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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둥성, 廣東省, 베이강, 北江, 인구 1억3천만명, 광저우, 선전, 홍콩, 마카오, 세계최대 베이경제권

Jobs 9 2024. 4. 2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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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둥성, 廣東省, 베이강, 北江, 광저우, 선전, 홍콩, 마카오, 세계최대 베이경제권

 

광둥성(중국어 간체자: 广东省, 정체자: 廣東省, 병음: Guǎngdōng, 광둥어: Gwong2 Dung1 Saang2) 또는 광동성은 중화인민공화국 남부의 성이다. 북동쪽으로 푸젠성, 북쪽으로 장시성·후난성, 서쪽으로 광시 좡족 자치구, 남쪽으로 홍콩·마카오와 접하고 있다. 레이저우반도 건너로 하이난성이 있다. 홍콩과의 경계 지역에는 선전 경제특구가, 마카오와의 경계 지역에는 주하이 경제특구가 있다. 성도는 광저우이다. 

지리
광둥 성(廣東省)은 중국의 남부에 위치한다. 북쪽은 난링(南嶺)산맥을 기대고 있고, 동북부는 우이(武夷)산맥을 향하며, 남쪽은 남중국해(南中國海)를 향하고 있다. 광둥 성 전체의 육지는 북위 20°19′부터 25°31′까지에 위치하고, 동경 109°45′부터 117°20′까지이다. 광둥 성 육지는 동서로 길고, 남북이 좁은 형태이다. 총면적이 17.8만km2에 달하고, 연해에는 651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분포한다. 

광둥 성의 동쪽과 북쪽, 서쪽은 각각 푸젠성(福建省), 장시성(江西省), 후난성(湖南省), 광시 좡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등의 지역과 이웃하고 있고, 서남부는 충저우(瓊州)해협을 사이에 두고 하이난성(海南省)과 마주 바라보고 있으며, 홍콩과 마카오 특별행정구와도 인접한다. 

해안선은 3,368km(도서를 포함하지 않는 해안선)에 달하고, 전체 지형은 북고 남저의 형세이다. 북부와 동북부, 서부는 비교적 높은 산맥들이 있고, 중부와 남부 연해 지역은 낮은 구릉, 더기(고원의 평평한 땅)와 평원이 많다. 산지와 구릉은 약 62%를 차지하고, 더기와 평원은 약 38%를 차지한다. 주요 산맥으로는, 롄화 산(蓮花山), 뤄푸 산(羅浮山), 주롄 산(九連山), 칭윈 산(靑雲山), 화스 산(滑石山), 톈루 산(天露山), 윈우 산(雲霧山), 윈카이 대산(雲開大山) 등이 있다. 광둥 성의 가장 높은 지점의 해발고도는 1,600m이다. 

동북에서 서남까지 주향(走向)(또는 층향 :기울어진 지층면과 수평면이 만나서 이루는 직선의 방향)이 많이 나타나고, 그 방향이 또 해안선과 평행하다. 유역면적이 100km2이상인 강줄기도 모두 640갈래인데, 각각 주장(珠江)과 연해의 여러 하천의 수계에 속한다. 주로 둥장(東江), 베이장(北江), 시장(西江)과 한장(韓江)이 있다. 성내의 다년간 평균 강수량은 1,774mm이다. 

행정 구역 
현재 21개의 지급시(地级市)를 비롯해 65개의 시 직할구, 20개의 현급시(县级市), 34개의 현(县), 그리고 3개의 자치현(自治县)을 관할한다. 

 

 

 

'광둥'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오나라 후한 13주 중 하나인 교주(交州)[6]를 갈라 광주(廣州)를 설치한 것에서 유래했으며 송나라 시대에 이를 다시 광남서로(廣南西路)와 광남동로(廣南東路)로 분할하였는데 광남동로를 축약하여 광동로(廣東路)라고 하였고 이것이 '광둥'이 되었다. 

약칭인 웨(粤)는 본래 중국 남부를 가리키는 말로, 춘추시대의 월(越)과는 다른 나라인 베트남계 고대 국가인 남비엣(남월)에서 유래한다. 지금은 이들 나라 역시 '越'을 사용하지만 '粤' 역시 광둥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로 중화민국 시대부터 약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유지되고 있다.

 

 

인구

성 단위로만 따진다면 중국 대륙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성으로, 그 수가 2021년 기준으로 무려 1억 2,601만 명이나 된다.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시, 비하르, 마하라슈트라에 이어 세계에서 인구가 네 번째로 많은 행정구역이다. 인구 증가가 지속되어 2019년에는 대만 중앙통신에서 광둥성의 인구가 1억 1,300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근현대 이후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인원이 많아서 인구가 폭증한 것으로, 원래 역사적으로 인구가 많은 지역은 아니었다. 이렇게 인구가 폭증할 정도로 유입된 인원이 많았던 이유는 광둥성이 중국 최대의 공업 지역으로 성장하여 중국 각지에서 노동자가 몰려들었기 때문이며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다른 성들의 인구가 조정된 것도 요인 중 하나이다. 

2009년 인구 1억을 돌파한 후 서서히 인구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매년 100만명이 넘는 인구 증가폭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출생아 수가 많은 성으로 2010년대 중반까지는 광둥성보다 출생아수가 많은 성이 일부 있었지만 2자녀 정책의 약빨이 다하고 광둥성의 출산율 하락이 상대적으로 더뎌서 광둥성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경제
GDP는 1998년에 싱가포르, 2003년에 홍콩, 2007년엔 대만의 GDP를 추월했고 2013년 기준 약 1조 달러에서 2017년 기준으로는 이미 1조 4,400억 달러로 증가해 2018년 기준 1조 6,900억 달러인 한국을 턱 밑까지 쫓고있다. 중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GDP 1조 달러를 돌파한 성이다. 2020년에 이르러서는 광둥성의 경제 규모가 1조 6,000억 달러에 이르러 대한민국 경제규모를 추월했다. 이로서 싱가포르, 홍콩, 대만,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를 모두 제친 중국 최초의 성이 되었다.

흔히 미국의 부유한 지역인 텍사스가 독립한다면 세계 8위의 경제규모를 지닐 것이라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광둥성 역시 독립한다면 높은 수준의 경제대국 중 하나가 된다.  

2021년 기준으로 1인당 GDP는 중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로 따져도 결코 작지 않은 수치이며 광저우시, 선전시 지역은 현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광둥성 지역에 전폭적인 발전과 투자가 더해지며 선전시는 이미 홍콩을 넘어서 경제의 중심지 중 하나로 부상했고 광저우시는 중국의 대표적인 '일선도시(一线城市)'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광둥성 출신이라고 하면 '부자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경우가 많다.

관광 산업은 다소 밀리는 편이다. 광둥성에 볼거리가 없는 건 아닌데 역사 유적은 시안시와 뤄양시, 자연경관은 구이린시와 장자제시, 도시 경관이나 쇼핑 등의 인프라는 홍콩에 밀린다. 도시 역시 규모가 크고 스카이라인도 멋있지만 이 역시 홍콩 특유의 도시국가에 준하는 빌딩 숲을 따라갈 수는 없다. 사실상 그레이터 베이 계획에 의해 광동성은 홍콩의 부속품처럼 되어버려서 더욱 그런 감이 있다. 

 

광둥인
광둥성에 사는 사람들을 광둥인이라고 한다. 주 민족은 한족이며 중국 중심부 한족과 별개의 민족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다만 거리가 꽤 되다 보니 광둥성을 비롯해 중국 대륙 최남부에 거주하는 한족은 이북에 거주하는 한족과 유전적 차이가 있다. 비교적 근래에 이주한 이들은 이북과 당연히 차이가 없겠지만 아주 오래 전에 이주한 한족의 후손은 토착민과 통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둥성에는 북부 베트남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다른 지역 한족과 달리 키가 좀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는 외모적 차이점이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지의 중원 사람들보단 오히려 베트남인이나 태국인, 그리고 필리핀인을 더 닮았다.

대부분 한족이지만 소수민족도 존재한다. 야오족(瑶族)과 좡족(壮族)이 자치현을 각각 2개[13]와 1개[14]씩 가지고 있다. 야오족이 성 인구의 0.2%, 좡족이 0.7%.

 

역사
중원과 물리적 거리가 멀어서 정통 중국 문화와 바다를 통해 들어온 외국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유럽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게 된 뒤부터는 반체제적인 사고 방식이 형성되어 중국 내부의 정치 상황이 급변하는 변수가 생긴다면 이 곳이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진나라의 장수였던 임오(任囂)와 조타(趙佗)가 진나라 조정의 명으로 광둥성 일부 지역과 베트남 북부 지역을 평정하고 머무르다가 진나라가 멸망하자 남월(南越)이라는 국명으로 나라를 건국하기도 했다. 

월(越)이라는 명칭은 당시 중원 지역에서 강남 이남을 부르는 광범위하고 가변적인 명칭이었으며 후에 베트남의 국명에도 들어가게 된다. 월(越)이라는 명칭 때문에 춘추시대의 월나라와 모종의 관계를 염두에 두는 시각도 있으나 애초에 남월은 진나라의 장수였던 조타가 건국한 나라고 건국 당시 으레 쓰이던 월(越)이라는 명칭을 국명으로 사용한 것 뿐이다. 애초에 월계 주민들이라고 해도 서로 정체성이 달랐기 때문에 반랑과 월나라가 관계가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후 남월은 중원과는 다른 독자적인 세력을 이루다가 한나라의 군사력이 절정에 달해 흉노나 고조선 등 주변지역을 마구 침공한 한무제 때 정복당하여 한나라에 복속되었다. 

한나라 시절에도 이 지역은 산맥과 밀림으로 막힌 미지의 영역이었으며 베트남 북부 교지, 중부 일남군 등과 함께 간접적인 통치가 이뤄지다가[25] 위진남북조시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개발된다. 본래 이 지역은 북부 베트남과 함께 같이 교주에 속했으나 삼국시대의 오나라 손권 황무(黃武) 5년(226년)에는 교주를 나누어 광주(廣州)를 두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 홍콩 특별행정구와 마카오 특별행정구를 총괄하는 이름인 양광(兩廣)과 광둥성의 성도 광저우시의 이름의 기원이 된다. 

이후 이 지역은 육조시대 말기에는 남해군으로 불렸는데 수문제가 이 지역에 남해군을 폐지하고 다시 광주 총관부(總管府)를 두었다. 이후 수양제의 휘를 피해 번주(番州)로 개칭되고 남해군으로 되돌리는 일을 반복하다가 당고조 시기에 다시 광주가 설치되었고 이후엔 영남도로 개칭되었다가 송나라대에 강둥성 지역에 광남동로(廣南東路)를 설치했는데 이로써 옛 광주에서 광둥성과 광서성이 분할되었다. 원나라 때는 광주 지역을 총괄하는 광서행중서성(江西行中書省)에 속하게 되고 광둥성에는 광동도(廣東道) 선위사(宣慰使)를 세웠는데 명나라 홍무제 때 광동도가 광동행성(廣東行省)으로 바뀌면서 광둥성(廣東省)이라는 명칭을 최종적으로 획득한다.

명나라 이후 기후가 좋고 해양 세력과 접촉하는 데 상당히 유리했기 때문에 점점 부유한 지역이 되었으며 만주족 청나라가 들어선 후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청나라 때는 광서성까지 통괄하는 양광총독(兩廣總督)의 관할 하에 있었다.

중국 남부 해안에 위치하여 오랜 기간 유럽인들과 접촉이 많았던 까닭인지 유럽인들의 조차지/식민지가 유독 많이 세워진 지역이기도 했다. 철도 연선이나 도시 내 소규모 구획들의 조차 사례를 제하고도 프랑스령 광저우만, 포르투갈령 마카오와 영국령 홍콩으로 셋이나 된다.

 

중화민국
청나라 멸망 이후 국민혁명 이전까지는 중국 국민당의 본거지나 다름없었다.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호응하는 4.15 광저우 쿠데타가 발생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광둥성 정부주석 리지선이 광둥성의 군정대권을 장악하였다. 장파쿠이가 장황사변을, 중국 공산당이 광저우 폭동을 일으켜 광둥성을 장악하고자 했으나 모두 진압당했다. 난징 국민정부에 그런대로 충성은 하지만 중앙과 적대적인 계계군벌의 수장 리쭝런, 바이충시가 리지선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우호적인 동맹 관계에 있었다.

1929년 2월, 호남 사건이 발생하자 장제스는 리지선을 광서파와 연대한 혐의로 투옥하고 천밍수를 신임 광둥성 정부주석에 임명하였고 광둥의 군권을 천지탕에게 맡겨 광둥성의 지배자를 천지탕과 천밍수가 양분하게 했다. 천지탕과 천밍수는 반장전쟁 기간 동안 남방에서 광서파와 장파쿠이를 상대로 큰 전공을 세우며 중앙에 충성했다. 1931년 2월, 탕산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1차 양광사변이 일어났다. 장제스에 우호적이었던 천밍수는 천지탕에게 축출되었고 광둥성은 천지탕의 지배지역이 되었다. 

9월 만주사변이 발생하면서 형성된 거국적인 협력 분위기 덕분에 광둥 지역은 현 광시좡족자치구인 광시성과 함께 1931년 12월, 제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자치를 인정받아 서남정치분회, 서남정무위원회, 군사위원회 서남분회를 설치하고 반독립적인 지역으로 남을 수 있었다. 1934년부터 1935년에 걸친 대장정, 1935년 법폐개혁을 거치면서 중앙의 영향력이 계속 강해졌고 1936년 5월, 광둥의 정신적 지주인 후한민이 사망하자 위기를 느낀 천지탕은 1936년 6월 2차 양광사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해 홍콩으로 망명했고 광둥성은 이후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중일전쟁 중 일본의 침략을 받아 광저우 등지가 함락당한 바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중일전쟁 및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자 다시 중화민국의 통치에 들어간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공내전 중에는 인민해방군에 밀려 중화민국의 수도가 광저우로 이전되었지만 결국 여기도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에 함락되었고 그 해 10월 1일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광둥성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선언한 덩샤오핑 집권 이후 홍콩과 가깝고 바다가 인접해 있다는 영향을 받아서 산터우, 선전, 주하이 등이 경제특구로 지정되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전해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주강 삼각주라는 거대 경제권이 형성된 현재는 여러모로 중국 경제의 핵심지역이다. 

광시 좡족 자치구의 남부 해안가 지대는 원래 광둥 소속이었다가 1952년에 광시성 소속이 되었다가 1955년에 광둥성 소속으로 되돌려졌다가 1965년부터 광시 좡족 자치구에 속하게 되었다. 하이난섬도 원래 광둥 소속이었다가 1980년 경제특구 지정으로 별개 성으로 분리독립했지만 광둥 문화권이 아닌 푸젠성, 그러니까 민남 문화권이다. 이쪽은 말도 민남어와 더 가깝다. 어디까지나 배가 광둥성 서부에서 출항해서 편의상 광둥성으로 넣었을 뿐이다. 당연히 지금은 완전 쌩판 남의 동네다. 한편 홍콩/마카오도 원나라 때 이후 역사적으로 광둥성에 속했으나 이 둘은 영국, 포르투갈의 통치 하에 놓이며 갈렸고 현재는 특별행정구로서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분리되었다. 이 둘은 당연히 이제는 쌩판 다른 동네다.

2022년 11월 15일 코로나 봉쇄 장기화로 인해 중국 인민들이 광둥성부터 시작해서 분노하여 백지 시위를 일으켰다. 이후 하나둘씩 억압적 방역정책이 철회되었다.

 

 

지리와 기후

습하고 덥다. 태풍의 영향도 잦다. 겨울에도 10도쯤인 온도를 유지한다. 단적인 예로 광저우가 영하로 내려간 적은 1983년 1월 영하 5도를 비공식으로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관측 이래 한 번도 없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는 긴팔을 입는 12~2월에도 반팔을 입을 정도다. 물론 맑을 때 그러고 비가 오면 쌀쌀해져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파카를 입게 되는데 광둥성이나 홍콩, 마카오 등은 아예 난방 개념 자체가 없고 습도는 겨울에도 높아 한국식 추위와는 달리 뼈를 깎는 추위를 겪는다. 

남서부는 충저우(琼州) 해협을 사이에 두고 하이난성과 닿아 있다. 역사적으로는 광시좡족자치구 지역과 함께 양광이라는 역사적 지명으로도 불렸다. 兩廣의 廣이 廣東, 廣西로 廣南大路를 기준으로 동쪽은 광둥성, 서쪽은 광시좡족자치구가 되었다. 

 

 

광동 요리
광둥성은 기후가 온난하고 남중국해와 연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주강(珠江) 삼각주를 보유하고 있어서 요리 재료가 될 수 있는 자원이 매우 풍부한 지역이다. 그 덕분에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요리의 종류가 수 천 가지다. 진짜다. 식채광주라는 말이 있는 게 괜한 게 아니다. 

광동식 요리는 포르투갈인, 스페인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미국인 등 서양 열강과의 접촉 창구였던 만큼 양식이 들어와 현지화되어 커리를 재료로 하거나 광동식으로 재해석된 샌드위치, 햄버거 등을 만들기도 했으며 스테이크도 광동식으로 현지화되었다. 스파게티 역시 伊飯이라는 이름으로 현지화되었다. 

 

 

 

 

광둥성~홍콩~마카오 엮어 세계최대 `베이경제권

'세계의 공장'과 '매연 없는 도시'라는 병립하기 힘든 두 단어가 공존하는 곳이 있다. 지난해 홍콩을 제치고 아시아에서 도쿄 서울 상하이 베이징에 이어 경제 규모 5대 도시로 올라선 중국 선전 이야기다. 선전은 경제 규모 외에도 중국 내에서 종합 경쟁력 순위 1위, 창업 규모 1위, 무역 규모 1위, 첫 5세대(5G) 이동통신 실험도시 등 첨단기술과 관련해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평균 연령 33.5세로 젊은 선전 시민들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야근율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가장 책을 많이 읽기도 한다. 선전의 특별함은 선전 바오안국제공항에 내릴 때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플랫폼을 나서자마자 눈만 마주쳐도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 헤이처(黑車·불법택시) 기사가 없는 모습이 중국 공항에서는 생경했다. 오히려 공항 이용자를 반기는 것은 세 줄로 50m 이상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하늘색 택시였다. 선전시 택시 중 90% 이상이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BYD가 공급한 전기택시다.  

공항에서 시내인 푸톈지역까지 거리는 약 30㎞지만 택시를 타고 시간으로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중국 대도시에서 각오해야 하는 교통체증이 없다. 첨단기술과 엄격한 법 집행 덕분이다. 기업 투자에 있어 보조금 혜택과 세금 감면, 토지사용권 부여, 시장 개방 확대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선전이 이제는 도시 생활 변화까지 주도하는 셈이다.

선전은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달 18일 공개한 '웨강아오다완취 발전 계획 요강' 때문이다. 2022년까지 광둥성 홍콩 마카오를 첨단기술 산업에 특화된 세계 일류 도시 클러스터로 조성하고, 2035년까지 세계 정상급 수준의 베이(Bay) 경제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웨강아오다완취는 광저우 선전 주하이 포산 둥관 중산 장먼 후이저우 자오칭 등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마카오를 합한 '메가 경제권'을 의미한다. 웨강아오의 웨(월)는 광둥성, 강(港)은 홍콩, 아오(澳)는 마카오를 뜻하며 다완취(大灣區)는 대형 연안 지역이라는 뜻이다. 

미국 뉴욕·실리콘밸리와 일본 도쿄만 등 세계 3대 베이 경제권을 뛰어넘는 첨단기술 허브로 육성하기 위해 조성하는 웨강아오다완취의 면적은 5만6500㎢로 남한의 절반 남짓하지만 인구는 7000만명으로 우리나라보다 1.4배가량 많고, 국내총생산(GDP)은 1조5000억달러로 한국과 유사하다. 

 

 

베이강, 北江

 

중국 남부 곳곳 침수…'베이강 100년만의 홍수'

 

중국 남부지방에 연일 폭우가 쏟아지면서 도로 등 곳곳이 침수되고 하천 범람 가능성까지 제기돼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22일 중국신문망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남부 광둥성과 광시좡족자치구, 저장성 등에선 지난 18일부터 이어진 비로 침수 피해가 잇따랐다.

중국 중앙기상대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현지시간) 기준 광시자치구 북서부와 중동부, 광둥성 대부분, 후난성 남부, 장시성 중부·남부, 저장성 중부 등의 누적 강수량은 100∼150㎜, 광시자치구 동부와 광둥성 중북부 등지는 200∼280㎜의 강수량을 각각 기록했다.

비가 집중된 광둥성 자오칭과 칭위안, 사오관, 광저우, 후이저우 등에는 국지적으로 300∼488㎜의 비가 쏟아졌다.

광둥성 허강(賀江)과 베이강(北江) 등 주강(珠江) 유역 하천과 광시자치구 구이강(桂江) 및 지류, 장시성 간강 상류 지류 등 53개 하천에서 수위가 경계 수준을 넘었고, 폭우가 계속되면서 베이강은 범람할 가능성이 있다고 중국 당국은 경고했다.

또 중국 중앙기상대는 23일 오전까지 광둥성 중·동부와 남부 등에 폭우가 오겠고, 특히 광둥성 동남부 일부 지역에는 100∼160㎜의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중국 매체들은 "베이강이 22일 저녁 100년에 한 번 나올 홍수를 맞을 수도 있다"며 국가홍수·가뭄대응지휘부가 광둥성에 지원 장비를 보내 제방 방어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침수 등으로 인한 이재민과 농경지를 포함한 재산 피해도 늘고 있다.

중국중앙TV(CCTV)에 따르면 광시자치구에선 전날 오후 5시 기준 약 10만명이 발생했고 600명 가량이 긴급 대피했다. 또 농작물 3천788헥타르(ha)가 수해를 입는 등 직접적인 경제 손실이 2만8천450위안으로 집계됐다.

광시자치구 허저우시 바부구에서는 19∼20일 내린 비로 하천이 불어나면서 마을 3곳 주민 약 4천명이 고립되기도 했다.

경제 중심지인 광둥성과 다른 지역을 잇는 철도·항공편이 중단되는 일도 속출했다.

19∼21일 광저우와 베이징, 홍콩과 베이징을 잇는 철도 노선에서 취소·지연된 열차편은 모두 305편이었고, 전날 하루 100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됐다. 광둥성 당국은 이날 철도 운행이 정상화된 상태라고 밝혔다.

광둥성 등의 각급 학교는 이날 잇따라 임시 휴업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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