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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무엇인가?'로~, 진화론, 뇌과학

Jobs 9 2023. 4. 2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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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에서 '나는 무엇인가?'로~, 진화론, 뇌과학

 

폴 고갱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철학의 기본적인 주제이며, 폴 고갱은 이와 관련한 철학적인 고민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존재론적인 질문을 한번 과학적으로도 고민해보자. 과학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먼저,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우리는 모든 것은 공통된 118개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단순화시키면 118개밖에 되지 않는다. 이 요소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모든 형태와 성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결국 나라는 존재도 물질적으로는 118개 중에 몇 가지의 요소들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같은 질문에 시간개념을 포함하여 수직적으로 접근해보자. 쉽게 생각해서, 역사의 시작점에 있을 인간의 최초의 출처는 무엇일까? 

인간의 기원, 혹은 생명체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다. 종교적인 입장이 우세했던 시대에는 신이라는 초월자가 생명체를 빚어냈다고 생각되기도 했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교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기계적 존재라고 여겨지기도 했었다. 이런 생각들은 찰스 다윈이라는 박물학자가 ‘종의 기원’ 종의 기원, 찰스 로버트 다윈 저, 장대익 역, 사이언스 북스, 2019* 이라는 책을 발표하면서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다윈에 따르면 인간은 나무에서 가지가 뻗듯 어떠한 공통된 생명체로부터 서서히 변화하여 만들어진 결정체이며, 6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침팬지와 조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다윈은 이 변화과정에서 통찰력을 발휘하여 자연의 법칙들을 뽑아냈다. 생명체는 어떠한 제한 조건도 없을 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한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형질이 전달될 때 필수적으로 변이도 함께 일어나게 된다. 각각의 사소한 변이는 생존과 번식에 유용한 경우에 보존되어 대물림되고, 이러한 누적된 자연의 선택들이 적용되어 지금의 수많은 종류의 생명체와 그에 따른 종의 구분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윈은 이와 같은 자연 선택에 따른 진화론에서 인류를 포함한 생명체의 기원에서 출발한 복잡한 변화과정이 소수의 단순한 법칙들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의 법칙들로 거슬러 올라가서 종들의 기원에 대해 밝힐 수 있었다. 자연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다윈의 접근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는데 큰 기여를 했다. 종과 변종의 경계는 사실 인간의 기준이었을 뿐 그 구분을 명확하게 내릴 수 없다. 진화라는 것도 열등한 것에서 우월한 것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생활환경에 맞춰서 각 개체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다윈은 인간과 침팬지의 조상이 같으므로 처음부터 인간이라는 완벽한 존재가 있던 것이 아니였음을 말하며 존재의 평등성을 제시하고 있다. 적자생존, 자연도태 등의 단어로 주로 인용되던 진화론의 현대적 해석이다. 

과학적이라는 것은 자연을 단순화시켜서 그 안의 본질적 법칙들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에 대한 단순한 접근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사유를 건네준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공통된 원자들은 성질에 따라서 구별되지, 열등함과 우열함에 따라서 구별되지 않는다. 공통된 출처에서 변화되었을 뿐인 현재의 종들에서 그들이 가지는 우월함의 위계를 나누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화의 과정에서의 인간의 개념 혹은 현재의 나를 만들어온 철학적, 사회적인 맥락들이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작과 근원을 탐구하는 것 또한 인간에게 내재된 근본적인 물음 중 하나이며, 때론 그러한 오리지널리티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위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 당대 사회가 가지고 있던 비과학적인 믿음을 깼듯이,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고민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생각의 위계를 깰 수 있는 좋은 피드백이 될 것이다. 

 

 


 

 

 

뇌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인 뇌과학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된 지 불과 200여년에 불과하지만 근래에는 자의든 타의든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드러내며 ‘첨단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뇌과학이 주목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그 여러 이유들 가운데서도 핵심적인 것은 인류의 ‘거대한 물음’에 대해 뇌과학이 나름대로 정답까지는 아닐지라도, 일부 설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는 탄생 이래 지금까지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에 대한 ‘거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결국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한 이 ‘거대한 물음’에 지난 수천년 동안은 인문학적 대응, 즉 철학적 성찰이 이뤄져왔다. 이제 뇌과학이 그 물음에 나서면서 과학적인 해석으로 주목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뇌과학을 주제로 한 책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의 제목에서도 최근 뇌과학의 영향력, 뇌과학의 ‘자부심’이 잘 드러난다. 뇌과학자인 저자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뇌과학을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으로 정의하는 셈이다. 

사실 뇌과학을 주제나 소재로 한 책은 근래 국내외에서 많이 나왔다. 나아가 ‘인간의 모든 인식이나 활동을 뇌의 생물학적 활동으로 무리하게 환원시킨다’며 뇌과학의 한계를 짚어보는 책도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 뇌과학을 주제로 한 이 책이 흥미롭게 읽히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다. 

우선은 쉽게 다가온다. 이 책이 2015년 ‘건명원’에서 이뤄진 다섯 차례의 강의 내용을 엮은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책은 저자의 표현대로 “1.4㎏의 고깃덩어리”인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과학적 연구 성과들, 뇌과학의 전개 과정 등 뇌와 뇌과학에 관한 일반 대중의 궁금증에 대한 해설을 알차게 정리하고 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뇌라는 기계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정보, 매뉴얼을 알려주려고 한다”는 게 책의 취지다.  


다른 흥미로운 점은 뇌과학을 이야기하면서 인문학적 연계성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뇌과학은 생물학적 자연과학이면서 동시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실제 책은 ‘나’라는 존재를 질문하며 ‘나’는 뇌의 피질에 있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나는 뇌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뀐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 자체는 뇌의 해석이며, 정신질환은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된 것이고, 의미도 정상적인 뇌에서만 만들어진다고 책은 말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창의성과 도덕, 윤리, 결국 모두 뇌라는 생물학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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