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 장터, 신경림 [현대시]
목계 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개관
- 성격 : 비유적, 상징적, 독백적, 향토적
- 표현
* 4음보의 안정된 율격과 일정한 어미의 반복
* 비유적이고 향토적 시어의 사용과 독백적 어조
* '하고', '하네', '라네' 등의 어미가 반복적으로 구사되어 생동감 있는 시상이 전개됨.
* 방랑(구름, 바람, 잔바람, 방물장수, 떠돌이)과 정착(들꽃, 잔돌)의 심상이 교체되어 나타남.
- 시적 자아의 삶의 자세 : 방랑과 정착의 삶의 욕구가 함께 하면서 그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받아들임.
- 주제 ⇒ 떠돌이 민중의 삶의 애환과 생명력
중요 시어 및 시구
* 목계장터 →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서울로 가는 길목의 하나로 큰 시장이 서기도 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농촌 공동체로서 민중들의 삶의 애환과 숱한 사연이 배어 있는 곳이다. 정착하거나 안주할 곳이 아니라 잠깐 쉬어 가는 곳이지만, 넉넉한 인정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공간이다.
* 구름, 바람, 잔 바람, 방물장수 → 떠돌이의 삶, 방랑, 유랑, 초연한 삶, 자유로움 등의 이미지로 제시됨. 세속적인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자의 자유로움과 정신적 주유(周遊)를 의미함.
* 들꽃, 잔돌 앉아쉬는 떠돌이 → 한 곳에 정착하여 삶을 견뎌내는(인내) 것들.
*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 전설을 배경으로 하는 시어가 사용되어 이해에 어려움을 줌. (청룡과 흑룡은 비를 몰고 오는 구름의 형상을 상징한 것)
*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서울에서 목계 나루까지 뱃길로 사흘이 걸림을 알 수 있음. 전통적 민요 리듬을 깔고 있는 이 시의 특성상 4 음보의 시적 운율을 위해 축약한 것임.
* 산서리 맵차거든, 물여울 모질거든 → 모진 시련이 닥치거든(민중의 삶의 애환)
*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 풍성하고 넉넉한 인심을 의미
*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 →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삶의 틀이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고달픔을 잊어 보고자 하는 시적 자아의 의지를 표상함.
* 천치 → 순진무구하면서도 탈세속적인 삶을 사는 사람
* 마지막 2행 → 차라리 천치가 되어 짐부리고 앉아 쉬고 싶지만, 몸은 끝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한 인식이 바탕이 된 운명의 소리
시상의 흐름
- 1 ∼ 7행 : 방랑의 삶과 서러움
- 8∼14행 : 정착의 삶과 고달픔
- 15∼16행: 운명과 존재성 제시(떠나고 머무르는 삶)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신경림의 떠돌이 장사꾼들의 삶의 공간인 '목계 장터'를 중심 제재로 하여 민중들(떠돌이 장사꾼들)의 삶과 애환을 토속적 언어로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이 시는 장돌뱅이의 삶을 형상화한 것으로, 장돌뱅이의 삶은 한 군데 정착해서 평범한 일상을 꾸리는 삶과는 대조적으로, 자유, 구속으로부터의 탈피, 애환, 방랑, 민중적 삶의 표상 등으로 인식된다. 이 장돌뱅이의 삶을 통해 민중의 애환이나 생명력을 그렸다고 볼 수 있는데, 시적 자아의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초연의 삶의 자세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3년에 한 번쯤은 천치의 삶으로, 순수 무구하고 탈세속적인 인간 본연의 돌아와도 좋지 않겠는가. 그 달관되고 초연한 자세를 시인은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계산적이고 실리를 정확히 따지는 이 번잡한 삶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하늘, 땅, 산으로 표상되는 자연이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작품은 내용상 작게는 네 단락 크게는 세 단락으로 나뉘며 그 내용도 비교적 단순하다. 첫째 부분(1∼7행)은 방랑의 삶을 보여주는 곳으로 '구름이나 바람', '방물장수'를 통해 이러한 정서를 비유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둘째 부분(8∼14)은 정착의 삶을 보여주는 곳으로 '들꽃과 잔돌'로써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방랑과 정착의 삶이 셋째 부분에 와서는 집약적으로 재차 반복되고 있다. 시적 자아는 자신에게 '목계장터'에서 '짐부리고 앉아 쉬는 천치', 즉 '방물 장수'가 되어 그 모든 변화와 그 모든 삶의 애환을 보고 듣는 존재가 되라고 하는 운명의 소리를 듣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시인 자신의 삶의 행로, 그리고 민중들의 삶과 밀착되려고 애써 온 그의 시와 일치하고 있다. 그의 마음은 '산 서리 맵차'고 '물여울 모진' 이 세상에서 차라리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고 싶지만, 몸은 끝없이 떠돌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 작품은 4 음보의 가락을 도입한 민요와 유사한 형식의 서정시이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와 같은 대목도 기본적으로 토속적인 묘사이며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한다. 나아가 민요 일반이 지닌 지나친 단순화와 틀에 박힌 옹색한 형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쉽사리 전통적인 흐름을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시의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다. 이 시에서 사용되는 어휘 역시 시 안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인 방물장수의 소박하고 단순하며 구수한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힘겹게 그날을 버티어내는 이 땅 민중의 생활 감정을 물씬 풍겨준다. 그리고 민중의 서로 다른 지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곧 바람과 구름의 이미지에 기대어 토로된 방랑에의 충동과 들꽃과 잔돌에서 볼 수 있는 정착코자 하는 욕구가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누군들 오늘날의 농촌에서 살고 싶어할 것이며, 누군들 이러한 농촌임에도 쉬 떠나고 싶어할 것인가. 신경림의 시는 이처럼 미묘한 농군의 섬세한 의식을 선명한 이미지로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시가 일군 새로운 텃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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