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운하, Panama Canal, 갑문식 운하, 파나막스, 미국의 세기
미국의 세기 연 파나마 운하 Panama Canal
중앙아메리카 파나마에 건설된 길이 약 82km의 운하로, 파나마 지협을 종단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다.
처음엔 프랑스가 시도…미국의 군사적 지원으로 파나마 독립시킨후 공사 개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가뜩이나 속도도 느린데 위 아래로 길쭉한 아메리카 대륙을 빙 돌아가야 하는 화물선의 운항시간 단축에 큰 획을 그은 운하. 다만 현대의 배들은 크기가 워낙 거대해져 통과 선박 크기에 제한이 있다.
파나막스니 포스트 파나막스니 하는 선박의 사이즈별 구분은 다 이 운하의 항행 가능 폭을 상정해 두고 만든 것이다. 그 밖에 다른 기준이 되는 운하로는 수에즈 운하가 있다. 이 쪽의 명칭은 수에즈막스. 역사적으로 미국의 세계 안보의 거점으로 활용되어왔다.
운하 서쪽에는 태평양, 동쪽에는 대서양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지도에서 보다시피 지형이 좀 미묘한 관계로(북미와 남미가 역N자로 꺾여 만나는 지점이다.) 운하 서북쪽에 대서양(과 연결된 카리브해), 동남쪽에 태평양이 있다.
파나마 운하의 높이는 해수면보다 수십 미터 높다. 선박들은 도크에 들어온 뒤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도크로 올라가게 되고 운하 중간에 위치한 가툰 호수를 거쳐 다시 도크로 들어가 물을 빼 내려가며 계단식으로 운하를 통과하여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갑문 엘리베이터에 쓰이는 물은 가툰 호수에서 끌어 쓰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갑문식 운하를 만든 이유는 운하 중간에 산맥이 있어 수에즈 운하처럼 평탄한 운하를 파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통과속도가 느리다. 복잡한 갑문시설이 추가되며 운하의 각 지역에 수위를 조정하는 댐도 여러 곳에 설치해야 해서, 만일 댐이 무너지거나 폭파되면 수위조정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비유하자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 배가 운하를 지날 때는 예인선과 전동차들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운하를 모두 통과하는 데 8시간, 대기시간 등을 합치면 24~30시간 가량 걸린다.
비록 갑문식이라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20,000km 이상 삥 돌아서 최소 몇 주 이상을 가야되는 거리를 불과 하루면 건너갈 수 있게 되자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과 반대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이 이 운하를 이용하게 되었고, 파나마 운하는 건설비에 들어간 비용 이상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 운하 건설로 미합중국 해군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 우선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는 의의가 있다. 애초에 파나마 운하 자체가 미 해군의 신속한 전개를 목적으로 만든 거였다. 다만 운하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함선의 폭을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야만 했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함선의 크기나 배수량 면에서 약간 손해를 보긴 했지만, 그냥 맘 놓고 군함을 크게 설계를 못한 것뿐이지 전투력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며 영향을 받은 대상도 아이오와급 전함을 비롯한 일부 대형 전함과 항공모함으로 한정된다. 일단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면 전폭이 33미터로 제한되는데, 미 해군 최대의 전함인 아이오와급의 전폭은 32.97미터로 통과 가능하다. 하지만 폐기된 전함 계획인 몬태나급 전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를 포기하고 덩치를 키울 계획이었다. 그리고 현대의 항공모함, 특히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인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현대의 구축함이나 순양함은 무리 없이 통과가 가능. 그리고 확장공사로 이제 니미츠급도 지날 수 있게 됐다.
파나마 운하 지대
파나마 운하와 주변 8km 지역
The Star-Spangled Banner
면적
1,432km2
수도
발보아
통화
미국 달러, 파나마 발보아
언어
영어, 스페인어
파나마 운하 주변 8km 지역에 존재하던 미국의 조차지이다. 파나마의 대도시이던 파나마시티와 콜론은 파나마 운하 지대에서 제외되어 파나마의 영토로 남았다.
미국은 중남미의 세력 확장과 파나마의 전략적 위치를 고려해 파나마 운하를 착공하려 하였다. 미국은 1903년 1월 22일, 파나마를 영유하던 콜롬비아 측에 1000만 달러를 즉시 제공하고 연간 25만 달러 씩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파나마 운하 지대를 100년간 양도한다는 내용의 헤이-헤란 조약을 맺었지만 콜롬비아 상원이 이를 비준하지 않고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면서 무산되었다. 결국 미국은 파나마의 분리주의 세력에 접근했고, 파나마는 1903년 11월 3일 독립을 선언했다. 콜롬비아군은 당장 개입을 하려했으나 미 해군의 저지로 결국 파나마가 독립했다.
파나마 독립 이후인 1903년 11월 18일, 헤이-뷔노 바리야 조약이 미국과 파나마 양국 간에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1000만 달러를 파나마 측에 제공하고 파나마 운하를 무기한 임대했다. 이후 파나마 운하가 건축되었다.
파나마 운하 건설 이후 파나마 운하는 미국이 잘 써먹었다. 미국인들은 파나마 운하로 많이 이주하기도 했으며, 이들을 위한 인프라가 많이 세워졌다. 파나마 운하에는 미합중국 남부사령부(USSOUTHCOM)가 설치되기도 하여 미국의 군사적 요충지로도 쓰였다. 파나마는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였다.
파나마 내에서는 파나마 운하 지대를 반환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으며 파나마 운하 지대에 살던 파나마인들도 파나마로 돌아가길 원했다. 파나마 국기도 파나마 운하 내에서 게양이 금지되었다. 게다가 파나마 운하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은 "골드 롤"과 "실버 롤"로 분류되었는데, 골드 롤은 미국인 노동자들이었고, 실버 롤은 비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실버 롤 노동자들은 급여, 주택, 교육 측면에서 차별을 받았다. 결국 1959년 11월 3일 파나마 독립 기념일에 맞춰 파나마인들이 파나마 운하 지역으로 몰려가 반미 폭동을 일어켰다. 미국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진압했고 시위대 2명을 체포했으며, 9명이 사망했다. 1963년에는 존 F. 케네디가 파나마 운하에서 파나마 국기와 성조기를 둘 다 게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케네디가 사망하면서 파나마 운하 지대 주지사인 로버트 존 플레밍은 둘 다 게양하지 말라는 방침을 내렸다. 이에 미국인들은 성조기를 게양할 수 없다는 것에 반발했고 파나마 운하 지대의 발보아고등학교에 성조기를 단독으로 게양하자, 파나마인 학생들이 몰려가 파나마 국기를 게양하겠다고 요구했다. 당연히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충돌 속에서 파나마 국기가 찢어졌다. 결국 다시 폭동이 벌어졌다. 1964년 1월 9일의 일이었다. 이번엔 1959년 사건과 달리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사건이 번졌다. 미국 기업의 공장들을 불태우고, 5000명 정도의 시위대가 모였다고 한다. 결국 28명이 사망했고, 324명이 부상당했다.
이 사건으로 중국과 소련, 쿠바 같은 공산주의 국가는 물론, 영국과 프랑스 같은 전통적인 북대서양 조약 기구 소속 우방국과 베네수엘라, 브라질 같은 남미의 친미 국가들도 입을 모아 미국을 비난했다. 파나마 정부도 미국을 강력하게 비난했고, 1964년 1월 10일 미국과 단교했다. 결국 파나마 운하 지역 반환을 결정하게 되고, 1977년 9월 7일 토리호스-카터 조약을 맺었다. 1979년 10월 1일 파나마 운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파나마 측에 반환했다. 이 조약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가 자신의 공약으로(파나마 주둔 미군 철수 공약) 열성적으로 추진했다. 파나마에서는 이 조약 비준을 국민투표에 회부해 67%의 찬성(투표율 96%)을 얻어 조약을 비준했으며 미국에서는 상원에서 찬성 68 대 반대 32로 비준 동의에 필요한 2/3 찬성(67명 찬성)을 가까스로 넘어 비준되었다.
당시 미국은 몰랐던 사실로, 파나마 내 과격파들은 만약 이 조약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 운하 자체를 파괴해버릴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이는 파나마군의 장교로서 나중에 파나마의 실권자 자리에 오른 마누엘 노리에가가 세운 계획으로, 노리에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운하 주변 마을에 자기 심복들을 심어두고 폭약 등 사보타주에 필요한 장비를 운하 주변에 묻어두기까지 했다. 이 계획의 암호명은 "huele a quemado"(타는 냄새)였으며, 만약 조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파나마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작전 개시를 알리는 암구호가 송출되고, 노리에가의 부하들이 한밤중에 운하의 중요 시설을 모두 파괴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갑문을 모두 수리해도 운하를 다시 사용하려면 3년간에 걸쳐 빗물을 받아야 하는데다, 노리에가는 미국이 운하를 수리하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으며 미국을 상대로 베트남 전쟁 시즌 2에 가까운 정글 게릴라전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조약이 미국 상원을 통과한 것은 미국과 파나마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행운이었다.
1979년 10월 1일 파나마 운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파나마 측에 반환했으나 파나마인들은 운하 자체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1999년 12월 14일 파나마 운하 반환 협정을 맺고 그해 12월 31일 파나마 운하를 반환했다. 1914년에 완공된 이후 85년만에 이뤄진 일이였다. 권한 이양 행사 당시 미국 정부의 고위 공직자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서 미국이 파나마 운하에 가진 미련을 드러내기도 했다.
운하의 소유권과 관리권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파나마 운하로 재미를 본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 주변 땅을 점유해 횡포를 부렸다. 이에 현지 주민들은 미국에 대한 저항을 벌였다. 20세기 내내 파나마 운하 지대에서는 미국의 압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였으며, 파나마 본토에 살던 사람들도 이에 합세하였다.
미국은 결국 파나마 운하 지대 반환을 결정하게 되고, 1977년 9월 7일 토리호스-카터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가 자신의 공약으로(파나마 주둔 미군 철수 공약) 열성적으로 추진했다. 파나마에서는 이 조약 비준을 국민투표에 회부해 67%의 찬성(투표율 96%)을 얻어 조약을 비준했으며 미국에서는 상원에서 찬성 68 대 반대 32로 비준 동의에 필요한 2/3 찬성(67명 찬성)을 가까스로 넘어 비준되었다.
당시 미국은 몰랐던 사실로, 파나마 내 과격파들은 만약 이 조약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 운하 자체를 파괴해버릴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이는 파나마군의 장교로서 나중에 파나마의 실권자 자리에 오른 마누엘 노리에가가 세운 계획으로, 노리에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운하 주변 마을에 자기 심복들을 심어두고 폭약 등 사보타주에 필요한 장비를 운하 주변에 묻어두기까지 했다. 이 계획의 암호명은 "huele a quemado"(타는 냄새)였으며, 만약 조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파나마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작전 개시를 알리는 암구호가 송출되고, 노리에가의 부하들이 한밤중에 운하의 중요 시설을 모두 파괴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갑문을 모두 수리해도 운하를 다시 사용하려면 3년간에 걸쳐 빗물을 받아야 하는데다, 노리에가는 미국이 운하를 수리하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으며 미국을 상대로 월남전 파트 2에 가까운 정글 게릴라전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조약이 미국 상원을 통과한 것은 미국과 파나마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행운이었다.
1979년 10월 1일 파나마 운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을 파나마 측에 반환했으나 파나마인들은 운하 자체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1999년 12월 14일 파나마 운하 반환 협정을 맺어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 운하도 반환했다. 1914년에 완공된 이후 85년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권한 이양식 때 미국 현직 고위 공직자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아서 미련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2016년 6월, 102년 만에 확장 개통되었다. 확장 공사에는 약 9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통행 방식
파나마 운하의 높이는 해수면보다 최대 26미터 높다. 선박들은 도크에 들어온 뒤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도크로 올라가게 되고 운하 중간에 위치한 가툰 호수를 거쳐 다시 도크로 들어가 물을 빼 내려가며 계단식으로 운하를 통과하여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갑문 엘리베이터에 쓰이는 물은 가툰 호수에서 끌어 쓰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갑문식 운하를 만든 이유는 운하 중간에 산맥이 있어 수에즈 운하처럼 평탄한 운하를 파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불의 고리의 일부로 사실상 바다에 잠긴 산이라 이곳에 있는 화강암 지반을 뚫기 매우 어려워서다. 이 때문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통과속도가 느리다. 복잡한 갑문시설이 추가되며 운하의 각 지역에 수위를 조정하는 댐도 여러 곳에 설치해야 해서, 만일 댐이 무너지거나 폭파되면 수위조정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또한 매번 배가 통과할 때마다 각 단계별 갑문 안에 채워지는 물은 바다로 흘러나가기 때문에, 배가 한 척 통과할 때마다 가툰 호수에서부터 많은 양의 물이 바다로 흘러간다. 이렇게 소모되는 가툰 호수의 물은 궁극적으로는 차그레스 강 유역에 내리는 강우량에 의해 보충된다.
비유하자면 배가 산으로 간다
배가 운하를 지날 때는 예인선과 전동차들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운하를 모두 통과하는 데 8시간, 대기시간 등을 합치면 24~30시간 가량 걸린다.
파나마 운하는 갑문식으로 만들어져서 비록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무려 20,000km 이상을 삥 돌아가서 최소한 몇 주 이상을 가야되는 긴 거리를 불과 단 하루 정도로 건너갈 수 있게 되자,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과 반대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게 되었다. 결국 파나마 운하는 건설비에 들어간 비용 이상을 통행수수료로 쉽게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초대박을 터뜨렸다.
파나맥스와 포스트 파나맥스
운하를 통행하는 물동량이 워낙 많다보니 파나마 공화국은 운하확장공사를 계획하고 국민투표로 부쳤고, 2006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2007년 공사를 시작하였다. 초기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확장공사를 진행하였으나 이런저런 사유로 지연되어 2016년 6월 26일 개통하게 되었다. 100년만의 파나마 운하 확장개통 관련된 사진은 이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이 운하 건설로 미합중국 해군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데, 우선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한 것에 의의가 있다. 애초에 파나마 운하 자체가 미 해군의 신속한 전개를 목적으로 만든 거였다. 다만 운하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함선의 폭을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에 맞춰야만 했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함선의 크기나 배수량 면에서 약간 손해를 보긴 했지만, 그냥 맘 놓고 군함을 크게 설계를 못한 것뿐이지 전투력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며 영향을 받은 대상도 아이오와급 전함을 비롯한 일부 대형 전함과 항공모함으로 한정된다. 일단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려면 전폭이 33m로 제한되는데, 미 해군 최대의 전함인 아이오와급의 전폭은 32.97m로 통과 가능하다. 하지만 폐기된 전함 계획인 몬태나급 전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를 포기하고 덩치를 키울 계획이었다. 그리고 현대의 항공모함, 특히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인 니미츠급 항공모함은 파나마 운하 통과가 불가능하였으나, 새로운 운하 개통 후 통과가 가능해졌다.
파나마 운하 통과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 사이즈로 만든 배를 "파나맥스"(Panamax)급 선박이라고 부른다. 통상 폭 32m, 만재배수량 9만톤 내외의 선박이 이에 해당. 현재는 파나맥스 규격을 뛰어넘는 커다란 컨테이너선을 많이 건조해서 배 자체가 파나마 운하를 넘어갈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파나마 운하의 통행량 자체도 포화상태이다. 하루에 30여 척에 불과한 운하 통행을 기다리느라 바다에 투묘 한 채 시간을 보내는 선박이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파나마 운하의 북쪽 가까운 곳에 폭이 2배 정도 되는 신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다. 새로운 파나마 운하는 대략 폭 49미터, 12만톤급 선박도 통항이 가능하다고 하며, 이미 각국 조선소에서는 새로운 네오 파나맥스(Neo-Panamax) 규격에 맞춰 선박을 열심히 팔고 있다. 가툰 호수의 물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호수의 확장공사도 했다.
개통된 지 100여 년이 되었지만 운하 운행이 중단된 것은 단 두 번뿐이다. 미국이 1989년 12월 마누엘 노리에가를 잡기 위해 침공했을 때 약 6시간, 2010년 12월 폭우 때 약 17시간 동안 폐쇄했다.
통행료는 선박의 길이와 화물 적재량 혹은 승객 수 등에 의해 차등이 심하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간다. 평균 비용은 5,000만 원선. 가장 많이 낸 선박은 전장 259m의 디즈니 크루즈 라인의 크루즈선 "디즈니 매직"으로 2008년 5월 16일에 통과할 때 33만 1,200달러(약 3억 4,600만 원)다. 반대로 가장 적게 낸 사람은 1928년에 리처드 핼리버튼이라는 미국 모험가로, 이 운하를 수영해 지나갈 때로 36센트를 냈다. 운하 유지에는 해마다 1,500억 원 정도가 들어가지만 연간 수입이 무려 2조 원 규모에 달해 여러모로 파나마 재정의 중요한 요소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렇게 운하를 확장했음에도 현대에 들어서 배의 크기는 더욱 더 커졌기 때문에 아직도 초대형 선박들은 파나마 운하가 아닌 드레이크 해협을 이용한다.
니카라과 호수는 파나마 운하 건설 전에 운하를 팔 만한 곳으로 경합하던 곳이었고 파나마 운하를 실제로 뚫으면서 한동안 니카라과 운하 얘기는 쏙 들어갔으나, 21세기 들어서 다시 파자는 의견이 나왔다. 지도만 보면 파나마보다 훨씬 길어 보이지만 중간에 호수와 강이 있어 실제로 뚫어야 하는 구간은 비슷하고 이런저런 장점이 있기 때문. 하지만 운하가 없는데 하나 파는 것과 이미 하나 있는데 더 파는 것은 이야기가 달라서 갑론을박 끝에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흐지부지되었다.
파나마 운하와 관련된 회문이 있다. 'A man, a plan, a canal-Panama!'.
본래 파나마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파나마 해협이라고 해서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가 완전히 분리된 적이 있었다.
2024년 12월 23일, 도널드 트럼프 47대 대통령 당선인이 파나마 운하 통행료를 내리지 않으면 파나마 운하의 소유권 반환을 요구하겠다면서 파나마 정부를 압박하는 발언을 했다. #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트럼프의 주장을 반박 성명을 냈다.
트럼프 "파나마 운하 통행료 안 내리면 소유권 반환 요구할 것" 엄포
파나마 운하와 관련해 논쟁을 벌인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 당선인과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파나마 운하의 통행료가 과도하다며 파나마 정부에 운하 소유권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22일 밝혔다. 트럼프가 전날에 이어 운하 소유권과 관련한 발언을 이어가고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반박해 외교 갈등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청년 보수 단체 터닝포인트USA가 주최한 행사에서 “파나마가 부과하는 통행료는 터무니없고 매우 불공평하다”면서 “(미국이 파나마에 운하 소유권을 넘긴) 관대한 기부의 도덕적·법적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속하고 완전한 반환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전날에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파나마가 갈취를 끝내지 않으면 파나마 운하를 전면적으로 반환하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매년 약 24억달러(약 3조4000억원) 이상에 달하는 통행료는 파나마 정부 수입의 24%를 차지한다. 통행료는 선박의 크기, 화물의 종류와 양 등에 따라 달라지며 화물선의 경우 최대 50만달러를 낸다. 파나마 운하는 미국 주도로 1914년 완공됐다. 이후 운하 지대에서 파나마인들의 반미 움직임이 고조되자 1999년 미국은 파나마 운하의 중립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소유권을 파나마로 이전했다.
파나마는 미국의 우방국이지만 트럼프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했다. 물리노 대통령은 이날 X에 올린 연설 영상에서 “파나마 운하와 인접한 모든 지역은 파나마의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 “모든 파나마 국민은 운하를 가슴에 품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주권과 독립은 타협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서 “두고 보자”고 맞받았다.
파나마 운하는 현재 파나마 정부 기관인 파나마 운하관리국이 소유하고 있다. 미국이 소유권을 강제로 가져올 방법은 없다. 이에 트럼프의 발언은 실제로 운하 소유권을 되찾으려는 게 아니라 통행료 인하를 염두에 둔 ‘협상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트럼프는 최근 불법 이민자 문제로 갈등을 겪는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에게도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건 어떠냐”는 등 우방국에 도발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는 동맹국이든 적국이든 우위를 점하기 위해 위협하고 도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중앙아메리카의 파나마 지협을 가로질러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약 82㎞ 길이의 인공 수로다. 연간 약 1만4000척의 선박이 통과하며, 이는 세계 해상 무역량의 약 6%를 차지한다. 파나마 운하관리국에 따르면 2024년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운하를 통과한 선박 중 물동량 1위는 미국이었고 중국, 일본, 한국이 뒤를 이었다.
태평양과 대서양의 해수면 높이는 약 20cm 차이Panama Canal, Atlantic Ocean, Pacific Ocean, sea level difference, 20cm
대서양과 태평양의 해수면은 약 20cm 정도 차이가 있다. 태평양이 대서양보다 해수면이 약간 높다. 이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의 수로가 태평양 쪽으로 약간 경사져 있기 때문. 또한, 태평양은 대서양보다 면적이 넓고, 지구의 중력이 태평양 쪽으로 더 강하기 때문에, 태평양의 해수면이 더 높게 측정. 다만, 이러한 차이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며, 일반적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의 해수면은 동일하다고 간주.
대서양과 태평양이 연결된 남미와 남극대륙의 중간지역은 해수면 높이 차이가 크게 없다. 하지만 대륙이 가로막고 있는 중미지역에서는 차이
위도상으로 이쪽 지역은 편동풍이 부는 지역이고 이러한 바람의 영향으로 해류는 동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이의 영향으로 파나마(동안은 대서양,서안은 태평양)의 경우 대서양쪽의 수면이 태평양쪽의 해수면보다 높다.
즉 바람과 육지등의 위치에 따라 다소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의 해수면 높이 차이는 약 20cm . 이러한 높이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나마 운하는 갑문과 호수를 이용해 배의 수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운영
파나마 운하의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선박이 도크에 들어온 뒤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도크로 올라간다.
운하 중간에 있는 가툰 호수를 거쳐간다.
다시 도크로 들어가 물을 빼 내려가며 계단식으로 운하를 통과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The Panama Canal has different water levels at its Atlantic and Pacific entrances because the Pacific Ocean is higher than the Atlantic Ocean:
Elevation: The Panama Canal's midpoint is about 85 feet (26 meters) above sea level.
Tides: The tides of the Pacific and Atlantic Oceans can cause the water level to vary. The difference in tides can vary by month, with a nearly one foot difference in October.
Locks: The canal's locks use gates and valves to raise and lower ships as they travel between the oceans. The original canal had six steps for ships to pass through.
Water supply: The canal uses water from the region's tropical rainfall.
Manmade lakes: The canal uses manmade lakes to help lift and lower ships
There is a great deal of misunderstanding about the difference in the heights of the waters in the Caribbean (Atlantic side at the northwestern end of the canal) and the Pacific (at the southeastern end) of the Canal de Panama. If you register the tides at each end at the same moment there will generally be a difference because they are subject to different tidal forces. This is caused by the fact that the Atlantic end of the canal is on the western side of the water body and on the eastern side of the Pacific water body. So while the time and the distance is NOT that far (about forty some air miles) the effects start thousands of miles apart
That means that the Pacific side can see tidal exchanges of 6–7 meters while the same day the Atlantic side will experience maybe 1 meter at most. That also means that once or twice a day the two will be level but NOT for long.
I experienced this difference when I dove the Atlantic end near Colon one morning and the next morning went diving near Veracruz on the Pacific end of the canal. The difference in tides was amazing. So much so that I found someone at the canal to explain it to me. I later asked a hydrologist the question and he provided more detail.
Anyone telling you that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the two is simply uninformed. The tides at each end are NOT affected by the Panama Canal at all. All this means that there are TWO sea levels at the ends of the canal.
Here are excerpts from the Tide Tables at the opposite ends of the canal for the same dates:
Compare JUST the September 16 dates, though you can do it for all if you wish, and you will see that on the Cristobal side the TOTAL TIDAL EXCHANGE for the day is 0.0 low to 0.9 feet high, while on the Balboa side the total exchange is 0.3 low to 16.0 feet high tide. Compare the times of the day of the tides, too, using the 24 hour format, and remember that the time is identical on both ends of the canal. So while less than fifty miles apart the exchange is CLEARLY higher and more on the Balboa, Pacific side. Both ends are so close in distance but so far apart in ocean ti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