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고전문학

변강쇠가, 박동진 창본

Jobs 9 2021. 4. 2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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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가(박동진 창본)

아니리
 중년에 맹랑한 일이 있던 것이었다. 평안도 월경촌에 한 여인이 살고 있으니, 얼골은 춘이월에 반개도화가 옥빈(玉빈)에 어리었고, 초승에 지는 달빛이 아미간에 비치었다. 초승에 지는 달빛이 아미간에 비치었다. 세류같이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하늘, 찡그리며 웃는 것과 말하며 걷는 태도는 서시, 양귀비라도 따라갈 재간이 없던 것이었다. 그런디 사주 팔자를 어떻게 더럽게 타고났던지, 서방을 잡아 먹는듸 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하게 잡아먹는듸, 꼭 이렇게 잡아먹던 것이었다.     
  
중몰이 
 열 다섯살에 얻은 서방은 첫날밤 잠자리에 급상병(傷寒病)으로 잡아먹고, 열 여섯 살에 얻은 서방 당창병(唐瘡病)으로 잡아먹고, 열 여덟 살에 얻은 서방 벼락맞아 죽어버리고, 열 아홉 살에 얻은 서방 천하에 도적놈으로 포도청에 끌려가서 난장맞아 죽어버리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은 비상먹고 죽어버리고, 스물 한 살에 얻은 서방은 지랄병으로 죽어버리니, 서방에 퇴가 나고 송장이 신물난다. 이삼 년씩 걸러 가며 상부(喪夫)를 할지라도 소문들이 흉악(凶惡)할 텐듸, 일년간에 하나씩을 전례(前例)로 다 잡아먹고, 그 중에는 기둥서방, 간부, 애부, 입 한번 쩍 맞춘 놈, 허리 한번 안어본 놈, 손목 한번 잡아 본 놈, 눈 한번 꿈쩍한 놈, 치마꼬리 한번 쥔 놈, 젖 한번 만져본 놈,맣 헌번 건네본 놈, 심지어는 눈 한번을 맞춘 놈까지 그저 대고 죽어 놓으니, 한 달이면 뭇이 넘고, 일 년이면 통반이요, 윤삭(閏朔)이 든 해는 두통 뭇씩 그저 대고 설거지를  하여 놓으니, 남자 볼 수가 전혀 없네.

아니리
 어찌 대고 서방을 잡아먹었든지 간에, 삼십 리 안팎에는 상투 올린 사내놈은 한 놈도 볼 수 없고, 열댓 살 먹은 총각 놈도 볼 수가 없으니, 여자들이 밭을 갈고 처녀가 집을 지니, 평안도와 황해도 양도가 공론하되, 이 여자를 두었다가는 남자라고는 한 놈도 볼 수 없고, 여인천하가 될 것이라. 이 여자를 다른 도로 쫓아버릴 밖에는 없다 하고 양도가 합세허여 이 여인을 쫓아내니, 이 여인이 하릴없이 쫓기어 나오는데, 파랑보찜 옆에 끼고, 동백기름 많이 발라 낭자를 곱게 하고, 산호비녀 찔렀구나. 햇동햇동, 나오면서 혼자 악을 쓰는구나. 

진양
 허허, 이런 인심 보소. 황평안도가 아니면은 사람 살 곳 없다더냐. 삼남 사나이는 더 좋다더라. 노정기로 내려오는듸, 중화를 지나 황주를 지내고, 봉산 서흥 평산을 지나 동설령을 얼른 넘어, 금천 떡전거리를 얼른 지나 청석골 좁은 길로 허유허유 올라를 올 제,

아니리 
 그때 마침 변강쇠라고 하는 놈이 있으니 이놈이 천하에 잡놈이라. 삼남에서 빌어먹다가 양서(兩西)가 좋다는 말을 듣고 양서로 올라가는듸, 하필이면 청석골 좁은 골짜기에서 둘이 서로 딱 만났지. 간흉스런 여자가 힐끗 보고서 지나가니, 음흉스런 강쇠놈이 말을 한번 건네는데, 

중몰이 
 여보, 저 마누라님 어디로 가오. 여보 저 마누라님 어디로 가오. 숫처녀 같었으면 핀잔을 하고 지나가든지, 그렇지 못허면 못 들은 척하고 가련마는, 이 간나위 같은 여자가, 훌림목을 곱게 써서, 삼남으로 갑니다. 강쇠가 듣고 묻는 말이, 혼자서 가십니까. 예, 나 혼자 갑니다. 강쇠 듣고 좋아라고, 젊은 나이 고운 얼굴에 무섭겠구만. 내 팔자가 무상허여 상부를 많이 허고 자식 하나 전혀 없어, 나와 같이 갈 사람은 그림자뿐이라오. 강쇠가 듣고 좋아라고, 당신은 과부요, 나는 홀애비라, 우리 둘이 살면은 어떻겠소. 내 팔자가 기박하여 상부를 많이 허고, 다시는 낭군을 안 얻자고 단단 맹서허였으니, 임자가 하도 그래싸니 궁합이나 한번 봅시다. 

중중몰이
 강쇠가 듣고서 좋아라고, 강쇠가 듣고 좋아라고, 불취동성이라고 하였으니 그대 성은 무엇이오. 나는 옹가요. 예, 나는 변서방이요. 그대 생은 무슨 생이요. 갑자생이오. 예, 나는 임술생이오. 나는 궁합을 잘 보기로 삼남에서 유명한듸, 천간으로 보자 하면, 갑(甲)은 양목(陽木)이고 임은 양수(陽水)라, 수생목(水生木)이 더욱 좋고 납음(納音)으로 말을 하면 임술(壬戌) 계해(癸亥) 대해수(大海水)라. 갑자을축(甲子乙丑) 해중금(海中金)허니 금생수(金生水)가 더우기 좋다. 아주 천생배필(天生配匹)이오. 오늘이 기유일(己酉日)이라. 부부짝패 좋을씨고. 당일 행례를 지냅시다. 여자 역시 좋아라고 흥겨워서 허락하니, 청석골로 처가 삼고 둘이 서로 손목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를 치루는데, 신랑 신부 두 년놈이 이력이 찬 것이라. 이런 야단이 없더니라. 멀끔한 대낮에 남녀가 홀딱 벗고 매사에 좋은 장난, 천생 양골 강쇠놈이, 여자 양각 반짝 들고 옥문관을 들여다보고 이상하게도 생겼다, 맹랑하게도 생겼다. 늙은 중의 입이던가 이는 없고 물만 돈다. 쏘내기를 맞었는가 언던지게 패였구나. 콩밭 팥밭을 지냈는가 돔부꽃이 피었구나. 도끼날을 맞었는지 금바르게 터졌구나. 생수터에 온답인가 물이 항상 괴어 있네. 무슨 말을 하려는가 옴질옴질 하는구나. 천리 행정 내려오다 주먹 바우가 신통하다. 만경창파 조개든가 혀를 물게 빼어 있고. 임실 곶감을 먹었는지 곶감씨가 꼭 물렸고, 만첩청산 으름인가 지가 홀로 벌어졌네. 영계백숙을 먹었던지 닭의 벼슬이 비쳤구나. 파명당을 지냈던가 더운 김이 모락모락. 지가 무엇이 즐거운지 반만 웃어 두었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영계 있으니, 제사상은 걱정 없네. 저 여자도 좋아라고, 강쇠 물건을 가르치며, 이상히도 생겼다. 맹랑하게도 생겼구나, 전배사령을 지냈는가 쌍걸랑을 늦게 차고, 오군문 군로던가 복떡이를 붉게 쓰고, 송아지에 말뚝인가 철고삐를 둘렀구나. 감기 몸살이 들었는가 맑은 코가 웬일이며, 성정도 혹독하다, 홰 곧 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이든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삿상에 숭어든가 꼬챙이 구녁이 완연하고, 뒷절에 중이던가 민대가리가 되었구나. 소년 인사를 배웠던지 꼬박꼬박 절을 한다. 고초 찧던 절굿댄가 검붉기는 웬일인가. 칠팔월에 알밤인가 두 쪽한테 붙었구나. 냇물가에 물방아던가 떨구덩 떨구덩 하는구나. 절굿대와 소고삐며 물방아가 있었으니 세간살이 걱정 없네. 강쇠놈도 좋아라고 둘이 서로 꼭 붙들고 여차 여차 하였구나. 

아니리
 두 사람이 흥에 겨워 놀다가 박장대소하고, 둘이 서로 비겼으니 이제 등에다 업고서 놀아보자. 여인이 좋아라고, 천선호지라 하였으니 낭군이 나를 먼저 업으시오. 강쇠란 놈이 여자를 업고 가끔가끔 돌아보며 사랑가로 놀던 것이었다. 

진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화둥둥 내 사랑이야. 유왕 나자 포사 나고, 걸주 나자 말희 달기 나고, 오왕부차나자, 월서시 나고, 여포 나자 초선 나고, 당명황나자 양귀비가 나 있고, 호색남아 내가 나자 절대가인 너 났구나. 니가 무엇을 가지랴느냐. 조거전후 심이승에 야광주를 가지랴느냐. 십오성을 바꾸려던 화씨벽을 가지려느냐. 천지신지 아지자지 생금덩이를 가져볼까. 부도재산 득은옹에 은항아리를 가져볼까. 밀화불수 산호비녀 금패지환을 가져볼까. 어허둥둥 내 사랑이야.

중몰이
 니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둥굴둥굴 수박 웃꼭지를 뗏뜨리고, 씰랑은 발라서 내버리고, 강능생청을 따르르 부어 붉은 점 한 점 먹으려느냐. 시금털털 개살구를 아기 스는데 먹으려느냐. 쪽 빨고 탁 뱈으면 껍질 꼭지만 남은 놈을, 건너 바람벽에 딱 부치는 반시수시(半柿水柿)를 네 먹으려느냐. 어주축수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에 무릉도원 복숭아 주랴. 유월 중순 익은 과일 외가지 당참외를 너를 주랴. 어허둥둥 내 사랑아.

아니리
 강쇠란 놈이 여인을 내려놓고, 여필종부라고 하였으니, 자네도 나를 업고 놀게. 여인이 강쇠를 업고 노는듸, 핼끔핼끔 돌아도 보며 까불겠다.

중중몰이
 둥둥둥 내 사랑, 어허둥둥 내 사랑. 태산같이 높은 사랑, 하해같이 깉은 사랑. 남창북창 노적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하수에 직녀같이 올올이 맺힌 사랑. 모란화 송이같이 펑퍼져 버린 사랑. 세곡선 닻줄같이 올올이 꿰인 사랑. 내가 만인 없었으면 풍류남아 우리 낭군 황이 없는 봉이 되고, 님을 만일 못 보았으면 군자호구 이 내 몸이 원 잃은 앙이로다. 기러기가 물을 보고 나비가 꽃을 만났도다. 옹기종기 좋을씨고. 동방화촉 무엇하랴. 백일향락 좋을씨고. 황금집도 내사 싫네, 청석골이 제격이라. 둥둥둥둥, 어허둥둥 내 사랑.

아니리
 남녀가 재미있는 장난이 어찌 한두번이야. 일차 이차 삼사 오차를 치루더니, 살림살이 할 걱정을 하는듸, 우리들은 안팎이 모두 오입쟁이라, 깊은 산중은 살 수 없고, 도방으로 살아보세. 둘이 서로 손을 잡고 도방으로 찾아갈 제.

중몰이
 둘이 서로 손목 잡고 도방 각처로 다니는데, 일원사느 이강경, 삼포주 사법성, 오개주, 육도듬 곳곳으로 다니면서, 여자는 애를 써서 돈양돈관 모아놓으면 강쇠놈은 허망하여, 닷냥내기 뺨 때리기, 두냥내기, 갑오띄기, 갑자꼬리 여수하기, 장군멍군 장기두기, 맞춰먹기 돈치기며, 불러먹기 주먹치기, 골패떼기 윷놀이와, 한집 두집 곤의두기, 의복잡혀 술먹기와, 남의 싸움 가로막기, 그 중에는 무슨 비위로 강자 싸움에 계집을 대리는데, 복날 개 잡듯 날마다 두드려 패니, 사람 살 수가 전혀 없네.

아니리
 하루는 여인이 강쇠를 보고서 하는 말이, 당신 성질 가지고 도방살이 하다가는 맞아 죽기 알맞겠으니,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팥밭이나 파서 먹고 산중으로 들어갑시다. 강쇠 듣고 하는 말이, 그 말이 좋다. 십년을 굶더라도 남의 계집 보고 눈웃음 안치는 놈만 보면은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자네 말대로 하세.

잦은몰이
 산중으로 가자 하면 동금강은 석산이라, 나무가 없어서 살 수 없고, 북향산은 찬 곳이라 눈이 많어 살 수 없고, 황해도 구월산은 도둑 많어 살 수 없고, 지리산이 좋다 하니 지리산으로 가잤구나.

아니리
 약간 남은 살림살이를 짊어지고서 지리산중을 찾아가니, 첩첩한 골짜기에 기와집 한 채가 덜름 서 있구나. 이 집은 어떤 부자가 임진왜란 때에 난리를 피해서 산중으로 들어왔다가, 이 집을 짓고 살다가, 난리가 평정되니 뜯어갈 수 없어 그저 두고 갔는지라. 호랑이, 여호, 멧도야지, 다람쥐가 집을 짓고 살고 있는지라. 

중중몰이
 강쇠놈이 좋아라고, 상쇠놈이 보고서 좋아라고, 얼씨구 절씨구, 새사또는 간 곳마다 선화당이 있다는데, 내 팔자도 방사하다. 적막한 이 산중에 내가 올 줄 어찌 알고, 이렇게 좋은 기와집을 지어 놓고 기다렸나. 부엌에다 솥을 걸고, 방을 쓸고 멍석 깔고, 낙엽을 긁어다가 저녁밥을 지어먹고, 터 누르기 삼삼구를 밤새도록 한 연후에, 

아니리
 강쇠놈이 평생행세 일을 해보지 못한 놈이라. 낮이면은 낮잠만 자고 밤이 되면 배만 타는데, 사람 환장하게 배를 타니, 여인이 견디다 견디다 못해, 하루는 강쇠를 보고서 하는 말이, 

진양 
 여보 낭군 듣조시오. 천생만민 필수지직(天生萬民必授之職) 사람마다 직업 있어, 앙사부모(仰事父母) 하육처자(下育妻子) 넉넉하게 산다는데, 낭군 팔자 생각하면, 어려서 못 배운 글 지듬 공부할 수 없고, 손재주가 없었으니 목수 노릇 할 수 없고, 밑천 한푼 없었으니 장사질을 할 수 없고, 다만 낭군이 할 일은 삯일밖에 할 수 있오. 이 산중에서 살자 하면, 산전을 많이 파서 두태 심고 담배 갈고, 칼퀴나무 비나무며 물거래며 장작패기 나무를 많이 해서, 집에도 때려니와 남원장 운봉장에다가 내다 팔면, 부모 없고 자식 없어 단 두 내외 우리 부부 생계가 넉넉할 것인듸, 건장한 저 신체에 밤낮으로 하는 일이, 낮이면은 낮잠만 자고 밤에는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나 좀 해다 주시오.

아니리
 강쇠 듣고, 허허 웃더니만, 참말로 허망하다. 호달마가 늙으면은 왕십리에서 거름 싣고 다니고, 기생이 늙어 놓으면 길거리 앉아서 먹걸리 장사를 한다더니만, 나 같은 오입쟁이가 나무지게 진단 말이 웬말인고. 불가사문(不可使聞)이면 어타인(於他人)이라. 자네 말이 그러하니 내가 나무하여 옴세, 강쇠가 나무하러 가는데, 도복 입고, 관 쓰고 갔단 말은 거짓말이라. 본시 제 집이 근본없는 놈이라. 장판에서 빌어먹던 놈이 차린 복색 그대로 가겠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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