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론, 현대 과학 설명
이기론은 성리학의 핵심 이론으로,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통해 우주와 인간의 존재를 설명
이와 기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이를 통해 자연 현상과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시도
현대 과학에서는 이와 기를 물질과 에너지, 또는 원리, 법칙과 같은 개념으로 해석
이기론의 핵심 개념:
이(理):
만물의 근본적인 원리 또는 법칙. 무형, 무위의 특성
기(氣):
만물의 실제적인 모습이나 존재. 유형, 유위의 특성
현대 과학과의 연결:
이(理):
현대 과학에서는 우주의 기본 법칙이나 원리, 즉 물리 법칙, 화학 법칙, 생물 법칙 등으로 해석
기(氣):
현대 과학에서는 물질, 에너지, 정보 등으로 해석
예시:
물리학: 우주의 기본 법칙(이)에 따라 물질(기)이 운동하고 반응
화학: 원자(기)의 배열(이)에 따라 분자가 형성
생물학: 유전자(이)에 따라 생물의 특성(기)이 결정
이기론과 현대 과학의 차이점:
설명 대상:
이기론은 우주와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는 반면, 현대 과학은 자연 현상을 설명
설명 방식:
이기론은 도덕적, 철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반면, 현대 과학은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설명
이기론은 우주와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는 성리학의 중요한 이론
현대 과학에서는 이와 기를 물질, 에너지, 원리, 법칙 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기론의 핵심 개념은 현대 과학의 다양한 분야와 연결될 수 있다.
理와 氣
이기론 현대 과학 설명
조선시대 유학(儒學)의 중심은 성리학(性理學)이었고 성리학의 중심에는 이기론(理氣論)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선 성리학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리학(性理學)이란 유교에서 고대(古代) 진시황제(秦始皇帝)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 의해 유교의 경전이 소실되거나 자취를 감춘 후 다시 유가(儒家)들의 노력으로 숨어 있는 경전(經典)들을 찾아 한자(漢字)의 한자(一字) 한자(一字)의 뜻을 파악하여 번역하는 훈고학(訓詁學)적 유교(儒敎)룰 거쳐 송대(宋代)에 송나라의 정호(程顥), 정이(程頤)형제와 주희(朱熹)에 의하여 집대성된 신유학(新儒學)과 도교(道敎)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개념을 받아들여 성리학(性理學)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리학을 주자학(朱子學), 정주학(程朱學), 정주 성리학(程朱性理學), 정주이학(程朱理學) 또는 송학(宋學), 이학(理學) 또는 도학(道學)이라고도 부릅니다. 참 많은 이름으로도 부릅니다.
성리(性理)를 좀 더 간단히 말하면, 하늘의 이치를 천리(天理)라 하고 땅의 이치를 지리(地理)라고 하는 반면에 인간의 이치를 성리(性理)라고 합니다. 성리학이란 어원은 주자의 성즉리(性卽理)에서 비롯되었으며 이(理)와 기(氣)를 토대로 우주의 생성과 구조, 즉 우주의 근원과 이치, 인간 심성의 구조와 심성향상 그리고 자기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조선의 성리학은 고려(高麗)말 안향(安珦)에 의해 수입되어 안향, 백이정, 권보, 우탁, 이제현 등으로 이어지다가 이곡, 이색 부자(父子)와 정몽주, 정도전, 이숭인 등으로 이어져 조선 성리학의 토대가 이루진 후 이 언적(李 彦迪), 이 황(李 滉), 이 이(李 珥) 그리고 기 대승(奇 大升) 등에 의해 꽃을 피웁니다.
조선에 들어온 이후 사람의 이성(理性)을 강조하는 주리설(主理說)과 사람의 감성을 강조하는 주기설(主氣說)로 발전하였고,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갈라져 심한 논쟁을 벌였던 것입니다. 주리설은 영남지방의 이 언적, 이 황(李 滉), 조식, 유 성룡, 김 성일 등에 의해 발전 계승되어 영남학파(嶺南學派)를 형성하였고, 주기설은 서 경덕, 기 대승, 성혼, 이이(李 珥) 등에 의해 발전되어 기호학파(畿湖學派)를 형성하였던 것입니다. 특히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은 이황(李 滉)이 강하게 주장하였고,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은 이이(李 珥)와 기 대승(奇 大升)이 강하게 주장하여 두 개의 이론이 조선 중기와 후기 사회의 논쟁의 중심이었고, 이로 인해 분별없는 유림(儒林)들에 의해 붕당(朋黨)이 발생하게 되어 나라를 혼란으로 빠져들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학문이 학문으로 계승 발전된 것이 아니라 지방색과 학연을 중심으로 발전되면서 붕당을 형성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나라든 붕당은 있는 것입니다. 즉 이념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정당을 만들어 정권(政權)을 잡아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붕당은 특정지역과 특정인의 학연을 중심으로 자기들의 생각을 펼쳐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려는 편협한 생각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이(理)는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는, 요즘의 용어로 바꾸면 원리(原理)이고 기(氣)는 운동성이 있는 힘(에너지)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현대의 과학적 용어로는 양자(陽子)와 전자(電子)로 대치(代置)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理)는 양자(陽子)에 해당되고 기(氣)는 전자(電子)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양자는 움직임이 없으나 전자는 운동을 합니다. 따라서 이와 기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원자가 있으면 양자와 전자가 존재 하듯이 이기는 일원(一元)도 아니고 이원(二元)도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굳이 일원론과 이원론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를 받는다면 일원론(一元論)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석에는 남극과 북극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대자석에서 북극을 절단하면 남극이 나타나지 않고 또 다시 남극과 북극이 생기듯이 이(理와) 기(氣)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이가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연구하는 이기일원론자도 이기이원론자도 이와 기는 불상리(不相離), 불상잡(不相雜) 즉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섞이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원이 있고 이원이 있겠습니까?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었던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에는 이기론(理氣論)에 따른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논하는 것이 최고의 학문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사림(士林)들이 이 논쟁에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해 학문 자체가 너무 편협해졌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은 이치를 어디에 보관하는가
현대 과학은 날로 고차원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너무나 고차원적으로 변해버린 나머지, 이제는 과학이 철학 같고 철학이 과학 같다. 철학과 사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지고, 과학적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뜬구름 잡는 소리로 느껴진다. 양자역학, 파동함수, 불확정성 원리, 평행우주론 등등... 별의별 이론들이 나온다. 나도 솔직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고양이가 살아 있다 죽어 있고,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보기 전엔 알 수 없고, 보는 순간 뭐가 붕괴하기도 하고 어디로 진입하기도 하고...
그중에서 가장 백미는 바로 이것이다.
"정보는 사라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아직도 블랙홀 앞에 선 물리학자들의 가슴을 무겁게 만든다.
이 문장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길이에 비해 묵직하다. 이 문장은 이렇게 바꿔서 표현할 수 있다.
"블랙홀은 우주의 질서를 붕괴시킬 수 있는가."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중력의 괴물이다. 빛도, 공간도 그 앞에서는 무력하며,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는 그 순간, 그 안쪽은 관측조차 불가능하다. 여기서 빨아들이는 것은 단순한 물질만이 아니다. 블랙홀은, 그 물질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이치'까지 함께 빨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첫 번째 전제이다.
두 번째. 그런데,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임과 동시에 서서히 사라진다. 이는 마치 수영장의 소금물이 점차 말라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증발되듯이, 블랙홀은 점차 사라진다. 이것이 두 번째 전제이다.
마지막. 그렇다면 블랙홀은 흡수한 '이치'를 어디에 숨겨놓는 것일까? 수영장의 물이 소금물이라면, 증발하고 남은 소금이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블랙홀이 증발한 자리에 소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이치는 사라지게 된다. 물론, 정보가 소금이 아니라 알코올이었을 수도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정보가 어딘가에 형태를 달리해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전히,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이 블랙홀이 우주의 질서를 붕괴시키는 과정이며, 정보는 파괴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양자역학과,
거대한 중력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고 주장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이기론의 대답 —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氣)는 사라져도, 이(理)는 남는다."
성리학의 이기론은 세계를 이루는 두 축 — '이'와 '기' — 에 대해 말한다. '기'는 물질과 형상이고, '이'는 원리이자 의미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는, 물질이 흘러도 의미는 남는다는 신념에 가깝다.
'기'는 형태와 구체성을 지니며 변하고 사라지지만, '이'는 질서와 원리로서 그 너머에 남는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블랙홀이 물질을 삼킨다 해도, 그 안의 '이', 즉 정보는 남아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성리학은 방정식과 망원경 없이 그 질문에 도달했고, 이제 과학이 대답할 차례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직관을 품은 채 물리학이 블랙홀 정보 역설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과학은 정말로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블랙홀은 그조차 지워버리는가?
과연, 성리학의 직관은 현대과학의 도구 없이 우주의 이론에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었을까?
아래는 블랙홀 정보 역설에 대한 이기론의 질문과, 현대과학의 대답이다.
이기론에 대답하는 과학적 상상력
1. 사건의 지평선 — 이는 기의 외부에 남아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블랙홀의 표면, 즉 사건의 지평선에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고 본다. 쉴 새 없이 물질이 끌려가고 있는 그 혼란스러운 표면에 정보가 새겨져 있다는 뜻이다. 수영장으로 예를 들면, 표면에 둥둥 떠 있는데, 너무 넓게 퍼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걸 '홀로그래픽 원리'라고 한다.
성리학적으로 비유한다면 이는 사라지지 않고 기의 외부에 남아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2. 호킹 복사 — 이는 터지는 수족관의 물처럼 흘러나왔다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증발할 수 있다고 했다. 이때 방출되는 입자 흐름이 바로 '호킹 복사'다. 처음엔 이 흐름이 완전히 무작위라고 여겨졌지만, 후에 과학자들은 그 속에 정보가 암호처럼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보가 호킹 복사에 섞여서 블랙홀로부터 빠져나갔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집이 무너지는 순간, 거대한 수족관에서 터져 흘러나오는 물들처럼.
이기론의 관점에선, 이는 여전히 통하지만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과 맞닿아 있다.
3. 얽힘과 다세계 — 이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단지 저 건너편에
양자역학은 '얽힘'이라는 현상을 설명한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입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떤 이론은, 정보가 이런 방식으로 블랙홀 밖 어딘가에 퍼져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거울처럼, 빨려 들어간 정보가 거울 너머로 자신을 비추면서 형체는 사라지지만 흔적을 남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세계 해석'은, 우주가 갈라지며 정보가 반대편 세계에 남아 있다고 상상한다.
이기론적으로 보자면, 이는 구조가 흩어지더라도 이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과 통한다.
4. 다중우주 — 이는 남아있다. 다른 곳에 여전히
정보는 이 우주 안이 아니라, 다른 차원 혹은 다중우주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수학적으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성리학적으로 보면, 기는 이곳에서 사라져도, 이는 더 큰 구조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말이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과학 이론들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정보는 형태를 잃었을지 몰라도, 어딘가에는 남아 있다. 그것이 경계이든, 암호이든, 얽힘이든, 혹은 다른 우주이든. 이기론은 이런 믿음을 오래전부터 다른 언어로 말해왔다. 기는 흐르되, 이는 통한다. 이 말은, 정보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단지 우리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믿음과 이어진다.
성리학의 귀환 — 질서의 철학으로
우리 시대의 성리학이 받는 취급에 동정심을 느꼈다. 요즘 성리학은 꼰대와 반동, 교조주의의 대명사이다. 유교사상, 남녀차별,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옹호...
그러나 성리학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었다. 성리학은 인간이라는 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리고, 직관만으로도 놀라울 정도로 높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단지, 그 망원경을 너무 관리하다 보니 망원경 자체가 성리학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보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표면이든, 증발하면서 탈출하든, 거울 너머에 있든, 우리가 잠시 놓쳐버린 이치는 유유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물리학에 대해서 식견이 짧다. 성리학에 대해서도 잘은 알지 못한다.
다만, 성리학이 우주를 탐구하는 과학의 고민에, 옆에서 살짝 귀띔을 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