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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1977년, 강남, 이란, 팔라비 왕조

Jobs 9 2025. 4. 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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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테헤란路 | Teheran-ro | خیابان تهران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도로. 위치는 강남역에서부터 동쪽으로 종합운동장역이 근방에 있는 잠실자동차극장사거리까지다. 이름의 유래는 개통 당시 이란 제국의 수도였던 테헤란.

 

도로의 길이는 4.1km, 왕복 10차로, 너비는 50m이다. 이 도로 밑으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그대로 지나간다. 강남역, 역삼역, 선릉역, 삼성역이 이 도로 지하에 있다. 강남역 사거리에서는 강남대로와 만나고 서초대로와 직결되어있다. 종점인 삼성교에서는 올림픽로와 직결된다. 과거에 "테헤란밸리"라고 불렸던 만큼 수 많은 기업들이 입주했고, 일부 벤처 기업들이 판교테크노밸리나 가산디지털단지로 옮겨가고 금융 기업들이 여의도로 옮겨갔지만 아직도 수도권 3대 기업 밀집지역 GBD(Gangnam Business District)로 분류되고 있다.

 

 

유래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영어 표기는 Tehran이나4 서울에 있는 이 도로의 이름은 한국어 발음을 따라서 Teheran-ro이다. 원래 이름은 삼릉공원(선정릉) 일대를 지난다고 해서 삼릉로(三陵路)였다. 1977년 6월 27일, 한국과 관계가 우호적이었던 팔라비 왕조 치하 이란에서 골람레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이 방한했다. 닉페이 시장은 구자춘 서울특별시장과 서울-테헤란 간 도로명 교환에 합의하여 도로 이름을 테헤란로로 바꾸었다. 참고로 닉페이 시장은 1969년부터 1977년까지 8년간 테헤란 시장을 지냈는데,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루홀라 호메이니가 직접 인민재판을 열고 총살형을 선고하여 광장에서 팔라비 왕조 요인들과 함께 공개처형되었다. 닉페이 시장은 1977년 임기 만료 이후 1978년에 팔라비 왕조 내각에서 건설부 장관(한국의 국토교통부장관에 해당)이라는 요직에 취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테헤란에도 역시 서울로(현지 발음으로 '세이울')라는 도로가 있다. 표지판 하지만 서울에서 테헤란로는 강남개발의 결과로 각종 금융기관과 오피스들이 밀집한 번화가가 되어버린 데에 비해 테헤란의 서울로는 그냥 평범한 길이라고 한다. 근처에 있는 공원은 서울공원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선 이란에 서울 거리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이란에서는 테헤란로가 유명해서 덕분에 한국에 방문하거나 거주하는 이란인들은 여기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한다. 테헤란의 서울로는 테헤란 북쪽에 위치한 외곽 순환도로와 접해 시내 중심부를 잇는 도로이다.

 

도로명 교환은 한-이란 관계가 가장 좋았던 팔라비 왕조 시대의 유산이지만 이란 혁명 이후 이란에서는 왕조 시절의 모든 것을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울 거리'의 이름을 유지하고 있으며, '테헤란로'에 대해 '팔라비 왕조 시기 맺은 협약이니 무효'라는 식의 지적을 한 적은 없다. 한편 이 이름 때문에 서울과 테헤란은 당연히 자매결연 관계일 것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양측 자료가 불일치한다. 이란 측 자료에서는 서울과 1963년에 자매결연을 맺어 국가 최초의 도시급 결연사례로 실려 있는데, 서울시 공식자료에서는 테헤란과 자매관계를 맺은 적은 없고 1971년 대만 타이베이와의 교류를 첫 번째 사례로 쓰는 등 두 도시 중 어느 한 곳이 기록 관리를 잘못하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비슷한 유래를 가진 도로로, 원주시의 '로아노크로', 광주광역시의 '대남대로'가 있다. 각각 미국 버지니아주의 로아노크(Roanoke)시, 대만 타이난시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명명한 도로명이다.

 

테헤란로에는 상시에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는데, 유일하게 테헤란로 비석이 있는 곳만 이란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역사

 

테헤란로는 원래 금융타운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강남 개발과 함께 여러 금융사들이 몰려들었는데, 1997년 외환 위기로 많은 금융사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금융인들이 떠났고, 이후 벤처/IT기업들이 테헤란로에 모여들게 된다. 이 때문에 한때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실리콘밸리에 빗대어 '테헤란밸리'란 별칭까지 생겼으며, 2009년 국제금융위기 즈음까지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러던 것이 닷컴버블붕괴 및 IT기업들의 이주로 IT기업들도 많이 빠져나갔다. 도무지 비싼 오피스 지대를 지불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2023년 1월 13일 17시 25분경 역삼역 인근 한 이면도로에 설치된 전신주 변압기에 불꽃이 튀면서 일대에 전기 공급이 끊겨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전기공급이 끊긴 곳은 불꽃이 튄 전신주에서 반경 150m 내 상가건물과 도로 등이다.

 

하필 금요일 퇴근길 러시아워 시간인데다 복구와 화재진압을 위해 테헤란로 일부 차로가 통제되면서 퇴근 대란이 빚어졌으며 인근 가게들은 영업을 하지 못해 큰 손해를 봤다. 강남구는 “교통체증과 안전사고가 우려되니 우회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2시간여만인 19시쯤 인근 건물 전기 공급은 재개됐으나 신호등은 아직 복구되지 않은 상태이다. 한전은 빗물을 맞은 전선들이 서로 부딪쳐 끊어지면서 정전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징

 

이름은 테헤란로이지만, 이란 대사관은 여기에 없고 이태원동에 있다.

 

이란의 은행인 멜라트 은행의 서울지점이 선릉역 1번 출구 인근에 위치해 있다.

 

강남권 도로 교통 헬게이트의 본좌이기도 하다. 교통 정체가 극심할 땐 테헤란로를 자동차로 통과하는 데에만 1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종종 소방차가 출동 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 삼성역에서 공사로 인해 정체가 더욱 극심하다.

가로변 버스전용차로를 운행 중이지만, 원체 막히는 곳인데다 우회전하려는 일반 차량들로 인하여 버스의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가 잦다. 때문에 강남대로와 마찬가지로 중앙버스전용차로 설치 건의가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으나,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는 730번이 740번으로 단축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송파구는 버스를 통한 7권역(마포, 은평)과의 연계가 불편한 편. 이 때문에 버스로 가도 늘상 헬이며 2km를 가는데 30분 이상이 걸리는 기적이 펼쳐진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비유한 테헤란밸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때 국내 벤처기업의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테헤란로의 높은 임대료 부담과 더불어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뀌고 디지털미디어시티나 판교테크노밸리 등에 IT기업들을 위한 여러 혜택과 기업단지가 조성된 후 IT기반 벤처기업들이 대거 이주하여 이곳에 남아있는 기업은 예전만큼 많진 않다. 현재 테헤란로에 소재한 대표적인 IT기업으로 구글코리아, 이베이코리아(G마켓) 등이 있다.

테헤란로의 높은 임대료는 유명한데, 임대료 문제 탓에 많은 회사들이 이곳을 떠난 영향으로 테헤란로 건물들의 공실률 5년 새 2배로 늘었다고 한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의 말에 의하면 처음 여기에 비트컴퓨터 주식회사의 본사를 잡고 일하다 보니 얼마 안 가 갑자기 벤처기업들이 몰려들어왔다고 한다. 그래서 비트컴퓨터는 테헤란밸리 1호 벤처기업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비트컴퓨터 역시 테헤란로의 높은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1999년 6월 본사를 강남역에서 약 400m 남쪽에 위치한 곳에 이전했다.(2000년 비트컴퓨터 사업보고서)

이곳에 소재한 대기업으로는 포스코, GS10, 현대모비스, 유한킴벌리, 동부금융지주 등이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벤처 캐피털이 밀집해 있다.

법무법인 회사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중견급 이상 법무법인으로 법무법인(유한) 율촌,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법무법인(유한) 한별 등이 위치하고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스타트업 법무법인이 자리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2022년까지 국기원사거리의 삼원타워(구 풍림빌딩)에 입주해 있었다.11 회계법인으로는 삼정회계법인이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수많은 기업들이 밀집한 덕에 지하철 승하차 인원이 아주 많은 편이다. 특히 출근시간대의 경우에는 2호선의 혼잡함이 이곳에 끝난다. 2017년 기준 삼성역, 선릉역, 역삼역, 강남역의 승하차 인원을 모두 더하면 582,991명인데, 이는 서울 지하철 8호선 전체 승하차 인원보다 훨씬 많은 수치이며, 경상남도에서 2번째로 인구가 많은 김해시의 인구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여의도 못지 않게 물가가 비싸다. 그런데도 직장인들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점심시간이면 포스코센터 뒷편부터 샹제리제센터 뒷편, 선정릉 주변까지 식당이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그리고 PC방을 찾아보기도 은근히 쉽지 않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최상위 브랜드 호텔이자 세계적인 호텔 그룹 메리어트의 ‘럭셔리 컬렉션’ 브랜드인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테헤란로를 기준으로 강남구를 '테남', '테북'으로 나눈다. 대략 서울강남경찰서 관할구역은 테북, 서울수서경찰서 관할구역은 테남이라고 보면 편하다. 강남의 문화는 이 테남과 테북으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테남, 일명 테헤란로 남쪽13에는 대한민국 입시 위주 교육의 중심인 대치동이 있고, 테북, 일명 테헤란로 북쪽에는 패션, 유흥, 엔터테인먼트 등의 대표 격 동네인 압구정동, 청담동 등이 있다.

테헤란로에 위치한 학교 캠퍼스로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백제예술대학교가 있다.

야구 시즌만 되면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은근히 많이 보인다.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경기 전후로 주변 코엑스에서 놀거리를 즐기기 때문이다.

블루보틀 역삼 카페가 이곳에 위치한 강남N타워에 입점해 있다.

강남역과 역삼역 사이 구간에는 거의 상시 빌딩풍이 발생하고 있다. 덕분에 한여름에는 좀 시원할 것 같지만 실상은 뜨거운 열풍이 불어 그다지 도움이 안 되며, 겨울에는 체감온도가 뚝 떨어진다.



 

 

'테헤란로' '서울로' 다른 나라 도시 이름이 도로 이름이 된 이유는?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의 강남역 사거리에서 삼성동 삼성교 까지 강남을 가로지르는 4km 구간 도로의 이름이 ‘테헤란로(路)’다. 중동국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 왜 서울 강남의 중심부 도로 이름이 되었을까.

 

1972년 11월 26일, 서울특별시는 한양천도 578주년을 맞아 서울시내 이름 없는 도로 59개에 대해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이에 지금의 테헤란로는 ‘삼릉로(三陵路)’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한국의 중동 진출이 한창이던 1977년, 테헤란의 시장이 서울을 방문했다. 이를 기념해 서울시청이 테헤란과 서울의 지명 한 곳을 바꿔 부르는 것을 제안해 ‘삼릉로’가 지금의 명칭인 ‘테헤란로’에 이르렀다. 이란의 테헤란에도 ‘서울로(Seoul Street)’와 ‘서울 공원’이 있다.

 

한편 이란 테헤란을 비롯해 지구상에는 서울로(路)가 더 존재한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도 서울의 거리가 있다. 1995년, 서울시가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길이 2.1킬로미터의 이 거리에는 한국 전통양식의 정자, 담 등이 설치돼 있고 한국 음식점 등이 들어서있다.

 

프랑스 남부의 도시 신(Seyne)에 위치한 산업단지에도 서울로(Avenue Seoul)가 존재한다. 이 지역에는 유렵엽합(EU) 회원국이 공동 출자해 조성한 산업단지가 있다. 이곳에 위치한 서울로는 폭 7m, 길이 200여m의 2차선 도로로써 한국 기업을 위한 비즈니스 센터 인근에 있다. 산업단지 내의 지명에 유럽 국가가 아닌 다른 지역 지명이 붙여진 것은 ‘서울로’가 유일하다. 




 

 

테헤란로의 비밀

 

테헤란로(Teheran 路)는 서울 강남의 한복판, 강남역에서부터 삼성역 인근까지의 약 4km 길이 도로의 이름이다. 삼성, 현대, 포스코 등 대기업은 물론, 첨단 IT기업들이 도로 양쪽에 즐비한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길이다. 이런 서울의 대표적인 길에 하필이면 중동 국가의 수도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강남의 대표적인 거리에 테헤란로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1977년 여름이다. 그해 봄에 서울시는 이란의 수도인 테해란 시와 자매결연을 맺기로 하고 테헤란 시장인 닉페이(Nikpey)를 서울로 초청했는데, 이때 닉페이 시장이 구자춘 서울시장에게 상대국의 수도명을 딴 도로명 부여를 제안해 성사됐다고 한다. 두 시장은 그해 6월27일 서울에서 테헤란로 명명식을, 11월에는 테헤란시에서 서울로의 명명식을 가졌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는 이란과 1977년에 자매결연을 맺게 되었을까? 이유는 바로 1차 석유파동이다. 우리나라는 이란과 1962년에 이미 수교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는 석유를 직접 수입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돈도 없고 사용량도 적은데다 수입을 담당할 번듯한 석유회사 조차 없었다. 그래서 셰브론(Chevron) 같은 미국 석유회사에게 부탁해 국내에서 사용할 석유를 수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이 발발한다. 이미 여러 해 동안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있던 아랍국가들이 친이스라엘 국가에게는 원유를 수출하지 않는 금수조치를 취한 것이다. 배럴당 3~4달러 하던 원유가격은 12~14달러로 3~4배나 급상승했고, 이스라엘을 지원하던 미국이 중동에서 원유를 받지 못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도 친이스라엘국으로 몰려 석유를 아예 수입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다급해진 정부는 기업들과 사절단을 꾸려 아랍국가들을 찾아 단지 미국과 친한 나라일 뿐이라고 설득했고, 겨우 한 나라의 국왕을 설득하는데 성공해 원유를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이때 중동 산유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 석유를 공급한 나라가 이란이다. 석유 수입 협상 이후 한-이란 관계가 급격하게 가까워지면서 1977년에 테헤란 시장을 초청해 자매결연식을 맺고 지금의 테헤란로를 탄생시키게 됐다.






지금의 공급망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말로 긴급한 공급망 단절 상황이 발생한 1970년대 중반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나라가 직접 발로 뛰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한 그 징표가 바로 테헤란로다. 그 시절 이란은 회교국가였지만 세속적 노선을 추구하던 팔레비 왕이 통치하던 시기였기에 사절단은 겨우겨우 설득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한국에는 산업도,자본도, K-팝이나 영화와 같이 한국이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처지였기에 이들 사절단의 성과는 정말로 눈부셨다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공급망 대란을 피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는 1, 2차 석유위기에도 산업 발전을 성공시킬 수 있게 됐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로마자 표기는 Tehran이다. 그런데 서울 테헤란로 표지판에는 영문명이 Teheran으로 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의 발음을 존중해 그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 테헤란로 명명식 2년 후 이란에는 회교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가 막을 내렸고,혁명 세력은 왕조 시절의 모든 업적을 부정하였는데, 신기하게도 서울로는 지금도 그대로 그 이름으로 남아 서울을 찾는 이란 방문객들 사이에서 테헤란로는 대표적인 방문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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