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Humanities/서양사 Western History

대영제국(British Empire), 대영제국 몰락, 대영제국 식민지, 영연방, 앵글로색슨 제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제2차 중동전쟁

Jobs 9 2023. 5. 24. 17:24
반응형

해가 지지 않는 나라
15세기부터 20세기인 1997년까지 존속했던 영국의 식민제국을 부르는 호칭. 1607년 최초의 13개 식민지 건설을 시작으로 1997년 홍콩 반환까지 지구상의 모든 대륙에 걸쳐 있던 식민제국으로서의 영국을 일컫는 명칭으로 앵글로색슨 제국이라고도 부른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 이전에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5대양 6대주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던 최초의 강대국이였다. 최전성기에는 전세계 육지 면적의 1/4과 전세계 인구의 1/6을 보유했으며, 영토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 인구 수로도 당대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국가이다.

 


We are not interested in the possibilities of defeat; they do not exist.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패배 따위엔 관심 없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1899년 제2차 보어전쟁에 대해
대영제국은 나폴레옹 전쟁 승리 이후 전성기를 달리며 19세기 중엽에 그 세력과 영향력이 전세계에 달해 세계 패권국에 이르렀다.

흔히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영국 정부가 썼던 공식 국명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대영제국과 식민지들을 통칭하기 위해 편의상 붙여진 명칭이다. 영국 국왕/여왕은 식민지였던 인도제국이 독립할 때까지 인도 황제/여제(Emperor/Empress)를 겸임했다. 지위에서도 영국 국왕은 영국령 인도에 한하여 황제 지위를 겸했을 뿐, 통합된 국가의 수장을 지칭하는 명칭은 어디까지나 '국왕'이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로마 황제만을 적법한 황제로서 인정해왔으며, 러시아 제국의 경우 아예 제3의 로마라는 말을 만들고 동로마 제국의 후예를 자처했다. 로마 제국의 속주 중에서도 로만 브리튼으로서 변방, 그것도 완충용 속주 정도로 인식되었던 영국이 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기에는 그 정통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간기 이후로 옛 식민지들이 대부분 독립하면서 거대 식민제국으로서의 위상은 거의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그 일부가 영국의 속령으로 남아 있다. 지브롤터를 제외하면 전부 다 섬이다. 위 그림에서는 영국령 남극지역도 포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남극은 남극조약에 의해 어떤 국가의 영유도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극조약 채결 전까지는 실질적으로 영국이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채결 이전에는 사실상 대영제국의 영토로 취급하였다. 지금도 영국은 케이맨 제도에서 해가 지면 핏케언 제도에 해가 떠 있고 핏케언 제도에서 해가 지면 영국령 인도양 지역에 해가 떠 있고 인도양 지역에서 해가 지면 아크로티리 데켈리아에 해가 떠 있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다. 

전성기 대영제국의 대항마로 꼽혔던 것은 그나마 전반기에는 프랑스 식민제국, 후반기에는 러시아 제국이 꼽혔지만, 전자는 7년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등 여러 사건을 거쳐 결국 영국이 명확하게 우세를 차지했고 후자는 그레이트 게임으로 불리는 패권 경쟁을 했지만 영국이 국력에서 우세한 상황 하에서 러시아의 거대한 영토와 인구, 군사력의 잠재력을 감안해 미리 대비해 견제한다는 성격이 강했다. 20세기 초에 신흥 열강으로 떠오르던 미국도 영국의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고 미국에 대한 견제 정책을 수립하려 했으나, 또 다른 열강 독일 제국이 급부상하는 바람에 당장 유럽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느라 바빠 지원을 얻으면 얻었지 미국을 견제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영제국은 현대 문명의 형성에 있어, 단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나라이다. 대영제국은 영어, 의회민주주의, 교통, 스포츠, 자본주의, 시간대, 산업 혁명, 정장 등등 수없이 많은 오늘날의 인류의 보편 문화를 만들어 놓은 엄청난 문화력과 산업력을 가졌고, 또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했던 실행력과 국력을 가졌다. 당시 대영제국이 건드리지 않은 국가가 거의 없었기에, 현대의 보편 문명을 전세계에 전파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세계의 여러 방면의 표준이 영국식이 된 것도 바로 대영제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당장 이들의 언어인 영어가 현재 전세계 공용어 노릇을 하고 있으며, 세계의 시간 체계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원점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의 복식인 양복이 전세계의 정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산업, 사상, 정치, 군사 등등 현대문명의 기준이 된 것들 중 상당수가 대영제국에서 만들어져 확산되었다. 그나마 영향이 적다고도 할 수 있는 음식 분야에서마저도, 커리가 지구 반바퀴를 돌아 카레로 변하게 하거나 차 문화를 세계적으로 퍼트리는 등, 이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영역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영제국이 직접 건드리지 않은 국가들도 결국 영국의 영향을 받은 다른 국가들과 교류를 하거나 침략을 당했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니 가히 전세계가 대영제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반면에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는데, 특히 서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분쟁에 꽤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사례만 봐도 팔레스타인 문제, 예멘 내 남북 갈등, 이집트-수단 국경분쟁(비르타윌 문서 참고), 로힝야족 및 카렌, 카친족 분리독립 문제, 과테말라-벨리즈 영토 분쟁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농담삼아 현대 세계의 분쟁의 원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십중팔구 영국과 연결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올 정도다.

현재는 영연방이라는 회원국 간 외교 기구로 바뀌었다. 영연방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연합왕국, United Kingdom)과 자치령(Dominion) 정부 간 연합 조직으로서 출범했다. 본래 대영제국(British Empire)은 본토인 영국(연합왕국)이 다수의 자치령, 식민지 등을 거느리는 형태였지만, 1차 대전 때 영국을 도와 피흘려 싸운 자치령들이 그 전보다 많은 권한을 달라고 요구, 영국 정부가 1931년에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그 요구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치령들이 외교권, 군사권까지 자체적으로 가지게 돼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는데(물론 일부 권한은 예외적으로 영국이 계속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이들이 완전히 남남이 되는 건 아니었으므로 영국과 자치령들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조직으로서 영연방을 창설하게 되었다. 물론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였던 이집트, 수단, 짐바브웨 같은 국가들은 일부 빠지고 타국 식민지이던 모잠비크, 카메룬(다수지역) 등이 영연방으로 들어오며 구성국과 그 형태는 사뭇 달라졌다. 자세한 것은 영연방 문서 참조.

 

 

 

대영제국 몰락
“(수에즈에 대한) 영국의 조치는 쇠퇴한 강대국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아마 미국은 200년 후에 영국의 심정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해럴드 맥밀런 영국 총리


사실 1930년대부터 국제 금융 영향력, 과학과 학술의 중심지의 이동, 1930년대 노벨상 수상급 업적과 학술의 양적, 질적 아웃풋 등의 부분에서 미국이 서유럽 과학강국을 서서히 웃돌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 등, 웨스트민스터 헌장, 신인도통치법등 영국의 국력이 이미 한계에 달해 지속적인 대영제국의 세력 퇴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대영제국의 시대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으며 세계의 중심이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국제 정세는 분명히 있었다.

20세기 초중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의 무렵 미국이 대영제국의 국력과 영향력을 제치고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대영제국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어갔다. 종전 이후 인도 제국이 독립하는 등, 제국은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정적으로 왕년의 위상을 잃은 사건은 1956년의 제2차 중동전쟁에서 미국과 소련에 굴욕을 당하면서 부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영국을 압도하고 대영제국의 세계적 영향력을 흡수했고, 결정적으로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당시 미국과 소련이 초강대국의 자리를 대체했다는 권위를 굴욕적으로 인정하며,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물러나게 된다.

이때 미국은 영국에 대해 제재를 단행하면서 자유진영에서 서열이 누가 더 위인지 각인시켰다. 미국에서 단행한 미국이 보유하던 영국의 파운드화를 매각과 미국 석유의 영국 수출 중단은 영국은 이제 경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미국의 재정 도움이 없이는 자국 군대를 유지할 수도 없는 종이호랑이임을 드러냈다. 즉, 대영 제국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한때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미국이였다. 

이때부터 대영제국으로써 세계의 패권에 개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급속한 결속을 통해 자국의 무역로를 보장받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인구
1750년을 기준으로 영국의 지역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지역
지역별 인구
잉글랜드/웨일스
7,200,000명
스코틀랜드
1,300,000명
아일랜드
3,150,000명
세인트키츠
-
바베이도스
50,000명
앤티가
50,000명
자메이카
150,000명
기타 카리브
50,000명
뉴햄프셔
50,000명
매사추세츠
200,000명
코네티컷
100,000명
로드아일랜드
50,000명
뉴욕
100,000명
뉴저지
50,000명
펜실베이니아
100,000명
델라웨어
50,000명
메릴랜드
150,000명
버지니아
250,000명
노스캐롤라이나
50,000명
사우스캐롤라이나
50,000명
조지아
-
합계
13,150,000명
1830년을 기준으로 영국의 지역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지역
지역별 인구
잉글랜드/웨일스
13,700,000명
스코틀랜드
2,300,000명
아일랜드
6,700,000명
세인트키츠
-
바베이도스
100,000명
앤티가
50,000명
자메이카
400,000명
그레나다
50,000명
트리니다드
50,000명
영국 기아나
100,000명
기타 카리브
150,000명
노바스코샤
150,000명
로어/어퍼 캐나다
600,000명
기타 캐나다
100,000명
벵골
69,700,000명
포트세인트조지
13,500,000명
봄베이
6,250,000명
데칸디스트릭트
11,150,000명
동인도회사보호지
40,400,000명
실론
950,000명
모리셔스
100,000명
기타 아시아
100,000명
케이프오브굿홉
150,000명
시에라리온
-
기타 아프리카
-
오스트레일리아
50,000명
지브롤터
-
몰타
100,000명
합계
166,900,000명

 

 

대영제국 역사
영토 확장을 기준으로 크게 제1제국(1607년 ~ 1783년)과 제2제국(1783년 ~ 1997년)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1783년은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인정한 해이다. 

 

제1제국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로 유명한 튜더 왕조의 뒤를 이은, 스튜어트 왕조의 첫 왕 제임스 1세 때 아메리카의 제임스타운에 도착하며 시작(1607년) 잉글랜드 제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동군연합 
내전 끝에 사형된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1세를 거쳐, 올리버 크롬웰 호국경의 잉글랜드 연방
다시 찰스 2세가 돌아와 스튜어트 왕조를 부활시킴. 허나, 제임스 2세 때 명예혁명이 발생해 오렌지공 윌리엄이 상륙, 하노버 왕조가 시작됨.(자코바이트도 생성) 
하노버 왕조의 조지 시대 중, 조지 3세가 미국 독립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그레이트 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에 험프리 길버트 경이 현재 캐나다의 뉴펀들랜드에서 영국의 아메리카 최초의 영유권을 선포하고 1585년 월터 롤리 경이 보낸 함대가 현재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로어노크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미스테리하게 사라져버렸고, 실질적인 대영제국의 식민지 건설의 시작은 1607년으로 본다. 

이후 영국은 발견한 카리브 해의 무인도를 장악했고 7년 전쟁을 통해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인도의 벵골 지방과 캐나다의 퀘벡 주도 정복한다. 그러나 1783년에 미국 지역에 있던 아메리카 13개 식민지가 영국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일으킨 미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파리 평화 조약에서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되었다.

영국의 아메리카 주요 영토 지배 시기
카리브 섬
세인트키츠 (1625년~)
바베이도스 (1627년~)
앤티가 (1632년~)
자메이카 (1655년~)
그레나다 (1763년~)
트리니다드 (1797년~)
영국령 기아나 (1803년~)
북아메리카 식민지
버지니아 (1607년~)
매사추세츠 (1620년~)
메릴랜드 (1632년~)
코네티컷 (1635년~)
로드아일랜드 (1644년~)
노스캐롤라이나( 1662년~)
사우스캐롤라이나 (1662년~)
뉴욕 (1664년~)
뉴저지 (1664년~)
뉴햄프셔 (1679년~)
펜실베이니아 (1681년~)
델라웨어 (1704년~)
조지아 (1713년~)
캐나다
노바스코샤 (1713년~)
로어/어퍼 캐나다 (1759년~)

 

 

제2제국
조지 3세의 시기부터 남은 조지 시대와 이어지는 빅토리아 시대
홍콩 반환이 성사된 1997년을 제국주의의 자발적 종료 시점으로 인식하는 여론이 지배적.

비록 영국은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던 미국을 상실했으나 여전히 캐나다와 벵골 등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은 1788년 제임스 쿡의 태평양 탐험을 통해 발견한 호주를 식민화하고 나폴레옹과의 투쟁 과정에서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거점을 확보하게 된다. 이로써 새롭게 구성된 제2차 식민 제국으로 불리는 대영제국의 중심은 동인도 회사가 직접 통치하기 시작한 인도였다. 나폴레옹 전쟁을 끝낸 워털루 전투 (1815년) 이후부터는 증기선과 전신 등의 새로운 기술을 통해 전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륙별 초기 영토 지배 지역
아시아
인도 (2,921,000㎢)
동인도회사보호지 (1,592,000㎢)
벵골 (571,000㎢)
포트세인트조지 (368,000㎢)
데칸디스트릭트 (236,000㎢)
봄베이 (154,000㎢)
실론
모리셔스
싱가포르
말라카
페낭
아프리카
케이프오브굿홉
시에라리온
세네갈
고레
페르난도포
오세아니아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지브롤터
몰타
아일랜드

이후에는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과 이집트의 카이로를 연결하는 종단 정책을 펼쳤고 연이어 카이로에서 인도의 캘커타를 연결하는 3C 정책을 펼치며 중동 지역으로 진출을 꾀하였으며,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형성된 경로를 따라 싱가포르 방면으로도 진출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도 승리했던 영국은 1920년에 정점에 올라서 35,500,000㎢의 영토와 458,000,000명의 인구를 통치하는 판도를 이룩해낸다. 그러나 이어진 제2 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 본토의 국력은 크게 소모되었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연방 등 여러 자치령과 식민지들은 독립을 요구하면서 제국은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했다.

사실 결정적인 이유는 전술했듯이 2차 세계 대전으로,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영국과 다른 지역과의 연결망에 큰 타격을 입었고, 급기야는 1942년 일본 제국과의 말레이 해전과 실론 해전으로 동양 함대가 소멸하거나 나치 독일과의 해전에서 주력 수상함 다수와 맞바꾼 전과를 세우고 라이온급 전함 개발안도 뱅가드 전함으로 엄청나게 축소되었으며, 미국의 지원을 얻는 대가로 해외의 여러 해군 기지나 항구를 넘겨주는 등 재해권을 기반으로 했던 대영제국의 영향력이 크게 손상되었다. 그 대신 전쟁 기간 내내 영국은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이라크, 시리아, 마다가스카르를 나치 독일과 비시 프랑스에서 해방시켰고 결국 마지막에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했다.

영국은 1947년에 인도가 독립하고도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항로를 장악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1971년에는 수에즈 동쪽의 주둔 영국군 5만 명을 전면 철수시켰고 1984년에는 브루나이의 독립을 승인하였으며 1997년에는 홍콩을 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했다. 실질적으로는 학계와 일상을 막론하고 1997년에 발생한 홍콩 반환을 제국의 완전한 종말로 간주하고 있다.

 

 

평가
제국주의 시대 식민제국의 대명사로써 대영제국은 가히 세계 최대의 규모를 가졌다고 평가받고 있으나, 그와 정비례하게 전세계의 식민지인들을 가장 많이 착취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피지배 지역에서의 평가는 좋지 못하다. 이들의 결과물은 많은 국가에서 몇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일단 중요한 건 미국인들을 포함하여 대영제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국가의 사람들은 지금의 영국은 몰라도 대영제국이라고 한다면 치를 떤다. 

특히 대영제국의 범죄 행각은 대표적으로 보어 전쟁 당시 보어인 학살과 감금,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착취와 학살 등을 들 수 있다. 안다만 제도 같은 경우에는 아예 흔적도 없이 멸망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국의 규모에 비해서 다른 식민제국보다는 나았다는 평가도 종종 볼 수 있다. 대영제국은 피지배 지역에 관용적이고 피지배민들을 잘 대우해줬을 뿐 아니라, 영국은 다른 식민제국처럼 정복지를 자국으로 직접 병합하기보다는 해외 식민지 개념으로 보고 현지의 문화적 요소까지 강압적으로 말살하려 하지는 않은 데다가, 너무 식민지가 많아서 사소한 일상 행정 업무 다수는 현지인들에게 맡기고 간접적으로 통치를 한 경우가 많아 중앙 권력의 직접적인 탄압을 받은 경험이 적었던 편이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 전쟁으로 식민지를 포기한 경우도 있지만 다른 식민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식민지들의 독립을 쉽게 허락했던 편이다. 이러한 평가는 주로 비교 대상인 프랑스가 탈식민화 과정에서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 식민지군들과 거대한 전면전을 벌이면서(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전쟁) 많은 인명피해를 냈던 것과 달리 영국은 비교적 평화적으로 탈식민지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직도 상당수의 구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 뒤에도 영연방에 소속되어 있고 현재도 회원국만 53개국에 이른다. 

다만 이건 다른 식민지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나았다는 것일 뿐이지 악행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종종 보이는 '세계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십중팔구는 영국 때문', '악명을 가려준 콧수염 퓌러에게 감사해야 할 인성쓰레기 깡패 나라' 같은 혐성국 밈에 너무 매몰돼서 모든 것을 영국 탓이라고 하는 건 잘못된 평가이지만 그렇다고 정확히 그에 반대로 영국의 식민지배도 좋은 점이 있다고 하는 것 역시 너무 나간 것이다.

대표적인 게 "영국의 식민지들은 잘살고 무역과 상업이 발달했다"라는 평가. 이건 근본적으로 일본이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주장과 똑같은 주장이다. 그리고 이 주장이 틀린 가장 큰 이유는 이 주장에 부합하는 국가가 어디가 있고 얼마나 있는지를 보면 된다. 수많은 식민지 중에 홍콩, 싱가포르, 호주,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많은거 아닌가?"할 수도 있지만 스크롤을 다시 올려 영국 식민지 리스트를 다시 한번 보고 오라. 게다가 호주,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같은 경우는 죄수나 하층민 위주였다곤 하지만 어쨌건 본토 영국인을 이주시켜 그들로 인구 대부분을 구성하게 된 지역이라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식민지가 아니다. 영국-캐나다 관계는 조선-일제의 관계하고 식민지라는 명칭만 같을 뿐이지 속내는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다. 미국 독립 전쟁 역시 당시의 영국인들은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나 전라도가 독립전쟁을 일으켜 다른 나라로 떨어져 나가는 그런 내용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제대로 된 영국 식민지 출신으로서 잘사는 곳이래봐야 홍콩, 싱가포르 달랑 두 도시국가 밖에 남지 않는다. 영국이 거느렸던 아프리카의 수십개 식민지 중 잘 사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보는게 맞고 그나마 체구가 거대했던 로디지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식민지 내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던 백인계 세력들이 인종차별을 버리지 못하고 억지로 이를 역행하려다가 더 끔찍한 후폭풍을 겪었다. 결국 로디지아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남아공은 아직도 정치적 혼돈과 치안 유지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인도 역시 매우 많은 인구의 힘으로 경제대국 반열에 있는 것이지 1인당 소득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미얀마 역시 매우 가난한 나라이다.

그리고 영국은 식민지인들의 문화적 요소까지 강압적으로 말살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말살하려 든 적이 여러 번 있다. 윌 듀란트는 영국령 인도에 관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영국에 의한 명백히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인도문화 말살에 대해 나는 놀라고 분개한다...(중략)...인도의 여러 곳에는 마을 공동체들이 관리하던 공동 학교 시스템이 있었다. 동인도회사 직원들은 이 마을 공동체들을 파괴했다. 인도 총독은 교육을 장려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주민들에게 음주를 권장했다."

위 문장에서 말하는 마을 공동체의 개념은, 영국이 진출하기 전 인도 전역에 널리 퍼져 있던 다르마(dharma)라는 공동체 의식에 대한 개념에서 비롯한다. 깊게 알고 싶다면, KIEP의 대외경제 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연구 자료 인도인의 공동체의식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 식민지는 아니지만 아일랜드 역시 오랜 세월 종교와 고유언어를 탄압당했다. 이 역시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보다는 덜 했다는 거지 영국이 안한 것이 아니다.

일부 피지배국 중에는 영국이 이미지 관리가 좀 된 덕에 대영제국에 대한 감정이 덜 부정적이거나 아예 친영인 경우가 있다. 싱가포르, 쿠웨이트 등의 경우는 식민지보다는 교역지로써 영국 지배 하에서 비로소 도시로써 발전할 수 있었던 지역이라 영국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으며, 홍콩의 경우는 영국이 사실상 혼자 개발한 데다가 중국의 간섭이 갈수록 세지고 홍콩보안법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등을 겪으며 친영은 물론 재병합을 원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다만 영국 측에서는 영연방을 대하는 것처럼 홍콩 인권을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 보겠으나 독립이나 재병합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영제국 식민지

Flag of the Gove...
영국 국기
인도 제국 국기
동아시아
홍콩 (1841~1997)
웨이하이웨이 (1898~1930)
포트 해밀턴 (1885~1887)
톈진 (1860~1943)
동남아시아
말레이시아 (1824~1956)
싱가포르 (1824~1963)
브루나이 (1838~1984)
버마 (1824~1948)
벵쿨렌[60](1685~1824)
필리핀 (1762~1764)
남아시아
인도 제국[61] (1757~1947)
영국령 실론[62] (1796~1948)
몰디브 (1887~1965)
네팔 (1816~1923)[63]
부탄 (1910~1949)[64]
아프가니스탄 (1879~1919)
서아시아
페르시아 (1919~1921, 1941~1946)[65]
팔레스타인 (1920~1948)
트란스요르단 (1921~1946)
메소포타미아 (1920~1932, 1941~1947)
오만 (1892~1970)
카타르 (1916~1971)
키프로스 (1878~1960)
영국령 아덴 (1839~1967)
쿠웨이트 (1899~1961)
휴전 오만 (1906~1971)
바레인 (1820~1971)
사우디아라비아 (1915~1927)
오세아니아
호주 (1770~1986)[66]
뉴질랜드 (1788~1986)[67]
파푸아뉴기니 (1883~1975)
피지 (1874~1970)
통가 (1900~1970)
솔로몬 제도 (1893~1978)
길버트&엘리스 제도 (1877~1976)
뉴헤브리디스 제도[68] (1887~1980)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 (1607~1776)[69]
캐나다 (1610~1982)[70]
오리건[71] (1792~1843)
중앙아메리카
영국령 온두라스 (1749~1981)
자메이카 (1655~1962)
도미니카 (1805~1978)
바베이도스 (1627~1966)
바하마 (1717~1973)
트리니다드 토바고 (1802~1962)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1767~1979)
세인트루시아 (1814~1967)
그레나다 (1763~1974)
모스키토해안[72] (1638~1787, 1844~1860)
쿠바 (1762~1763)
남아메리카
영국령 기아나 (1814~1966)
포클랜드 제도 (1823~현재)
external/upload....
종단 정책이 나타난 지도로 지도의 연도는 영국에서 독립한 연도[73]
아프리카
이집트 (1881~1922, 1952)[74]
앵글로-이집트 수단 (1899~1956)[75]
나이지리아 (1861~1960)
남아프리카 공화국 (1795~1910)
남로디지아 (1889~1965, 1979~1980)
케냐 (1888~1963)
우간다 (1894~1962)
골드코스트 (1867~1957)
영국령 소말릴란드 (1884~1960)
소말리아 (1941~1949)
감비아 (1821~1965)
시에라리온 (1800~1960)
베추아날랜드 (1885~1966)
바수톨란드 (1868~1966)
스와질란드 (1906~1968)
북로디지아 (1890~1964)
니아살랜드 (1891~1964)
모리셔스 (1810~1968)
세이셸 (1814~1976)
탕가니카 (1916~1961)
잔지바르 (1890~1963)
카메룬 (1916~1961)
리비아 (1942~1951)
에리트레아 (1941~1952)
유럽
아일랜드 섬
북아일랜드 (1171~현재)
아일랜드 (1171~1922)[76]
몰타 (1800~1964)
지브롤터 (1704~현재)
이오니아 제도[77] (1815~1864)
코르시카 (1794~1796)
연합군 점령하 이탈리아 (1943~1945)[78]
연합군 점령하 독일 서북부 (1945~1949)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남부 (1945~195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