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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야우중(秋夜雨中), 최치원, 5언 절구 한시 [고전 운문]

Jobs9 2024. 11. 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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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야우중(秋夜雨中)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가을 바람에 괴로이 읊조리나,
세상에 알아 주는 이 없네.
창 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등불 앞에 마음은 만리 밖을 내닫네.  

 


秋(추) : 가을 唯(유) : 오직 苦(고) : 괴롭다 吟(음) : 읊다
路(로) : 길 窓(창) : 창 更(경) : 시각 燈(등) : 등불
萬(만) : 일만

 

당나라에서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최치원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고독과 외로움을 표현한 5언 절구의 한시이다.

* 갈래 : 한시, 5언 절구
* 성격 : 서정적, 애상적
* 제재 : 비 내리는 가을밤
* 주제 :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지식인의 고뇌/고국에 대한 그리움
* 특징 
① 자연물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부각함.
② 제목에서 가을과 밤, 비의 조합으로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함.
* 연대 : 통일 신라 말(9세기)
* 출전 : “동문선” 권 19

추야우중(秋夜雨中)(최치원)의 시어 풀이

* 秋風(추풍) : 가을바람.
* 苦吟(고음) : 괴로이 시를 읊조림.
* 少(소) : 적다, 드물다. 여기서는 ‘없다’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음.
* 知音(지음) :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를 가리키는 말. 중국의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탔지만, 그 소리를 알아주는 이는 친구인 종자기(鍾子期)밖에 없었다. 나중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하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 三更(삼경) : 밤 11시부터 새벽 1시 사이의 시간.
* 萬里心(만리심) : 여기서‘만리(萬里)’는 심리적 거리감으로 ‘만리심(萬里心)’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마음을 의미함.

 

추야우중(秋夜雨中)의 짜임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통일 신라 말기의 문장가 최치원이 쓴 5언 절구의 한시이다. 최치원은 6두품 출신으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신라의 정치 개혁을 위해 의견을 제시했으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가야산에서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이러한 최치원의 생애를 고려해 볼 때 창작 시기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창작 시기는 최치원이 당나라에 머무는 동안으로 보기도 하고, 신라로 돌아온 이후로 보기도 하는데, 전자로 본다면 타국에서 소외받는 이방인으로 쓸쓸하게 지내던 최치원이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후자로 본다면 고국에 돌아왔지만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어 좌절한 지식인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을 표현한 것으로 파악된다. 육두품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작가의 처지나, 방랑 생활을 하며 가야산에서 은거했던 말년의 행복을 고려하면 후자의 관점으로 본 지식인으로서의 좌절감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사상의 전개 과정

화자는 시를 짓는 것도 괴롭지만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기에 등불 아래에서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은 만 리 밖을 떠돌고 있다고 읊고 있다. ‘가을바람’, ‘밤’, ‘비’, ‘등불’을 통해 화자의 암울한 처지와 현실을 암시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을 ‘만리심(萬里心)’으로 표현하였다.

 

소재의 의미

 

이 시에서는 ‘가을바람’과 ‘등불’, ‘밤’, ‘비’ 등 화자의 외로움과 고뇌를 심화시키는 다양한 소재가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비’는 화자의 고독을 심화시키는 소재일 뿐만 아니라, 화자가 창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소재라는 점에서 화자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차단되어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3구와 4구에 나타난 표현상의 특징은?

3구(전구)와 4구(결구)를 보면 한자어의 위치와 내용이 완벽한 대구를 이루면서 작품의 형식미를 완성시키고 있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최치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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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생애와 작품 세계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고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지식인이다. 하지만 당나라에서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재능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소외와 고독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때의 심정을 잘 표현한 작품이 ‘촉규화’와 ‘추야우중’이다. 이후 최치원은 신라로 귀국하게 되는데, 귀국 후 기울어 가는 신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문집인 ‘계원필경’을 임금에게 올리고, 내정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짓기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6두품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당시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에 부딪혀, 많은 비난과 냉대를 받을 뿐 자신의 뜻을 실현시킬 수 없어 좌절한다. 결국 최치원은 세상을 버리고 가야산에서 은둔하며 살게 되는데 이때 ‘제가야산독서당’이라는 작품을 지었다. 그 후 어느 날 그는 아침 일찍 숲 속에 신을 벗어 놓은 채 가야산으로 들어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 최치원의 ‘우정야우(郵亭夜雨)’ 
비 오는 가을밤의 쓸쓸함을 그려 낸, 최치원의 또 다른 작품으로 비 내리는 가을밤 등불 아래에서 시름하고 있는 모습은 ‘추야우중’과 유사하나 외로움을 선승(禪僧)의 고행처럼 여기며 쓸쓸한 분위기를 초극하는 의지를 보인다는 점은 차이가 있다.

작가 소개 - 최치원(崔致遠, 857 ~ ?)

통일 신라 말기의 학자, 문장가. 자는 고운(孤雲).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였다.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이름을 높였다. 후에 신라에 돌아왔으나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가야산에 은거한 후 종적을 감추었다. 저서에는 “계원필경”, “사륙집” 등이 있으며, 주요 작품에는 ‘제가야산독서당’, ‘추야우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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