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문화 Art, Culture/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마프라 왕실 건물 – 궁전, 대성당, 수도원, 세르쿠 정원과 타파다(사냥터), Royal Building of Mafra – Palace, Basilica, Convent, Cerco Garden and Hunting Park (Tapada)

Jobs 9 2022. 9. 23. 17:12
반응형

마프라 왕실 건물 – 궁전, 대성당, 수도원, 세르쿠 정원과 타파다(사냥터), Royal Building of Mafra – Palace, Basilica, Convent, Cerco Garden and Hunting Park (Tapada)

국가 : 포르투갈(Portugal)
위치 : N38 56 13.8 W9 19 31.9
등재연도 : 2019

등재기준
기준 (i): ‘마프라 왕실 건물’은 로마 신고전주의의 바탕 아래 나타난 유럽 바로크 건축과 예술의 가장 탁월한 사례 중 하나이다. 이 유산은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표현된 선구적 가치이며 중요한 공학적 위업이다. 약 45,000명의 노동자, 장인, 건축가, 기술자, 그리고 수많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과 공예가들이 이곳에서 작업하면서 유수한 기술, 과학, 예술 학파 중 하나로서 자리 잡았고, 이로써 18세기 전반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를 대표한다. 

기준 (ii) : ‘왕실 건물’은 여러 역사적 순간에 일어난 인간 가치와 예술적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보여준다. 본래 궁전과 수도원은 18세기 초에 로마에서 훈련받은 예술가들의 건축 디자인, 조각, 회화를 소장하고 있었고, 그 결과 유럽에서도 유력한 바로크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다. 브라질에서 발견하여 채취한 금과 다이아몬드로 축적한 막대한 부가 없었다면 이처럼 거대한 기념비적 건축물을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마프라 계획의 국제적 성격은 18세기 유럽의 주요 통치자들의 거처였던 위대한 바로크 궁전들에 비견할만하다. 이 밖에도 세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는 멋진 파사드의 주탑들 내에 있는 플랑드르에서 주문한 2개의 카리용과 프랑스와 이탈리아로부터 들여온 대성당의 사제복 등과 같은 다른 예술적 원천들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많은 여행자들이 마프라를 방문했고, 그 결과 유럽 전역으로 전파된 수많은 기행문학에는 이 기념비적이고 웅장한 건축물에 대한 언급이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한다. 브라질부터 아프리카, 극동 지역에까지 이르렀던 포르투갈 제국 전역에서 가져 온 다양한 나무들은 세르쿠 정원의 자랑이다. 

기준 (iv) : ‘마프라 왕실 건물’은 주앙 5세 시대부터 시작된 절대 권력이 실체적으로 구체화된 건축물이다. ‘마프라 왕실 건물’의 건축은 포르투갈 제국과 국가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며, 왕조의 정당성에 대한 확인이었다. 또 국제적인 권위의 원천 즉 로마 교황권과의 친밀을 표현하는 동시에 스페인 왕권과는 거리를 두었음을 반영한다. 포르투갈 제국의 영향력이 미친 세계적인 범위와 그 통치권의 위엄은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을 탄생시키는 원천이었으며, 동시에 포르투갈 제국이 선택한 미학적인 옵션들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이 유산은 아방가르드 작품을 옹호함으로써 로마 바로크 건축물의 가장 훌륭한 사례를 통합하여 구현했다. 이 기념비적 건축물의 또 다른 특징들, 즉 건축학적 규모와 정밀함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일 정도로 바실리카에 적합하게 적용된 악기 세트인 오르간과 카리용과 같은 요소들이 통합되면서 ‘마프라 왕실 건물’은 포르투갈의 주요한 바로크 작품이자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바로크 건축물 중 하나가 되었다. 타파다는 궁전 및 수도원과 긴밀하게 이어지는 일관된 부지 관리를 통해 대규모 경관으로써 창조된 사례이다. 

기준 (vi) : 이 기념비적 건축물을 건축하는 것, 즉 국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칠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물질적 여건을 조성한 주앙 5세라는 군주와 직접 관련이 있다. 주앙 5세는 자신을 18세기 전반에 절대 권력의 상징임을 밝히며, 자신을 계급 사회의 정점에 있음을 드러내고, 자연권(自然權)과 신의(神意)에 따라 지위를 행사하는 군주라는 것을 밝히고, 정치-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증언하는 도구임을 자임했다. 주앙 5세의 이같은 힘을 보여주는 작업에는 회화, 조각, 은제품, 사제복 등을 비롯한 포르투갈 내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인 예술 작품, “금서”를 비롯한 종교에서 과학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적을 소장한 당대의 최대이자 최고의 왕립 도서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도서관, 6대의 대성당 오르간과 이 악기를 위해 포르투갈과 외국의 여러 작곡가들이 작곡한 방대한 음악 작품,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여러 외국작가들이 쓴 풍부한 기행 문학 등으로 이루어진 주목할 만한 컬렉션들이 있다. 

‘마프라 조각 클래스(Mafra Sculpture Class)’를 통해서 이 지역에서는 점토 조각 및 실용적 조각 작품을 창조하는 장인들의 유산이 전승되고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18세기에 성주간(聖週間, 기독교에서 부활절 일요일 전의 일주일)과 대축일(大祝日, 성탄절·부활절 등)들을 기념하는 행렬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 1922~2010)가 1982년에 쓴 『수도원의 비망록(Memorial do Convento)』이다.(영문도서는 ‘Baltasar and Blimunda(발타자르와 블리문다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1998년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마프라 왕실 건물의 건축 과정과 그것을 둘러싼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마프라 왕실 건물(Royal Building of Mafra)’은 오늘날 ‘국립 마프라 왕궁(National Palace of Mafra)’으로 지정되어 있다. 마프라 왕실 건물은 대성당 건물을 축의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한쪽에 있는 왕의 건물동이 나머지 한쪽에 있는 왕비의 건물동과 정면부에서 서로 합쳐지는 형태로 되어 있다. 바실리카대성당과 왕실의 건물, 수도원, 세르쿠 정원(Cerco Garden, 바로크식 정원), 그리고 타파다(Tapada, 여우·사슴 등 다양한 사냥감을 풀어 놓은 8㎢가 넘는 면적의 왕실 사냥터)가 통합된 하나의 궁전으로써 설계되었다. 이 유산은 주앙 5세(João V, 1689.10.22.~1750.7.31)가 이룩한 가장 엄청난 작품 중 하나이다. 그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여러 대륙에 제국을 거느린 강력한 권력을 가진 왕으로서 유럽의 왕들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특별한 문화적·경제적 자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요한 프리드리히 루트비히(Johann Friedrich Ludwig, 1673~1752, 독일 슈바벤 출신의 로마에서 훈련받은 건축가)가 건축가로 선정되었을 때부터 이 프로젝트는 포르투갈의 통치 왕조에 대한 국제적 인정을 상징했다. 바로크 시대에 위대한 로마 교황들에게 지속적으로 매료되었던 주앙 5세는 마프라를 건축하기 위해 유력한 예술가들에게 의뢰했고, 그 결과 이탈리아가 아닌 곳에서 건축되었지만 이탈리아 바로크와 가장 관련성이 깊은 건축 작품인 마프라가 탄생했다.

1730년 10월 22일 주앙 5세의 생일을 기념하여 바실리카 대성당의 봉헌식이 열릴 당시 이 기념비적 건축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의뢰한 예술 작품이 모두 당도하기 전이었음에도 이 프로젝트는 훌륭하게 정의되었고, 시행 과정은 상당히 진전된 상태였다. 왕궁에는 독립적인 한 쌍의 작은 탑인 터릿(turret)이 있고 이 터릿은 왕과 왕비의 개인실이었다. 대성당은 로마와 피렌체 최고의 예술가들이 창작한 총 58개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주문한 사제복은 포르투갈 내에서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든 전례 없는 호사스러운 작품이었다. 파사드(facade)에 있는 2개의 탑에는 플랑드르에서 주문한 2쌍의 카리용(carillon, 교회의 종루에 음계적으로 배열한 편종)이 각각 놓였고, 이로써 전 세계적으로 매우 독특한 종탑 유산이 되었다. 도서관은 위대한 문화적·과학적 관심 분야의 책들로 채워졌다. 이 도서관은 “금서”를 소장하도록 허용된 몇 안 되는 도서관 중 하나였다. 인큐내뷸러(incunabula, 초기 활자 인쇄 서적)와 필사본의 놀라운 컬렉션들이 가득차면서 이 도서관은 더욱 강화되었고, 뿐만 아니라 15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출판된 매우 다양한 출판물을 비롯한 서지학적 컬렉션까지도 소장하게 되었다. 

마프라에 조각학교를 설립한 이탈리아 출신의 예술가 알레산드로 주스티(Alessandro Giusti, 1715~1799)는 18세기 중반부터 대성당의 석재 제단 부분을 조각했다. 18세기 포르투갈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였던 마샤두 드 카스트루(Joaquim Machado de Castro, 1731~1822)가 훈련받은 곳도 이곳 마프라였다. 마프라의 거대한 건축 현장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은 1755년 대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리스본을 재건할 때에도 적용되었다. 대성당에 설치된 6대의 역사가 깊은 오르간도 주목할 만하다. 이 오르간들은 동시에 연주하도록 설계되어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기 때문이다. 18세기말, 6대의 새로운 오르간 세트의 설치를 주문받은 포르투갈의 오르간 장인인 안토니우 샤비에르 마샤두 이 세르베이라(António de Machado Cerveira, 1756~1828)와 조아킹 안토니우 페르스 폰타느스(Joaquim Antonio Peres Fontanes, 1750~1818)가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 6대의 오르간은 1994년부터 신중하게 복원되었으며 그 결과 유로파 노스트라(Europa Nostra) 상을 수상했다. 

왕궁은 포르투갈 군주제가 막을 내릴 때까지 왕실의 거처로서 그 역할을 계속했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인 마누엘 2세(Manuel II, 1889~1932)가 1910년 10월 5일 망명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낸 곳도 이곳 마프라였다. 1834년 수도회의 효력이 다하면서 수도원은 군사 시설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이 건축 단지의 역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마프라 군사 시설은 19세기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군사 행동, 다시 말해 프랑스 침공 이후의 반도전쟁(Peninsular Wars, 나폴레옹의 이베리아 반도 침략에 저항한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 군대와 함께 영국-포르투갈 연합군이 함께 기거했던 사건과 연관이 있다. 1974년 포르투갈의 민주주의를 재건한 ‘카네이션 혁명(Revolução dos Cravos)’의 중심지였던 사실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수도원 건물은 오늘날까지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세르쿠 정원’은 애초에는 수도원 부지 내에 있었고, 수도사들이 관리하고 가꾸는 안뜰로서 조성되었다. 1718년부터 주앙 5세는 대칭 구조의 공간에 잘 정돈된 화단과 넓은 통로가 특징인 정원에 제국에서 생장하는 모든 종류의 야생 나무를 옮겨 심으라고 명령했다. 세르쿠 정원에는 커다란 중앙 호수가 있어 타파다의 모든 물길이 이곳으로 한데 모이게 설계되었고, 그 근처에는 노리아(noria, 양동이가 달린 물방아)가 있는 우물을 만들었다. 1771년부터 1792년까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전 수도회(Regular Canons of Saint Augustine)’가 수도원을 점유하던 당시에는 특이한 구기장을 설치하기도 했다. 

타파다는 1747년 왕실 소유의 사냥터이자 왕실과 수도원에서 쓸 식재료를 공급하는 농지이자 목축지로써 조성되었다. 카를루스 1세(Carlos I, 1863~1908)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유산의 한 부분이기도 한 약 1,200ha에 이르는 사냥터에 파빌리온을 짓게 하고 사냥 파티를 개최할 정도로 이 타파다는 특권층을 위한 장소였다. 오늘날 이 지역은 임업, 사냥, 환경 및 관광 관리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벽 안에는 토레스 라인스 요새(Forts of the Lines of Torres) 4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준칼 요새(Fort of Juncal)는 이미 복원되었다. 준칼 요새는 일반적으로 나폴레옹 전쟁이라고 알려진 유럽 열강들의 분쟁과 관련된 장소이다.

완전성
마프라 왕실 건물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도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입증하는 역사적·사회적·예술적 특성을 보존해왔다. 수세기에 걸쳐 시행해온 보존 작업은 언제나 건축물의 비율과 그 규모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계획되었고, 건축물의 형태와 기능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수명을 연장했다. 실제로 기념비적 건축물은 처음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18세기 전반에 조성된 건축물의 이념적 가치와 심미적 원칙이 지속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또 디자인, 리듬, 대칭, 미학적 품질과 조화 등의 견실성(堅實性), 유산 내의 작품들의 고귀성(高貴性), 프로젝트 세부사항과 그 구현에 있어서 완전성, 건축학적 숙련도, 자원의 적절한 분배, 건축물의 신중한 관리, 필요에 따른 효율적 공간 창조 등이 주목할 만하다. 이 유산에 대한 위협은 주로 극단적인 온도 범위(thermal amplitude), 대서양 연안의 소금기를 품은 바람, 그리고 여름철 산불 위험 등이 있다.  

진정성
완성된 후부터 거의 300년이 지나는 동안 ‘마프라 왕실 건물’은 디자인, 형태, 원래의 자재와 관련하여 진정성을 훼손할 만한 중대한 변경이 없었고, 원래대로 되돌릴 만한 소규모 변경 공사만이 기록되어 있다. 복원과 보존의 관점에서 프로그래밍 단계에서 대성당의 6대의 오르간, 왕좌가 있는 공식 알현실(Throne Room), 카리용의 복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세기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왕실 건물은 기본적인 특징을 잃지 않으면서 다양한 기능에 따라 적응해왔다. 1910년 공화국의 수립과 함께 더 이상 이곳은 왕의 거처가 아니게 되었지만 이후 박물관으로서 공적인 기능을 하게 되었다. 1834년 수도회의 점유에서 벗어나면서 수도원 건물에는 오늘날까지 군기관이 입주해 있다. 바실리카 대성당은 더 이상 왕실의 예배당이 아니라 1836년부터 교구의 본부가 입주했으며, 도서관은 연구와 조사를 지원하는 책무를 맡고 있다. 

보존 및 관리체계
‘마프라 왕실 건물’은 1907년 1월 10일 제정되고 1907년 1월 17일 정부저널 제14호에 공포된 명령과 1910년 6월 16일 제정되고 1910년 6월 23일 정부저널 1 시리즈 제136호를 통해 공포된 명령에 따라 국가기념물(National Monument)로 분류되어 있다. 문화유산의 보호 및 강화에 관한 정책 및 체계의 토대를 수립하는 법률(2001년 9월 8일 법률 제107호)의 적용을 위해 2009년 6월 15일 법령 제140호는 분류된 유산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 보고서, 작업, 또는 개입을 위한 법적 기본틀을 확립했고, 특히 적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 의한 적절하고 철저한 계획 이행을 통해 여하한의 변형, 황폐화, 기능이나 진정성의 상실을 예방할 수 있도록 완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공사에 대한 사전 평가 및 체계적인 평가, 모니터링의 필요성을 명시하였다.

더욱이 친환경 솔루션에 중점을 두고, 문화재 주변 지역을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적절한 제한을 설정하는 2009년 10월 23일 제정된 법령 제 309호에 의거하여 기념비적 건축물을 둘러싼 주변 지역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고자 파트너들, 그중에서도 특히 협의회와 건설적이고 공개적인 대화를 지속하는 데 주력하는 책임 경영 정책을 마련했다.

이 건물에 대한 관리는 문화유산의 관리를 책임지는 정부부처인 문화유산국(General Directorate for Cultural Heritage)이 담당한다. 이 특별한 기념비적 건축물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업무는 현장에 설치된 나머지 주체들과의 연락 하에 운영되는 문화유산국의 책임이다.

유산의 통합관리는 문화유산국, 마프라 궁전, 마프라 시의회, 군사학교(School of Arms), 타파다, 산토안드레 교구(Parish of Santo André) 등의 주체들이 책임진다. 건물의 관리에 있어 주요 목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과 그것을 정의하는 여러 특징이 상실되지 않도록 보장하며 보호, 보존 및 유지하는 데 있다.

수도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마프라는 시골 마을이자 도시이며, ‘마프라 왕실 건물’과 그 주변 환경에 대한 철저한 존중을 토대로 발전해왔다. 복원 및 보존의 관점에서 오르간 6대의 보수 작업과 현재 진행 중인 카리용 복원 작업은 모범적인 조치 중 하나이다.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왕실 건물의 초기 건축 개념과 양식을 유지함으로써 보장되는 진정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런 기준으로 인해 성당과 왕궁의 주된 기능이 계속 유지되는 한편, 수도원의 일부분은 박물관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Royal Building of Mafra – Palace, Basilica, Convent, Cerco Garden and Hunting Park (Tapada)
Located 30 km northwest of Lisbon, the property was conceived by King João V in 1711 as a tangible representation of his conception of the monarchy and the State. This imposing quadrangular building houses the king’s and queen's palaces, the royal chapel, shaped like a Roman baroque basilica, a Franciscan monastery and a library containing 36,000 volumes. The complex is completed by the Cerco garden, with its geometric layout, and the royal hunting park (Tapada). The Royal Mafra Building is one of the most remarkable works undertaken by King João V, which illustrates the power and reach of the Portuguese Empire. João V adopted Roman and Italian baroque architectural and artistic models and commissioned works of art that make Mafra an exceptional example of Italian Baroqu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