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유전자, 미각 유전자, 식품 선호, 쓴맛 결정 유전자 - TAS2R38, 단맛, 감칠맛 결정 유전자 - TAS1R, 미각 유전자, 식품 선호
유전자, 맛 결정
쓴맛 결정 유전자 - TAS2R38
단맛, 감칠맛 결정 유전자 - TAS1R
인간에게는 ‘TAS2R38’이라는 유전자가 존재한다. 염색체 7번에 존재하는 TAS2R38 유전자는 인간이 느끼는 맛을 담당하는 미각 수용체의 활성을 결정하는 단백질 생성 유전자다. 미각 수용체를 결정하는 다양한 유전자가 있지만, TAS2R38 유전자는 그중에서도 입 등 소화기관에서 쓴맛을 감지하고 이를 다른 맛과 구별하도록 만든다.
쓴맛을 구분하도록 만드는 TAS2R38 유전자는 대부분 사람에게 모두 존재한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TAS2R38 유전자를 보유한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각각 변형돼 서로 다른 TAS2R38유전자를 보유해, 쓴맛 미각 수용체의 활성화 정도가 다른 경우도 있다.
변형된 TAS2R38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 중, 쓴맛 미각 수용체의 활성화 정도가 낮아진 사람(PAV)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쓴맛을 덜 느낀다. 다른 사람보다 유독 술이나 오이 등에서 쓴맛을 잘 느끼낀면, TAS2R38이 쓴맛을 덜 느끼도록 진화한 사람인 셈이다.
쓴맛 미각 수용체를 결정하는 TAS2R38 유전자 외에도, 단맛과 감칠맛을 결정하는 유전자도 존재한다. TAS1R 유전자가 그 주인공이다.
TAS1R 유전자는 TAS1R2이나 TAS1R3 등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각각 유전자 변형에 따라 느끼는 음식의 감칠맛·단맛의 인식 정도가 달라진다.
공교롭게도 이런 미각 수용체들은 과음이나 폭식을 부르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일례로 과음이 잦은 사람의 경우 대부분 TAS2R38 유전자가 쓴맛을 덜 느끼도록 변형됐거나, 단맛·감칠맛을 잘 인지하도록 바뀐 TAS1R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 경우 소주나 와인 등 알콜성 음료에서 느껴지는 역한 쓴맛은 덜 느끼고, 단맛을 더 잘 경험하게 되면서 과음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TAS1R 유전자가 단맛이나 감칠맛을 너무 느끼지 않은 경우에도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음식에 대한 단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수록 설탕 등 당류를 조리나 식사중에 과다 투여할 확률이 높아지고, 단맛에 쉽게 물리지 않으면서 초콜릿 등 비만을 유도하는 군것질 식품을 자주 찾게될 수 있다.
미각 유전자, 식품 선호에 영향
나이가 들어서도 브로콜리는 절대 입에 대지 않고 감자 칩 중독은 여전한 사람들이 있다.
이는 미각 유전자 때문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터프츠(Tufts) 대학 인간 영양 연구 센터(Human Nutrition Research Center)의 줄리 저비스 교수 연구팀은 특정 미각 관련 유전자들과 선호하는 특정 식품군(food group)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장기간의 심장 건강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성인 6천200여 명의 유전자 검사와 식단에 관한 자세한 설문조사 자료를 비교 분석했다.
연구팀은 전에 발표된 유전자 연구 자료 분석을 통해 5가지 기본적인 맛인 쓴맛, 짠맛, 신맛, 단맛, 칼칼한 맛 하나하나와 연결된 변이유전자들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어 이 변이유전자들이 특정한 맛에 대한 개개인의 민감도에 미치는 누적 효과(cumulative effect)를 점수로 산출해 냈다.
이를테면 유전적으로 쓴맛 점수가 높은 사람은 쓴맛 감지에 특별히 예민했다.
전체적으로 쓴맛에 예민하게 만드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은 통곡물(whole grain)을 별로 먹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짭짤하고 매콤한 맛에 유별나게 예민한 사람은 야채를 덜 먹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단맛 점수가 높은 경우는 어떤 특정 식품군과 연관이 없었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단맛 점수가 높은 사람은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낮은 패턴을 보였다. 중성지방 수치는 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된 식품을 먹을 때 올라간다.
맛에 대한 점수가 반드시 선호하는 식품과 좋아하지 않는 식품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연구 결과는 미각 관련 유전자가 식품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연구팀은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식사는 문화의 차이, 경제적 형편 등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유전자가 식품 선호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푸른 잎 채소가 건강에 좋은 식품인 줄은 알면서도 그것이 먹기 싫은 이유를 모른다. 유전자의 영향일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식품영양학 전문가들은 미각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더 정확한 다이어트 조언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제언했다.
이제는 일반적인 다이어트 조언에서 벗어나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맞춤형 조언으로 옮겨가는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질 때가 되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이 연구 결과는 화상으로 열린 미국 영양학회(American Society for Nutrition) 연례 학술회의에서 발표됐다.
단맛' '감칠맛' 잘 느끼는 유전자 과음 확률 높아
맛에 대한 유전적 민감도 차이가 음주에 영향
인간이 맛을 느끼는 기전에 관련된 미각수용체(taste receptor) 유전자에 존재하는 단일염기다형성(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이 한국인의 음주 유형 및 선호 주류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총장 이강현) 암의생명과학과 김정선 교수와 최정화 박사 연구팀은 한국인 1829명의 미각수용체 유전자에 존재하는 단일염기다형성 유전체정보와 음주여부, 총 알코올 섭취량, 주요 선호 주류 종류 및 주류별 섭취량과의 상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쓴맛을 매개하는 쓴맛수용체 유전자의 변이는 음주 여부 및 총 알코올 섭취량과 상관성을 보였으며, 특히 기존 서양인 대상연구에서 보고된 바와 달리 쓴맛에 덜 민감한 사람들이 음주자가 될 확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맛 및 감칠맛 수용체 유전자에 존재하는 단일염기다형성은 과음자가 될 확률을 높였으며, 소주 및 와인 섭취량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각수용체는 생명체의 다양한 기관에 분포하는 신호전달 단백질의 하나로, 특히 구강 및 혀에 분포하고 있는 미각수용체의 경우 섭취한 식품, 음료, 알코올 성분을 인식하여 이러한 신호를 뇌로 보내 각 물질의 맛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기전을 매개한다.
최근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미각수용체 유전자에 존재하는 단일염기다형성은 개인별 맛에 대한 민감도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러한 민감도의 차이는 식품, 음료 섭취 및 음주, 흡연등과 연관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김정선 교수는 "2014년 세계보건기구 조사결과 한국인의 알코올 섭취량은 아시아 국가 중 1위이며, 소주와 같은 증류주 섭취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술과 술 대사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는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작년 개정된 국민 암 예방 수칙에서는 암 예방을 위해 완전 금주를 권하고 있으나 실제 이를 따르기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단맛, 쓴맛, 감칠맛 등의 복합적 미각 및 관련 유전적 요인들이 다양한 주류의 선택을 미치며, 이를 통해 최종 음주 형태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음주 결정요인에 대한 다각적 분석 연구들이 한국인의 음주 형태를 이해하고, 또한 금주 및 절주를 위한 기초 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전문학술지 Appetite 최신호에 온라인 발표됐다.
맛을 둘러싼 인문학과 과학의 대화
ㆍ 많은 연구가 문화적으로 형성된 개인의 인지적 편향이 맛 경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별한 연구결과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우리의 맛에 대한 선호가 사회문화적인 요소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SNS나 대중매체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들의 놀라운 인기를 보자. 인플루언서나 ‘셀럽’이 ‘엄지 척’을 준 음식점 앞에는 어느새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유명한 경제학자 게리 베커의 이론에 의하면, 이 긴 줄 자체가 사람들이 그 식당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음식을 맛보기 전에 우리는 이미 긴 줄을 통해 그 음식 맛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그 줄의 일부가 되길 원한다. 인기 있는 작가의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음식들은 어떤가.
맛은 사회적ㆍ시대적 윤리에도 영향을 받는다. 예전에는 이국적인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세련된 입맛을 가진 미식가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은 제철이 아닌 먹거리보다 지역의 농장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닭 등을 찾는 사람들이 입맛이 더 세련되고 좋은 것으로 인정받는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패션처럼 맛에도 트렌드가 생기고 이 트렌드가 맛의 기준점이 된다. 그래서 한 역사학자는 맛을 담당하는 장기는 혀가 아니라 뇌라고 말한다.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는 뇌를 통해 맛을 평가하는 기준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프롤로그-음식으로 풀어본 ‘맛’의 모든 것〉
ㆍ 연구팀은 동일한 재료로 만든 음료수에 다른 이름을 붙여 실험 참가자들에게 마시게 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맛에 민감한 전문 테이스터, 음식 소매상, 식이 전문가, 요식업 종사자였다. ‘겨울 향신료Winter Spice’라고 이름을 붙인 음료수를 맛본 후 그들은 뮬드와인mulled wine(뱅 쇼vin chaud), 정향, 블랙커런트, 계피 같은 플레이버가 풍부한 것 같으며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버가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동일한 음료에 ‘상큼한 여름 열매들Refreshing Summer Berries’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시음하게 하자 과일 향, 상큼함, 가벼움, 갈증을 해소해주는 요소들이 풍부하다고 평가했다. 똑같은 음료에 대해 내놓은 상반되는 평가가 놀랍지 않은가? 참가자들의 맛 경험은 음료의 이름을 보는 순간 그 이름이 그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에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준다.〈샐러드의 맛, 이름에서 드레싱까지 _정소영〉
ㆍ 우리가 짠맛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것은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 이온이다. 모든 염은 이온 통로를 통하면서 맛을 줄 수 있지만, 나트륨이 짠맛을 주는 데 가장 강하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침 속의 주 전해질 성분은 나트륨과 칼륨이다. 정상적으로 혈액의 혈장 속에는 나트륨이 약 140mmol/L로 있는데, 침 속 나트륨 농도는 보통 2~21mmol/L로 혈장보다 낮다. 우리가 입안의 음식에서 짠맛을 느끼는 것은 침에 녹은 음식물이 제공하는 나트륨 농도가 침 속 나트륨 농도보다 높을 때다. 자신의 피가 입안에서 살짝 짜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혈장과 같은 0.9% 농도의 생리식염수도 약간 짠맛이 난다. 그런데 우리 입안을 적시는 침 속 나트륨 농도는 때에 따라 변한다. 침샘에서 침을 생산할 때 혈액에서 빠져나간 나트륨을 재흡수하기 때문에, 침 속 나트륨 농도가 혈액을 구성하는 액체 성분인 혈장보다 낮다. 침 생산 속도가 빨라지면, 나트륨 재흡수가 줄어들어 침으로 나오는 나트륨이 칼륨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그래서 같은 농도의 소금기가 제공하는 짠맛도 식사를 시작했을 때는 살짝 짜게 느껴지다가 식사가 진행되면서 침 속의 나트륨 농도가 높아지면 덜 짜게 느껴진다.〈샐러드, 짠맛과 단맛과 신맛의 미묘한 균형_성명훈〉
ㆍ 가장 맛있어야 할 엄마 젖에 단맛이 나고 에너지로 즉각 사용할 수 있는 포도당이나 설탕이 아니라 그리 달지 않은 젖당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젖당을 통해 아기에게 에너지원을 전달하려면 우선 엄마는 젖샘에 젖당을 합성하는 기능을 가져야 하고, 갓난아기는 엄마 젖 속의 젖당을 분해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아기의 소장에는 이 젖당을 분해하는 ‘락테이스’라고 하는 효소가 있다. 또한 젖당은 모유가 함부로 감염되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세상에는 포도당을 사용해 번식하는 세균과 효모가 매우 많지만, 젖당을 통해 번식하는 세균은 몇 종류 되지 않는다. 엄마의 젖샘은 감염 가능성이 적은 젖당을 생산해 아기에게 전달해줌으로써 감염으로부터 모유와 아기를 지키는 방어술을 가진 것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이유가 끝나고 어미로부터 독립해 스스로 먹이를 찾게 되면, 락테이스의 분비량이 점차 줄어들다가 아예 없어진다. 젖당분해효소가 없어진 성인이 발효되지 않은 생우유를 마시면, 우유 속의 젖당이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결장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대장의 장내세균이 젖당을 분해하면서 가스를 발생시키고 설사, 경련 등이 일어난다. 젖당이 들어 있는 생우유를 먹어도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성인이 되었어도 락테이스를 생산하는 유전자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탄수화물의 단맛 _성명훈〉
ㆍ 사람들이 매운맛을 좋아하는 이유로 먼저 롤러코스터 효과가 있다. 어떤 경험이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부정적이었던 경험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 싫증을 내기 때문에 더 자극적인 경험을 찾게 된다. 더 스릴 있는 롤러코스터를 타려고 하거나 더 매운 음식을 먹으려 한다. 매운맛에는 이렇게 중독성이 있다. 그리고 뇌는 매운맛을 통증이나 열감과 같은 자극 신호로 여겨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엔도르핀과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내보낸다. 우리 뇌 속에서 자연적으로 마약이 분비되는 셈이다. 고추에 있는 캡사이신이 점막에 있는 열을 감지하는 통증수용체를 자극하면, 우리 몸은 마치 뜨거운 것에 노출된 것과 같이 반응한다. 우리 몸은 고통과 위험을 감지하게 되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뇌에서는 엔도르핀을 분비하는데, 실제로 화상을 일으키는 열에 노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통은 완화되고 은근한 쾌감이 남게 된다. 이것은 마라톤 선수들이 장거리를 뛸 때 느끼는 희열, 곧 ‘러너스 하이’ 상태와 비슷하다. 이때는 스트레스도 줄고, 통증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로 장거리 경주를 한 마라토너들의 뇌 영상 촬영을 통해서 전전두엽과 변연계라고 하는 뇌 영역에서 엔도르핀을 만들어내는 것을 관찰했다. 요컨대 매운 음식을 먹으면 마라톤 선수가 엔도르핀에 의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쾌감을 느끼게 되고, 더 많은 엔도르핀을 얻기 위해 계속 매운 음식을 찾게 된다는 뜻이다. 〈제육볶음의 매운맛은 미각일까 _성명훈〉
ㆍ 브리야사바랭의 《미식 예찬》은 와인의 맛에 관한 언어의 확장에는 큰 기여를 하지 못했지만 음식을 먹는 행위가 주관적 체험을 넘어 사회적 체험이라는 것을 밝힌다. 《미식 예찬》을 통해 강조되는 것은 단순한 먹는 즐거움은 ‘테이블에서의 즐거움’, 즉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즐거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먹는 즐거움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며,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킨다. 식욕은 영양분 섭취라는 필요를 알리는 신호이고 그 필요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고통이 따른다. 반면 그 필요가 충족되면 “매우 강렬하고 즉각적인 만족감이 생성되면서 개인의 생존이 보장되고, 이는 종의 영속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하는 즐거움은 자연적인 것에서 벗어나 문화적인 것에 접속하는 행위다. 식사를 함께하는 즐거움은 단순히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그 행위의 세련미와 그로 인한 만족감으로부터 발생한다.
브리야사바랭은 이 두 가지 즐거움을 명확하게 구별한다. 즉 테이블에서의 즐거움은 우리의 생존 욕구, 그리고 그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얻어지는 만족감과는 오히려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 즐거움은 “실제로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보다 선행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기대를 품게 만드는 식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한다. 배를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도 생기는 만족감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이닝의 즐거움은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미학적 체험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과 그 즐거움을 공유하도록, 서로 교류하고 특히 대접받은 요리의 좋은 점에 대해 토론하도록 부추긴다”고 말한다. 이는 맛이 어떤 형식으로든 언어로 유통되는 것을 전제한다. ‘혼밥’이 흔해진 요즘 시대에 먹방과 음식에 관한 SNS 피드가 넘쳐나는 현상이 바로 맛 경험의 ‘사회적’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방증한다.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대신 미디어를 통해 맛 경험을 (시각)언어로 변환시키며 식사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이다. 〈언어에 담긴 와인의 맛 _정소영〉
“맛은 사회문화적 경험이며, 편견을 통해 해석된다”
맛을 좌우하는 언어와 철학, 사회적 편견과 문화적 지향
세속적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삶의 원칙이던 고대 그리스인에게 식탐은 중죄였다. 고대 철학자들은 미각이 저급한 감각이라며 등한시하고 심지어 죄악시했다. 플라톤은 미각은 생존을 위한 감각이라며 생존 이외의 목적으로 미각을 사용한다면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니 경계해야 한다고 보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순서로 감각의 서열을 정해 이후 서양 철학의 전통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로마의 의사 갈레노스가 4가지 체액론으로 음식과 기질의 연관성을 정리한 이후 맛에 대한 이야기는 건강과 관련된 의미로 한정되며 빈곤해졌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며 미식 문화에도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귀족들의 호화로운 식사를 담당했던 요리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나와 식당을 열었고, 신흥 부르주아들 중 미식 문화의 언어와 원칙을 마련한 이른바 미식가gastronomes들이 등장해 맛에 대한 담론을 주도하며 미식 문학이 시작되었다. 저자 정소영은 《요리대사전》을 집필하는 동안 수입이 필요해 소설을 썼다는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마르셀 프루스트의 기억을 일깨워《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게 한 마들렌의 비밀과 문학평론가 발터 벤야민의 무화과 탐식 경험담까지 유명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특히 맛을 표현하는 언어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같은 음료인데도 이름을 달리하거나 동일한 샐러드인데 스타일링을 다르게 하거나 와인에 다른 라벨을 붙임으로써 다른 맛을 느꼈다는 실험결과 등을 인용해 네이밍과 브랜딩의 영향력, 그 속에 자리한 언어의 힘, 문화적 편견의 작용을 지적한다. 우리의 ‘맛’ 경험은 단순한 미각적 반응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인지적 반응’을 동반한다는 것. 요컨대 미각을 체험하는 순간 다양한 편견이 개입해 그 체험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맛은 혀끝에서 시작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다”
미각이 감각되고 인지되는 생리학적 기전과 뇌과학, 유전학의 시사점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군가는 짜다고, 누군가는 달다고 느낀다. 이는 개인의 환경과 경험적 요소를 통해 뇌에 새겨진 인지적 편향에 앞서, 다양하고 복잡한 생리학적인 이유에 근거한다. 우리의 입속, 혀의 유두와 입안과 목 안의 점막에는 맛을 감지하는 미뢰가 있고, 이 속에 각종 맛을 느끼는 미각세포가 있으며, 미각세포에는 미각수용체가 있다. 음식물이 입안에 들어오면, 수용성 미각 물질이 침에 녹아 미각세포의 수용체와 결합하고, 수용체가 받아들인 정보가 전기 신경신호로 바뀌어 뇌로 전달된다. 뇌는 이 신호를 해석해 맛을 구별한다. 그런데 이러한 생리학적 기전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미뢰의 수가 다르고, 나이가 들면서 퇴화하기도 한다. 태아일 때부터 어머니가 먹는 음식에 따라 맛의 선호가 다르게 발달할 수도 있다. 특히 유전학이 발달하면서 유전인자들이 미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계속 나오고 있다. 단맛과 감칠맛, 쓴맛 수용체를 형성하는 유전자에 따라 맛을 느끼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 성명훈에 따르면, 맛을 느끼는 건 근본적으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느끼는 기본적인 맛은 다섯 가지로 단맛, 짠맛, 쓴맛, 신맛, 감칠맛인데, 단맛은 몸에서 필요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의 존재를, 짠맛은 전해질 나트륨의 존재를, 감칠맛은 단백질의 존재를 알린다. 쓴맛과 신맛은 독성물질 또는 음식물의 부패를 알린다. 이것은 수억 년에 이르는 장구한 진화 과정의 결과다. 그런데 인간은 두 발로 서고 걸으며 양손을 자유롭게 쓰고, 불을 이용해 요리를 시작했다. 이것은 뇌 기능의 엄청난 발달도 가져왔다. 맛과 플레이버를 느끼게 해주는 입, 코, 목의 특별한 구조는 모든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만 갖추고 있다. 게다가 사람은 보통의 동물들이 기피하는 쓴맛과 신맛을 이용해 먹거리에 변화와 풍미를 더하고, 다채로운 맛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미식물리학과 플레이버 원칙?
개인적 감각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영역의 공적 체험으로 확장되는 맛
이 책의 논의는 상반된 방향에서 접근하는 듯하지만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맛에 대한 감각과 선호는 생리적인 작용이면서 사회문화적인 요소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면 후각·미각·청각·시각·촉각이 모두 뇌의 안와전두피질에서 결합된다. 이렇게 종합된 정보가 뇌의 맛감각을 형성하는데, 이 맛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은 학습·기억·감정·인지·언어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처럼 미식 경험이 재료의 조화로운 조합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됨에 따라 최근에는 ‘신경미식학’이나 ‘미식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개척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음식의 국적과 정체성을 이루는 플레이버 원칙, 음식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적 윤리, 대중매체와 SNS의 영향력, 동물의 식성에 따라 다르게 진화해온 미각수용체, 맛과 관련된 유전 형질 등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간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우리 일상의 한 축을 이루는 식생활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감칠맛이 단맛이나 짠맛처럼 고유한 맛으로 인식된 것은 겨우 100여 년 전이고, 복잡미묘한 와인의 맛을 다른 물질의 향과 성질을 이용해 표현하게 된 지도 50년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로 맛의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비밀이 밝혀지고 새로운 기준이나 규범이 등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우리가 맛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언어로 표현하면서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를 권한다. 여러 사람에 의해 새로운 깨달음이 더해지면서 맛 경험의 지평이 넓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일상에 행복과 즐거움을 더하는 일이 될 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