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과학 Social Sciences/사회, 문화 Social, Culture

유대인, 공산주의자

Jobs9 2023. 5. 19. 08:55
반응형

***공산주의를 만든 사람은 유태인


***중국공산당의 호위무사는 현 미국 딥스테이트 좌파 유태인(즉 사상거두 ..70년대 미중수교를 성사시킨 헨리 키신저의 졸개들)

***공산주의 뿌리는 구약성서(모세오경 자선.평등.복지.구휼.율법사상. 공산독재의 근원은 유태율법)

***인류투쟁의 원점은 신약성서파(예수파.정통.자본 자유우파) 대 구약성서파(유대파.계몽.사회 평등 좌파)와의 2천년 종교주도권 전쟁..

***좌파 우파의 충돌은 그 원점이 구약파와 신약파의 종교.사상.이념충돌이란 것..<예수파 영혼 구원파 대 모세파 물질  쟁취파... <즉..내세 유신론 대 현세 유물론의 충돌> 그 세기적 전환점이 르네상스(휴머니즘) 운동..


\볼세비키 혁명 지도자 레닌은 독실한 동방정교회 수호자 기독교인 니콜라이 황제 짜르와 가족을 죽이고..기독교인 전체를 멸절시켰다)(푸틴 시절 2000년 암살 82년 만에 니콜라이 황제는 러시아정교회 순교자.성인으로 추존 됨)

\20년 뒤 기독교인 히틀러는 독일 내 유태인 공산주의자를 죽이고. 유태인 공산주의자가 장악한 소련을 침공했으나 패배해 역사적 극우 살안마의 오명을 씀..(한편 러시아 내 기독교인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죽였던 스탈린은 상대적 오명을 덜 씀)



***르네상스(종교개혁) 계몽사조가 신약파에서 구약파로 권력이동의 대전환점..



탈예수화.탈종교화.탈주술화.탈봉건화.인문주의.휴머니즘.계몽주의.이성주의.미국독립혁명.프랑스대혁명.러시아 대혁명.중국 공산화 ..이 모든 흐름은 중세 봉건.교황.왕정을 격파한 탈예수화의 계몽사조..인문주의..유태계 출판.금융.지식세력이 후원한 좌파사조 란 것..



즉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구약파(유태인-현세 유물론자)가 신약파(예수 봉건 신성사회)에 1500년 만의 사상적 휴머니즘.인문주의 대반격을 가한 것...



(참고로 유태인은 내세.천국이 없고..현세의 물질(돈벌레)과 자선.구휼이 사상의 핵심) (***신약 지도자 예수는 신의 반열.절대개념..구약 지도자 모세는 평등한 인간.인민 지도자개념.그래서 예수는 신이고..모세는 동지라 부름)



플라톤.소크라테스.아리스토텔레스는  르네상스기 예수를 깨기 위한 사상기둥의 인간 대타..몽테스키외.로크.볼테르.루소 계몽주의자..칸트.헤겔 이성주의자..막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 유물론자..이 모두가 반 예수 진영의 휴머니즘 인문.진보 좌파 철학자들..

.



서평 <유태인 문제에 관하여>  1850.칼 막스..



유대인을 연구하다보면 신기하게도(매우 놀랍게도..) 공산주의와 맞닿아있고..공산주의.사회주의.프랑스대혁명.미국건국..계몽주의.르네상스, 종교개혁 등 세계사 모든 사회적 대변혁..인류 창조사조에 유대인 지식인.시오니스트의 직간접적(주도적)으로 개입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중세 1500년간 카톨릭(예수) 전성시대를 종식하고..오늘날 인본시대.휴머니즘..소위 말해서 인간의 해방을 이끈 르네상스.인문사조.계몽사조의 핵은 유대인 지식인 이있는데.. 



참고로 르네상스 그 당시 종교개혁(구교.신교의 분리)도 그 본질은 유태 인문세력의 예수(절대자.교황.왕정) 쪼개기 작업..



이 책은 1850년대 자신도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의 본질을 갈파한 카를 마르크스의 역작 입니다.



시오니즘(이스라엘 건국)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헤이즐은 유대인은 두 부류가 있다고 정의했는데..."돈을 벌어 잘살면 세계의 금권을 휘두르는 금융 자본 최상층부를 장악하고..가난하고 지식으로 무장하면 지식인(좌파/문예인)로 사회 혁명가로 뛰어든다"고 합니다..



유태인 지식인의 두갈래..(시오니즘 창시자 테오도르 헤이즐)



부자는 금융깡패(세계 화폐장악) 산업자본.은행가로 성장.

빈자는 시민깡패(세계 코뮨장악) 지식사회.혁명가로 성장.



참고로 1948 이스라엘 건국 초대 대통령 벤 그리온도 레닌의 수석 제자(fact) ..그것이 이스라엘 건국 초기 벤 구리온이 소련식 공유 협동농장 키부츠.모사브를 수백개 만든 이유..



이 책은 그 유대인 중 혁명가로 뛰어든 지식인..유대인이 낳은 세계적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가 쓴 유대인 자신의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해방..해방하죠? 인간해방?   해방구 이런 말 쓰지요?



이게 기실 유대인의 해방이란....중세 기독교 사회의 핍박에서 한 인간으로 유대인들이 해방하고픈 ..그 희망을 <유대인 해방>으로  표현해 왔습니다..



물론 그전 구약성서 <출애굽기> 이집트 건축 노예에서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를 탈출하는 <히브리 노예해방..유태인 해방>이 인간해방의 성서적 기원이죠..



그 중세 예수 절대 사회에서 핍박받던 <유태인 해방>이 르네상스기 휴머니즘 <인간해방>이란  보편하된 언어로 해방.해방..사회주의..인간공동체..유토피아 해방구 건설에 몰두하게 된 것 입니다../



이 책은 1850년대 독일의 두 석학..브루노 바우어와 카를 마르크스의 논쟁인데..



정확하게는 청년헤겔학파의 수장인 부르노 바우어(Bruno Bauer) 가 쓴 <유대인 문제> 와 <오늘날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자유롭게 될 능력> 이라는 두 책을..카를 마르크스가 서평 형식으로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라고 출판한 책입니다..일종의 부르노 바우어에 대한 비평책 입니다.



그러니깐 정확한 흐름은 부르노 바우어가 바라 본 유대인 편견에  대한 종교적 관점을..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적 관점으로 비평한 글입니다.



자 그러면... 청년헤겔학파의 수장이었던 당대 석학 브루노 바우어의 유태인에 대한 시각 부터 잠깐 언급하겟습니다.



브루노 바우어는 유럽사회에서 유대인 차별이라는 문제를 접근할 때..철저히 종교적 입장에서 언급해왔는데..



1)유대인은 유대교를 믿고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 (구약성서 사상/예수 신약 부정..)  



2) 이런 차별화된 특권의식과 차별화된 교회(시나고그.회당)을 짓고, 차별화된 교육방법(회당 랍비 공동교육/탁아소 운영)으로 기독교 와 기독교 국가에 대립해왔는데...



브루노 바우어는 유대인 차별의 첫번째 원인이 종교적 대립이므로,,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유대인이 2천년간 유지해온 유대교..유대교육..종교적 유대성을 버림으로써



(즉 기독교에 동화됨으로써/쉽게 말해 예수를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유대인의 정치적 해방(공민으로 자격 시민권 부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그 근거로 유대교 보다 기독교가 더 고차원적인 종교형식이라고 브루노 바우어는 주장함...



빨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밖아 죽인  원죄를 유대인(이스라엘 민족)이 사과하고..유대교..구약사상을 버리고 신약사상..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유대인 해방의 기초라는 것..)



이에 대해 카를 마르크스는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에서 전혀 다른 진단을 내놓습니다..



마르크스는 현대 독일사회의 유대인 차별은 그들의 역사.종교성.유대성에 기인하지 않고.. 정확하게는 화폐의 위력과 자본권력에 대한 이해없이는 유대인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유대인들이 차별을 받게 된 원인은 전적으로 화폐와 자본의 위력이며..오직 돈을 많이 벌어온 민족이라는 유대인의 특징(돈벌레=상업민족)이 유럽사회에서 유대인의 차별을 낳게 한 근본 동력이라고 설파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화폐 소유자인 내가 비록 절름발이라도 24개의 다리를 만들어 줄 수도 있고.

화폐인 나는 사악하고,비열하고.비양심적이지만, 세상은 화폐인 나를 존경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하에서는 화폐가 만물의 현실적인 정신..전인격성을 대표한다 갈파하는데...



이런 화폐 보유의 힘이 유대인의 더러운 게토(집단거주지)를 성지로 만들고,,유대인의 노란 딱지를  찬란한 황금별로 만들며, 단지 천대받던 고리대금업자인 유대인을 당당한 세계 화폐를 지배하는 금융 사업가로 만들었다는 것..



마르크스 시각에서 유대인이란 이름은



<그 민족이 처한 독특한 여건,,예수,기독교 사회에 쫓겨 핍박받는 오랜 삶의 방식속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주체의 내면화된 불안과 공포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예에 불과하며,,,



물질적 축적 ..돈버는 것을 갈망하는 모든 주체로 부터 강력한 선망의 대상이자, 돈버는 실패자의 증오의 분출구가 유태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유대인이란... 끝없는 탐욕을 위한 갈망과 결핍에 노출된 자본주의 주체들의 박탈감이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유대인이란 것..> 즉 자기도 돈벌고 싶은 마음이 유대인을 증오함..



<시민사회가 그 창자로 부터 끝없이 생산해 내는 것은  유대인(부자)이라는 이름을 가진 박탈감과 부를 갈망하는 허기> 일 뿐이며..<이 박탈감과 허기야 말로ㅡ 시민사회를 움직이는 내적 동력이란 것> 



따라서 유대인.유대인 하는 것은 가난한 시민사회의 한 공공의 적(부자)의 별칭이 유대인이란 용어라는 것..



이런 유대인을 바라보는 논점은  브루노 바우어와 같이 종교적 관점..즉 유대인들은 유대성(토라.탈무드.게토.안식일.유대교육.노란별)을 버리고 기독교 사회로 개종하라는 관점에 대한 비판으로 ..



카를 마르크스는 유대인이 유럽사회에서 차별받는 근본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온 민족(돈벌레)이었기 때문이고,  유태인은 자본주의의 또다른 이름에 불과하기에 유대인의 차별.핍박은 화폐에 대한 공격과 질시에 불과하다는 것...



이런 이유로 서구사회에서 유대인 출신의  위대한 지식인 카를 마르크스는 반유대주의자라는 오해도 불러일으킵니다..이 <유대인문제에 관하여> 논문 자체가 유대인이 유대인을 공격하는 측면도 크긴 합니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의 유대인성에 대한 공격.... 자본주의(화폐의 집중..부의 편중)에 대한 공격은 실로 날카로웠으며.. 



계몽사상가..몽테스키외.로크.볼테르..루소..이성주의자 칸트..헤겔 지성을 이어받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사회주의 이론은 무정부주의자 바쿠닌 연합하고..그후.. 그의 제자..레닌.트로츠키.스탈린.부하린 등으로 이어지면서..



자본주의 고리가 가장 취약했던 러시아 짜르 체제(그렇지만 니콜라이 짜르는 가장 독실한 기독교 동방정교회 소속..)를 공산혁명(볼세비키 지도부 90%가 유태인***)으로 무너뜨립니다..



쉽게 말해 구약파 유대인들이 신약파 기독교 세력 중 동방정교회를 믿는 러시아(그러나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장 취햑했던.,)를  공산주의 혁명이란 이름으로 침략해 먹어버린 것...유태 모세파가 기독교 예수파를 다 죽여버리고 구약성서식 율법 공동체(협동농장)을 만듬..



기독교계 뿌리의 히틀러가 독일 사회주의(유태인 주도) 분쇄하고..독소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 침공을 감행한 것도 볼세비키 지도부가 전부 유태인이었기 때문(히틀러는 지독한 극우.반공주의자..유태인의 공산주의를 극히 혐오함)



그래서..이 책의 무려 60년 뒤에 일어난 일이지만..러시아 혁명을 일부 예리한 사학자들은 그냥 공산혁명이 아니고..유대인(막스.레닌.트로츠키)의 러시아 침략( 자칭 가나안 건설/유대인 해방구. 건설.)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책의 내용과 상관없음/ 이 책 60년 뒤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으므로.....)



(미국 건국도 건국의 아버지 40명 중 대다수가 유태계 프리메이슨..벤자민 프랭클린.조지워싱턴.토머스 제퍼슨.존 에덤스. .페트릭 헨리 ㅋ 딩딩딩~) 



그래서 오늘날 뉴욕의 금융.언론.월가.대학.문화계를 유태인이 장악하고..정치는 리버럴 민주당을 유태계가 장악함,.



2천년간 예수에 쫓겨나 전세계를 유랑하며..축적된 상업.자본력으로 <르네상스> <계몽주의> <프랑스대혁명> <미국건국 독립> <러시아혁명> <이스라엘 건국>이 모든 인문.평등.진보.급진사조를 주도한 지식.상업 세력이 유태인 이란 것..



이 모든 진보의 교집합은 <탈 예수화 작업> 

<레디컬 시오니즘> <약속의 땅..가나안 건설=

<히브리 노예 해방구> <이스라엘 재건>



음모론자들은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유태인 비밀결사.미국.딥스테이트 세계단일정부 추진 세력이 다윗의 자손으로 신세계 질서 (New World  Order 두뇌 칩 이식 빅브라더 사회)의 기획자 라고 비판받기도 하죠..



기실 미국 리버럴 민주당계(힐러리.오바마.바이든)와 유태계  (언론.방송.월가.FRB)+팬데믹 중국공산당이 깊은 유착관계가 있고..미국 보수 자유 우익 트럼프를 끝없이 공격하는 것은 다 좌파(반 예수진영) 맥락을 같이 하는 것.

 

 

 

共産主義 흑서 - LE LIVRE NOIR DU COMMUNISME
"An 800-page compendium of the crimes of Communist regimes worldwide, recorded and analyzed in ghastly detail by a team of scholars. The facts and figures, some of them well known, other newly confirmed in hitherto inaccessible archives, are irrefutable. The myth of the well intentioned founders - the good czar Lenin betrayed by his evil heirs - has been laid to rest for good. No one will any longer be able to claim ignorance or uncertainty about the criminal nature of Communism, and those who had begun to forget will be forced to remember anew." (from the dust jacket of English edition, 1997) 

 

"전세계 공산주의 정권 범죄에 대한 800 쪽짜리 개론서가 학자팀에 의해 끔찍하고 상세하게 기록되고 분석되었다. 그 중 일부는 잘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 접근 할 수 없었던 다른 아카이브에서 새로 확인된 사실과 수치는 반박 할 수 없다. 선의의 창시자들(그의 사악한 상속인들에 의해 배반된 레닌)은 선을 위하여 안식을 얻었다. 아무도 더 이상 공산주의의 범죄적 본질에 대해 무지 또는 불확실성을 주장 할 수 없으며, 잊어 버렸던 사람들은 새롭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 (1997 년 영문판의 dust 재킷에서)

 

 

20세기의 巨惡 공산주의가 과연 누구에 의한, 무엇을 위한, 누구의 운동이었는지 그 뿌리부터 추적해봅시다.

 

 

유태인 공산주의자 명단  List of communist Jews - Metapedia - Main Page - Metapedia

 

 

Christian Rakovsky  유태인 駐佛 소련대사


“아니오, 무슨 비교(秘敎)라 할 것도 없습니다. 실은 정반대요. 내가 아주 명료하게 설명하죠. 마르크스주의는 하나의 철학적,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이기 이전에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하나의 음모요. 그리고 오직 혁명만이 유일한 절대적 진리인 우리에게는 오직 혁명에 이르게 하는 철학과 경제, 그리고 정치만이 참된 것이오. 

 

경제나 정치, 혹은 도덕윤리에서 절대 진리(내말이 주관적인 것이라고 합시다)는 존재하지 않소. 과학적 추론에 의하면 그것은 진리가 될 수도 있고 오류가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혁명적 변증론을 신봉하는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는 유일무이한 절대 진리요. 이것은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그 이후의 모든 혁명가들에게 공통된 것이었소.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신념에 따라 행동합니다.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치밀한 논증에 의해 그의 의도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어떤 이에게 레닌은 “내 생각엔 진리요”라고 대답했소. 당신은 레닌의 대꾸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고 생각하오? 말하건데, 레닌에게 그것은 현실의 모든 것이었소. 혁명이라는 절대적 진리 앞에서 그 외의 모든 진리는 상대적인 것들이었소. 마르크스는 천재였습니다. 그가 단지 자신의 일을 자본주의에 대한 심층적인 비판으로 국한시켰더라도 그의 학문적 업적은 대단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달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대목은 그가 그의 글에 불러들인 아이러니요. “공산주의는 승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그 승리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마르크스는 고압적인 태도로 선언하지 않았소?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가 있겠소? 기발한 곡예사의 솜씨로 인간을 의식적인 생각을 하는 개인으로 변모시킨 그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게끔 하기 위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부터 주관성을 떼어놓았소. 그와 같은 교묘한 술수가 그가 말한 자본주의가 현실이며 거기에 내재한 모순 때문에 결국 공산주의가 승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이었소. 

 

이는 homo economico에 내재하는 태생적인 어리석음이 아니라면 그로부터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과 같은 지속적인 모순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오. Homo sapiens를 homo stultum으로 변모시키기 위해서는 인류를 동물학적 사다리의 맨 끝으로, 말하자면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 만한 마력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오. 오직 자본주의가 정점에 이른 시대에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진 인류가 존재해야만 ‘모순+시간=공산주의’라는 예언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오. 

 

그거 참, 당신한테만 하는 얘긴데 이런 비의(秘意)에 입회한 우리는 루비앙카의 정문 위에 적힌 선전 문구를 보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소. 아마도 우리처럼 마르크스 역시 저승에서 그에게 농락당한 인류를 향해 그의 턱수염 너머로 마음껏 비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것이오. 전술적인 이유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모순의 기원에 대해서는 사람들을 기만하지만 그 폐해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오. 마르크스는 애초부터 그 모순이 어떻게 생겨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심화되며 결국은 모든 생산 활동이 공산주의 승리의 바로 전단계인 무정부적 혼란상태에 이르게 되는지 잘 알고 있었소... 그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본주의의 모순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오.”

 

 

Pope Pius XI (1922-1939)


"그 사악함과 간교함에 있어 인류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산주의 이념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데는 공산주의자들의 거짓된 선전선동 외에도 또 다른 원인이 있다. 공산주의는 하나로 통일된 어떤 중앙권력의 조종 하에 여러 국가와 민족의 문화와 특성에 따라 교묘하게 변형된 형태로 전파된다. 

 

공산주의를 퍼뜨리는 핵심세력의 손끝에는 막대한 금융자원과 셀 수 없는 단체들, 조직들, 국제기구들, 철저하게 훈련된 공작원들, 언론사, 출판사, 영화사, 연극무대, 라디오, 각급학원들, 그리고 대학교들이 놓여 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이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관된 노력으로 공산주의 사상은 조금씩 모든 계층 사람들의 머릿속에 파고든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설명해주는 또 다른 주된 원인은 공산주의 이념이 불러온 재앙에 대한 세계 주요언론의 의도적인 침묵이다. 우리가 의도적인 침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까지 기사화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끌려 애쓰는 이들 언론이 러시아와 멕시코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비극과 현재 스페인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의 반인륜적인 만행에 대해서, 또는 러시아의 공산정권과 같은 거대한 국제공산주의 조직에 대해서는 신기하게 일언반구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이들 언론사들을 지배하는 오컬트 세력(프리메이슨) 때문으로 이들의 변함없는 목표는 과거와 다름없이 기독교의 말살과 기독교적인 사회질서의 전복이다... 

 

이들이 퍼뜨리는 공산주의 프로파간다의 해악은 바로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다. 유명한 공산주의 이론가들이 이미 공개적으로 천명했듯이 그들의 목표는 기독교 서구문명과 기독교 종교의 말살이며 인간, 특히 젊은이들의 마음속으로부터 신에 대한 기억을 추방하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손이 미치는 곳에 있는 모든 성당과 수도원들을 파괴하고 불살랐으며, 그 누구보다 먼저 노동계층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수천 명에 이르는 남녀 성직자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만행의 희생자들 대다수는 일반 양민들로 이들은 요즘 시대에 가능하리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했던 야만적인 방법들로 살해되었다. 꼭 국민의 안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도 양식이 있다면 지금 스페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내일은 또 다른 문명국가에서 되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또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든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속박과 자기절제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신을 인간의 마음에서 지워보라,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정욕이 이르는 대로 그 어떤 끔찍한 만행까지 마다하지 않는 짐승들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Divini Redemptoris, March, 1937)

 

*  *  * 

 

 

Adam 'Spartacus' Weishaupt  유태인 카발리스트, 바이에른 Illuminati 창설

 

“‘평등과 자유는 태고의 원형적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선물받은 근본적인 권리다. 이 평등을 최초로 침해한 것은 사유재산제도였고, 자유를 속박한 것은 권력집단, 혹은 정부라고 하는 것이었다. 서구문명에서 사유재산제도와 정부의 존립기반은 기독교적인 시민사회의 규범과 제도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의 태고적 원시상태의 평등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와 시민사회를 타도해야하며 마지막으로는 사유재산을 폐지해야 한다.’ 바이스하웁트의 이러한 논리는 프리메이슨을 비롯한 모든 비밀결사(secret society)들의 가장 근원적인 사상이다. 이러한 독소는 하급단계에서 배양되고 고급단계에서는 과학적으로 체계화되며 인터내셔널 공산주의와 사민주의를 통해 이 땅에 실현된다.” (Christina Stoddard, Inquire Within: Trail of the Serpent)

 

'빛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 일루미나티는 프랑크푸르트의 로스차일드, 암스테르담의 멘델손과 베르타이머, 함부르크의 오펜하이머, 런던의 골드슈미트 등 18세기 후반 유태인 大은행가들이 비밀리에 후원했던 많은 급진적 비밀결사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의 목표는 기독교에 기초한 유럽의 앙시엥레짐 타도였다.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세속인본주의와, 자유-평등을 내건 자유주의적 혁명사조의 확산으로 사양길에 접어든 전통적 토지귀족을 밀어내고 국제적인 연결망을 구축한 유태인 금융재벌들은 유럽의 신흥 지배계급으로 부상했다. 프랑스대혁명은 그 신호탄이었다.    

 

 

 

 

Benjamin Disraeli  유태인 최초 영국수상


"당신은 고리타분하고 틀에 박힌 영국 대학의 샛님들이 고대의 파라오들과 느부갓네살, 로마, 그리고 중세시대를 잇달아 농락했던 사람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수백년 동안의 멸시와 천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대인의 두뇌는 유럽의 만사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소... 나는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유대인의 지성을 말하는 것이오... 이제것 유럽에서 일었던 신흥 사조 운동들 중에 유대인들이 주도하지 않은 것은 없었소. 최초의 제주이트는 유대인이었고 지금 서유럽을 경각에 빠뜨린 저 러시아의 기묘한 외교정책도 유대인들이 꾸미고 시행하는 것이라오. 또한 영국에는 거의 알려진바 없지만 지금 독일에서 잉태되고 있는 저 막강한 혁명, 아니 두 번째의 종교개혁운동이라할 만한 이 혁명도 독일의 학계를 점령한 유대인들에 의해 계획되고 있는 것이오." (Coningsby, 1844)

 

“지난번 유럽에서 불길처럼 퍼져나갔던 그 파괴적인 사상(맑시즘, 1848혁명)에서도 유대인들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모든 전통과 관습, 귀족계층, 그리고 종교와 사유재산에 대한 반란이다. 기독교의 절멸과 만인의 평등, 그리고 사유재산의 폐지를 부르짖는 비밀결사들은 혁명정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들 모든 조직의 최상부에는 유대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신의 선민은 무신론자들과 힘을 모으고, 부를 축적하는데 비상한 재주를 지닌 자들은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는다. 신에게 선택받은 이 기묘한 민족은 또한 유럽의 가장 저급한 부류와 기층민 계급을 쓰다듬는다. 왜인가? 그들은 신의 선민을 멸시천대하는 저 배은망덕한 기독교 문명을 말살하기 위함이다.” (Lord George Bentinck, a Political Biography, 1852)

 

 

(Zionism과 국제사회주의 이론의 선구자 유태인 Moses Hess, 그랜드 오리엔트 프리메이슨)

 

클레멘스 폰 메르테르니히  오스트리아 재상
“독일에서 유태인은 혼란과 무질서를 선동하는 주된 불순분자들이며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들이다. 고대의 원한을 머리와 가슴에 품은채 그들은 언론인, 문인, 철학자, 지식인, 선동가, 출판가, 그리고 은행가로 활동하고 있다. 언젠가 이들은 독일에 재앙을 불러 올 것이다... 아마도 그들 스스로에 대한 더한 재앙과 함께.” (Pierre F. Rougeyron, Avenir de l'Eglise catholique selon le Plan Divin)

 

 

 

 

 

 

 

 

 

(헤스의 제자 칼 맑스, 유대교 랍비의 손자)

 

Count von Beust  오스트리아 정치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한 유태인이 있었는데 그는 허영심에서인지 1848년 혁명을 즈음하여 그가 몸담고 있었던 비밀결사의 비밀을 자랑삼아 내게 귀뜸해 주었다. 내용인즉 이제 곧 유럽에서 대대적인 혁명이 일어나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그런 얘기를 한지 한 열흘 뒤 독일 각지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터지기 시작했다. 요즘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 등등을 운운하는 거의 모든 운동들의 배후에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의 유태인들이 버티고 있다.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이들은 유럽의 수많은 비밀결사들에게 지령을 내린다. 지금 우리의 발 밑에는 수천개의 지뢰가 깔려있다. 그리고 이 지뢰를 설치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유태인이다.” (Memoirs of Friedrich Ferdinand Count von Beust, 1887)

 

 

(페르디난드 라쌀 로센, 유태인 - 독일 사민당 창설)

 

 

Henri Gougenot des Mousseaux  프랑스 쉬발리에


“모든 이단종파, 영지학, 밀교들, 비밀결사들은 태양과 별들, 그리고 그 별들을 지배하는 정령들과 고대 페르시아의 신관들이 아리만(Ahriman)교로 불렀던 그 악마적인 교리들을 숭배한다. 이들은 가장 추잡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모든 욕망을 신성 시한다... 

 

칼데아적 카발리즘의 최고 현자들이 행했던 절대적인 독재는 중세 산상의 노인과 그의 암살단에 의해 재현되었으며 그후 이들의 카발라적 세계관과 윤리체계는 프리메이슨의 실질적 군주들인 유대교의 현자들을 지배해 왔다... 

 

신앙을 상실한 기독교도들은 유대군주들의 하수인이 된다. 이들은 세상에 ‘진보’를 가져온다는 미명하에 유대인의 이 음험하고 사악한 음모의 주구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불신자들의 아지트가 된 비밀결사에 가담해 그들의 수뇌부에 있는 현자들의 가르침대로 세속 인본주의(‘Annuiti Conceptis - Novus Ordo Seclorum')가 세상을 지배하는 날을 만들기 위해 일한다... 

 

그들은 우리의 얼굴에다 대고 그들의 이런 계획을 말하지만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날 느긋한 저녁의 평화를 박살내는 위기가 찾아들 것이다. 카발라의 사탄적 교리를 숭배하는 오컬트결사들의 계획, 즉 폭력으로 기독교 문명을 뒤엎겠다는 마각이 엄청난 재난의 모습으로 코 앞에 다가왔을 때, 오로지 그때가서야 사람들은 그들이 그 오랜시간 동안 무관심으로 외면해 왔던 이 거대한 음모와 대면하게 될 것이다.

 

“이 시대를 규정하는 모든 反기독교적인 운동들에는 유대인의 이름이 봉인되어있다. 세상에서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인 민족이기에 인류의 통합을 부르짓는 유대인은 그들의 전매특허인 ‘libre-pensaee(자유로운 사유)'를 무기로 그들의 전세계적인 승리로 실현될 거라는 ’메시아적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 시대의 도래를 눈 앞에 둔 그들은 이의 성공요인을 18세기 철학자들이 확산시켰던 계몽주의 사조에 부여한다. 

 

그들은 대게 무신론자였거나 카발리스트들이었고 그들의 작업은 이 땅을 세속화하기 위한 토대를 다졌다... 인류 통합이라는 유대인의 메시아주의적 명제는 만국이스라엘협회, 세계프리메이슨연대와 이들의 연계조직으로 보다 근래에 설립된 세계종교연합,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느끼는 인사들을 위한 조직인 Ligue-universelle de l'enseignement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거대한 프리메이슨 연대의 베일에 가려진 진정한 군주들은 모두 유대인으로 이들이 겉에 내세우는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들과 이들을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유대인들은 카발리스트 써클의 가장 급진적이며 과격한 유대교도들이다. 초급 프리메이슨들은 이 엘리트들의 존재조차 모르며 고급단원이라해도 이들의 가명(noms de guerre)외에는 그들의 실체에 대해 알지 못한다. 끔찍한 위협과 가차없는 보복으로 비밀을 유지하는 프리메이슨의 이 유대인 엘리트들은 카발라적 비의의 힘을 빌어 그들이 목표한 바를 성취한다... 이 유대인들이야말로 혁명의 도안자요 건축가요 기술자들인 것이다.” (Le Juif, la Judaisme, et la Judaisation des Peuples Chretiens, 1869)

 

 

프란츠 리스트  헝가리 작곡가


“유럽국가들에 유대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많은 사회악을 수반한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계속 돈을 독점하고 있는 유대인은 자신의 지갑속의 돈을 풀거나 거둬들임으로서 국가의 목줄을 죄었다놨다 한다. 이는 실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과 다름이 없다. 과거의 소규모 수공업과 상업은 날로 확장하는 산업과 은행들간의 거대한 액수가 오가는 괴물적인 몸집의 금융업으로 대체되었으며 이 와중에서 유대인은 현기증이 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세상의 절대군주가 되었다. 

 

그들이 획득한 모든 근대적 자유와 시민적 권리를 무기로 유대인은 모든 기독교적 진리와 가치관을 공격하며 그들이 소유한 언론을 무기로 사회의 기반을 파괴한다... 그들은 확립된 기존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종류의 비밀결사에 가담한다. 그들은 왕정과 교회, 종교적 규범, 그리고 法治를 차례로 붕괴시키려는 모든 지하조직과 이들이 일으키는 소요의 뿌리에 있다. 

 

모든 기독교 문명의 善함과 아름다움이 혁명의 무저갱을 통해 부정되고 의구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은 그들에겐 무척이나 재미있는 일이다. 설사 혁명의 혼란 속에서 수백만을 도둑맞고 그들의 저택이 불타버린다해도 저들 유대인들은 잃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은 라피트街(Rue Lafitte)의 파괴는 파리가 무너지는 것과 똑같다는 관념에 코웃음을 친다. 

 

석유는 그들의 매부리코엔 향내음이며 다이너마이트의 폭음은 그들의 귀엔 감미로운 음악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 누가 그들로부터 토라와 탈무드를 앗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모든 사회혼란의 배후에 있으며 역병처럼 번지고 있는 부도덕의 근원에 있다... 그들은 신앙과 윤리를 파괴하는 흉기와 탄환을 은밀하게 유통시킨다. 그들은 적절한 양으로 가미된 방종과 부도덕한 풍조에는 그 어떤 사회도 저항할 수 없으며 이로인해 인간의 知性은 총체적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을 용납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결국 이 유대인들을 모조리 추방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날이 올 것이다. 이들을 용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삶과 죽음, 건강한 삶과 만성적인 질환, 그리고 평화속의 안정과 끊임없는 사회혼란 중 그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Die Israeliten)

 

 

Bernard Lazare  유태인 언론인 (佛)


“유대인에 대한 시공을 초월하는 이 반감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왜 유대인은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부터, 페르시아와 아랍, 그리고 투르크와 기독교국가들에서까지 번번히 증오와 천대의 대상이 되어왔을까? 그것은 유대인은 융화가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변함이 없다... 

 

왜 유대인은 융화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이방인은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양립할 수도 없는, 그들만의 교조적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와 율법을 유대인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택함을 받았으며 그들이 결국에는 세상을 지배하게 될거라는 믿음은 유대인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심어주었고 그로인해 유대인은 비유대인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종교적인 신앙에 민족주의적인 요소까지 가미되었을 때 비유대인에 대한 시각에는 증오심까지 보태지게 되었다... 

 

1830년을 시발점으로 한 제2차 유럽혁명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첫번째 혁명기 때보다 더욱 열정적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에서 유대인은 평등한 민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볼때 유대인은 혁명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나 기질적인 차이로 일선의 혁명가로 활약하지 못했던 유대인도 마음속으로는 혁명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들의 승리는 자유주의(liberalism)의 승리와 직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돈과 시간, 열정과 능력을 유럽의 근대혁명에 쏟아부었다... 

 

그 기간동안 유대민족의 금융가, 산업재벌, 언론인, 시인, 작가, 급진적 선동가들은 한 목표를 향해 발을 맞추었다... 그들은 ‘젊은독일(Young Germnay)'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폭력혁명을 주도했던 프리메이슨 롯지들을 비롯하여 카르보나리아(Carbonaria), 로마의 Haute-Vente 등의 비밀결사들의 대다수 멤버들 역시 유대인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탈리아 모든 곳에서 혁명을 이끌었다... 

 

오늘날 유대인은 이 시대의 양극에 위치해 있다. 유대인은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정점에 있는 동시에 또한 거대자본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세력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로스차일드가 맑스와 라쌀의 안티테제임과 동시에 자본가는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조력자의 손을 발견하며 전 세계를 훑는 주식투기꾼들의 냉혹한 눈초리는 국제적 프롤레타리아들의 혁명운동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칼 맑스는 분명, 내세의 구원을 거부하고 오로지 현세의 지상낙원을 꿈꾸는, 태고의 유물론적 세계관에 젖어있는 탈무드주의자였으며 그도 이런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제1차 인터내셔널의 창설을 주도한 맑스는 또한 1864년 런던에서 노동자의회를 조직했다. 이 단체의 대다수 멤버들은 유대인이었으며 중앙위원회에는 독일과 러시아 대표 비서 칼 맑스, 덴마크 비서 제임스 코헨(James Cohen)이 포진하고 있었다. 

 

인터내셔널의 유대인 멤버들은 파리꼬뮨사태에 대거 가담했으며 이곳에서 많은 수의 그들의 동족과 상면했다. 유대인들은 사회주의 성향의 정당 창당과 운영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에서는 맑스와 라쌀을, 오스트리아에서는 아론 리버만(Aaron Libermann)과 애들러(Adler), 그리고 루마니아에서는 도브로얀 게리아(Dobrojan Gherea)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유대인들은 괄목할만 한다. 게토의 티를 아직 벗지도 못한 나이어린 유대인 학생들은 러시아에서 허무주의적 프로파간다를 확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학생들을 포함한 이들은 해방이란 대의를 위해 그들의 생업을 포기했으며 이들 가운데서도 의사와 변호사 등의 유대계 청년 지식인들은 반체제운동으로 망명중인 노동운동가들과 함께 런던과 뉴욕에서 노동자단체들을 조직하여 사회주의 및 무정부주의적 선전선동을 전개했다... 

 

유대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비난은 과히 틀리지 않다. 실로 유대인에겐 혁명적인 기질이 있으며 그가 의식을 하든 말든 그들은 모든 혁명의 근원에 있다... 유럽이 유대인에게 평등한 권리를 선사했을때 그들 국가, 아니 그 기독교 국가들은 전복과 파괴의 표적이 되었음을 알아야한다... 유대인은 단지 기독교의 절멸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유대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공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신앙을 조장한다. 그들이 조성한 영적인 황무지 위에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을 강요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역사적인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 과업이란 그리스도의 종교를 말살하는 것이다.” (L'Antisemitisme, 1887)

 

 

 

(러시아 정교인들의 성찬예식을 조롱하는 볼셰비키 선전지)

 

 

Wilhelm Marr  독일 저술가


“러시아는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 문명 최후의 방어선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들에게 굴복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불굴의 의지가 담긴 유대인의 책략은 결국 인류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대혁명으로 러시아를 무너뜨릴 것이다. 러시아를 전복하는데 성공한다면 유대인은 그 어느 나라를 겁낼 필요도 없게 된다. 우리의 독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러시아의 고위직을 독식할 것이며 러시아를 무기로 서구문명의 말살이란 과업에 나설 것이다.” (Der Sieg des Judentums uber das Germanentum, 1879)

 

 

 

Alexander III  러시아 황제 (1881-1894)


“그동안 우리 정부는 유대인들과 제국백성들 간의 관계를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봐온 바, 부당한 상행위를 통해 유대인들이 이 땅의 기독교인 백성들을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별적인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 유대인들은 한 집단으로서 이 나라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하는 대신 그들의 간악함을 무기로 특히 빈곤한 민중들의 재산을 약탈해왔고 그들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은 끊이질 않았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 하에 정부는 민중에 대한 유대인들의 억압적이고 부도덕한 행태를 근절하고자 엄격한 조치들을 발동했던 것인데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체제를 전복하고자 하는 불순한 모의를 주동함으로서 정부에 맞서고 있다.” (Imperial Edict of September 3, 1882; Elizabeth Latimer, Russia and Turkey in the 19th Century)

 

1881년 3월 1일, 알렉산드르3세의 아버지 알렉산드르2세는 맑스주의자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주동자 5인방 Grinevetski, Rysakov, Mikhailov, Emelianov, Helfmann은 공산주의혁명 지하조직이었던 Narodnaya Volya(민중의 의지)의 멤버들로서 다섯 사람 모두 유대인이었다. 사상 최초의 정치 테러단체라 할 수 있는 나로드냐 볼야는 역시 유대인인 Mark Natanson이 구축한 맑스주의적 지하조직 ‘랜드앤프리덤(Land and Freedom, 토지와 자유)의 하위 무장조직이었다. 나탄손은 미국의 유명한 유대인 무정부주의자 알렉산더 버크만의 숙부이기도 하다. 특기하자면, 레닌의 형은 황제 암살사건과 관련되어 처형되었다.

 

 

 

유대인 공산주의자 및 혁명분자들이 주도한 요인암살 사례들을 간략히 나열하면:

 

1879년 - 우크라이나 하르코프 지사 쿠로파트킨(Kropotkin) 암살 (유명한 무정부의자 쿠로파트킨의 사촌)
1881년 - 알렉산드르 2세 암살
1892년 - 미국의 유대인 여류 무정부주의자 에마 골드만의 주도하에 유대인 추종자들이 자선사업가

            Henry Clay Frick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침. 암살을 실제로 결행한 인물은 알렉산더 버크만
1901년 - 미국 맥킨리(William McKinley) 대통령 암살. 범인은 에마 골드만의 추종자로 폴란드 출신

            유대인인 레온 코글로즈
1901년 - 러시아 교육부 장관 보골레포프(Bogolepov) 암살
1902년 - 러시아 내무부 장관 스피야긴(Sipyagin) 암살
1903년 - 우파(Ufa) 지사 보그다노비치(Bogdanovich) 암살
1903년 - 러시아 내무부 장관 플레프(Plehve) 암살
1905년 - 니콜라이2세의 숙부 세르게이 대공(Grand Duke Sergei) 암살
1906년 - 러시아군 장성 두브라소프(Dubrassov) 암살
1911년 - 러시아 수상 스톨리핀(Stolypin) 암살

1918년 - 모스크바주재 독일대사 미르바하 백작(Count Mirbach) 암살
1918년 - 볼셰비키 지도자 유대인 스베들로프(Sverdlov)의 지시하에 니콜라이 2세와 전 가족이 살해됨

 

 

 

Robert Michels  독일 정치학자


"사회주의 정당과 급진혁명 정당들의 지도부에 유대인이 많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유대인은 그들 민족의 특성상 타고난 대중의 지도자이고 조직자이며 선동가이다. 그 특성들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의 세속적인 광신주의이다. 유대인의 이러한 성향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며 마치 전염병처럼 민중에게 확산된다. 그 다음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신의 선민이라는 그들만의 자부심이다. 

 

유대인은 언어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매우 민첩하다. 또한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거의 무제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대한 뿌리칠 수 없는 욕구이다. 지난 75년간 유럽을 뒤흔든 새로운 좌파적 정치조류(潮流)들 가운데 유대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적응력과 지적인 활력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정당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질적, 양적인 비중을 설명할 수 없다. 그 어느 나라보다 독일의 노동운동계에서 유대인은 괄목할만한 영향을 끼쳤다. 먼저 유대인 페르디난드 라쌀(Ferdinand Lassalle)과 칼 맑스(Karl Marx)를 들 수 있고 이들과 동시대 인물이었던 모세스 헤스(Moses Hess)도 빼놓을 수 없다. 기존체제의 유명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요한 자코비(Johann Jacoby)역시 유대인이었다. 비슷한 경우로,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거상(巨商)의 아들인 칼 호슈베르크(Karl Hochberg)는 독일에선 처음으로 사회주의 저널을 발행했다. 독일 사회주의자 의회의 의장 폴 싱어(Paul Singer)도 유대인이었다... 

 

또한 많은 유대인들이 다양한 직책에서 사회주의 정당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에두아르드 번스타인(Eduard Bernstein), 하인리히 브라운(Heinrich Braun), 야콥 스턴(Jakob Stern), 시몬 카첸스타인(Simon Katzenstein), 그리고 브루노 숀랑크(Bruno Schonlank)는 사회주의 이론가로서 당의 노선을 뒷받침했으며 그라드나워(Gradnauer), 아이스너(Eisner), 그리고 조셉 블로흐(Josef Bloch)는 언론인으로서 사회주의 일간지 Socialistische Monatsheft 를 제작했다. 또한 휴고 하인만(Hugo Heinmann)은 지방정부 정치인으로서, 레오 아론스(Leo Arons)는 선거와 관련된 영역에서 사회주의자로서 큰 역할을 했으며 루드비히 프랑크(Ludwig Frank)는 사회주의 청소년 조직을 창설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에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핵심적이다. 빅터 애들러(Victor Adler), 엘렌보겐(Ellenbogen), 프리츠 아우스테를리츠(Fritz Austerlitz), 맥스 애들러(Max Adler), F. 헤르츠(F. Hertz), 테레사 슐레진저 에크스타인(Therese Schlesinger-Eckstein), 다이아몬드 박사(Dr. Diamond), 아돌프 브라운(Adolf Braun) 등의 이름이 곧 떠오른다... 미국으로 건너가 보면 유대인 모리스 힐퀴트(Morris Hillquitt), A. M. 사이몬스(A.M. Simons), M. 운터만(M. Untermann)이 있고 네덜란드에는 다이아몬드 노조를 이끌고 있는 헨리 폴락(Henri Polak)과 독립적인 맑스주의자 D. J. 윈쿠프(D. J. Wijnkoop), 그리고 M. 멘델스(M. Mendels)가 눈에 띈다. 이탈리아에는 엘리아 무사티(Elia Musatti), 클라우디오 트레베스(Claudio Treves), G. E. 모딜리아니(G. E. Modigliani), 리카르도(Riccardo), 그리고 아돌포 모밀리아노(Adolfo Momigliano), R. L. 포아(R. L. Foa), 과학자인 체사레 롬브로소(Cesare Lombroso) 등을 유명한 사회주의자들로 꼽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유대인이 덜 드러나보이는 프랑스에서도 폴 루이(Paul Louis), 에드가 밀하우드(Edgar Milhaud), 그리고 1904년 l'Humanite 의 주주들이 눈길을 끈다. 1879년에 있었던 프랑스의 사회주의 정당 Parti Ouvrier 의 창당도 강베타 정부에서 알제리 총독을 지냈던 아돌프 크레미유의 자금지원으로 가능했다. 

 

또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단의 면면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러시아와 루마니아, 헝가리와 폴란드의 노동자 정당들 역시 유대인들의 수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러시아로부터는 많은 수의 유대계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외국의 사회주의 정당들로 수출된다.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와 파르부스(Parvus)로 알려진 이스라엘 헬판트 박사(Dr. Israel Helphant)는 독일로, 찰스 라파포트(Charles Rappoport)는 프랑스로, 아나 쿨리쇼프(Anna Kulishoff)와 안젤리카 발라바노프(Angelica Balabanoff)는 이탈리아로, 라익스베르크 형제는 스위스로, M. 비어(M. Beer)와 테어도어 롯슈타인(Theodor Rothstein)은 영국으로 활동의 무대를 옮겼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유명한 무정부주의자 구스타프 랜다우어(Gustav Landauer), 지그프리드 나흐트(Siegfried Nacht), 피에르 라무스(Pierre Ramus), 그리고 세나 호즈(Senna Hoj)를 언급함으로서 이 긴 명단의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유대인이 사회주의 운동에서 이러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독일을 포함한 동부유럽 유대인들이 처해 있었던 그들만의 독특한 딜레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서 제도적인 유대인 해방은 그들의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인 고립을 해소하지 못했다. 독일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과 반감은 지배적이며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은 과거에 비해 별로 달라진게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대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유대인의 반란적인 기질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불의에 항거해야 한다는 감정과 맞물리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체계화된 이론을 통해 이들이 인식하는 일반적인 사회악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발전하게 되고 혁명가들의 의지는 점차 세상을 개량하겠다는 더 한층 거창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된다. 많은 재산을 가졌다하더라도 최소한 동부유럽에서 유대인은 기존의 정치, 경제, 문화적 시스템이 비유대인들에게 부여하는 혜택과 특권들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며 사회의 주류로부터 거부당하는 한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비유대인의 사회는 유대인을 신뢰하지 않고 이들 사회의 지배적인 정서 또한 유대인에게 우호적이 않다... 

 

“반유대적 사회주의”는 1870년 공식적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베를린 대학의 박사출신이었던 오이겐 되링(Eugen Duhring)은 맑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유대”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게르만(German)" 사회주의를 선포했다. 애국적인 동기에서 이 운동을 시작한 되링은 맑스주의적 사회주의는 유대계 자본과 그들을 위해 일하는 하수인들의 이익을 위해 이들이 지배할 국가에 전 국민이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875년에 이르러 되링은 일단의 베를린 사회주의자 서클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요한 모스트(Johann Most)는 이 모임의 멤버였다. 그러나 이 그룹의 영향력은 되링과 “유대인 맑스”의 영적인 형제라는 엥겔스 사이에서 일어났던 그 유명한 논쟁을 극복하지 못했다. 사회주의 성향의 대중에 대한 되링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감소하여 1878년에 이르러 그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1894년에는 사회주의에 반유대적인 성격을 부여하려는 또 한 차례의 시도가 있었다.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의 사회주의자로 Braunschweiger Volksfreund의 언론인이었던 리하르트 칼베르(Richard Calwer)는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힐난했다, “괜찮은 유대인 사회주의 이론가가 한 명 당 최소한 쓰레기 같은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이 여섯 명은 된다. 이들이 가진 장점이라고는 특출난 자기주장 능력과 마르지 않는 언어의 샘이다. 사회주의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이.” (Political Parties: a Sociological Study of the Oligarchical Tendencies of Modern Democracy, 1903)

 

 

Henry Wickham Steed  영국 더 타임스 편집장


“자신들의 지적인 우월함에 대한 자신감으로 유대인은 항상 “자유”의 기수였으며 여러 차원의 속박을 견디지 못해하는 그들의 성향은 그들의 정치적 급진주의를 낳게 했다. 오늘날 “자유주의(Liberalism)"라고 불리는 정치, 경제적 교리들은 대부분 유대인, 비밀 유대인(crypto-Jews), 또는 親유대적 지식인들에 의해 집적된 사상체계이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독일의 “진보” 정당들을 보면 대부분 유대계 정치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이들을 뒷받침하는 언론과 학계에서도 유대인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한 맨체스터학파를 옹호한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의 지향점은 쿤베르거(Kurnberger)가 규정한 “닭장에 들어간,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여우”였다. 급진파(急進派)와 마찬가지로 사민주의적 일면이 있다는 이유로 비스마르크가 반대했던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는 강한 반유대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뤼거(Lueger)의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 역시 반유대주의적이었고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이윤추구가 야기할 사회적 병폐들로부터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고자 했다. 최소한 독일과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와 사민주의는 유대인들이 이끌어 왔고 유대적인 교조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왔다. 

 

사회주의자들의 성서인 'Das Kapital'을 쓴 칼 맑스는 유대인이었고 그의 라이벌로 독일 사민당을 창설한 라쌀 역시 유대인이었다. 좀더 근래에 들어서는 싱어(Singer), 번스타인(Bernstein), 아론스(Arons), 피셔(Fischer), 그리고 슈타트하겐(Stadthagen)과 같은 유대인 사회주의자들이 떠오른다. 오늘날 독일 제국의회에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사회주의 정당들의 과반수 이상은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이념의 확산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수행한 프로파간다의 결과였다. 오스트리아 사회당을 창설한 인물은 유대인 빅터 애들러 박사(Dr. Victor Adler)였고 그의 추종자들 역시 대부분 유대인들이었다. 헝가리에서도 유대인들이 사회주의 정당을 만들었으며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와같은 현상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유대인의 민첩한 知性과 그들의 민족성에 뿌리박혀 있는, 상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미래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맑스가 예언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있는 그들은 민족주의 세력 對 금융/산업 복합체 간의 우위는 조직화 된 민중의 캐스팅 보트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국가와 사회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각종 사회주의 단체들과 조직을 통해 일반대중을 그들의 뜻대로 통제할 필요성을 절감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사회주의는 또한 경제적 차원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해독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각종 경제비리등 유대인의 반사회적인 이윤추구 행위들과 그 파괴적인 본질에 대한 반유대주의자들과 그들 자신의 비유대계 추종자들의 비판과 관련하여 독일의 유대인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대표적인 변명은 이런 것이다, ‘물론 유대인이 자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대표자들이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병폐는 근원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기인하는 것일뿐 유대인과는 관계가 없다. 자본주의적인 사회악을 제거하는 유일한 길은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프롤레타리아의 조직화와 계급투쟁이며 인터내셔널 혁명적 사민주의에 입각한 사회의 재구축 뿐이다.’... 그들과 별 교류가 없어 유대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것이 비유대인들의 세상과는 얼마나 본질적으로 상반된 것인지를, 또한 얼마나 예리하게 유대인 문제가 현대문명에 작용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The Hapsburg Monarchy, 1919)

 

 

(멘셰비키 지도자 마르토프, 유태인)

 

 

 

(유태인 골드만 가족에서 태어나 1/4 유대계인 울리아노프 가족에 입적된 레닌)

 

 

Vlacheslav Plehve  러시아 내무상


“서부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분자들을 보면 90퍼센트가 유대인들이오. 그리고 러시아 전체적으로는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소. 정부는 지금 러시아에서 진행중인 유대인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경고하건데, 만약 여러분의 자제들이 혁명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여러분이 막지 않는다면 정부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유대인이 이 나라를 떠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들 것이오!” (In a speech to a Jewish delegation in Odessa in 1903: Michael Lynch,Reactions & Revolutions: Russia 1881-1924)

 

1903년 7월 28일, Plehve는 공산혁명가 Egor Sazonov가 던진 폭탄에 살해되었다. 명령을 내린 유대인 에브노 아제프(Evno Azef)는 사회주의혁명당 휘하 테러조직의 수괴였다.

 

 

 

 

 

(아제프)

 

 

Vladimir Lamsdorf  러시아 외무상


“1905년 露日전쟁 직후의 사태와 지난 10월 더 한층 극렬하게 전개된 대규모 파업과 모스크바를 비롯한 각 지역에서 잇달았던 무장반란 사태를 볼 때 러시아의 혁명운동은 이 나라의 내부적인 사회, 경제, 정치적 요인과 더불어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혁명세력이 국외에서 반입된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과 이들이 상당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장반란은 말할 것도 없이 반정부 운동과 파업을 주동하는 단체들을 운영하는데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적한 바 어느 외국정부가 이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국외에 존재하는 모종의 자본가들의 모임이 우리나라의 혁명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공산화를 기도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반정부 세력의 다민족적인 성격으로, 혁명운동은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폴란드 등의 여러 소수민족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제국정부의 전복을 모의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유대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유대인들은 수괴나 간부의 위치에서 비유대계 반정부단체들을 이끌고 있으며 서부지역의 유대인 분드와 같이 그들만의 독자적인 조직을 통해 체제전복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그 어느 소수민족보다 과격하고 급진적인 요소입니다. 혁명운동에 있어 유대인들의 이러한 주도적인 위치을 감안할 때 외국의 유대인 자본가 서클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단정해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와관련하여 본다면 러시아의 혁명운동은 외국으로부터의 지원을 받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외국으로부터 조종되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 폭력성에 있어 유례가 없었던 지난 10월의 총파업사태 당시 러시아 정부는 마침 로스차일드 계열의 금융사들을 배제한채 차관도입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중이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를 입수한 유대인 자본가와 은행가들은 의도적으로 루블을 대량매도하여 외환시장에서 공황사태를 야기함으로서 러시아 정부의 차관도입을 무산시키는 한편 급락하는 러시아 환율에 대한 투기행위로 막대한 이윤을 남겼습니다... 

 

이와 더불어 이미 러시아 언론에 보도된 일련의 사례들은 이 나라의 혁명운동이 국외의 유대인 단체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정보국 요원들이 확인했듯이 무기반입의 근원지는 미국이며 영국을 거쳐 이 나라에 들어오고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언론은 이미 1905년 6월, 러시아의 유대계 맑스주의적 테러단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 목표임을 공공연하게 표방한 유대인 자본가들의 자금모금 위원회가 결성되었다는 사실을 보도한바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에 대한 비방과 모략으로 잘 알려진 유대인 출판사업가 루시엥 울프는 이 위원회의 주요 인물입니다. 또한 이 위원회와는 별도로 영국에서는 로스차일드卿의 주도하에 또 다른 유대계 자본가들의 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그들은 포그롬으로 인한 유대인 피해자들을 돕는다는 명분아래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기금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역시 그 의도가 불분명한 러시아 유대인 원조단체들이 현지 유대계 유력인사들에 의해 조직되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Secret Report to Emperor Nicholas II, January 3, 1906)

 

 

러시아 혁명에 자금을 제공한 주요 유태인 금융가들 

 

 

(제3대 로스차일드 남작,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 미국 에이젼트 야콥 쉬프)

 

 

(폴 워버그, 미국 FRB 창설)

 

 

(워버그 삼형제, 폴, 맥스 - 1차대전시 독일 정보국 총수, 봉인된 기차에 레닌을 러시아로... -, 필릭스 워버그; 책 저자 유태인 체르노프 - "독일과 미국 발전에 기여한 유태인 영웅들!") 

 

 

(존 D. 록펠러, 모노폴리의 대가, 세파르디 crypto-jew)

 

 

(손자 데이빗 록펠러, 뉴욕 FRB회장, 체이스맨하탄 회장; CFR 회장; 유태인 석유재벌 아만드 해머와 함께 소련에 대한 막후 영향력으로 유명; 유명한 家臣, 헨리 키신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매들린 올브라이트, 조지 H.W. 부시, 버거, 홀브룩)

 

 

("레닌이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었다", Occidental Petroleum 회장/국제공산주의자 아만드 해머,  브네이브리스 프리메이슨; 알 고어 1세, 2세 소유)

 

 * * * 

 

Boris Brasol  러시아 역사가


“1916년 여름 러시아 합참본부는 뉴욕에서 임무를 수행중인 요원으로부터 비밀보고서를 받았다. 1916년 2월15일에 작성된 이 보고서의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러시아를 탈출하여 미국에 망명중인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다시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이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볼 때 모종의 중대한 사태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1916년 12월14일, 뉴욕시의 이스트사이드(Lower East Side, 유태인 밀집지역)에서는 러시아에서 제2차 폭력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첫 번째 비밀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이 회의에는 모두 62인의 대표가 참석했는데 이들 가운데 50명은 1905년 혁명의 베테랑들이었으며 나머지는 새로이 가담한 자들입니다. 이 대표단의 대다수는 유대인들로서 이들의 상당수는 의사와 변호사, 언론인 등의 전문직업 지식인 계층이며 나머지는 직업적인 사회주의 혁명가들입니다... 

 

회의의 초점은 전적으로 러시아에서 대대적인 혁명을 일으킬 수단을 강구하는데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이야말로 혁명을 일으킬 최고의 적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러시아 현지의 사정이 혁명가들에겐 매우 유리한 상황이며 즉각적인 무장봉기를 위한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는 내용의, 러시아에서 건너온 편지가 낭독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유일한 고민거리는 재정적인 문제였으나 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대표단의 특정인사들은 러시아의 혁명운동에 우호적이며 러시아 민중을 해방시키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충분한 자금을 제공할 계획이니 재정에 관한 문제는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야콥 쉬프라는 이름이 거듭 언급되었습니다.’” (The World at the Cross Roads, Gordon Press Publishers) 

 

Christina Stoddard  미국 역사가


“유대인 분드(Jewish Bund)는 1897년 유대인 노동자총연맹으로 창설되었다. 분드는 프롤레타리아 계층 유대인들의 정치, 경제적인 단체였으며 그들은 이디시어(Yiddish)를 사용하여 선전선동 활동을 전개했다. 분드는 ‘자유’와 ‘해방’을 외친 러시아의 여러 조직과 단체들의 모델이 되었으며 사실상 러시아 혁명의 선봉이었다. 광대한 제국에 존재하는 정치결사나 조직들 가운데 유대인이 이끌거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단체는 없었다. 사민파(社民派)와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들, 그리고 폴란드 사회당의 수뇌부에는 예외없이 유대인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많은 정치적 비밀결사들과 오컬트조직들에 대한 방대한 사료를 연구한 바, 한가지 뚜렷한 그림이 드러난다. 모든 증거들은 한결같이 이들 단체와 조직들을 배후에서 사주하고 조종하는 카발라적인 유대인 수괴들이 존재함을 가리킨다. 이들은 쓸만한 허수아비들을 내세워 기독교 신앙뿐만 아니라 서구문명의 모든 전통과 관습과 가치관을 말살하기 위한 범 세계적인 음모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통제와 공격을 위한 그들의 무기는 생명의 자기력(磁氣力)으로 生과 死를 결정하고 인간에게 빛을 비춰 해방시킨다는 불의 삼각형이다. 그러나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이를 이용하여 인간의 눈을 가리고 우민(愚民)들로 통합시켜 알려지지 않은 어떤 외계적인 통치자에게 더욱 확실하게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음험한 의도를 위해 이들은 ‘너 자신을 알라’, ‘인간도 신과 같이 될 수 있다’와 같은 태고적인 유혹으로 인간을 기만하고 덫에 빠뜨리는 것이다. 소위 ‘인간해방’을 추구한다는 일루미니즘(Illuminism)의 그 불순한 목표는 그 거대한 음모의 완성과 절대적인 제왕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서 노예화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Inquire Within: The Trail of the Serpent)

 

 

(유태인 혁명분자 게르슈닌)

 

 

NATIONAL GEOGRAPHIC - William E. Curtis, The Revolution in Russia, May, 1907 


“맑스주의적 체제전복 운동의 주동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이며 가장 강력한 혁명단체는 유대인 분드다. 러시아 정부는 광활한 이 제국의 그 어느 민족보다도 유대인에게 시달려왔다. 요인암살, 파괴공작 등 테러행위의 주범은 항상 유대인이며 이들 가운데서 제국에 진심으로 충성심을 가진 자는 거의 없다. 

 

제국을 마비상태에 빠뜨렸으며 황제로 하여금 입헌군주제와 의회를 승인하게 만들었던 총파업사태 역시 유대인 크루스탈레프(Krustaleff)가 명령을 내리고 조종한 것이었다. 노동자의회 의장인 그는 약관 30세에 불과한 나이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투옥된 후에도 그는 3주가 못되어 수형소 직원들의 파업을 주동했다... 발트해 연안지방들에서 무장반란을 조직하고 주도한 막심(Maxim)은 특출난 수완을 소유한 유대인이다. 지난 가을 미국을 방문한 그는 강연회를 열고 러시아의 혁명운동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인 바 있으나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종적을 감추었는데 그의 행방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혁명 테러단의 리더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몽고 국경지대의 은광(銀鑛)에서 종신강제노동형을 선고받고 수형중이던 게르슈닌(Gerschunin)은 얼마전 물통에 몸을 숨겨 수형지를 탈출했는데 현재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으로 약관 27세의 나이다. 필자는 지금 여기서 혁명주동자 100인의 이름을 나열할 수 있는데 확실한 것 하나는 이들 모두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다. 

 

신문기사를 보면 언제 어디서 발생한 암살이나 테러사건이든 범인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05년 무장폭동 이후 러시아를 가장 떠들썩 하게 한 사건은 지난 10월 27일에 일어났던 유대인 맑스주의자들의 강도사건이었다. 생빼째르부르크의 중심가인 카잔성당 앞에서 네 명의 유대인이 재무부의 현금마차를 습격하여 $270,000를 탈취해 달아났다. 네 명은 강탈한 돈을 한 여자에게 맡겼는데 여자는 그 직후 자취를 감추었고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네 명은 얼마후 체포되어 마땅한 벌을 받았다. 

 

또한 11월 8일에는 폴란드의 라고프(Ragow)에 있는 재무부 산하의 기관에 일단의 유대인 혁명분자들이 침입하여 $850,000를 훔쳐 달아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부류의 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은 열이면 열, 유대인이다. 흔히 포그롬으로 불리는 유대인 박해는 실상 유대인 불순분자들의 테러행위에 대한 러시아제국 민관(民官)의 보복이다.”

 

THE MACCABEAN  시온주의 일간지(뉴욕)


“러시아에서의 혁명은 유대민족의 역사를 가름할 유대인의 혁명이다. 러시아 혁명이 유대인의 혁명인 이유는 전세계의 유대인 인구중 절반이 이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짜르의 폭압적인 군주독재를 뒤엎는 것은 향후 그곳에 아직 살고 있는 유대인과 더불어 이미 러시아를 등지고 각국에 퍼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일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또한 러시아의 혁명이 유대인의 혁명인 까닭은 짜르의 제국에서 가장 열성적인 혁명가들이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November 9, 1905) 

 

조르쥬 소렐


“만약 유대인들이 정직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사회와 문화에 나름대로 기여하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갔다면 종교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유대인을 우리 조국의 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행히도 유대인 식자들은 스스로를 무슨 메시아로 착각하고 기타 유대인들은 이들의 숭고한 사명에 동참하고 성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변혁의 기수요 건축가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유대계 지식인들은 단지 이민이라는 우연으로 그들이 거처하게된 나라의 정신적 유산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음해한다. 그와같은 행태는 당연히 그 나라 국민의 정당한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유대인들의 기만적인 선전선동에 부화뇌동하는 민족은 대재앙을 맞아 마땅하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Quelques pretentions juives)

 

THE FORWARD  뉴욕 유대계 일간지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는 피로 얼룩진 지난 3년 동안의 지긋지긋한 전쟁 통에서 날아온 유일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와같은 소식으로 모든 노동자들의 가슴은 환희와 기쁨으로 터질 듯 하다. 니콜라이가 퇴출되었다. 두마(Duma, 의회)가 정권을 획득했으며 이제는 자유주의적 정부가 러시아를 통치한다. 만세!” (March 15, 1917)

 

 

(볼셰비키들에게 정권을 넘겨준 과도정부 수반 유태인 케렌스키, 그랜드 오리엔트 프리메이슨)

 

 

M. Oudendyk  駐러시아 네덜란드 대사


“지금 이곳의 사정은 너무도 위급하여 본인은 이 위협의 중대함을 영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에 알리는 것이 본인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경고하건데, 만약 러시아의 볼셰비즘을 현재의 시작단계에서 근절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의 문명이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볼셰비즘의 확산을 진압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서 지금 계속되고 있는 전쟁을 끌어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 혁명을 막아야 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볼셰비즘을 싹의 단계에서 잘라내지 않는다면 공산주의 혁명은 어떻한 형태로든 유럽과 전 세계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악한 모의는 자신들만의 목표를 위해 모든 기존질서를 파괴하려는 조국도 없는 유대인들이 주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Telegram to British Government dated September 6, 1918; A Collection of Reports on Bolshevism in Russia;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18. Russia, Published by U.S. State Dept., Vol. I, pp. 678-9; British White Paper "Russia" No. 1, April 1919." p. 6, on Bolshevism in Russia)

 

David R. Francis  駐러시아 미국대사  


“볼셰비키혁명 지도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이며 이중 90퍼센트가 외국에서 들어온 자들 입니다. 이들은 러시아나 그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애정이 없는 인터내셔널리스트들로 이들은 지금 러시아를 거점으로 전 세계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각 지역의 소비에트를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민중 사이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근접해 있는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Telegram to U.S. State Department dated May 2, 1918(#861.00/1757); Russia From the American Embassy, 1921)

 

Montgomery Schuyler  시베리아 파병 미군장교


“아마도 미국에서 이런 얘기를 큰 소리로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듯 싶습니다만, 볼셰비키혁명 운동은 처음부터 가장 교활하고 저급한 부류의 러시아 유대인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습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에서 도피생활을 한 자들로 이들은 미국 문화의 가장 천박한 일면들 만을 습득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리버티(liberty)’를 눈꼽만큼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Military intelligence report dated March 1, 1919 to Lt. Col. Barrows in Vladivostok; U.S. National Archive)

 

JEWISH CHRONICLE  런던 유대계 일간지


“볼셰비즘의 본질적인 지향점을 유념할 때, 또한 대다수의 볼셰비키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서 볼 때, 볼셰비즘의 이상향들은 많은 부분에서 유대교의 가장 핵심적인 이상향들과 일치한다.” (April 4, 1919)

 

Catherine Radziwill  로마노프 일족, 러시아 작가


“그들 중에 한 사람은 카메네프(Kamenev)란 이름의 남자였다. 후일 그의 이름은 브레스트-리토브스크 조약의 서명란에 등장하게 되는데, 어쨌든 그는 그 때 자신을 레닌과 트로츠키의 측근으로 소개했었다. 이 카메네프란 자는 또 하나의 메스꺼운 유대인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빠른 시일내에 자신의 배를 채우는게 유일한 목표인, 두 말할 나위없이 매우 영리한 짐승이었다. 그는 항상 무슨 천재지변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했다. 그래야만 러시아의 국고에 그의 탐욕스런 손을 델 수 있었을 테니까. 얼마후 루스텐베르크 대위에게서 듣자하니 독일이 러시아를 볼셰비키들에게 넘기기 위해 제공한 수백만 달러 중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 자는 카메네프였다고 한다.” (The Firebrand of Bolshevism, 1919)

 

 

(페드로그라드 소비에트 서기장 지노비에프, 유태인 실명 아펠바움)

 

 

Zinoviev - Hirsch Apfelbaum  볼셰비키 지도자


“우리는 적의 피바다 앞에서도 절대로 떨지 않으며, 그 어떤 자비나 동정심도 느낄수 없도록 우리의 가슴을 잔혹하고 강퍅하며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피바다에 잠기게 할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명도 남김없이 우리의 적들을 도륙할 것이다. 수백, 수천만이라도 상관없다. 그들을 그들이 흘린 피에 빠져죽게 만들자! 레닌과 유리츠키, 지노비에프, 그리고 볼로다르스키를 위해 부르조아지들의 피로 홍수를 만들자. 우리는 더 많은 피를 원한다! 많을수록 더욱 좋다!” ("Blood for Blood", Krasnaya Gazeta,  September 1, 1918) 

 

 

볼셰비키 혁명과 관련하여 권위를 인정받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로버트 컨퀘스트, 리처드 파이프스를 비롯, 1997년에 출간된《Le Livre Noir du Communisme(공산주의 흑서》에 따르면 1917년부터 1953년 스탈린의 사망시까지 소비에트 정권의 공포정치, 인위적 기근, 그리고 굴라그 강제노동수용소 시스템 등을 통해 목숨을 잃은 러시아인을 비롯한 기타 소수민족의 숫자는 3천만에서 5천만명으로 추정된다.

 

 

Robert Wilton  더 타임즈 러시아 특파원


"1918년 현재, 384명의 소비에트 정치국원들 가운데 두 명이 흑인, 13명이 러시아인, 15명이 동양인, 22명이 아르메니아인이며 300명 이상이 유대인들이다. 이들 300명 중에서 264명은 황제의 정부가 붕괴된 직후 미국에서 건너온 자들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무지에 호소하여 러시아를 무너뜨린 이 유대인들은 그들의 허수아비를 내세워 인류가 일찍이 목도한 적이 없는 폭정을 실현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의 볼셰비즘에는 누구도 간과할 수 없는 이방민족의 정복이란 성격이 봉인되어 있다. 유대인 스베들로프가 계획하고 명령을 내렸으며 유대인 골로셰킨, 사이로몰로토프, 사파로프, 보이코프, 그리고 유로프스키가 수행한 짜르와 그의 전 가족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학살극은 러시아 민중이 아닌, 적개심으로 가득찬 침략자들의 소행이다.” (The Last Days of the Romanovs)

 

 

(소비에트 공화국 대통령, 스베들로프)

 

 

 

 

(1920년 폴란드의 한 시사지 표지에 실린 유태인 리바 브론슈타인 - aka 레온 트로츠키)

 

 

THE TIMES

 

“러시아 혁명에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유대계 투자은행 쿤앤로엡(Kuhn & Loeb)이 독일의 유대계 은행 라이니쉬-베스트팔리안 신디케이트(Rheinisch-Westphalian Syndicate), 파리의 라자드 프레레(Lazard Freres), 그리고 페트로그라드, 도쿄, 파리의 귄즈보그(Gunzbourg) 은행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또한 이전에 언급한 무역회사들이 런던, 뉴욕, 프랑크푸르트의 슈페이어(Speyer & Co), 볼셰비키들 후원으로 널리 알려진 스톡홀름의 유대계 은행 엔야방켄(Nya Banken)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볼 때 볼셰비키 국제공산주의는 계층과 국적을 초월한 유대인들의 범세계적 정치운동이라 해석할 수 있으며 일부 특정 유대계 투자은행들은 이 운동을 조직, 확산시키는데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February 9, 1918)

 

     * * *

 

"1919년 초, 미국 육군참모부는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 공화국의 고위인사들에게 러시아 공산혁명의 준비와 집행과정에서 재정을 담당한 미국의 주요인사들의 명단을 제공했다. 이 문서에 의하면; ”1916년 2월, 우리는 러시아에서 혁명이 조직되고 있다는 정보를 최초로 입수했습니다. 러시아를 파괴하기 위한 공작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은행가는 야콥 쉬프(Jacob Schiff), 필릭스 워버그(Felix Warburg), 오토 칸(Otto Kahn), 모티머 쉬프(Mortimer Schiff), 히로노머스 하나우어(Hieronymus H. Hanauer), 구겐하임(Guggenheim), 맥스 브라이퉁(Max Breitung)으로 이들은 모두 유대인입니다.” (-7-618-6 Provided by the General Staff; 0 of the 20th Army; N. 912-S.R.2. copy; Maurice Pinnay, The Secret Force) 

 

 

 

"서방의 주요 유대계 금융가들과 마찬가지로 야콥 쉬프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자신의 개인자금 2천만 달러를 헌사했다. 그가 사망한지 1년 뒤 볼셰비키 정부는 6억 루블을 쉬프의 투자은행인 쿤앤로엡에 예치했다.” (New York Journal American, February 3, 1949; Andelman, M.S. (1974). To Eliminate the Opiate, New York-Tel Aviv: Zahavia, Ltd. 26)

 

 

George A. Simons  러시아 미국선교사

 

“우리가 듣기론 뉴욕시의 로워이스트사이드(lower east side)로부터 수백명의 선동꾼들이 트로츠키(브론슈타인)를 따라 러시아에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페트로그라드에서 만났던 이들 중 일부는 내가 미국인임을 알게되자 영어를 쓸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어실력은 미국인으로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초청으로 본인은 혁명가들의 집회에 수차례 참석했는데 처음부터 웬지 모르게 모든 것이 유대적이어서 저로서는 매우 기이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얼마지나지 않아 선동가들의 대다수가 유대인들이며 소위 말하는 이 볼셰비키 운동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운동이 유대인들의 운동이며 그 근거지는 뉴욕시의 이스트사이드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본인이 러시아를 떠나기 전에 들은 놀라운 얘기에 의하면 1918년 12월 당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서기장은 아펠바움(지노비에프)이라는 이름의 유대인이었는데 그의 휘하에 있는 388명의 정치위원들 중에 진짜 러시아 사람은 16명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 명은 예외로 그 자는 스스로를 고든 교수로 부르는 미국에서 온 흑인이었습니다... 

 

상원의원님, 저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1917년 겨울 혁명이 끝난 직후 거리에는 벤치나 비누상자 위에 올라가 입이 부르틀 때까지 열변을 토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본인은 ‘전부 유대인들 아냐? 이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라고 여동생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혁명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입성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페트로그라드에는 유대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혁명이 끝나자마자 유대인들이 이곳에 무리를 지어 몰려왔는데 이들은 대부분 공산주의 선동가들이었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페트로그라드가 볼셰비키들에게 점령당한 뒤 혁명의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도시 요소에 내걸린 대형 포스터나 플래카드들도 전부 이디시어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이제 러시아의 공용어는 이디시어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러시아 사람들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대단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Bolshevik Propaganda Hearing Before the Sub-Committee of the Committee on the Judiciary, United States Senate, 65th Congress; U.S. National Archive)

 

 

 

 

 

NEW YORK CALL  유대계 잡지(뉴욕)


“그에게 러시아 혁명은 유대인의 승리였다. 그는 이스트사이드에서 혁명의 성공을 자축하는 인파의 물결과 기쁨의 환호성은 그칠 줄을 몰랐다고 말했다. 카한 씨는 이번 혁명은 유대민족의 대의를 위한 위대한 승리라고 거듭 말했다. 러시아의 반혁명적 수구세력은 항상 반유대적 세력과 일치했다. 특히 혁명단체의 수뇌부에는 항상 유대인들이 포진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제국정부는 반정부 운동의 진앙지로 유대인 사회를 지목해 왔다.” (February 5, 1918; Abraham Cahan, Upheaval in Russia is Fight for Liberty)

 

CHEKA  소련 비밀경찰


“혁명 직후 소비에트 정부에서 유대인이 누렸던 각별한 위상에 전세계 유대인들은 그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최고권력기구인 소련 공산당 정치국은 유대계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레닌의 영도 하에 유대인들은 혁명의 모든 양상에 관여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반혁명분자들을 처리하는 가장 더럽고 끔찍한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반유대주의를 근절하겠다는 공산주의자들의 맹세에도 불구하고 공산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적색테러로 인해 유대인에 대한 반감은 혁명 직후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Louis Rapoport, Stalin's War Against the Jews, 1990) 

 

“아마도 데르진스키를 제외하고 볼셰비키 정부의 요직에 포진한 유대인들의 비율은 체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유대인 청년들을 체카에 끌어들였던 주된 매력은 분명 비밀경찰이 보유하고 있었던 절대적인 물리력이었다... 이유가 뭐였든 체카 요원들의 대다수는 유대인이었다... 체카는 러시아 민중이 볼셰비키 정권에게 느꼈던 공포를 대변하는 기관이었기에 반유대적 감정은 체카가 수행했던 적색테러의 수위와 비례했다.” (Zvi Gitelman, Jewish Nationalism and Soviet Politics, 1972)

 

“체카의 수중에 떨어질만큼 불운한 인간의 운명이 머리뒤에 발사되는 유대인 요원의 총 한방에 결정될 확률은 매우 높았다.” (Leonard Schapiro, The Role of Jews in the Russian Revolutionary Movement, 1961)

 

THE DEFENDER  1930년대 미국 기독교-보수 월간지


"마침내 유태인은 힘없는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대량학살과 고문에 대한 그들의 백일몽을 마음 것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을 잠든 침대에서 끌고나와 고문하고 살해했다. 유태인들은 실제로 희생자의 신체를 조금씩 썰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불에 달군 쇠꼬치로 지졌으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기기 위해 안구를 뽑아내기도 했다. 어떤 경우 희생자들은 머리와 사지가 드러난 상자에 들어갔고 그 상태에서 상자 안으로 투입된 굶주린 쥐들에 의해 몸통을 뜯겼다. 

 

또 어떤 이들은 손과 발에 못질을 당하여 천정에 매달린 상태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쇠사슬로 바닥에 묶여있는 어떤 이들의 입에는 액화된 뜨거운 납이 부어지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말에 묶여 거리에 질질 끌려 다녔으며 이를 보고 몰려든 유태인 군중이 던진 돌과 발길질에 맞아죽었다. 기독교도 여인들은 그들의 아기들과 함께 광장에 끌려나왔고 유태인 적색분자들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부정하라고 명령했다. 만약 여인이 이를 거부할 경우 유태인은 아기를 허공에 던졌고 또 다른 유태인이 총검으로 아기를 낚았다... 

 

유태인들은 기독교도 임산부들을 나무에 묶어놓고 그들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냈다. 혁명 당시 러시아의 많은 곳에서 공개처형식이 벌어졌는데 이중 한 사례에 관하여 미국에서 파견된 로박위원회(Rohrbach Committee)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키에프(Kiev) 체카사령부 안에 있는 한 처형실의 시멘트 바닥은 희생자들이 흘린 피로 질퍽한 상태에 있었는데 그 수위가 3인치에 달했다. 피에는 사람의 뇌수와 두개골 파편들이 섞여 있어 괴기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처형실의 벽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며 어떤 곳에는 뇌수와 머리가죽의 일부가 말라붙어 있었다. 피를 빼내기 위해 만들어져 있었던 너비 25센티미터, 직경 10미터, 그리고 깊이 25센티미터 크기의 배수구 역시 피로 가득차 있었다. 일부 시신은 내장이 제거된 상태였으며 또 다른 시신들은 사지가 절단되어 있었고 또 일부는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을 당한 상태였다. 일부는 안구가 없었으며 머리와 얼굴, 목, 가슴 등에 깊은 자상을 입고 있었다. 또한 우리는 가슴에 말뚝이 박혀있는 시신과 혀가 없는 시신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구석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많은 수의 절단된 팔과 다리들이 쌓여있었다.'" (October, 1933)

 

Source: Latvia, The Ghastly Years 

 

 

Sir Percival Phillips  駐러시아 영국 외교관


“나는 볼셰비키 러시아에서 지옥을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정권을 잡았으니까요.” (Daily Mail, October 9, 1920)

 

 

L'ILLUSTRATION  프랑스 시사주간지


“볼셰비키 정부의 주요인사 및 관료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하다보면 한가지 사실이 머리를 때리는데, 그것은 그들이 거의 다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절대로 반유대주의자가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쓸 수 밖에 없다. 페트로그라드, 모스크바, 각 지방행정구, 정치위원회, 지역 소비에트 정부, 스몰니(Smolny) 등 가는 곳마다 맞닥뜨리게 되는 이들은 유대인들이며 또 유대인들이다... 이 혁명에 대해 알면 알수록 볼셰비즘이란 그동안 러시아에서 차별적인 지위에 놓여있었던 유대인들의 체제전복 운동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밖에 없다.” (September 14, 1918)

 

 

JEWISH COMMUNAL REGISTER  뉴욕시 유대인 커뮤니티 연감


“러시아의 혁명 단 한방으로 그 나라의 유대인들은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번 혁명으로 민족적인 해방이란 차원에서 이제 유대인들은 완전한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짜르의 폭정으로 신음했던 6백만명의 동포들을 국외로 탈출시키려했던 구상은  이제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1917-1918, p 1425, p 1391)

 

     * * *

 

“유대인에 대한 특별한 배려는 1917년 건국 때부터 소련 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 가운데 하나였다. 짜르체제가 무너진 뒤 1주일 후, 레닌이 이끌었던 유아기의 사회주의 정부는 전국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했으며 지구상에서는 최초로 반유대주의를 중범죄로 규정했다... 그 어떤 형태건 모든 반유대주의는 극형을 포함하여 매우 엄중하게 처벌되었다.” (Louis Levine, Soviet Russia Today, 1946)

 

 

 

(로마노프 정부와 러시아 농민들에 대한 악의적인 묘사로 유명한 유태인 볼셰비키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Maurice Cohen  유대인 공산주의자 (美)


“과장할 필요도 없이 저 위대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은 유대인의 손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할  있다. 음울하고 억압받았던 러시아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그들만의 힘으로 과연 부르조아지들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유대인은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에게 인터내셔널의 새벽을 맛보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소비에트의 대의를 위해 러시아를 이끌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레온 트로츠키 동지가 Red Army의 통수권자라는 사실을 환영한다. 赤軍의 일반 사병계급에는 유대인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앙정치국을 비롯한 각종 소비에트 조직들에서 유대인은 정치위원(commissar)들로서 용감하게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를 승리로 이끌고 있다. 모든 소비에트 기관들 선거에서 유대인 동지들이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요직에 임명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수세기 동안 자본주의를 상대로 투쟁을 벌여온 유대민족의 상징은 이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의 상징이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붉은색의 오각별은 시온주의와 유대민족의 상징이다. 이 오각별이 행군하는 곳마다 기생충과 같은 부르조아지들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이 흘린 눈물의 대가를 그들의 피와 땀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The Communist, April 12, 1918)

 

     * * * 

 

“모든 이의 눈을 피할 수 없는 확연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유대인과 소비에트 정권과의 관계였다. 언제든 백군(白軍)에게 위협을 받아 적군(赤軍)이 도시나 마을에서 철수해야 할 상황이 오면 그것이 며칠이건 단 몇시간이건, 유대인들은 항상 집을 떠나 적군과 함께 행동했다... 적군이 유대인 인구에 쏟은 관심과 이들을 철수시키는데 들인 성의와 노력을 보면 누가 보기에도 볼셰비키 정권은 유대인 정권이었다.” (Lestchinsky, Between Life and Death)

 

 

S. P. Melgounov  스페인 망명 러시아 역사가


"볼셰비키 정권의 적색테러는 너무도 광범위하게 펼쳐졌기 때문에 저항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체카가 동원한 반인륜적인 수법들을 여기에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가지 자주 사용되었던 수법 중에 하나는 인질을 잡아두는 것이었다. 모든 계층에서 갹출된 인질을 잡아둔 체카는 민중봉기, 백군(白軍)을 위한 부역행위, 파업, 추수한 곡물에 대한 공출거부 등을 反혁명 행위들로 규정하고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인질들을 공개처형했다. 그러므로 페트로그라드 특과위원회의 유태인 유리츠키가 암살되었을 때 수천명에 달하는 인질들이 학살되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살해당하기 전 체카사령부의 지하실에서 냉혈적인 유태인 요원들에 의해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지금 내 앞에는 다가오는 白軍을 피해 볼셰비키들이 달아난 뒤, 각국에서 파견된 연합조사단의 참관 하에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하르코프(Kharkov)에서 촬영된 사진들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하나는 인질로 잡혀 있다가 파업에 대한 보복으로 살해당한 공장노동자 3명의 사진으로 한 명은 눈가의 심한 화상과 함께 코와 입술이 도려내어져 있으며 두 명은 손이 절단되어 있는 모습이다... 

 

소작농이었던 아파니아수크씨와 프로크포비치씨의 시신은 머리가죽이 벗겨진 상태이며 신체의 요소에 불에 달군 칼에 의한 듯한 화상을 입고 있다. 군 장교였던 보브로프씨는 혀와 한쪽 손이 절단되어 있으며 그의 왼쪽 다리는 가죽이 벗겨져 있다... 또한 일부 사진에는 어떤 예리한 금속성 흉기를 사용해 벗겨낸 듯한 인피(人皮)들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하르코프시 소비에트 특과위원회 건물의 지하를 수색하던 중 발견된 시신들을 촬영한 것이다. 퇴역장성으로 인질로 잡혀있던 중 살해당한 폰티아파씨의 시신은 오른 손의 피부가 벗겨져 있으며 성기가 훼손되어 있다. 또

 

한 가구수리 사업을 했던 이바노브나 부인과 지주인 콜포바 대령의 카롤샤하 부인의 시신들도 심하게 훼손된 채로 발견되었다. 이들의 가슴은 칼자국이 난채 그 안이 비어있었고 성기에 화상을 입고 있었는데 그 부위에서 석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네 명의 농부 인질들, 본다렝코, 푸크히클, 세베네트리, 그리고 시도리페후크의 시신은 모두 얼굴이 지독하게 난자되어 있었으며 성기부위에는 고환이 거세되어 있었다.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집행된 것으로 보이는 이 수술로 이들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적색테러의 와중에서 자행된 온갖 패륜적인 만행들을 이 책 한 권에 모두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유태인 사엔코가 악명을 떨쳤던 하르코프 체카는 희생자의 손가죽을 장갑처럼 벗겨내는 특별한 기술로 유명했다... 보로네즈에서는 안으로 많은 대못이 박힌 드럼통에 벌거벗긴 희생자를 가둔 다음 언덕에서 굴렸으며 희생자들의 이마에 달군 쇠로 오각별을 지져 넣기도 했고 짜리친(Tsaritsin)과 카미신(Kamishin)에서는 톱으로 사지를 잘랐다. 케이프(Keif)에서는 희생자를 썩는 시체가 들어있는 관에 합장했다가 30분 후에 다시 꺼내 심문을 다시 시작하곤 했다. 이런 일을 몇 차례 되풀이 당한 사람들은 대게 정신이 돌아버렸다." (El Terror Rojo En Rusia 1918-1924, tomo II; Editorial Caro Raggio, Madrid, 1927)

 

Source: Latvia, The Ghastly Years

 

 

(Now you know why Hitler called jews sub-human)

 

 

Clare Sheridan  미국 공산주의자, 트로츠키 측근


“공산주의자들은 유대인이며 러시아는 지금 그들이 통치하고 있다. 행정, 사법, 입법, 언론 등 모든 정부기관의 요직에 앉아있는 그들은 모든 곳에서 진짜 러시아인들을 몰아내고 있다. 지금 러시아에서 급증하고 있는 반유대주의는 그들의 책임이다.” (New York World, December 15, 1923)

 

    * * *

 

*소련정부 유대계 비율표
                                        총인원 / 유대인 / 유대계 비율
인민위원회의                          22    /  17     /  77.2%
전쟁 정치위원회                      43    /  33     /  76.7%
외교 정치위원회                      16    /  13     /  81.2%
재무 정치위원회                      30    /  24     /  80.0%
법무 정치위원회                      21    /  20     /  95.2%
선전홍보 정치위원회                53    /  42     /  79.2%
사회조력 정치위원회                 6     /   6     /  100.0%
노동 정치위원회                       8     /   7     /   87.5% 
해외 볼셰비키 대표부                8     /   8     /   100.0%
지방 정치위원회                      23    /  21     /   91.3%
언론위원회                             41    /  41     /   100.0%
(The Dearborn Independent, September 25, 1920)

 

 

AMERICAN HEBREW  뉴욕 유대계 일간지


“그 운명의 해였던 1914년부터 어어져왔던 불안과 소요는 러시아 혁명의 완결로 막을 내렸다. 혁명은 1세기 전의 프랑스대혁명보다 더욱 큰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지구상의 그 어떤 집단보다 그 뿌리가 견고했고 이기적이었으며 극악무도했던 전제적인 러시아 황정을 마침내 타도하기에 이르렀다. 1차대전의 핵심적인 결과이자 가장 위대한 과업의 완성으로 역사에 기록될 이 혁명은 유대민족이 인식한 부조리와 이에 대한 유대민족의 치유법,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의 재구축을 염원하는 유대민족이 가진 의지의 산물이었으며 유대민족의 이상주의가 맺은 결실이었다... 러시아에서 대과업을 성취하게 한 유대민족의 역사적 자질과 정신, 그리고 열정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동일한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September 10, 1920)

 

 

JEWISH TRIBUNE  시카고 유대계 일간지


“독일혁명은 유대인의 업적이다. 많은 수의 유대인 정치가들이 자유민주주의적 정당들을 이끌고 있으며 바이마르 정부에서도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July 5, 1920) 

 

 

(로자 룩셈부르크, 폴란드 태생 유태인이 독일에서 혁명을?)

 

 

(룩셈부르크의 오른팔, 유태인 리쁘끄네히트)

 

 

1918년, 독일은 1년 전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유대인 맑스주의자들이 주동하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미국의 참전으로 서부전선에서 막대한 사상자를 내며 패색이 짙어가던 상황에서 독일 사민당(SPD)은 패배주의 여론을 조장하면서 카이저 정부를 흔드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사민당과 연계된 좌익단체들의 책동으로 1918년 11월3일 키엘의 독일해군기지에서는 수병들의 무장폭동이 일어났고 유대계 유력 일간지들의 선동적인 보도 하에 유혈소요사태를 동반한 총파업이 독일 전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극도로 불안해진 정국을 감당할 능력을 상실한 빌헬름 2세가 마침내 11월9일 퇴위를 선언하자 사민당은 기타 맑스주의적 정당들과의 연대 하에 독일 사회민주주의 공화국(바이마르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독일인들에게 곧 ‘등 뒤에서 비수꽃기’로 불려지게 되었다.) 공화국 선포 이틀 후 연합국과의 휴전에 서명한 신정부는 또 한편 군대의 해산을 명령했다. 이로인해 독일은 남은 군사력을 담보로 평화조건을 협상하는 대신 베르사이유 조약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 사건은 많은 독일인들로 하여금 독일 유대인들에게서 영원히 등을 돌리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히틀러는 군대해산을 명령한 사민당의 정치인들을 “11월의 범죄자들”이라고 불렀다.) 일단 군대의 해산으로 잠재적인 반혁명 세력이 제거되자 유대인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쁘끄네히트, 쿠르트 아이스너, 레오 조기쉬스, 프란츠 메링, 클라라 제트킨 등의 급진파가 표면으로 부상하여 러시아 볼셰비키들의 전철에 따라 혁명장악을 시도했다. 

 

소련으로부터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은 룩셈부르크와 리쁘끄네히트의 스팔타쿠스단(Spartakusbund)은 1919년 초 베를린에서 대대적인 무장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폭력형명은 우익장교단이 지휘한 Freikorp(해산된 군인들로 구성된 시민의용군)와의 시가전 끝에 격퇴되었고 주동자인 룩셈부르크와 리쁘끄네히트는 체포후 처형되었다. 이들 사후 제3차 인터내셔널은 독일 공산당(KPD) 당수로 유대인 칼 라덱을 임명했고 그의 뒤를 이어 역시 유대계 여류 공산주의자 루스 피셔가 1924년까지 KPD를 이끌었다.

 

 

(FreiKorp의 병사들)

 

 

(쿠르트 아이스너)

 

 

Kurt Eisner  유대인 볼셰비키 (獨) 


“뮌헨에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동했으며 그 결과로 탄생한 바이에른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쿠르트 아이스너는 승리에 도취하여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그의 동지이자 내각에 임명된 아우어(Auer)에게 말했다, ”11인의 왜소한 사나이들이 이 위대한 혁명을 달성했소!” 그럼 이 “위대한 혁명”을 성취했다는 “11인의 왜소한 사나이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보자. 

 

그들의 이름은 맑스 로웬베르크, 쿠르트 로센펠드, 가스파르 볼하임, 맥스 로스차일드, 칼 아르놀트, 크라놀트, 로센헥, 비른바움, 레이스, 그리고 카이세르로 10인 모두 유대인이었다. 이들과 함께 쿠르트 아이스너 밴 이스라엘로비치는 바이에른의 사회주의 혁명정부를 이끌었다. 11인은 예외없이 프리메이슨들로 모두 뮌헨 Briennerstrasse 51번지에 있었던 11호 비밀롯지 소속이었다.” (Monseigneur Jouin, Le peril Judeo-Maconnique, 5 Vols. 1919-1927)


     * * *

 

1900년부터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까지 독일의 유대인 인구는 전체 독일인구의 1퍼센트 미만(정확하게 .50-.75 퍼센트)을 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정당 소속의 유대계 정치인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요직을 독식했다. 다음은 바이마르 시대의 주요 유대계 인사들이다:

 

에버트(Ebert, 바이마르 초대 대통령), 프로이스(Preuss, 바이마르 헌법 성안자, 내무장관), 프룬트(Freund, 내무장관), 란쯔베르크(Landsberg, 재무장관), 힐퍼딩(Hilferding, 재무장관), 카우츠키(Kautski, 재무장관), 쉬퍼(Schiffer, 재무장관), 그바이너(Gwiner, 독일중앙은행 총재), 에두아르 번슈타인(Eduard Berstein, 주정부 국고담당 비서), 코헨(Cohen, 정보부 부장), 허쉬(Hirsch, 내무장관), 로센펠드(Rosenfeld, 법무장관), 푸트란(Futran, 교육장관), 아른트(Arndt, 교육장관), 브렌타노(Brentano, 산업, 무역, 교통 장관), 시몬(Simon, 프로이센 주정부 재무장관), 카스텐베르크(Kastenberg, 과학예술부 장관), 스트라트겐(Strathgen, 국가개발부 장관), 마이어-게어하트(Meyer-Gerhart, 식민지국 국장), 부름(Wurm, 식량문제 담당비서), 코헨(Kohen, 독일 勞兵평의회 의장), 언스트(Ernst, 베를린 경찰총장), 바이스(Weiss, 베를린 경찰총장), 신츠하이머(Sinzheimer, 프랑크푸르트 경찰총장), 레비(Lewy, 헤센주 경찰총장), 쿠르트 아이스너(Kurt Eisner, 바이에른 공화국 대통령), 야페(Jaffe, 바이에른 재무장관), 탈하이머(Talheimer, 뷔르템베르크 지사), 하인만(Heinmann, 뷔르템베르크 지사), 풀다(Fulda, 헤센주정부 각료), 디어도어 울프(Theodor Wolf, 베를린 유력지《Berliner Tageblatt》편집장, 기타 사회문화계 주요인사: 메르츠(Merz), 바일(Weil), 카첸슈타인(Katzenstein), 스턴(Stern), 로웬베르크(Lowenberg), 프랑켈(Frankel), 슐레진저(Schlesinger), 이스라엘로비츠(Israelowitz), 셀리그손(Seligsohn), 루벤하임(Laubenheim), 맥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바이마르 헌법 성안자 유태인 휴고 프로이스)

 

 

 

Bela Kun - Aaron Cohen  유태인 공산독재자 (헝가리)


“헝가리의 공산화를 위해 순탄대로를 닦고자 했던 인물은 유대인 측근들에게 둘러 쌓여있었던 프리메이슨 카룔리(Karolyi)였다. 카룔리 정권은 어린세대의 좌경화를 위해 교육부와 학계의 요직에 유대인을 비롯한 프리메이슨 지식인, 학자들을 대거 투입했다. 전통적 교육질서를 전복하고 대대적으로 수정된 교과서들을 도입한 그들은 저격수의 조준솜씨로 헝가리 어린이들의 영혼을 겨냥했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아이들의 도덕과 애국심을 파괴했고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권위를 음해하고자 했으며 난삽한 그림들이 삽입된 교재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성교육을 실시했다. 이러한 ‘진보적인 교육’을 선사한 카룔리 정권에 대해 학부모들의 원성은 끊이질 않았다... 

 

카룔리가 선물한 것과 다를바 없는 벨라 쿤의 공포정치에 대항할 만한 세력은 없었다. 그는 레닌처럼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위원들로 스스로를 둘러 쌓다. 32인의 주요위원들 가운데 25명이 유대인이었으며 이 비율은 러시아의 그것과 비슷했다. 이들 중에서도 최고의 권위을 지닌 최고위원회의 5人 가운데 네 명이 유대인들로 그들은 유대계 실명이 각각 코헨(Cohen), 바이즈(Weiss), 슈와츠(Schwartz), 쿤슈테터(Kunstatter)인 벨라 베이가(Bela Vaga), 조셉 포가니(Joseph Pogany), 시기스몬트 쿤피(Sigismond Kunfi)였다. 또한 유대인 알파리(Alpari)와 스자무엘리(Szamuelly)는 헝가리의 애국자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적색테러를 전개해나갔다.” (Cecile de Tormay, An Outlaw's Diary, 1923)

 

 

1919년 유대인 벨라 쿤은 러시아 다음으로 헝가리에 두 번째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일찍이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가담했던 그는 합스부르크 왕정의 붕괴와 함께 득세한 ‘진보’ 성향의 카룔리 정권과의 교감하에 헝가리의 권력을 탈취하는데 성공했다. 호르티 제독이 이끈 민족주의세력에게 축출되기 전까지, 흔히 ‘벨라 쿤의 100일 천하’로 불리는 1919년 3월21부터 8월1일까지 벨라 쿤 정권은 그 포학성에 있어 러시아를 능가하는 잔혹한 공포정치로 온 헝가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강대국의 틈에 끼어 많은 외침을 경험한 헝가리의 국민들이었지만 그들에게 가장 극심한 시련을 안겨준 집단은 벨라 쿤의 정권을 지지했던 유대인 이웃들이었다. 런던에서 발행된《1919 Yearbook》(Dodd, Mead, Co., p.587)에 의하면, “벨라 쿤 정부와 관료층은 전적으로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혁명정부 초기 공산주의자들은 온건좌파 성향의 사민파와 공동보조를 취했다. 그러나 벨라 쿤은 이념적 색채와는 별도로 정부를 구성함에 있어 요직의 인사들을 헝가리의 유대인 사회로부터 조달했다.” 

 

 

 

Louis K. Birinyi  헝가리 법조인


“헝가리인들이 마침내 유대인의 만행에 대항하기 시작했을때 이 나라에서 “백색테러”가 자행되고 있다는 뉴스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는 스스로를 대변할 힘이 없었다,”는 텔레키 백작의 고백처럼 유럽 주요국들의 여론을 제단하는 언론은 유대인들의 수중에 있었다.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건너온 저 유대인들은 일요일 오전 교회에서 나오는 기독교인들을 끌어다 나무에 매다는 식으로 그들 내키는대로 우리 국민을 살해하고 학살했다. 그러나 헝가리 밖에 사는 그 누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가. 반면 한 헝가리인이 실수로 유대인의 발가락이라도 밟게되면 그 유대인은 너무도 큰 소리로 요란을 떨기에 전 세계는 그 유대인의 비명을 듣게 되는 것이다.” (The Tragedy of Hungary, 1924) 

 

 

 

윈스턴 처칠 


“... 일부 애국적인 유대인들의 이러한 노력에 맞서 국제유대인의 폭력적인 음모가 그 마각을 드러낸다. 이 음험한 모의에 가담하는 자들은 대게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멸시를 받았던 나라에 살았던 유대인들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내세에서의 영적인 구원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자들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정치운동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스팔타쿠스-바이스하웁트의 시절부터 칼 맑스를 통해 러시아의 트로츠키, 헝가리의 벨라 쿤, 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 미국의 에마 골드만에 이르기까지, 문명사회를 전복시키고 억압된 성숙, 시기와 질투에 근거한 악의, 그리고 도저히 불가능한 평등이라는 토대 위에 인간사회를 재구축하려는 유대인들의 전 세계적인 음모는 꾸준히 그 세력을 불려왔다. 

 

이 시대의 저술가인 웹스터 부인(Nesta Webster)도 자신의 저서를 통해 설득력있게 입증했듯이 이러한 음모는 프랑스대혁명의 비극에서도 분명히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후 19세기 유럽에서 전개된 모든 체제전복 운동들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유럽과 아메리카의 대도시에서 암약해왔던 이 특출난 일당은 마침내 러시아 국민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사실상 이 광대한 제국의 절대군주들로 등극했다... 

 

볼셰비즘의 탄생과 러시아 혁명의 실현과정에 있어 이 세계주의적이며 무신론적인 유대인들의 역할은 과장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 혁명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요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레닌을 제외하고 절대다수의 혁명지도자들은 유대인이며 이들에게 사상적 영감과 이론을 제공한 이들도 유대인들이었다... 

 

소비에트 정부의 유대계 비율은 더욱 놀랍기만 한다. 특히 반혁명세력에 대한 테러조직의 역할을 수행하는 체카에서 여성을 포함한 유대인들의 주도적인 위치는 괄목할만 하다. 벨라 쿤이 헝가리를 잠시 통치했던 기간에도 적색테러와 관련하여 유대인들의 이런 사악한 역할은 다를게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또한 독일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바이에른에서는 패전으로 무기력과 실의에 빠진 독일국민을 표적으로 삼은 이러한 광란극이 한동안 연출되기도 했다. 전체인구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을 감안할 때 유대인들이 이들 국가의 볼셰비즘 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충격적이다.” (Zionism Versus Bolshevism: A Struggle for the Soul of the Jewish People, Illustrated Sunday Herald, London, February 8, 1920)

 

 

Oscar Levy  유대인 의사, 작가 (英)


“이 세상에서 유대인보다 더욱 불가사의하며 치명적인 민족도 없다. 유대인과 그들이 끼친 영향에 대한 질문은 과거와 오늘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모든 진실의 근원으로 유대인문제는 모든 정직한 사상가들에 의해 논의되어야 할 주제이다... 당신들은 당연하게도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자본과 산업이 유대인들에 의해 독점됨으로서 생겨나는 병폐에 대해서, 그리고 유대인이야말로 반란과 혁명을 주동하는 주된 불순세력임을 지적한다. 당신들은 또한 막대한 부(富)를 손끝에 부리는 유대국제금융의 집산주의(集産主義)가 민주주의를 내건 칼 맑스와 트로츠키의 국제공산주의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적 차원에서 이 모든 극악한 상황과 비참한 현실에 대해 당신들은 그 원인을 유대인이라는 한 민족으로 추슬러 올라간다... 실로 근대유럽에서 일어난 일들 가운데 그 근원을 유대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 얼마전에 끝난 세계대전을 한번 예로 들어 보자. 과연 그 전쟁의 기원과 명분이 무엇이었는가를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해 보라...

 

“당신들은 경악에 찬 목소리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이 세상의 영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종말을 가져올 유대인의 쌍두마차임을 지적한다. 이론과 실천, 이상주의와 유물론, 그리고 정치와 철학에 있어 모세로부터 맑스까지, 유대인은 언제나 그들만의 명분과 목표에 열정적으로 헌신해왔던 족속이었다... ‘하지만 유대인의 그런 명분과 비전은 그릇된 것’이라고 당신들은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외칠 것이다, ‘한번 둘러 보라. 유대인이 이 세상을 어떤 지경으로 몰고 왔는지. 지난 300년 동안 그렇게 분란을 일으켜왔으면서도 아직 부족하다는 것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당신들에게 이런 세상을 강요당하고, 또 당신들에게 시달려야 하는가?’... 

 

이에 대해 나의 대답은 한가지 뿐이다. 그것은 당신들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성은 누가봐도 정당한 것으로 이러한 의견일치의 토대위에서 나는 당신들과 기꺼이 악수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으며 당신들이 단순한 인종적인 증오에서 그런 말을 하는게 아님을 인정할 것이다... 당신들이 만약 반유대주의자라면 유대인인 나는 당신들보다 더한 반유대주의자임을 나는 고백한다. 동포여,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것도 아주 중대한 잘못을. 그동안 세상의 구원자로 자처해왔던 우리는 오늘날 인류의 화근이요 유혹자이며 파괴자이고 사형집행자 외에는 그 무엇도 아니다. 

 

당신들에게 새로운 낙원을 약속했던 우리는 당신들을 새로운 지옥에 끌어다 놓았다. 그 동안 진보란 것은 없었고 특히 인류의 도덕적인 진보같은 것은 더 더욱 없었다. 그리고 인류의 참된 진보를 가로막았던 것은 바로 우리의 파괴적인 도덕과 세계관이었다. 나는 이 세상을 보며 그 음침함에 몸서리를 친다. 그리고 그 영적인 집필자의 정체를 알기에 나는 더욱 격렬하게 몸서리를 칠 수 밖에 없다... 볼셰비즘은 종교이자 신앙이다.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 혁명과 반란의 전문가인 유대인들이 이끄는 칼 맑스의 붉은 십자군과 어떻게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Dr. Oscar Levy, Preface to the World Significance of the Russian Revolution by George Pitt-Rivers, 1920)

 

 

George Pitt-Rivers  영국 언론인


“그 동안 러시아의 짜르정부를 상대로 악의적인 중상과 비방을 전개해온 나라는 국제유대인의 본거지인 이곳 영국이었다. 그들은 체계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짜르정부를 세계 역사 초유의 폭압적인 전제정권으로 선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전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스테픈 그래함씨와 같은 영국작가는 러시아를 유럽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러시아는 영국에 비해 훨씬 덜 상업화된 나라이다. 그리고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상업화된 나라이자 유대인의 천국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대인은 단순하고 순박한 농경생활에 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민족이다. 그보다는 무제한적인 산업의 팽창과 그로인해 급증하는 대도시 인구, 계산이 빠른 중간상인으로서 유대인들의 제약없는 상업적인 착취, 이윤, 그리고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소유한 재물의 크기로 인간의 평등을 가늠하는 잣대, 또한 자유주의(liberalism)와 민주주의란 이름아래 자행되는 모든 수준의 하향 평준화야말로 유대인들이 오늘 이 시대 전 세계에 전파하는 컬트(cult)이다. 민주주의란 이름아래 유대인의 물질숭배와 상업주의에 맹종해왔던 지난 300년간의 전통을 지닌 영국이란 나라가, 비록 부족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박하고 선량한 농경백성과 가부장적인 정부를 꿈꾸었던 알렉산더 3세의 통치이상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The World Significance of the Russian Revolution, 1920)

 

 

 

Alfred Rosenberg  독일 국가사회주의 이론가


“러시아는 국가적 차원에서 ‘민주주의’와 ‘진보’로 위장된 국제유대인의 책략에 조직적으로 저항했던 유일한 유럽국가였다. 러시아 국가의 정점에는 의회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절대군주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밑에는 기독교적 신앙심과 러시아의 정치적 전통으로 중무장한 귀족관료층이 버티고 있었다. 또한 상당한 독립적인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던 이들에게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 유대자본은 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러시아는 유대인의 공직임용과 유대인이 군대에 진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광대한 영토와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지배층은 막대한 가치의 부동산과 삼림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유대인의 금권(金權)에 의존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풍성했고 시베리아와 우랄산맥에서 끊임없이 발견되는 금광으로 국가의 금(金) 보유량도 넉넉했다. 또한 국가는 가용 금속자원도 40억 마르크에 달하는 분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황실과 수 많은 교회, 수도원, 그리고 민간자산 등, 러시아의 國富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비록 러시아는 산업생산량에 있어서는 아직 개발이 미흡한 국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이미 오래전 자급자족의 국가적 역량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미 서유럽을 성공적으로 제압했던 유대국제자본 네트워크에게 러시아의 이러한 경제적 잠재력은 그들의 세계지배에 대한 크나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었다. 

 

러시아는 혁명 전까지 유럽에서 기독교와 보수적 원칙들의 수호국 역할을 해왔고 그 어떤 대대적인 무장반란도 국가의 강력한 군대에 의해 타도되었다. 자국 안에서 분란과 소요를 획책할 만한 비밀결사들을 제도적으로 금지했기에 유대인의 기만적인 선전과 선동은 기대했던 것만큼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사항을 염두에 두면 왜 국제유대인이 러시아를 무너뜨리는데 그와같은 총력을 기울였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이다.” (Weltkampf, 1925)

 

 

오토 칸  유대인 국제금융가 (美)


“그 곳에는 민족세력이 주도한 쿠데타의 성공 이후 헝가리를 탈출했던 일단의 유대인 혁명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미군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듣자하니 미국정부가 중부유럽 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 윌슨 대통령은 그들의 보고와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대게 여러국가의 주요인사들이 참석하는 만찬은 외교에 있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 동시에 예상치 못한 암초가 될 수도 있다. 그날 나는 내 옆자리에는 앉은 꽤 거물로 보이는 한 인사와 기억에 남을 만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의 이름은 오토 칸이었다. 그는 볼셰비키 정권에 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뉴욕의 한 거대투자은행의 경영자로 막 취임한 인물이었다... 

 

만찬 참석자들 가운데 한 명은 국제자본이 어떻게 그들의 타도를 외치는 볼셰비즘 운동을 후원하고 보호할 수 있는 지를 그에게 물었다. 유럽의 배고픈 이들을 먹이기 위한 자선사업단을 이끌고 있었던 그는 큰 잔에 담긴 헝가리산 토카이 백포도주를 들이킨 뒤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5프랑의 금화는 족히 들었을 법한 거대한 여송연을 한모금 빤 뒤 말했다:

 

 

(뉴욕 투자은행 Kuhn & Loeb 회장)

 

‘우리와 소비에트의 동맹관계에 대해 놀라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국수적이며 민족주의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장 오래된 민족이자 가장 강하게 결속되어 있으며 또한 가장 배타적인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 오랜 세월의 끔찍한 박해와 고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유대인의 가장 영웅적인 민족주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사람들은 또한 우리의 민족주의야말로 가장 순수한 민족주의라는 것을 잊습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가장 영적인 것이기에 우리는 수백년 동안의 모멸과 수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 세상의 소금인 것입니다...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대구 생선을 소금에 절이는 사람들의 얘기를 아십니까? 내가 뉴펀들랜드에 낚시휴가를 갔을적에 들은 얘긴데 그들의 얘기는 소금을 너무 많이 쓰면 생선이 부식되고 너무 적게 쓰면 썩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은 교훈은 마땅히 이 세상의 사람들(고임, Goyim)과 그들의 정신적 사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유대인은 소금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지혜를 현명하게, 적재적소에, 알맞은 분량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 소금을 인간들이 소비하는 빵에 섞습니다. 우리는 짜르시대의 러시아와 같은 부도덕한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고자 할 경우에만 부식을 일으킬 만한 분량의 소금을 사용합니다... 

 

당신들은 맑시즘이 자본주의의 안티테제라고 말하지만 우리에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모두 거룩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며 그로인해 우리는 양극을 잊는 이 세상의 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언뜻보면 상반적인 존재들과 같이 보이는 볼셰비즘과 우리는 인터내셔널에서 그 동질적인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현실과 그 교리에 있어 정반대의 것으로 보이지만 富를 무기로 사회의 상층부로부터 아래로 작용하는 자본주의와 민중혁명을 무기로 사회의 하층부에서 위로 작용하는 공산주의는 이 세상을 우리들의 뜻대로 재구축하고자 하는 의도에 있어 그 궁극적인 목표와 종착점이 합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이 세상에 새로운 율법을 반포하고 새로운 神을 창조하는데 있습니다. 아니 창조한다기 보다는 그 신의 개념이란 것을 정화하여 때가 오면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신을 스스로 메시아가 된 이스라엘 민족과 동일시함로서 그 신의 개념을 정화시킬 것입니다. 새로운 신의 선포는 이스라엘의 최종 승리로 실현될 것입니다. 이러한 구상이야말로 우리들의 신약성경이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왕과 선지자들에게 합당한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건데, 혁명은 富와 특권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 황금송아지를 살찌우는 것은 자본의 창출도 아니요 자본을 이용한 착취도 아닙니다. 그 무엇보다 황금송아지를 살찌우는 것은 자본의 유통과 흐름이요 이와 결부된 투기의 영혼입니다. 자본의 주인이 바뀌면 바뀔수록 그 자본은 우리의 수중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에 대해 수수료를 받습니다. 우리는 자본의 흐름을 통제합니다. 우리는 말하자면 세계의 수많은 교차로들에서 전 방향으로 이동하는, 마치 ‘이름없는 방랑자’와도 같은 자본에 대한 세금징수인과도 같습니다. 그 자본의 이동이 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나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일어나건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우리의 본질적인 역동성은 파괴의 힘과 창조의 힘에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하기 위해 파괴합니다... 

 

우리가 조직한 볼셰비키 혁명은 그 파괴력의 증거요, 또한 우리가 만든 국제연맹은 우리가 지닌 창조력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제공할 동력에 대해 볼셰비즘은 가속페달, 그리고 국제연맹은 브레이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이미 오래전에 정해진 것입니다. 만국에 흩어져 있지만 가슴속에 타오르고 있는 민족의 신앙으로 이어진 유대인은 이 사명의 주체입니다. 우리는 모든 국가의 요소를 담고 있는 세계정부요, 이스라엘은 미래 제국의 씨앗입니다.’” (Saint-Aulaire, Auguste Fllix Charles de Beaupoil comte de. Geneva versus Peace, 1937)

 

 

Vicomte Leon de Poncins  프랑스 반공저술가


“혼란과 파괴의 상징, 이 볼셰비즘(유대교)은 그 무엇보다 反기독교적, 反사회적 개념이다. 이 시대를 휩쓸고 있는 붉은 광기는 오직 한 민족적, 그리고 종교적 개체에게만 이로울 따름이다. 그들은 바로 유대인이다. 이 혼란과 광기의 기원이 국제유대인이건, 프리메이슨이건, 아니면 유대인의 민족주의건, 혹은 부를 독점하기 위한 유대 대자본의 음모이건, 유대인이 혁명적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등 각국의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혁명을 통한 기존질서의 전복이 유대인에게 과연 뭘 의미하는지는 자명해진다. 양대 진영을 구분짓는 대결의 선은 날이 갈수록 극명해져가고 있다. 러시아를 손아귀에 넣은 혁명적 유대세력에 대해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보내는 공개적인 갈채와 성원은 이 대결이 기독교 대 유대교, 그리고 민족국가 대 세계주의, 아니 세계주의로 위장한 유대 국제권력의 대결이라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드러내준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헝가리의 애국정부는 자국의 프리메이슨 단체들을 해산하고 법으로 금지시켰다. 헝가리의 프리메이슨들은 10월 혁명에 가담했을 뿐 아니라 정통성이 없는 벨라 쿤 정권에 부역했다. 유대인들이 퍼뜨리는 독소적 사상의 영향아래 이 자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반민족적, 반국가적, 반사회적 교조를 전파하여 헝가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반국가적 교리는 그 나라의 진정한 국민들에게 해악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다...” (La Dictature des Puissances Occultes)

 

 

Lord Eustace Percy  영국 외교관


“국경에 근거한 영토적 주권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질서 속에서 유대인이 생존,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다른 민족들의 민족국가란 개념을 해체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특정한 영토에 자신들만의 민족적 주권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동부유럽에서 볼셰비즘과 시오니즘(Zionism)은 서로와 발을 맞춰가며 성장한다... 유대인이 이러한 이념들에 헌신하는 이유가 이방민족 국가들의 발전과 안녕에 기여하고자 함은 물론 아니다. 정치와 경제, 문화를 떠나 그 어떤 비유대인들의 권력체제도 유대인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Henry Ford, Aspects of the Jewish Power, The International Jews)

 

 

(유태인 Bernard Baruch, 월스트릿 투자은행가로 FDR의 돈줄, 워싱턴포스트 사주이자 세계은행 초대 총재였던 유태인 Eugene Meyer는 바룩의 동업자였다)

 

 

THE GLOBE  런던 일간지


“볼셰비즘은 기독교 국가들에 대한 정치, 경제적 침략외에는 그 무엇도 아니다. 볼셰비즘의 확산으로 자본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의 손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며 전 세계의 유대인들은 이념적 경계를 너머 서로간의 상부상조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그 어디에서건 군림할 것이다. 오늘날 국제유대인의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두 곳은 뉴욕과 러시아이다. 세상에서 제일 많은 숫자의 유대인이 거주하는 도시란 타이틀과 함께 뉴욕의 가공할 국제금융자본은 물질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호령하고 만사를 농단한다. 또한 지구의 반대편인 러시아에서 유대인은 사상 초유의 반란적 기질과 무자비한 음모로 그 광대한 제국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저 디어도어 헤르츨이 말했던 유대인의 ‘끔찍한 돈의 힘’과 반란과 혁명을 선동하는 공산주의는 오늘 이 시대 거대한 의미를 지닌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모태로했던 앙시엥레짐의 말살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목표의 공유뿐만 아니라 언뜻보면 적대적인 두 진영이 인류의 눈이 감지할 수 없는 막후에서는 실제로 긴밀하게 협력, 공조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수많은 증거들이 존재한다.” (George Pitter Wilson, April, 15, 1919)

 

 

JEWISH WORLD  영국 유대계 일간지


“우리는 한 종교로서 기독교가 우리 유대인들에게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반추해보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가 번창했던 지난 2천년은 우리 유대인에겐 망명과 유배를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비극의 세월이었다... 때때로 기독교가 우리에게 내밀었던 우정의 손길도 실은 우리의 개종을 유혹하기 위한 미끼였을뿐이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로서 교회의 권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유대인의 수난은 그 도를 더해갔다. 오직 교회의 영향력이 감소했을 때나 약했던 곳에서만 유대인은 삶을 꾸려갈 수 있었다. 반유대적 폭동, 그리고 반유대주의적 운동들의 기원도 사실상 모두 기독교가 심어놓은 유대인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심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기독교란 종교에 호감을 갖거나 기쁜 마음으로 반길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December 22, 1920)

 

“독실한 유대인은 유대교가 反기독교적 신앙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March 15, 1924)


     * * *

 

“유대인들은 레닌의 죽음을 각별한 비통함으로 애도했다. 이는 단지 혈연으로만 유대인들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독실한 유대교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대인 학교의 어린이들은 장례행렬을 따랐으며 히브리 예술극장(하비마, Habima)에서는 유대민족의 언어로 표기된 플래카드를 봉헌하기도 했다. 여기에 적힌 구호는 다음과 같았다, ‘그대는 국가들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야콥 마이스 모스크바 수석랍비와 함께 이 도시의 유대인 단체들은 레닌의 죽음을 애도하는 전문을 일제히 발송했다. 또한 유대인작가동맹은 이디시어로 꾸며진, 레닌의 업적을 추모하는 특별호를 발간했다.” (January 21, 1924)

 

 

버트란드 러셀


“볼셰비즘은 철저히 패쇄된 관료계층의 폭압정치이다. 인민에 대한 감시체제는 짜르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고 무자비하다. 소련의 신흥 지배계급은 무례하고 냉혹하며 미국식에 익숙한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말과 행동에 있어 자유란 찾아볼 수도 없다. 마치 거대한 쇳덩어리에 짖눌린 듯 나는 침울함과 착잡한 마음뿐이었다.” (The Autobiography of Bertrand Russell, 1975)

 

 

 

Nesta Webster  영국 역사가


"외국인의 제약없는 유입, 특히 유대인 이민자들에 대한 무제한적 수용은 항상 노동당의 주요 정강들 가운데 하나였다. 사회주의 성향의 지식인들 또한 유대인 자본가들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그들은 영국인 기업가들에 대해서는 격렬히 비난하고 공격하면서도 유대인 백만장자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자본주의에 맞선다는 투쟁과 관련하여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자본가들에도 두가지 부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는 민족주의적 산업자본가이다. 이 부류의 대다수는 비유대인들로 이들은 뛰어난 두뇌와 정력으로 맨손에서 시작하여 번창하는 사업을 일군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국제적인 자본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금융자본가들이다. 물론 비유대인도 찾아볼 수 있으나 이들의 절대다수는 유대인들로 이들의 본질적인 수입원은 생산이 아닌 고리대금업과 투기다. 사회불안과 혼란이 첫 번째 부류의 자본가들에게는 치명적이 될 수도 있는 악재(惡材)인 반면 두 번째 부류의 자본가들에게 모종의 경제공황이나 소요사태는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된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그토록 맹렬하게 공격하는 자본가들은 전쟁과 혁명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부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자본가들은 오히려 그들의 사업으로 국가의 번영에 기여하는 동시에 수백만의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민족적인 산업자본가들에게 공격을 집중함에 있어 유대인과 사회주의자들은 공통분모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대신 단순한 일일 식량배급제 등, 삶의 필수품을 국가로부터 제공받는다는 공산주의 체제의 궁극적인 청사진을 받아들이도록 설득당한다면 국가를 지배하는 관료층은 마치 노예를 부리는 농장의 주인처럼, 또한 지금 러시아에서처럼, 그들의 근로자들에게 그 어떤 열악한 조건이나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의지대로 강요할 수 있게 된다... 

 

유대인들은 물론 그 관료지배층의 지위를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민족사이에 존재하는 일체감과 단결력으로 그들은 빠른 속도로 고위요직들을 독점할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났고 지금 독일에서도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세계는 결국 유대인이 지배하게 될 것이란 관념은 랍비적 유대교(Rabbinical Judaism)의 가장 핵심적인 근간을 이룬다... 유대민족의 종교는 오늘날 구약성경보다는 탈무드를 더욱 신봉한다. 나는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이며 반국가적인 이 탈무드를 맹신하는 유대인들이 사회의 정직한 구성원들로서 이 나라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직접, 간접적으로 그들이 사는 나라에 불안과 소요와 혁명을 불러왔다. 그들은 가장 사악하고 교활한 술수로 그들을 받아준 동료 인간들에게 파멸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유대인에 대한 원망과 증오의 원인은 인간의 도덕적 행실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할 세계관과 인간관을 간과하는 유대교의 성격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유대인이 주도하는 세계혁명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주의 세상도, 공산주의 세상도 아니며 현재의 경제체제를 변혁시키는 것도 아니며 세상의 물질적인 멸망도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도덕적이며 영적인 혁명이다. 그들은 그들이 조성하는 가치관과 관념의 무정부주의적 혼란상태를 통해 1900년 동안 이 세계를 지탱해온 토대를 전복하고 그 모든 명예로운 전통을 짓밟으며,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기독교적인 이상향을 말살하려고 하는 것이다.” (Secret Societies and Subversive Movements, 1924)

 

Rabbi Lewis Browne  유대인 작가 (美)
“우리는 젠타일(Gentile, 비유대인)들을 재창조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혁명가들이 지금 러시아에서 수행하고 있는 과업이기도 하다.” (How Odd of God)

 

“유대인의 역사책은 칼 맑스라는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과 정신은 백날 입으로만 떠드는 자들보더 훨씬 더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에 신실한 것이었다.” (Stranger Than Fiction)

 

 

 

미국 공산당 (Communist Party of USA, CPUSA)


"1921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유대인이 차지했던 비율은 33.5퍼센트였으며 평당원 수준에서는 40퍼센트를 차지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여러 민족 출신들 중에서도 매년 탈당자보다 입당자의 수가 많았던 민족은 유대인 뿐이었다...” (H. Klehr, Communist Cadre, 1978)

 

“1950년대를 거쳐 5만명에 달했던 미국 공산당에서 유대인은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으며 이들에 있어 입당자의 숫자는 항상 탈당자의 숫자를 상회했다. 다른 민족출신들에 비해 인구비례상 유대인의 공산당 입당율은 10배가 넘는 것이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비슷한 숫자의 유대인 사회주의자 및 무정부주의자들과 같은 좌경급진주의자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Nathan Glazer, The New Left and the Jews, 1969)

 

1920년대 유럽과 미국의 유대인들, 특히 급진적 정치운동에 가담하고 있었던 유대계 지식인들은 소련을 인류역사 초유의 이상적, 진보적 사회로 선전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소련을 “어둠으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홀로 외로운 빛을 발하고 있는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묘사하는 것은 가장 상투적인 표현법이었다. 1934년 미국의 한 유대인 공산주의자는 그가 지은 詩에서 소련을 “러시아에 내려온 천국”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독일이 국가사회주의로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려했듯이, 이들 유대인들에 있어 소련은 국제사회주의야말로 반유대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입증해 주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따라서 이 당시 대다수의 유대인들에게 공산주의는 ‘유대인에게 이로운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1939년 8월, 독일과 소련의 불가침조약으로부터 1941년 6월 독-소 개전 전까지의 기간만 제외하고 서구의 유대인들은 전후에도 소련과 폴란드를 비롯한 동구공산권의 존재가 유대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1920년대 초반부터 미국 공산당은 소련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미국 내에서 소련의 입장을 옹호하고 소련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지하에서는 소련 비밀경찰의 지령에 따라 미국에 대한 간첩임무도 수행했다. (1947년 소련에 원자폭탄 비밀을 넘긴죄로 처형된 유대인 로젠버그 부부 역시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이 심어놓은 공산주의 지하세포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으며 1947년 스미스 법안에 의해 기소된 공안사범들 가운데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유대인의 운동이었던 공산주의를 만인 보편적인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미국 공산당의 유대인 수뇌부는 간부들을 상대로는 그들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개명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고 외부의 눈에 띄는 직위에는 항상 지방출신의 비유대계 인물을 배치했다. 이 때문에 자신이 본질적으로는 유대인 정당과 다를바 없는 조직의 포장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은 비유대계 공산주의자들의 탈당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Source: H. Klehr, Communist Cadre, 1978; N. Glazer, The New Left and the Jews, 1969; K. Kann, Joe Rapoport, 1981; Klehr, Haynes & Firsov, The Secret World of American Communism, 1995; A. Liebman, Jews and the Left, 1979)

 

 

(원자탄 비밀을 소련에 넘긴 유태인 로젠버그 부부)

 

 

(CPUSA 당원, 릴리언 헬만, 유태인)

 

 

(유태인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 CPUSA 비밀당원, 1930-1960년대, 헐리우드는 용공세력의 온상이었다)

 

 

(아서 밀러, 유태인 작가, CPUSA 당원)

 

 

(록펠러가의 家臣 해리 홉킨스, FDR 측근으로 친소련 정책 주도, CPUSA 물주)

 

 

(용공 언론인, 월터 리프먼, 유태인)

 

 

(UN헌장 성안자, 얄타회담 주도, 소련 스파이 알저 히스)

 

 

(국무장관 딘 애치슨: 애치슨과 알저 히스는 열렬한 시온주의자였던 유태인 대법원 판사 브랜다이스와 프랑크푸터의 protege였다. FDR 행정부가 1933년 소련을 공식 승인하기전까지 브랜다이스의 주선으로 워싱턴 소련대표부의 수석법률고문으로 일했던 애치슨은 히스와 함께 금융재벌 시온주의자들이 미국 연방정부에 심어놓은 용공인맥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한국동란 발발시 美국무장관)

 

 

 

(유태인들이 요직을 독식했던 FDR 행정부 출범과 함께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던 용공세력 - 실은 금융자본과 맑시즘으로 무장한 시온주의 세력 - 의 미국 정부 침투를 국민들에게 경고했던 미국 애국자 조셉 맥카시 상원의원: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흑막을 폭로하려다 의문사 당한 제임스 포레스털 해군성 장관과 비슷하게 그 역시 불투명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았다. 오늘날 미국 유태인들에게 그는 히틀러 못지않은 증오의 대상이다)

 

 

('맥카시 선풍' 당시 용공세력을 조사하는 닉슨)

"The only two non-Jews in the communist conspiracy were Chambers and Hiss... Every other one was a Jew and it raised hell with us." (Statement of President Richard Nixon in 1971, as recorded at the White House on tape and released by the National Archives in 1999; quote in New York Times, October 7, 1999)

 

 

 

Henry Waton  유대인 공산주의 이론가 (美)


“공산주의는 인류의 미래이다. 만약 하나의 진정한 사회학의 경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오직 유대인만이 이런 책을 쓸 수 있다... 유대인은 지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뛰어난 문화를 가진 민족이다... 유대인에게는 전 인류를 복속시키고 이 세계의 주인이 될 권리가 있다. 유대인은 전 세계의 군주가 되어 이 세상의 모든 국가들을 그들의 통치하에 둘 것이다. 물질적인 영향력이나 폭력이 아니라 빛과 지식, 이해, 인류애, 평화, 정의, 그리고 진보를 통해서... 

 

아리안 인종은 오직 유대인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세상을 개선하고 아름답게 할 것이다. 그 틀이란 바로 공산주의와 인터내셔널리즘이다...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는 러시아에서처럼 혁명을 통해 아래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고 미국에서 그러할 것이듯 위로부터 이루어질 수도 있다... 유대인은 이 세상을 상속받을 것이며 그 외의 모든 민족과 인종은 아예 지상에서 사라지거나 유대인이 될 것이다.” (A Program for the Jews, 1939)

 

 

Reinhold Niebur  유대교 학자 (美)


“마르크스주의는 유대교의 신이 내린 계시의 현대적 발현이다.” (In a Lecture before Jewish Institute of Religion, New York, October 3, 1934)

 

 

(불가리아 유태인 재벌2세 / 맑스-레닌주의자 라코프스키)

 

 

Antonio Garcia de Tuy  스페인 성직자


“작금의 스페인 내전은 적그리스도, 유대교가 그리스도와 카톨릭 교회를 말살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가장 무자비한 전쟁이다. 인류의 역사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는 이때 국제유대인은 두 개의 막강한 군대를 이용한다. 첫 번째는 비밀에 쌓여있는 프리메이슨이며 두 번째는 손이 피로 물든 공산주의자들과 이들과 연계되어 있는 각종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혁명세력들이다.” (Revue Internationale des Societes secretes, July 15, 1937)

 

    * * *

 

“스페인 내전 동안 공화파의 붉은여단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의 숫자는 총 85,940명에 달했다. 여기에는 5,255명의 신부, 2,492명의 수도사, 283명의 수녀, 249명의 나이어린 수사, 그리고 12명의 주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게 좌익폭도들의 만행은 새디스트적인 잔혹성을 동반했다. 나발모랄 관구의 한 신부는 옷이 벗겨진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채찍질을 당했다. 또 다른 신부는 나무 십자가에 묶힌채 가시면류관을 쓰고 식초를 마시도록 강요받았다. 현장에 모인 폭도들은 그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예수의 이름을 모독하라, 그럼 우리가 너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주겠다.” 이에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당신들을 용서하며, 당신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자 술에 만취한 한 폭도가 신부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야엔의 주교와 그의 여동생은 마드리드 외곽에 모여든 2천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환호성을 지르는 좌익폭도에게 총살당했다. 그들을 직접 처분하는 “영광”은 광신적인 반기독교주의자로 소문난 여류 혁명가이자 유대인인 라 페코사의 몫이었다. 마드리드의 암파로 수녀원을 점거한 폭도들은 그들이 사로잡은 수녀들에게 모종의 성행위를 강요했다가 이를 거부당하자 그 자리에서 그들을 쏴죽였고 나머지는 집단적으로 욕보였다. 쎄르네라에서는 폭도들이 한 수도사의 귀에 묵주알을 넣고 뇌를 뚫을 때까지 꼬챙이로 밀어넣어 죽이는 일이 벌어졌고 다수의 신부들이 산채로 불태워졌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무덤에서 파헤쳐진 수녀들의 시신 19구가 성당의 정문 계단 앞에 전시되었으며 다른 남녀 성직자들은 자신의 무덤을 파도록 강요당한 뒤 생매장 당했다. 또 일부는 투우장에 던져져 소떼들에 의해 처참히 살해되었다. 성직자인 두 아들을 둔 한 여성은 그녀의 목에 십자가를 쑤셔넣은 폭도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와함께 어린이들을 포함, 모두 800명의 무고한 양민들이 폐광에 생매장되었다. 붉은 폭도들은 양민을 학살할 때 항상 “자유를 위해 교회를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프랑스대혁명의 참상도 아마 이것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학살과 만행과 테러의 배후에는 그 누구도 아닌 에르노 게로가 버티고 있었다. 그는 1919년 벨라 쿤의 공산정권이 한동안 헝가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시절 스페인에서와 비슷한 적색테러를 주도한 유대인이었다. 그의 활약상은 공산주의와 유대교 안에 존재하는 기독교에 대한 증오심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아니할 수 없다. 중산층과 함께 스페인의 노동자계층은 소련 초창기의 볼셰비키 살인자들을 본떠 만들어진 비밀경찰에 의해 가장 많은 피를 흘렸다. 마드리드에만도 26개의 분소가 있었으며 이들의 공포정치는 3년 뒤 내셔널리스트/팔랑헤 당이 승리함으로서 스페인에 다시 평화가 찾아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Dr. E.R. Fields, Reds Sought to Kill All the Christians of Spain, The Truth At Last, Issue No. 357)

 

 

(유태인 에르노 게로)

 

 

“특히 스페인 내전과 관련하여, 영국 대중은 소위 ‘주류’라는 유태인 언론사들의 왜곡보도에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이들 언론은 프랑코에 대한 우호적인 소식은 모조리 억누르는 한편 그와 내셔널리스트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기사들은 발 벗고 보도했다. 그러나 같은 언론에 따르면 유대인 맑시스트 인간백정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영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이들의 피비린내나는 활약상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했고 스페인을 살육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는 광란의 유대 볼셰비즘을 “민주주의”로 포장하여 선전해주었다. 러시아는 소수 유대인들의 희생양이라는 독일 총통 히틀러의 발언을 보도한 1937년 9월14일자 News Chronicle 기사에는 신기하게도 “유대인”이라는 낱말이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게 인쇄되어 있다. 비록 같은 신문의 다른 기사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뚜렷하게 인쇄되어 있었음에도 말이다. 

 

영국 파시스트 연맹에 보낸 1937년 6월26일자 서한에서 프랑코 장군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본인은 여러분의 고귀한 조국과 동포를 우롱하는 유대인 언론의 교묘한 프로파간다들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물론 영국 국민들이 스페인 내전의 진정한 본질에 눈을 뜨게 될까봐 두려워 합니다. 그럼 이 내전의 본질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국제유대인의 마수로부터 기독교문명을 수호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Arnold Leese, Jewish Press Control, 1939)

 

 

 

Adrien Arcand  캐나다 언론인, 정치가


“공산주의는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유대인의 음모라는 것을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물론 유대인에게 공산주의는 “지상낙원”의 약속이다. 그들은 공산주의가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세계의 적화를 위해 광분한다. 공산주의는 유대인이 발명하고 유대인이 주도하며 유대인이 확산시키고 유대인이 돈을 대는 오직 유대인에게만 유익한 것이다. 

 

바로 이런 진실을 당당하게 공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이제것 세계 각지에서 그 세를 불려온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저 변증론자를 자처하는 좌파 지식인들이 쳐놓은 연막과 싸웠을 뿐 실제로 공산주의로 득을 보는 배후 조종세력인 유대인들에 제대로 맞서본 일이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과 비유대인들은 유대인을, 그리고 진실을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또한 유대인들이 퍼뜨리는 패러독스적 구호들에 마비되어 있다... 공산주의는 어떤 정치, 경제적 교조나 원칙의 묶음이 아니다. 공산주의는 오직 추잡한 범죄음모일 뿐이다. 공산주의는 신과 인류에 대한 범죄이다...” (Le Gogul, November 23, 1937)

 

Stephen S. Wise  미국 수석랍비
“어떤 이는 맑시즘이라 부르지만 나는 유대교(Judaism)라고 부른다.” (Jewish Chronicle, London, November 24, 1926)

 

 

JEWISH LIFE  뉴욕 유대계 잡지


“유대교와 일상의 모든 면을 감안하더라도 오늘날 소련에서 유대인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큰 규모의 유대인 인구가 살고 있음에도 소련은, 그것이 종교적인 것이든, 정치, 사회적인 것이든,  유대인 문제가 가장 시급한 국가적 이슈로 대두되지 않는 지상의 유일한 국가이다. 바로 서쪽 국경을 넘어 폴란드에 가보면 상황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나치독일이나 병합된 오스트리아 등의 파시스트 국가들에 비한다면 U.S.S.R.은 가히 유대민족의 유토피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사회주의만이 유대민족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July, 1938)

 

 

('크레믈린의 늑대' 유태인 라자 카가노비치, 스탈린 처남)

 

 

GIORNALE D'ITALIA  이탈리아 일간지


“볼셰비키는 국가의 산업과 광산을 노동자들에게 선물하고 그들을 ‘나라의 주인들’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소위 이 ‘사회주의화 시대’에서와 같이 노동자계층이 빈곤과 기아에 허덕였던 적도 없었다. 이전의 지배계급은 신흥 부르조아지 관료계층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100퍼센트 유대인으로 구성되어있다. 실제로 혁명이 일어난 뒤 러시아를 떠난 유대인 자본가들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러시아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은 스탈린의 최측근 조언자인 유대인 라자 카가노비치(Lazare Kaganovich)의 각별한 관심아래 특별한 대접을 받고 산다. 절대다수의 노동자 계층이 ‘경제의 주체’라는 허구적인 거짓말로 사탕발림을 당하는 동안 큰 산업체나 공장, 군수물자, 大小 돈벌이 사업들은 사실상 유대인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유대인 당간부들의 가족은 값비싼 차와 시골별장을 소유하며 기후가 좋은 크리미아와 코카서스에 있는 호사스런 해변휴양지에서 겨울을 난다. 그들의 부인들은 값비싼 아스트라칸 코트를 입고 파리에서 들여온 의상과 보석, 금팔찌, 금반지 등으로 몸을 치장한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혁명으로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는 노동자들은 비참한 현실속에서 연명한다. 볼셰비키들은 러시아 인민에게 완전한 자유와 자율을 약속했었다... 

 

그럼 우크라이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한 번 보자. 이 지역을 통치하는 권력기관은 거의 모두 유대인이나 모스크바에서 내려온 스탈린의 주구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수탈과 부패, 그리고 농업에 관해서라면 눈꼽만큼의 지식도 없는 무능 탓으로 과거 비옥하기로 유명했던 이 지역의 주민들은 오늘날 거의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February 17, 1938)

 

 

 

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페인 총통 (1939-1975)


스페인 내전에서 내셔널리스트 세력을 승리로 이끈 프랑코는 1939년 5월19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전승축하 기념식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잠시라도 안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동안 스페인 정복을 획책해온 대자본과 공산주의라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닌 이 유대적인 괴수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Nehemiah Robinson, The Spain of Franco and its Policies Toward The Jews, 1953)

 

 

아돌프 히틀러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당 당수


“11월(1918년), 수병(水兵)들이 트럭을 타고 몰려와 우리에게 폭동에 가담할 것을 촉구했다. 소위 ‘우리 조국의 자유와 아름다움, 그리고 존엄성’을 위한 이 투쟁에 나설 것을 선동한 주동자들은 유대인 청년들이었다. 이들 중에서 전선에 나가 싸웠던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독일혁명을 교사하고 배후에서 끈을 잡아당기는 자들은 다름아닌 국제유대인이다... 혁명은 안정과 질서를 원하는 세력이 아닌, 폭동과 강도, 분탕질을 꿈꾸는 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나는 차차 사민주의 계열의 언론사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조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만드는 신문들 중에 진정 민족주의적이라 할 만한 신문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손에 닿는 대로 사민주의 팜플렛들을 모아 저자들의 이름을 올려다 보았다. 그들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대중의 무지함과 우리 지도층의 안일함 탓으로 사람들은 유대인의 거짓말 공세에 쉽사리 농락당한다... 

 

나는 1919년에 이르러 유대인 칼 맑스의 이론과 그의 진정한 의도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가 되서야 나는 그의 ‘자본론’과 함께 사민주의가 어떻게 국가의 경제를 파괴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사민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제자본의 독점과 지배를 불러올 토양을 마련하는데 있다... 실제로 국가의 은인이 될 수도 있는 노동조합을 이용해 유대인들은 비유대인 국가의 경제를 파괴한다... 

 

러시아를 손아귀에 넣은 국제유대인은 독일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독일은 러시아와 비슷한 전철을 밟게될 포식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서방의 소위 민주주의란 것은 맑시즘의 바로 전 단계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없이 맑시즘적 세계의 도래는 불가능하다... 맑시즘이란 신흥종교의 도움으로 유대인이 만약 세상의 만국을 정복한다면 그들의 왕관은 인류의 무덤 앞에 바쳐지는 조화가 될 것이다...” (Mein Kampf)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