술들 및 논리학이나 수학 등의 논리적으로 동어반복적인 진술들만이 유의미하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명제들은 무의미하다. 논리적 분석을 가할 경우, 이들 명제는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하지도, 수학처럼 논리적으로 동어반복적이지도 않다는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무는 스스로 무화한다(Das Nichts selbst nichtet)" 같은 명제가 대표적 예시다.
이러한 파격적인 철학적 입장은 논리 실증주의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1930년대 유럽을 휩쓸던 파시즘의 광풍은 철학자들 또한 피해갈 수는 없었다. 1936년에 모리츠 슐리크가 암살당한 것을 전후로 하여 빈 학파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은 영국,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들로 망명하여 정착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즈음하여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를 중심으로 버트런드 러셀 및 논리 실증주의와는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하는 또다른 철학적 학파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존 랭셔 오스틴, 피터 스트로슨, 길버트 라일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 철학자들은 많은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들이 결국 언어적 문제라고 봤다는 점에서는 논리 실증주의들과 동의했으나, 내놓은 해결책은 전혀 달랐다.
언어는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일상에서 쓰이는 말은 공리화된 논리 체계처럼 고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의 임무는 '참이 무엇인지', '마음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참". "마음" 같은 말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흔히 자신의 옛 이론을 포기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휘의 의미는 그 언어에서의 쓰임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43

이들은 실생활에서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일상 언어 학파(Ordinary Language School)로 불리게 되었다. 이는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이상 언어(ideal language)인 논리학에 초점을 둔 것과 대비되는 점이다. 또한 주로 옥스퍼드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옥스퍼드 학파"로 불리기도 한다. 

20세기 중반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친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 학파는 서로 다른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언어를 분석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언어 분석 철학으로 불렸으며, 21세기 현대까지 이어지는 분석철학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후반 이후: "언어 분석 철학"의 해체와 발전
'철학의 임무는 (인공언어가 됐건 일상언어가 됐건) 언어를 분석하는 것이다'는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언어 학파의 기치는 1950년대부터 각 세부 분야의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비판 받고, 또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언어철학에서 논리 실증주의를 무너뜨린 대표적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철학자는 윌러드 콰인이다. 그는 "경험론의 두 독단(Two Dogmas of Empiricism)"에서 분석명제를 '순전히 말의 의미 때문에 참인 명제'으로 정의하는 것은 순환적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의미에 의해 참인 명제과 그렇지 않은 명제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없으며, 곧 특정한 명제가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강력한 논변을 제시했다. 이는 "검증가능성"을 주된 기준으로 삼는 논리 실증주의에 치명타를 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불어 언어에 대한 일상 언어 학파의 접근 방식은 폴 그라이스가 논리적/체계적인 의미론과 사회적 규칙에 의해 발생하는 언어의 비문자적 의미를 다루는 화용론 간의 구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써 1950년대부터 약화되기 시작했다. 자연 언어에 대한 이런 의미론의 발달 과정에서 양상논리 같은 도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양상논리에 대한 논의들은 철학자들이 '필연성', '본질', '보편자' 등 20세기 전반기에는 노골적으로 비웃음거리가 됐던 형이상학적 주제들에 다시금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1960~70년대에 솔 크립키, 데이빗 루이스, 알빈 플란팅가 같은 양상 논리학자, 철학자들이 다양한 형이상학적 주제들을 양상논리를 이용해서 세련된 형태로 발전시키고 연구할 수 있음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는 20세기 후반 소위 "분석 형이상학"의 부흥을 불러왔다.

이런 형이상학의 부흥에는 심리철학의 발전 또한 큰 몫을 했다. 마음의 본성에 대한 행동주의적 관점이 지고 인지과학이 대두되기 시작하며 '마음'이 무엇인지, 만약 컴퓨터가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생명체인 인간이 마음을 갖는 것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등에 관한 논쟁이 재촉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논쟁은 '마음이 물리학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때 "결정된다"는게 무엇이냐?' 같은 의문을 낳았고, 이는 곧 형이상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과학철학에서도 칼 포퍼 등 이래 비판을 받았던 논리 실증주의는 과학에 대한 언어적-논리적 분석을 아예 비판한 토머스 쿤이 대두한 이래 그 빛이 바랐고, "-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같은 윤리적 문장들의 의미를 따지는 이른바 '메타윤리' 문제에 몰두했던 윤리학 또한 존 롤스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를 따지는 규범윤리로 돌아오게 됐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분석철학 자체의 방법론에 대한 고찰 역시 분석철학자들의 연구 주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들의 철학적 직관에 대해 인지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실험 철학이 그 대표적인 예시. 특히 2000년대 초 이루어진 여러 실험철학적 연구는 '개념적 분석', 즉 일상적 개념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철학적 방법론의 유용성에 대한 반성의 계기를 제공했다. '논리적 분석'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상적 개념에 대한 반성적 검토'라는 철학적 방법론을 보다 정밀화한 것이지만, 이런 '논리적 분석'이 생각보다 인지적 편향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심리학적 보고들이 이루어진 바 있기 때문. 그리고 분석철학사 학회와 국제 과학철학사 학회가 출범하는 등 분석철학의 흐름 자체를 되짚어보는 시도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분석철학자"들은 더이상 하나의 통일된 입장을 공유하는게 아니라 제각기 세부 분야에서 제각기 다양한 견해들을 개진하게 되었다. 즉 "분석철학자들은 ~~~한 철학적 입장을 갖는 철학자들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 곤란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논리학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명료하고 간결한 논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처럼 애매모호한 특징들 말고는 분석철학의 공통된 입장이라고 할만한게 이제는 별로 없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시는 다음과 같다:

 
스스로를 명료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제가 하는 것에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저는 멜버른 대학 및 옥스퍼드에서 받은 분석철학 교육에 감사해합니다.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명료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설령 저 안 깊숙히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한들 결코 훌륭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걸 끄집어냈어야만 합니다.
피터 싱어, http://www.princeton.edu/main/news/archive/S48/65/67I55/index.xml?section=featured 

 


분석철학의 각 학제들에 대한 접근


분석적 전통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철학자들 중심의 철학사보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양철학에서 다뤄진 철학적 문제들 위주로 연구한다. 즉 분석철학에선 각분야 별로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분과별로 분석철학자들의 궤적, 그리고 연구 방식 등은 대략 다음과 같다.


수리철학 및 논리학
분석철학의 역사에서 드러나듯 수리철학 및 논리학은 '분석철학'이 독립적인 철학적 전통으로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야다. 현대 논리학 및 집합론의 선구자들이 초창기 분석철학자들과 많은 부분에서 겹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리 논리학은 여전히 분석철학의 기초 소양 중 하나로 여겨진다.  

수리철학의 몇몇 주제들, 예를 들어 추상적 사물로서 수나 집합 등이 존재하는지 문제 등은 사실상 형이상학과 겹치기에 대부분의 형이상학자들은 어느 정도의 수리철학 연구를 겸한다. 다만 집합론 및 논리학에서 촉발되는 보다 상세하며 전문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철학자들과 수학자들 또한 여전히 많다. 

불완전성 정리 이후의 현대 논리학 연구의 경우, 수학과의 수리논리학자들의 연구와 경계가 흐릿한 경우가 많다. 다만 철학과에서 주로 연구하는 이른바 '철학적 논리학'의 경우 비표준 논리 연구에 좀더 초점이 기울어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 형이상학에서 긴요하게 쓰이는 양상논리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더불어 논리학 자체의 본성에 관한 '논리철학' 역시 함께 연구가 되고는 한다. 

 

언어철학
수리철학과 마찬가지로 언어철학도 고틀로프 프레게와 버트런드 러셀의 업적에 힘입어 20세기 전반 분석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분과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일상언어학파 이후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을 동일시하는 것은 더 이상 옳지 않다. 그럼에도 언어철학은 여전히 분석철학의 주요한 학제 중 하나이며, 언어철학의 여러 떡밥들은 주변 학제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과학철학에서 토머스 쿤이 윌러드 콰인의 언어철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은 점, 이름과 필연』서 제시되는 솔 크립키의 고유명사에 대한 분석이 '양상' 문제에 대한 형이상학에 큰 파급력을 미친 점 등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형이상학
역사적으로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형이상학을 멸시했던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1948년에 출판된 윌라드 콰인의 논문 「있는 것에 대하여」를 통하여 반론을 가한 이래 이후 형이상학 혹은 존재론은 다시금 확고한 학제로 자리잡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양상논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부터 그에 따른 여러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솔 크립키, 데이빗 루이스, 알빈 플란팅가 등 유력한 철학자들에 의하여 형이상학은 20세기 후반 이후 분석철학 전통 가운데서도 가장 활발한 학제 중 하나로 변했다. 

다만 이런 '분석 형이상학' 연구 중 많은 부분의 유용성 혹은 실질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시각도 타 분야의 분석철학자들 가운데 많이 있으며, 대표적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심리철학자인 대니얼 데닛은 분석 형이상학이 "자기만족적"이며 "진지한 주제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 적이 있다.

 

 

인식론
논리 실증주의의 인식론은 많은 부분 데이비드 흄의 경험론적 인식론을 계승하고 있으며, 적어도 이 시기까지 인식론과 과학철학은 많은 부분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현대 분석철학에서 인식론이 과학철학과 본격적으로 독립하게 된 계기는 1963년 에드먼드 게티어가 이른바 "게티어 문제"를 제시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게티어가 플라톤 이래 지식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여겨진 '정당화된 참인 믿음'에 대해 반례를 제시한 이래, 회의론 등 전통적인 인식론적 문제들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다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심리철학
데카르트 이래 몸과 마음 간의 관계를 다루는 심리철학은 서양 철학에서 항상 중요한 학제 중 하나였지만, 심리철학이 20세기 후반 극적으로 각광을 받게 된 계기들 가운데 하나는 심리학 및 인지과학 등의 급속한 발달이었다. 특히 '오직 물리적인 것만이 있다'는 입장인 물리주의가 사실상 대부분이 동의하는 철학적인 대세가 된 이후, 정신 현상을 물리적 틀로 환원시키는데 따르는 여러 가지 개념적 어려움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심리철학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21세기 현재에는 '의식'이 유망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심리학 및 신경과학 등과의 협업을 통해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철학자인 김재권이 명망있는 심리철학자 중 하나다.


과학철학
논리 실증주의 시기 이후로 과학철학은 분석철학의 가장 활발한 학제 중 하나였다. 예컨대 칼 구스타프 헴펠 및 칼 포퍼 등은 논리적·분석적 접근을 통하여 과학의 본성을 탐구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토머스 쿤 이후로 과학사적 접근법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나, 여전히 현대의 다양한 과학철학의 주제들은 여타 분석철학의 학제와 연속적이다. 예컨대 '과학적 실재론'과 관련된 논쟁론은 형이상학, 확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은 인식론과 연관된 식이며,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토머스 쿤 자신도 여러 언어철학적 논점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미학
분석철학적 방법론을 미학의 전통적인 문제들에 적용시킨 이른바 '분석미학'은 현대 미학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윤리학 및 정치철학
초기 분석철학사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조지 에드워드 무어는 메타윤리학을 주 연구분야로 삼았으며, 이는 이후 논리 실증주의 및 일상언어 학파 등의 영향과 더불어 20세기 중반까지 윤리학 연구의 많은 부분이 메타윤리학에 할애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분위기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결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존 롤스의 정치철학 작업은 철학 내 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규범윤리학의 부활을 불렀고, 이러한 하버드대학의 실천철학 흐름은 21세기 토마스 스캔론, 크리스틴 코스가드 등까지 활발하게 이어졌다. 물론 이런 규범윤리학의 부활은 칸트주의만이 아니라 데릭 파핏, 덕 윤리학 같은 다른 전통의 부활 역시 힘입은 결과였고, 20세기 후반에는 피터 싱어를 비롯한 실천윤리학 역시 결정적으로 부각되었다.

 

분석철학 전통에 속하거나 영향을 준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분석철학자로 분류되는 학자들을 그 주요 연구 분야에 따라 분류했다. 다만 아래 결과는 각 철학자들을 어떻게든 중복없이 분류하기 위하여 나눈 것이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고틀로프 프레게는 논리학자로 분류되었지만, 언어철학과 형이상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논리학, 수학
게르하르트 겐첸
게오르크 칸토어
고틀로프 프레게
데그 프라위츠
레오폴드 뢰벤하임
레온 헨킨
루스 발칸 마커스
아서 프라이어
알론조 처치
알프레드 타르스키
야코 힌티카
앨런 튜링
에밀 포스트
윌리엄 하워드
스테판 클레이니
조지 불로스
주세페 페아노
퍼 마틴-뢰프
프랭크 램지
프레드릭 피치
토랄프 스콜렘
쿠르트 괴델
해스켈 커리
C. I. 루이스

 

언어철학
놈 촘스키
데이비드 케플란
도날드 데이빗슨
로버트 브랜덤
로버트 스톨네이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이클 더밋
버트런드 러셀
솔 크립키
알프레드 에이어
윌프리드 셀라스
존 맥도웰
존 오스틴
크리스핀 라이트
폴 그라이스
폴 호위치
피터 기치
피터 스트로슨
K. S. 도넬란

 

형이상학
W.V.O. 콰인
힐러리 퍼트남
데이비드 루이스
알빈 플란팅가
데이비드 암스트롱
마이클 데빗
킷 파인

 

인식론
길버트 하만
로데릭 치좀
로버트 아우디
앨빈 골드맨
어니스트 소사
에드먼드 게티어
오토 노이라트
티모시 윌리엄슨

 

과학철학
모리츠 슐리크
루돌프 카르납
칼 구스타프 헴펠
한스 라이헨바흐
칼 포퍼
허버트 파이글
토머스 쿤
필립 키처
바스 반 프라센
웨슬리 새먼
로널드 기어리
낸시 카트라이트
폴 파이어아벤트
러커토시 임레
메리 헤시
래리 라우든
어니스트 네이글
이안 해킹
장하석

 

심리철학
C.D. 브로드
G.E.M. 앤스컴
길버트 라일
네드 블록
J.J.C. 스마트
대니얼 데닛
김재권
제리 포더
데이비드 차머스
존 설
프랭크 잭슨
폴 처칠랜드

 

윤리학/정치철학
조지 에드워드 무어
존 롤스
로버트 노직
버나드 윌리엄스
토머스 네이글
J.L. 맥키
R.M. 헤어
사이먼 블랙번
찰스 스티븐슨
데릭 파핏
크리스틴 코스가드
필리파 풋

 

미학
넬슨 굿맨
조지 딕키
노엘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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