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고전문학

백운소설 (白雲小說), 이규보(李奎報)

Jobs 9 2021. 4. 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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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 소설 (白雲小說)에서
                                         이규보(李奎報)

 시에는 좋지 못한 아홉 가지 체(體)가 있는데, 내가 깊이 생각한 끝에 터득한 것이다.

 한 편의 작품 속에 옛 사람들의 이름을 많이 인용하는 것은 ‘귀신을 수레에 하나 가득 실은 체(體)’다. 옛 사람들의 뜻과 심정을 인용할 때에 훔쳐 쓰는 것도 나쁜데, 훔쳐 쓴 것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어설픈 도둑이 쉽사리 잡히는 체(體)’다.

 근거 없이 어려운 일을 글로 다루는 것은 ‘센 활을 당기지 못하는 체(體)’다.

 자기 재주를 측량해 보지도 않고 압운(押韻)이 지나치게 어긋난 것은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 체(體)’다.

 좀처럼 뜻을 알기 어려운 힘든 글자를 써서 사람을 곧잘 미혹시키기 좋아하는 것은 ‘함정을 만들어 장님을 이끄는 체(體)’다.

 말이 순조롭지 않은데 억지로 인용하는 것은 ‘자기를 따르도록 남을 무리하게 이끄는 체(體)’다. 상스러운 말을 쓰는 것은 ‘품격없는 사람이 모여드는 체(體)’다.

 공자, 맹자를 함부로 쓰기 좋아하는 것은 ‘존귀한 분을 범(犯)하는 체(體)’다. 말을 구사함에 있어 거칠은 데를 삭제해 버리지 않은 것은 ‘밭에 잡초가 우거진 체(體)’다. 

 이러한 좋지 못한 체들을 면한 다음에라야 함께 시를 논할 만하다.

 시는 뜻의 경지가 주가 되므로 이 뜻의 경지를 잡는 것이 가장 힘들고 그 다음에는 말을 맞추는 것이다. 또 뜻의 경지는 재주 있는 기운이 주가 되는데, 재주의 우열에 따라 뜻이 깊고 얕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재주란 타고난 것이어서 배워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재주가 없는 사람은 글 다듬는 것을 능사(能事)로 여기고 뜻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개 글을 깎고 다듬어 구절을 아름답게 하면 분명히 아름답게 되기는 하나 거기에 깊은 뜻이 들어 있지 않으면 처음에는 볼 만하나, 음미해 보면 맛이 없어져 버린다. <중략>

 남이 자기의 시를 보고 결점을 말해 줄 때 기쁜 것이나 문제될 만한 것이면 받아들이고, 그렇잖으면 자기 마음의 원래대로 행할 것이다.

 굳이 임금이 충신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않고, 끝내 자기 잘못을 모르는 것 같이 남의 충고의 소리를 듣기 싫어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대개 시가 되면 반복하여 보되, 자기 시가 아니라 다른 사람 및 평생에 몹시 미워하는 사람의 시를 보고 결점을 잘 찾아내듯이 하고 결점이 하나도 없도록 해서 비로소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원문>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 귀신을 수레에다 가득 실은 문체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 서투른 도둑이 사로잡히기 쉬운 문체 
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 쇠뇌를 당기지만 그 쇠뇌를 이기지 못하는 문체 
음주과량체(散酒過量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문체 
설갱도맹체(設坑導盲體): 구덩이를 파 놓고 장님을 이끄는 문체 
강인종기체(强人從己體): 남을 강요해서 자기를 좇도록 하는 문체 
촌부회담체(村夫會談體): 촌사람이 이야기하는 식의 문체 
능범존귀체(凌犯尊貴 體): 존귀한 이를 함부로 범하는 문체  
낭유만전체(莨莠滿田體): (곡식에 해로운) 강아지풀이 밭에 가득한 문체


  해설 
  ‘백운 소설’의 내용은 시인과 시 창작을 둘러싼 일화와 비평이 섞인 짧고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문장을 지을 때 흔히 범하기 쉬운 표절의 잘못, 인용의 잘못 등 9가지 잘못된 문체[九不宜體]를 지적하고 있다. 이규보는, 문학 창작은 독창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독창적인 것이 소중한 것은 시대가 바뀌면 경험과 고민이 다르므로 단지 고인(古人)을 모방하기만 한다면, 새로운 각성에 밀려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다소, 서투르고 껄끄럽더라도 참신한 표현이 아름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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