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말레이 반도, 말라카 해협, 토마스 래플스, 리콴유, Republic of Singapore
싱가포르
싱가포르 공화국
Republic of Singapore | Republik Singapura
新加坡共和國|新加坡共和国|சிங்கப்பூர் குடியரசு
역사
1963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
싱가포르 공화국(Republic of Singapore)은 말레이반도의 남쪽 끝, 싱가포르섬에 있는 공화국이다. 북쪽의 조호르 해협을 두고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루와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말라카 해협으로 인도네시아 리아우 제도와 마주보고 있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도시국가(시국)로, 간척지를 포함한 국토 면적이 733.5㎢13인 미니국가(ministate)에 해당한다.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 속하나 경제적으로 동남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고도로 발전했다.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 직후 단시간에 빠른 경제성장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든 나라이며, 아시아 국가이면서 오세아니아와도 멀지 않아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잇는 거점으로 부상했다. 1970-1980년대에는 대한민국, 대만,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사회 문화적으로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인구 다수를 차지하기에 넓은 의미의 중화권으로 분류되기도 하나, 영미권의 제도를 채용하고 프라나칸의 독특한 특징을 유지하는 융합적인 문화를 갖추고 있다.
국호
싱가포르의 국호는 말레이어 '싱아푸라(Singapura)'가 영어에서 /síŋɡəpɔ́:r/로 변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도 말레이어로는 이 나라를 '싱아푸라'라고 한다. 그 후 영어 쓰는 사람들이 ng 발음 후에 모음이 올 때, 모음 앞에 g 발음을 붙이는 습관 때문에 '싱아푸라'가 '싱가포르'라는 발음으로 바뀌었고 이것이 다른 언어로도 퍼져나갔다. 그러나 지금도 g 발음이 붙지 않은 /síŋəpɔ́:r/ 발음은 허용된다.
싱아푸라는 산스크리트어 Siṃhapura(सिंहपुर)를 그 기원으로 하며, '사자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Simha는 Lion(사자)란 뜻이고 Pura는 City(도시)라는 뜻이다. 싱가포르 전설에 의하면 인도네시아 스리위자야 왕국의 '상 닐라 우타마'(Sang Nila Utama) 왕자가 여기로 표류해 와서 바닷가에 있는 사자를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마스코트도 머라이언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큰 영향을 받은 크메르어에서는 '사자의 도시'를 크메르어로 직역한 សិង្ហបុរី(Sernghakborey)라고 한다.
자바어로는 테마섹(Temasek)이라고 불렸으며 바닷가 마을이라는 뜻이다. 테마섹이라는 지명은 현재 싱가포르 국영 투자회사인 테마섹 홀딩스에 남아있다.
싱가포르의 공식 중국어 국호는 新加坡이며, 이는 '싱가포르'를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이것이 싱가포르 정부에 의해 공식 표기로 확립된 건 1972년으로, 그 전에는 한자를 쓰는 중국어 특성상 新加坡 말고도 다양한 표기가 사용되었다. 예전에 이곳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이곳을 한자로 성가파(星嘉坡/星加坡), 줄여서 성주(星洲, 씽저우, Hsing Chow, Seng Chiu)라고 불렀다. 혹은 말레이어로 해협을 뜻하는 Selat을 음차한 석력(石叻)이나 부두를 뜻하는 글자를 붙인 석력부(石叻埠 Sit-la̍t-po·)로도 표기됐었다. 그 외에도 사자의 도시이란 의미에서 사자성(獅子城), 사성(獅城)17이라고도 한다.
현재의 공식 표기 新加坡는 중국어 방언 중 하나인 민남어에서 유래한 음차로 알려져 있는데18, 민남어로는 sin-ka-pho라고 발음한다. 표준 중국어 발음으로는 Xīnjiāpō(신자포)가 된다. 싱가포르 독립 이후 싱가포르 정부는 중국어 표기를 新加坡로 통일하고, 더불어 중국계 내에서는 표준중국어 구사 운동이 정부 주도로 이뤄져서 星州나 石叻같은 명칭은 쓰임이 줄었고 '신자포(新加坡)'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요즘도 드물게 성가파(星加坡, 星嘉坡)라는 표기를 사용하며 거의 나이 든 사람들이 쓴다. 이 때 약칭은 星이다. 한국 신문에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한자어 사용21이 활발해서 제목 등에서 줄여서 부를 때에는 미국을 美, 일본을 日, 중국을 中으로 줄여 부르듯 가끔씩 星이라고 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는 石叻에서 쓰인 싱가포르 역(叻) 자가 싱가포르의 약자로 쓰였다. 한자사전에도 뜻 자체가 싱가포르로 나온다. 싱가포르가 영국령 식민지였을 때 해협식민지에서 쓰이던 화폐인 해협 달러 지폐에도 페낭을 뜻하는 嶼, 믈라카를 뜻하는 呷과 함께 叻이 표기되어 있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싱가포르에서 발행되던 한문 신문의 이름도 역보(叻報)였을 정도로 유서 깊은 글자이다. 이 한자는 근대에 만들어진 글자다보니 강희자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싱가포르인의 약 9%를 차지하는 인도계 싱가포르인은 대부분 타밀인이기에 타밀어는 공용어로도 지정되어 있다. 타밀어로는 சிங்கப்பூர்(Ciṅkappūr)로 표기하며 '싱가푸르'로 발음된다.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 곳을 점령하고 쇼와의 시대에 얻은 남쪽의 섬(昭和の時代に得た南の島)이라는 의미에서 쇼난도(昭南島, 소남도)라고 불렀다. 그러나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영어 Singapore를 옮겨적은 シンガポール(shingapōru, 싱가포-루)라고 쓴다.
참고로 현지인은 가끔 "S'pore", "SG"로 줄여 쓰기도 한다. 홍콩이 HK, 뉴질랜드가 NZ, 호주가 AUS25, 영국이 UK로 줄여서 표기되는 것과 똑같다.
한국어로는 싱가포르와 싱가폴 명칭이 모두 쓰이고 있는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싱가포르가 표준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표기는 싱가포르이며 싱가포르 외교공관도 주 대한민국 싱가포르 대사관, 주 싱가포르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표기한다. 항공사들 역시 싱가포르로 표기하는지라 싱가포르항공은 자사의 한국어 홈페이지에 싱가포르항공이라는 한글 표기를 사용한다.
싱가포르의 역사
전근대
싱가포르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서기 2세기경 프톨레마이오스의 것인데, 당시에는 '사바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무역항이었다.1 3세기경 중국 기록에는 '포라중'(蒲羅中)이란 이름으로 이 지방이 언급되어 있는데, 말레이어 '풀라우 우종2'의 음차로 보인다.
동남아시아의 무역을 독점하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팔렘방이 쇠락하자 팔렘방의 왕자였던 상 닐라 우타마가 현대의 싱가포르 섬 일대에 싱가푸라 왕국을 세웠고, 라자로 통치하며 100여 년 동안 싱가포르는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대제국인 마자파힛 제국이 전성기를 누리는 과정에서 싱가포르를 강탈당했으며, 당시 싱가푸라 왕국의 제5대 왕이었던 파라메스와라는 한적한 어촌인 믈라카로 급히 천도하여, 나라 이름을 싱가푸라 왕국에서 믈라카 술탄국으로 개칭했다, 이후 믈라카가 명나라의 비호 아래 동남아시아의 최대 무역항으로 성장하면서 싱가포르는 일개 어촌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이후에는 네덜란드의 영향 아래에 있는 조호르 술탄국의 영토로 있었지만 재개발되는 일은 없었고, 해적들의 소굴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어쨌든 당시 싱가포르에 독자적인 국가가 있었다는 점 때문에 현대의 중국계 싱가포르인과는 혈연적인 관계는 크지 않지만 상 닐라 우타마 왕은 싱가포르 내에서 위인으로 추앙받는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싱가포르의 돌을 통해 문자가 존재했다는 추측이 있긴 하나, 아직 그 문자의 정체는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여튼 토마스 래플스 경이 싱가포르를 발전시키기 전만 하더라도 싱가포르는 그냥 아무런 물자도 없이, 연중 그냥 무덥기 그지 없어 해적들이나 가끔씩 피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섬이라고 생각하는게 빠르다.
영국의 도래
그러나 1819년 동인도 회사의 토머스 스탬포드 래플스 경이 1,000명밖에 안 사는 깡촌이었던 센토사 섬에 조호르 왕자 후세인 샤를 술탄으로 추대함과 동시에 영국의 영향 아래에 집어넣어 버렸다. 래플스는 이후 4년 동안 싱가포르를 오지에서 어엿한 항구도시로 발전시켰고, 이를 계기로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무역항으로서의 싱가포르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덕분에 래플스는 리콴유 초대 총리와 함께 싱가포르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그가 싱가포르에 처음 상륙한 지점에 대리석으로 조각한 석상이 세워져 있고, 싱가포르에서 흔히 볼수 있는 래플스(raffles)라는 이름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래플스 경이 싱가포르를 밀고 개척한 이유는 싱가포르의 입지가 좋아서가 아니다. 흔히 싱가포르가 해상무역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나 싱가포르 자체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자기네들을 개발하고 물류의 유통을 최대한 편리하게 만들고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어서 그렇지 말라카 해협에는 싱가포르를 대체할만한 항구들이 얼마든지 있다. 다만 그 인프라를 따라올 수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싱가포르를 최고로 치는 것일뿐이다. 이 당시 싱가포르를 밀었던 이유는 말 그대로 싱가포르가 남들이 다 버린 땅이어서 말라카 해협의 다른 땅과 달리 싸울 필요도 어떠한 분쟁에 휘말릴 필요도, 돈을 줘야할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척박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싱가포르는 해협식민지의 일원으로서 페낭, 말라카와 함께 말레이 반도에서 영국의 주요 거점이자 중국인 인구가 많은 곳이 되었다.
이후 자유무역을 선언하고 화교를 탄압한 네덜란드와 달리, 비교적 평등한 대우를 한 결과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무역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다른 많은 경쟁자들이 있었고 싱가포르는 후발주자였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이 덕에 지위도 동인도 회사 아래의 식민지에서 대영제국의 공식적인 식민지로 상승하면서 제국의 엘리트 관료들과 트라팔가르 해전 이후 적수가 없던 대영제국 해군의 비호 또한 얻게 된다.
이 섬은 홍콩, 캐나다, 인도,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 다른 식민지들과도 연결되어 영국군의 동남아시아 최고 거점이 되었다. 이에 따라 도시 개발을 위해 싼 임금으로 청나라 사람들을 대거 고용하여 이주시켰고, 청나라 상인들도 돈벌이를 위해 이민을 가면서 원주민보다 중국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인도인 죄수들도 도시 개발을 위해 징발되면서 이들도 소수라고는 하지만 꽤 많은 숫자가 함께 정착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각자의 핏줄을 자각했기에 다른 동남아시아 식민지와 달리 싱가포르 내엔 민족주의가 싹트지 않았다. 당시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영국과 손잡은 반면, 인도계 싱가포르인의 경우는 반영 사상이 짙었다. 말레이인은 중립적이라서 영국 식민정부에 많이 협조했다.
일본의 점령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후, 일본이 말레이 반도를 통해 공격해온 싱가포르 전투에서 영국군이 일본군에 패배하면서 이 지역은 일본에게 점령당하여 화교들은 일본군에게 학살당했고, 특별 세금까지 물게 되면서 화교들은 일제에 반감을 드러냈다. 싱가포르의 교육 과정에서 일본의 전쟁범죄는 주요 주제로 다루어진다. 당장 리콴유 세대에서는 친척이 부당하게 폭행당한 경험이나 학살당한 경험이 있다. 리콴유는 일본의 재무장 시도를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이 들어간 초콜릿을 먹게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싱가포르의 일본으로부터 해방은 일본의 항복과 함께 찾아왔다.
탈식민 시기
종전 후 시간이 지나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공산주의자를 중심으로 혼란스럽던 싱가포르를 영국이 공산주의를 소탕하면서 화교 학교를 공격해 영국이 화교를 공격한다는 인식이 생겨 영국에 반감을 가지게 된 싱가포르 또한 말레이시아의 한 주로서의 독립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말레이인이 다수인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인이 경제 권력을 쥐고 있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중국인이 대다수인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게는 위험한 존재였다.
싱가포르는 인구 자체는 적지만 섬 하나뿐이라 나름 인구밀도가 높아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합치면 화교의 인구 수가 말레이인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사실 싱가포르만 그런게 아니라 싱가포르보다 화교 비중이 더 높은 페낭이나 이포 등 말레이시아 북부 지역들도 있었고 당장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부터 중국인 인구가 많았으며 그 외에 중국인들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어 더욱 그랬다.
또한 식민지 시절 대영제국이 말레이시아를 싱가포르에서 관리했기 때문에 말레이인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앙금이 크게 남아 있었고, 말레이시아 연방정부는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정책을 취하게 된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대국들이 많은 동남아시아에서 혼자서 살아가기 어렵다고 보았기에 말레이시아 연방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으며, 말레이시아는 당시 동남아시아에 퍼져나가던 공산화에 두려움을 느꼈고 1948년에 말레이 공산당이 무장투쟁을 일으키자 영국은 싱가포르에도 예외 없이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공산당 활동을 아예 막았다.
다른 한편 1955년에는 영국이 조건부 자치를 승인했고 1959년에 인민행동당이 창당됐다.
하지만 합병 이후 말레이계 우대 정책에 대한 정치적 갈등이 깊어졌고, 리콴유 싱가포르 주 총리와 싱가포르 인민행동당은 '말레이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종이 말레이시아인이다'는 주장을 하며 연방 내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게 된다. 이들은 심지어 말레이인들의 지지 또한 얻기 시작하였고, 말레이시아 연방정부는 이에 큰 위협을 느끼게 된다.
말레이시아 연방정부는 합병할 때부터 인민행동당이 연방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싱가포르 내에서만 정치활동을 하기를 원했다. 당시 말레이인들의 생각은 중국인은 너무 똑똑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교육 수준이 말레이인이나 인도계 싱가포르인 보다 좋은 경우가 많다. 미국, 영국, 유럽, 남아메리카 등에서도 동아시아계는 학습열이 높기로 유명한데, 국적이 달라도 중국계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화교들의 경우에도 이것이 똑같이 작용한다. 유입 당시 이들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자본력이 높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와 말레이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한다면 곧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정치, 경제적 주도권을 모두 장악하게 될 것이고, 말레이인은 낙오될 것이라는 것이 말레이 정치인들이 갖고 있던 공포감이었다. 이는 실제로 동남아시아 국가 대부분에 공통되는 현상이다. 화교가 정치적으로 탄압받는 지역조차 경제는 화교의 수중에 있다. 오히려 경제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기에 견제 차원에서 탄압이 가해지는 측면이 있다.
말레이시아의 초대 총리 툰쿠 압둘 라만은 리콴유의 절친한 친구이자 독립 동지였지만 합병 이후에는 리콴유의 인민행동당이 말레이시아의 정치를 장악하게 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툰쿠 압둘 라만은 리콴유와 사적으로는 친하지만 공적으로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즉 연방으로 받아준 싱가포르의 화교들이 오히려 말레이시아 정부를 장악하여 말레이인을 위한 정책이 아닌 화교 또는 마오쩌둥주의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까봐 두려워했다. 반면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인 우대 정책을 이해하지만, 말레이시아의 정치인들의 정책은 인종 갈등만 야기시키고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런 정치적, 인종적 갈등이 계속되던 와중 결국 싱가포르에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1964년 7월 21일 2만 5천여명, 212개 단체의 말레이계 무슬림들이 예언자 무함마드 탄신일을 기념하는 행진을 하던 도중 중국계와 충돌한 것이다.
리콴유는 이에 빠르게 중앙 정부에 진압병력을 요청하고 야간 통금을 시행하여 대응했다. 사건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라작 부총리와 리콴유는 외부 세력이 개입했으며 배후에 인도네시아와 중국계 공산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11일간 지속된 시위로 건물 수백채가 불타고 36명이 사망하였으며,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9월엔 중국계가 주로 주거하는 지역에서 삼륜차를 몰던 말레이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자 또 다시 대규모 분쟁이 발생하여 13명이 죽고 103명이 다쳤다. 인종 갈등이 결국 극에 다다른 것이었다.
이에 라만은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하나는 강경파인 리콴유를 구속하여 제거한 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치인을 싱가포르에 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말을 더럽게 안 듣는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축출하는 것이었다. 이에 라만은 후자를 선택하기로 한다.
라만은 먼저 리콴유에게 "우리가 하나의 연방에 있을 때는 적이었지만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 다른 독립된 국가가 된 순간부터 우리는 다시 친구이자 동지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싱가포르에게 연방 의회의 의석을 포기한다면 국방과 외교 분야를 제외한 완벽한 자치를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 리콴유는 이 제안을 고려하다가, 결국 싱가포르가 연방에 잔류할 수 있는 방법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리콴유와 그의 정부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하여 분리 독립하기로 한다. 1965년 중순에 이르자 완벽한 독립으로 마음을 굳힌 리콴유는 마찬가지로 연방 잔류에 회의적이었던 오른팔인 고켕스위(吳慶瑞, Goh Keng Swee)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라작 부총리와의 회담장으로 보낸다. 이 회담에서 양측은 분리 독립에 동의하고, 분리독립 계획이 외부로 새어 나가면 일어날 소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기밀을 유지하고 기습적으로 독립을 발표할 방법까지 전부 합의했는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분리 독립에 합의하고서는 마치 싱가포르가 일방적으로 분리독립을 "당하는" 것처럼 연출하기로 하였다. 싱가포르는 이 시점에 말레이 연방에 잔류할 수는 없었다. 이 상태가 계속되다가는 다른 지역들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될 뿐이었다. 리콴유가 독립을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아니고, 도시국가가 아주 불리한 여건임을 알고 있었지만, 불가피하게 홀로서기를 택한 것이다.
합의된 독립이든 표면적으로 보이는 강제 독립이든, 싱가포르는 경제적 배후지를 잃고 상당히 힘겹고도 불가능에 가까운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합의라고 하나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의 축출을 강렬히 열망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양측의 합의대로 1965년 8월 7일에 라만은 리콴유와 그의 정부 각료들을 불러 일방적으로 추방을 선포하였고, 8월 9일에 말레이시아 의회는 싱가포르를 축출하는 법안인 헌법 개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같은 날에 리콴유는 눈물을 흘리며 독립을 선언하는 모습을 연출하였고, 싱가포르는 자주 국가로 독립하게 된다.
이렇듯 널리 알려진 대로 중국계 인구가 많은 싱가포르가 먼저 독립을 요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싱가포르 역시 뜬금없이 '독립당한' 것은 아니었다.
영국은 말레이시아 연방이 와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끝까지 라만을 설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싱가포르가 축출되면서 영국 정치인들은 상당히 실망하게 된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싱가포르의 연방 축출을 대환영하였다. 당시 말레이시아와 갈등을 벌이던 인도네시아는 보르네오 섬 북부의 사라왁과 사바가 연방에 가입하는 것 자체를 상당히 불쾌해하고 있었다. 결국 저 둘은 결국 말레이시아 연방에 가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똑같이 희망하던 브루나이는 술탄의 권력 문제로 끝내 말레이 연방 가입을 거부하고 1984년에 독립국으로 홀로서기에 나선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 연방 자체를 영국 신식민주의라고 정의내리고 있었으며, 특히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었던 수카르노는 공공연하게 반서방 성향을 드러내며 사라왁, 사바에 민병대를 보내고 싱가포르에 군사적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축출이 인도네시아의 승리, 말레이시아의 패배라고 생각하며 좌절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는 영국에서 평화적으로 독립해서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와 전쟁을 하며 독립을 이뤄냈기에 반서방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어쨌든 이렇게 나중에 싱가포르 입장에선 터닝포인트가 될 홀로서기가 시작되었다.
독립 이후
리콴유는 아무 것도 없는 조그만한 섬인 싱가포르가 독립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당시에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 물자를 대는 항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것은 말레이시아에 속한 조호르 지역이 후방에서 받쳐줬고, 말레이시아와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말라카 해협에는 냉전의 일환으로 이념의 대립이 있어서 수월하지 않았을 뿐, 싱가포르를 대체할 수많은 항구들이 있었다.
싱가포르 자체적으로 식량이나 식수 수급은 불가능했고 배후지역인 조호르를 통해 공급받았기 때문에 조호르의 여러 항구를 잃고 싱가포르항 한 곳만 경영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하고도 그런 역할을 지속하며 국가가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회의를 품었다.
리콴유는 영국에 호의적이었고 영국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영국과 절대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인민행동당 인사들도 영국 유학파들이 많았다. 독립 이후 싱가포르는 별 무리 없이 영연방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인 리콴유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강제 독립을 당한 이후에는 외교 리스크 극복을 위해 소련 등 이른바 동구 공산권 국가들과도 친분을 유지했다. 한 때는 싱가포르 여권으로 북한 무비자가 가능했다.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균형외교와 별개로 북한과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으며 북한의 화성급 ICBM은 싱가포르를 사정권에 넣고 있다.
또한 독립 초기부터 리콴유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반공을 내세우면서도 공산국가처럼 1당 독재로 국가가 직접 기획/통제하는 '사회주의식 자본주의'를 창안했고, 국방 쪽에선 자신들을 지킬 국방력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과 별개로 공산당엔 무자비한 탄압을 가해서 공산주의자는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미국, 영국, 서유럽 등 다양한 국가들로 부터 무기를 수입했고, '적으로 둘러싸인 소국'이라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이스라엘로부터 무기 구입 및 군사 자문을 적극적으로 받으며 군사력을 키웠다. 그리고 영국군 기지를 반환받으면서도 동시에 셈바왕 쪽 기지 임대 연장을 허용했고, 미군 주둔 기지 설립을 허용했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연방 축출이 인종 간 갈등에서 시작된 것을 반성하여 신생 싱가포르의 인종 갈등 문제를 없애는 것에 주력했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70%라 공공연하게 중국계를 우선하거나 중화권 문화를 밀어줄 경우 자칫 말레이인이나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의 반발을 살 수 있어 의도적으로 중국 문화를 배제하고 다인종 다민족이 공존하는 싱가포르를 만드는 데 노력했다. 물론 현재는 표면상으로 화합으로 보이나 실은 안 보이는데선 차별이 존재한다. 다만 이를 대놓고 발언하는 경우, 싱가포르 내에서 상당한 비난에 시달린다.
헌법상 국어를 말레이어로 지정하고 할랄 푸드 인증을 적극 추진해서 원주민 말레이인을 존중해주는 한편 인종 간 소통을 위해 제1언어로 영어를 지정했고, 중국계 싱가포르인의 언어 통합을 위해 표준 중국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간체자를 도입하는 등 중국계 언어 통합에도 노력을 가했다. 싱가포르의 중국계들의 모어는 광동어, 객가어, 민어 등이고, 이들끼리는 의사소통이 어렵다. 오늘날 중국계 싱가포르인 내에서는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 중국어를 쓴다.
그리고 인종이 모두 모이는 교외 각 지역의 HDB11를 통해 중국계 싱가포르인, 인도계 싱가포르인, 말레이인의 화합을 자연스럽게 추구했다. 영어로 소통하고 HDB에 같이 살고 호커스에서 같이 식사하고 학교에서도 친구로 만나며 세 민족은 자연스럽게 이웃사촌으로 친구로 융합되었다.
그리고 인종차별에 대해 엄격한 법 집행을 실시해서 혐오 표현을 검열하고 여권 등 신분증 사진을 흑백으로 처리하며 공립학교 교사도 각 인종을 1대 1대 1로 배분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결과적으로 싱가포르는 인종 및 민족 간 통합에 상당한 성과를 보였다. 싱가포르 내각 역시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미푸트라 정책 탓에 인종 갈등이 극심하고 극우주의자가 판치며 혐오 표현이 난무하는 옛 모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 등 갈등으로 몸살을 앓은 이웃 인도네시아, 민다나오 내 무슬림을 품지 못해 골칫거리가 된 필리핀 등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성과이다.
한편 외교적으로는 주변국에 비해 소국임을 인식하여 중국계 인구가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외교적으로는 중화권이 아닌 동남아시아의 일부임을 주변 국가에 적극적으로 어필하면서 신뢰를 쌓게 된다. 그리고 싱가포르는 영국, 미국 등 영어권과도 더 밀착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싱가포르는 중국과의 거리를 두기 위하여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중국과 수교를 맺을 때까지 일부러 수교를 맺지 않았다. 비록 중국과 싱가포르는 거리를 두었지만 중국도 싱가포르의 상황을 이해해서 이에 대해 무리한 압박을 가하지는 않았다.
당시 싱가포르는 아직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선발주자인 영국, 대만, 홍콩, 일본, 호주 등은 물론 현재는 싱가포르로 노동력을 송출하는 태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처지였다. 싱가포르 관광지인 주롱 새 공원(Jurong Bird Park)에 가면 모노레일에 타이항공 로고가 대놓고 있는데 이때 모노레일을 놔준 나라가 태국이어서 그렇다. 현재도 태국 정부는 양국 우호협력의 상징으로 이 모노레일을 예로 들며 뿌듯해한다.
독립 이후 싱가포르는 라만의 말처럼 말레이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동남아시아의 공산화 바람이 사그라들고, 가장 큰 위협이었던 인도네시아에 수카르노에 비해 비교적 친서방적인 독재자 수하르토가 들어서면서 동남아 정세가 싱가포르에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 큰 위협 없이 살아남게 된다.
한편 싱가포르는 독립하면서 도시국가가 되어버려서 리콴유의 급진적인 정책들이 바로바로 효과를 발휘하는데 최적의 환경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런 정책이 먹혀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민에 대한 독재 수준의 통제가 필요한데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기 때문에 통제가 쉬워져서 오히려 리콴유 일가의 지배 하에 급속도로 사회를 통합시키고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독립 이후에는 대한민국, 홍콩등이 성장했던 방식처럼 제조업을 통하여 경제를 성장시켰으나 규모가 워낙 작은 나라라 일본. 대한민국 등의 덩치가 있는 나라들에게 밀리기 시작하여 물류를 다루는 방향으로 경제를 성장시켰다. 물론 이 역시도 홍콩, 대한민국,대만등과 경쟁을 해야했고 홍콩이야 비슷하지만 한국, 대만과는 덩치상 게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금융쪽으로 먹거리를 선회하여 세금을 없애고 좋은 기업들을 유치하는데 사활을 걸었고 이러한 적절한 경제정책의 변화는 싱가포르를 개인 소득에 있어서는 굴지의 부국으로 만들어 주었다.
독립 후에는 말레이시아와 페드라 브랑카 분쟁이라는 영토분쟁을 치른 바 있다. 섬의 실효지배 문제나 ICJ에서 영토 분쟁 판결이 난 사례 등으로 인해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자주 참고된다. 이 섬은 포르투갈인들이 말라카를 정복할 무렵 같이 정복한 무인도로 페드라 블랑카라는 이름은 포르투갈어인데 조호르 쪽에 붙어 있었다. 싱가포르가 독립한 뒤 문제가 되었고 한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해군이 대치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싱가포르의 실효지배가 인정되었다.
이 섬의 싱가포르 영유권이 인정된 이후 스페인 - 모로코 사이에서 2005년 페레힐 섬 문제가 터지면서 이 문제에서 또 한번 이 섬이 언급되었다. 독도 문제와도 관련있는데 실효지배가 인정받은 케이스라 일본이 이 판결을 매우 불쾌해하기도 했다.
1990년에 리콴유 총리는 고촉통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상왕 노릇을 했고, 2004년부터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 리셴룽이 취임하여 2세 통치가 시작됐으며, 2024년 로렌스 웡이 취임하였다.
지리
싱가포르섬
싱가포르 섬은 크지도 않았고 위엄 있는 모습도 아니었다. 이 섬에는 섬의 윤곽선을 그려 줄 만한 산들이 없었다. 그러나 빈약한 느낌은 있어도 아주 매력적인 섬인 건 분명했다. 아름다운 도로들이 쭉쭉 뻗어 있는 게 마치 잘 가꾼 공원을 보는 듯했다.
쥘 베른, '80일간의 세계일주' 중에서.
싱가포르는 섬나라로서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중 가장 큰 섬은 풀라우 우종(Pulau Ujong)이라고도 불리는 싱가포르섬이다. 면적은 710km. 전체 인구 570만 명 중 거의 대부분이 이 섬에 거주한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육지인 말레이 반도와는 그리 멀지 않으며 실제로 말레이 반도와는 2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동서길이 51km, 남북길이 26km 정도의 작은 섬이며 지도상으로 보면 말레이 반도 최남단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의 강화도나 거제도 등과 비슷해서 얼핏 지도상으로 보면 중간에 강이 흐르는 육지처럼 보인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63m의 부킷티마 힐(Bukit Timah Hill)일 정도로 평탄하다. 산이 많은 대만, 홍콩이나 역시 카메론 하이랜드 등 고지가 많은 말레이시아와 다르다. 싱가포르인들 스스로가 자국에 없는 것 3개 내지는 4개를 말하는데 보통 겨울, 무서운 놀이기구 그리고 폭력의 3無를 말하지만 부킷티마 힐을 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산까지 포함해 4無의 나라로 이야기한다. 쥘 베른은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크지도 않고 위엄있는 모습도 아니며 섬의 윤곽선을 그려줄만한 산들이 없었지만, 빈약한 느낌은 있어도 아주 매력적인 섬이라고 평했다.
나라가 작다보니 간척사업이 진행 중으로 매년 영토를 빠르게 넓혀나가고 있다. 본바탕이 워낙 작은 나라인지라 간척으로 영토를 늘린 비율은 세계 1위인데 해안선의 대부분이 갯벌이라 매립이 쉬워서이다. 싱가포르섬의 면적은 1960년대에는 582㎢이던 것이 2010년에는 710㎢로 확장되었다. 2030년까지 800㎢로 확장시킬 계획이다.
부속도서
부속도서로 테콩섬, 우빈섬, 주롱섬, 센토사섬 등이 있으나 싱가포르 본섬에 비해 한없이 작고 거주인구는 없다시피하다.
북쪽 두 섬 중에서 우빈 섬은 어촌으로 싱가포르의 전통적 마을 형태인 캄퐁이 남은 거의 마지막 곳이다. 20세기 말 개발 계획이 있었지만 환경 보호를 위해 무기한 연기되었다. 테콩섬은 싱가포르 해군에 의해 통제되는 군사기지로 섬 전체가 육해공군 통합 훈련소와 해군기지로 쓰이며 싱가포르군 관계자 외엔 출입이 금지된다.
센토사는 섬 전체가 입장료가 필요한 테마파크라 거주 인구가 희박하다. 대부분이 호텔, 리조트, 콘도미니엄 등 숙박시설이고 몇 안되는 해변가 거주지는 죄다 단독주택으로 부촌이다. 이곳은 차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워 자가용 유지보수가 가능한 부유층들이 산다.
주롱 섬은 공업단지에 해당되는 곳이라서 역시 거주민이 없다. 이 쪽에 있는 거주 지구는 중국 대륙, 남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의 기숙사들밖에 없다. 그리고 페드라 브랑카 분쟁의 대상이 된 페드라 브랑카 역시 무인도이다.
이런 연유로 싱가포르섬 외의 섬들은 센토사섬을 제외하면 사실상 관광객이 방문할 일이 없다. 이 센토사도 들어가려면 케이블카나 모노레일 등을 타야 하는데 여기에 돈을 내야 해서 사실상 입장료가 있는 셈. 단 섬 내에서와 섬에서 본토로 나올 때는 공짜다.
싱가포르 MRT 동북선은 원래 우빈 섬과 테콩 섬까지 들어가고 풍골은 지상으로 나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테콩 연장에 있어 싱가포르 해군본부가 군사보안 상 이유로 난색을 표했고 우빈 섬은 인구가 적어 결국 전 구간 지하에 풍골까지만 건설되었다. 민간인이 안 사는 섬이라 목적은 군인 및 군무원의 출퇴근 및 훈련소 입소자 수송용이었다.
세계지리적 입지
중국계가 다수를 점하지만 한국, 일본, 중국 대륙 등 동아시아와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중화권 중 그나마 가까운 홍콩도 비행기로 3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대만하고도 5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거리다. 그러나 호주 북부는 조금 가면 나오고 뉴질랜드도 그리 멀지 않다.
사실 지리적으로 홍콩이나 대만 등은 동남아시아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동아시아와는 중거리 이상으로 한참 떨어진 곳이다. 동아시아보다는 오세아니아가 훨씬 더 가깝다. 싱가포르 인구 70%가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라서 문화적으로 중화권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기는 하지만 중국보다는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 정치외교적 관계가 깊고 같은 아세안 소속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접점이 깊다.
그 외 남아시아 및 중동과도 꽤 밀접하다. 인도계 싱가포르인이 존재하며 아랍인도 싱가포르에 여럿 건너왔다. 아세안 회원국 중에서 아랍인이 많은 도시가 싱가포르와 방콕이다.
영어를 많이 쓰는 나라이다보니 영어권 국가와의 교류가 활발한데, 5시간 정도 거리에 퍼스, 7시간 정도 거리에 호주의 브리즈번 및 시드니, 9시간 정도 거리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이다. 크라이스트처치는 한국에선 한참 멀지만 싱가포르에선 10시간 조금 남짓 거리며 한국에는 다니지 않는 직항도 자주 다닌다. 호주 남동부는 싱가포르에서도 한국에서 싱가포르 오는 거리는 걸리지만 퍼스 등 호주 서부나 북부는 한국에 비해 훨씬 가깝다.
그러나 같은 영어권 국가라도 미국, 캐나다 등의 아메리카 대륙은 상당히 멀어서 교류가 적다. 미국의 영향은 필리핀, 한국, 일본, 대만을 통한 간접 접촉을 하거나 싱가포르 내 미군, 미국 영화, 미국 드라마를 통해 접한다. 물론 미국인이나 캐나다인이 사업차 싱가포르에 많이 거주하지만 이들도 직접 오기 힘들어서 한국, 일본, 대만, 홍콩을 거쳐서 오거나 아예 영국, 서유럽, 인도, 중동을 경유해서 오는 판국으로 미국과 캐나다 동부는 영국, 서유럽, 인도, 중동, 미국과 캐나다 서부는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등을 거쳐서 드나든다.
싱가포르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동남아시아의 환승 허브로 기능하지만, 그럼에도 아메리카가 상당히 멀어 미국, 캐나다 직항 노선이 드물다. 싱가포르 - 뉴욕 노선은 직항으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노선이다. 싱가포르항공의 장거리 직항으로는 서부 쪽의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직항도 있으며 이는 거리가 서울, 부산에서 멕시코시티를 가는 거리보다 조금 더 나온다. 그래서 실제로 수요가 생각보다 적다.
그래서 미국이나 캐나다로 갈 때는 홍콩에서 캐세이퍼시픽을 타거나 타이베이에서 중화항공, 에바항공을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는 당연히 더 멀어서 서울, 도쿄에서 아에로멕시코를 타는 게 유일한 루트다.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로 갈 때 대서양 연안인 서쪽 루트로 간다면 인도의 뉴델리, 뭄바이,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아부다비, 카타르의 도하를 거치거나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뮌헨,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스페인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이탈리아의 로마, 밀라노 등을 거친다.
반대로 태평양 연안인 동쪽 루트는 서울, 부산, 도쿄 나리타, 도쿄 하네다, 오사카, 타이베이, 홍콩을 거치며 싱가포르와 멀지 않고 노선도 많고 영어가 통하는 홍콩이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타이베이가 주로 선호된다. 비즈니스 출장의 경우 북아메리카 쪽 일을 처리하는 김에 홍콩 일까지 맡기거나 한국, 일본으로 출장가는 김에 홍콩에도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콩을 통해 중국 및 대만 수요를 모두 처리하며 다국적 기업의 홍콩 지사는 동아시아 및 중화권 전체를 감독한다.
싱가포르인들의 해외 경험은 가까운 영국, 호주, 뉴질랜드, 홍콩, 마카오, 대만 등이나 이웃나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홍콩과 달리 미국, 캐나다에 진출하는 인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홍콩인들은 미국, 캐나다가 그리 멀지 않아 북아메리카에도 자주 드나드는 것과 반대다. 당장 밴쿠버만 보더라도 홍콩인 유입민 비중이 높다. 홍콩 반환 이후 증가된 홍콩 주민들로 인해 리치먼드는 영어 다음으로 광동어가 많이 쓰이는 곳이다. 사실 홍콩 반환 이전에도 밴쿠버에 거주하는 중국계 캐나다인 대부분인 홍콩과 광동성에 기반을 둔 광동계 주민들이다.
그러한 연유로 이 나라를 찾는 관광객은 대게 주변 아시아 국가들이나 유럽, 오세아니아 등에서 오며 특히 싱가포르 내에 거주하는 호주인, 뉴질랜드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식수 문제
싱가포르에는 하천과 호수 등 자연 상태의 담수가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인구 밀도가 워낙 높다 보니 강우량이 1년 내내 고른 열대우림기후임에도 물 기근 국가로 분류되어, 말레이시아에서 물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이 상수도 문제이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2061년까지 상수도 계약 협정을 체결했다.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국경 지역에 가면 상수도 파이프가 있다.
싱가포르 정부에서도 말레이시아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위해 최대 30%의 물 수요를 책임질 수 있는 해수 담수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자연보호구역을 지정한다. 그래서 해수 담수화에 권위적인 기술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가 싱가포르에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정수과정을 거친 후 정수 시설이 열악한 말레이시아로 물을 역수출하며, 하수도를 정화하여 공업용수로도 쓴다. 이러한 방식으로 최대 40%의 물 수요를 담당할 수 있으며, 식수로도 쓸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실제로 NDP 같은 공식 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식수로 무료 제공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인들은 이 때문에 식수 문제에 대해 민감하여 수돗물을 절약한다.
다만 이러한 물부족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는 달리 거주용 건물의 경우, 무조건 법적으로 수영장을 포함해야하는데 이는 두 가지 이유이다. 첫 번째는 싱가포르가 사시사철이라는 것이 없이 일년 내내 찌는듯한 여름이 계속되어 열을 식히는 기본적인 수단이 필요하고, 두 번째로는 비록 적은 양이지만 일시적으로나마 말레이시아와의 관계가 틀어졌을 경우, 버틸 수 있는 생활용수(+ 식수)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사실 수영장 물이라는게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지만 물이라는게 며칠만 없어도 버티기가 어렵고 말레이시아와의 관계가 틀어져 물을 공급받을 수 없어도 싱가포르 정도의 경제력이면 며칠 내에 타국에서 물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며칠을 버티는게 중요하다.
민족
중국계 74%, 말레이계 13%, 인도계 9.1%, 기타 3.3%로 한국에서 화교라고 부르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절대 다수이다.
중국계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원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말레이인과 인도인 혈통의 타밀인도 상당수이다. 말레이인의 경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의 주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말레이인과 같은 민족이며 이들이 쓰는 싱가포르 말레이어는 표준 말레이어와 비슷하고 인도네시아의 인도네시아어나 브루나이의 말레이어와는 방언 정도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영국이 식민지 초기 남인도의 타밀나두에서 이주시킨 타밀인들의 경우 이슬람 국가인 하이데라바드 술탄국과 마이소르 술탄국 출신들이 많아 인도계 사회는 말레이시아와 달리 힌두와 무슬림이 반반씩이라 타밀인 무슬림도 충분히 많다. 리틀 인디아에 가면 타밀 무슬림들이 만드는 할랄 푸드를 맛볼 수도 있다. 이들 타밀인들은 스리랑카 내전 당시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 반군을 돕기도 했다.
여기에 동남아시아 남단의 필리핀이나 말레이 반도의 원주민족인 네그리토도 있는 듯하다. 물론 필리핀인과 말레이인 중 네그리토 계열의 주민들이 이주한 경우도 있지만 선주민일 경우도 있다. 물론 네그리토는 극소수에 속한다.
그 외 영국인들의 후손인 크리올 백인들이 잔존해 있고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 태국인, 홍콩인, 마카오인, 베트남인 등 주변 국가들에서 온 이민자들이 있다. 특히 영국계 백인들은 아직도 1-2%를 차지하며 이들은 싱가포르 국적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1965년 싱가포르 독립 후 영국인은 대다수 떠났지만 잔존한 사람들, 그리고 현지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결혼한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정착했다. 극소수 영국인들 말고 해외취업으로 이주한 호주인, 뉴질랜드인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 가정부들이나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 베트남 출신 이주 노동자는 영주권(PR) 취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통계에서 제외한다.
당연하지만 싱가포르 주재 미군, 영국군 소속 인원인 군인/군무원도 제외된다. 한국인의 경우 싱가포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기에 한국인 싱가포르 영주자와 아예 싱가포르 국적을 취득한 한국계 싱가포르인 등이 포함되기도 한다.
기후
동남아시아에서도 적도에 근접한 최남단에 속하는 나라답게 덥고 습하다. 물론 중국 대륙 남부 연안이나 대만, 일본 열도 등 동북아시아의 여름에 비하면 적도무풍대라서 습도가 그렇게까지 높진 않아서 쾌적한 편이다.
1991~2020년 평균값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일 최고기온 평균은 31.6℃, 일 최저기온 평균은 25.0℃이며 연평균 기온은 27.8℃로 연교차가 거의 없이 1년 내내 덥다. 연평균 강수량은 2,113mm로 1년 내내 비가 많이 와서 전형적인 열대 우림 기후 지역에 속한다. 연간 강수일수가 171일로 절반에 가까우며 연평균 습도 역시 82.2%로 매우 높다. 밤에도 열대야처럼 후덥지근하다.
그렇지만 같은 기후대인 마닐라, 세부, 방콕, 쿠알라룸푸르, 플라우피낭, 자카르타, 호찌민 등 보다는 쾌적한 편에 속한다. 확실히 위 지역들을 다녀오면 그나마 낫게 느껴진다. 사실 기후대야 똑같은 열대기후로 더운 건 똑같지만 정확히 말하면 더위 자체보단 쾌적함의 문제다.
아주 날씨가 후덥지근한 적도 기후대이며 그래서 싱가포르를 여행 오는 사람들에게는 가급적 티셔츠를 많이 챙겨올 것을 권장한다. 가끔 비가 세차게 올 때 약간 서늘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습도가 높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아무리 냉방이 잘 되어 있어도 땀 냄새를 진득하게 맡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가게나 학교에서 에어컨을 항상 틀어놓아 안에 오래 있으면 오히려 추울 정도다. 한국은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에어컨 사용을 대거 규제하지만 여기는 그런 거 없다. 당장 싱가포르의 국부나 다름없는 리콴유 전 총리부터 에어컨이야말로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치켜세웠을 정도니 아낌없이 틀어댄다. 에어컨이 없었으면 열대 지방에서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으니, 결국 오늘날 싱가포르의 경제적 번영의 일등공신은 에어컨이라고 한다. 묘하게 말이 된다. 더위+ 습도+ 도시라는 3중 결합이 이루어지니 매우 덥다.
밖은 30~35℃, 안은 18~20℃라는 극심한 실내외 온도차 때문에 싱가포르에 처음 온 사람들은 의외로 감기에 잘 걸린다. 익숙해진 후에도 냉방병 걸리기 매우 쉽다. 추위에 약하거나 에어컨 바람에 민감한 사람들은 실내에서 걸칠 옷 같은 걸 준비하자. 그렇지만 에어컨 강도가 홍콩에 비해서는 약하다. 그리고 적도 무풍지대라 그런지 7-8월의 홍콩이나 대만에 비해서는 그나마 덜 습한 편이다.
우기인 겨울(11~1월경)에 스콜이 자주 내린다. 이 스콜이 워낙 짧고 굵게 쏟아지는지라 "싱가포르 사람들은 우산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 그 이유는 비가 내리고 몇 분 후에 그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몇 분 정도는 과장이라고 해도 실제로 길어야 몇십 분 내리고 곧바로 햇빛이 쨍쨍해지는 경우도 많다. 다만 우산을 진짜로 안 가지고 다니면 봉변을 당하기 쉬운데 싱가포르 비는 짧지만 굉장히 굵게 쏟아지기 때문이다. 우기엔 어떨 때는 아직 정오도 안 됐는데 하늘이 오전으로 안 보일 만큼 어둑해질 정도다.
가끔 천둥번개까지 치는데, 쏟아지는 비 만큼이나 천둥의 스케일도 남달라 집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포성을 번개칠 때마다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날씨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작은 나라이면서도 지역별로 날씨가 죄다 다른 재미있는 경우가 굉장히 흔하다. 예를 들면 동부는 폭우가 쏟아지는데 중부는 쨍쨍하고 서부는 구름만 낀 정도다.
날씨는 종합해서 얘기하면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여행객들이나 단순 육체노동자에겐 가혹하지만 사무실에 대부분 앉아있는 비즈니스 출장자들이나 해외취업으로 이민 온 사무직 종사자들에게는 한국의 한여름과 별 차이는 없게 느껴진다.
강우량이 조금씩 달라지는 정도를 제외하면 1년 내내 같은 기후라 자연 풍경의 변화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눈 대신 야자수가 뒤덮인 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있기도 하는 만년 에버그린의 나라이다. 다만 우건기의 구분은 있어 11, 12월에 강수량이 늘어나고 일조량이 감소하는 등의 변화는 있다. 그리고 일출과 일몰 시간의 경우 적도대에 위치하기에 오전 7시와 오후 7시로 연중 내내 일정하다보니 하지와 동지의 변화가 거의 없다.
이렇듯 싱가포르는 기후의 변화가 없으니 계절성 우울증이 거의 없다. 계절성 우울증은 봄에 회복되기에, 계절성 우울증 환자들이 봄을 기다리는 희망으로 버티는 것과 대조된다. 계절성 우울증은 대개 온도 변화 및 일조량 감소로 나타난다. 특히 일조량 감소는 세로토닌 분비의 저하와 직결된다.
1년 내내 같은 기후라 자연 풍경의 변화도 없다시피한 것은 4계절의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점일 수 있으나, 환절기마다 감기나 피부 트러블인 아토피성 피부염, 아니면 류마티스 등으로 몸이 새로운 계절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1년 내내 온화하여 안정적이라는 것은 장점이 될 것이다.
싱가포르 기상청에 따르면 도시 기온이 지난 60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다. 10년 단위로 0.25도씩 상승했는데 이는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빠른 수치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섬나라기 때문에 해수면 상승이 이어지면 섬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도시가 해수면으로부터 많이 높지 않은 지역에 조성돼 있어 해수면 상승은 치명적이다. 물론 당장 도시 존립이 위협받는단 얘기는 아니고 지구 온난화에 대한 원론적 경고에 가깝다. 싱가포르는 산이 없는 나라라서 해수면보다 지면이 낮기 때문이며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도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다.
싱가포르/경제
인구
604만 명
2023년
경제 규모(명목 GDP)
5,617억 달러
2025년
경제 규모(PPP GDP)
8,799억 달러
2025년
1인당 명목 GDP
93,960 달러
2025년 IMF 기준 세계 4위
1인당 PPP GDP
153,609 달러
2025년 IMF 기준 세계2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134.2%
2022년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Aaa
2024년, 1등급
피치 국가 신용등급
AAA Stable
2023년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꼽힌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2025년 IMF 통계 기준 93,960달러, 세계 4위로 미국(89,680달러), 노르웨이(90,320달러)보다 높고, IMF기준 싱가포르보다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는 아일랜드(107,240달러), 스위스(111,720달러), 룩셈부르크(141,080달러) 3개국이 전부다. 국가신용등급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3대 국제신용평가사에서 모두 트리플A를 받았다.
싱가포르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지정학적 위치의 중계무역 중심지로서 독립 이전부터 아시아에서는 경제적 수준이 높은 곳이었다. 싱가포르 식민지 시절이던 1960년부터 이미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428달러로 세계 평균(459달러)보다는 약간 낮긴 했으나 홍콩(424달러)보다도 높은 것은 물론 논외격이었던 이스라엘(1229달러)과 한참 고도성장의 가도를 달리던 일본(479달러)을 제외하면 아시아에서 상위권으로 잘 사는 나라였다. 단 유의해야할 점은, 당시에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제1의 항구로써 기능을 하였기에 그 정도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말레이시아와의 독립이 어떤 과정에서 이뤄졌든 싱가포르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일은 이미 예정되어있었다고 봐야한다. 1968년 기준으로 1인당 GDP가 709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평균을 넘기긴 했으나 본격적인 경제성장은 1970년대에야 시작되는데, 처음으로 1000달러를 돌파한(1071달러) 1971년으로부터 10년 후인 1981년에는 세계 평균(2594달러)의 2배를 넘긴 5596달러를 기록, 싱가포르는 1980년대 초부터 선진국이라고 부를 만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리콴유 퇴임 1년 전인 1989년에는 1인당 GDP가 10,395달러로 1만 달러를 돌파했고,11 1994년에는 21,553달러로 2만 달러를 돌파하며 영국, 이탈리아, 호주 이상으로 높았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상처로12 잠깐 머뭇거릴 뻔했으나 대침체 시기에는 오히려 멈출 줄 모르는 성장을 기록,13 2011년 53,890달러를 기록하며 5만 달러를 돌파함과 동시에 미국까지 추월했고, 2020년 61,274달러, 2022년에는 82,808달러, 2024년에는 91,100달러를 기록하며 64년 만에 무려 212.8배나 성장했다.
총 GDP도 1960년 7.05억 달러도 되지 않던 게 1989년 304.7억 달러, 1997년 1001억 달러, 2020년 3484억 달러, 2022년 4668억 달러, 2024년 5252억 달러로 64년 만에 무려 744.9배나 성장했다. 사실상 보츠와나, 대한민국, 산유국들을 제외하면 따라올 대상이 전혀 없는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룬 셈.
독립 이후부턴 지정학적인 입지를 살려 임가공, 선박정비에서 출발해 21세기를 전후해서는 금융허브 도시국가로 성장했다. 관광, 석유가공, 도박 산업도 성공시키며 상술한 것처럼 1인당 GDP가 미국보다 높은 부국으로 성장했다. 다만 1인당 GDP는 1인당 평균 소득과는 다른 개념이라 싱가포르도 소득 양극화가 심한 편이긴 하다. 자세한건 후술된 소득 항목 참조. 실업률은 2020년 기준 약 2.9%로 평균 2%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고용률도 높은 편. (싱가포르 통계청 자료 참조). 노동시간은 긴 편이다.
싱가포르는 경제적으론 시장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도시지만, 역설적이게도 국영 기업들의 비율이 높은 도시기도 하다. 국영 투자회사인 GIC Private Limited와 테마섹은 싱가포르항공 및 싱가포르 창이 공항, 싱가포르항만공사, 싱가포르텔레콤, 싱가포르개발은행, 미디어코프, Seatrium, STATS칩팩 등과 같이 사회간접자본 분야를 필두로 국내 대부분 산업에 걸쳐 대기업들을 지배하고 있다. 테마섹의 전직 최고경영자는 리셴룽 총리의 부인인데, 덕분에 최악의 정경유착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탐오조사국까지 차려 부정부패를 척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싱가포르지만 이런 불공정한 모양새는 말이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에 따르면 2014년 세계 정경유착 순위 5위에 랭크되었으며, 세계의 자유 지수에서도 싱가포르는 부정부패와 관련된 C2 조항에 정경유착이 반영되어 4점 만점에 3점에 그치고 있다.
싱가포르는 권위주의적인 정권 특성상 '잘 사는 북한'이라는 비난도 듣고 있다. 이전부터 동남아 무역허브로서의 지리적 이점과 중화 문화권에 영어가 통하는 지역이라는 이점으로 홍콩과 함께 동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특혜도 누리고 있지만, 2010년대 들어 홍콩의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이로 인한 중국과 서방세계의 마찰로 서구권 자본이 홍콩에서 빠져나오는 시점에서, 친서방 국가이지만 경찰국가로도 일각에서 부를 만큼 사회적 통제가 큰 싱가포르가 홍콩과 큰 차이가 없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이로 인해 서구권 자본이 대거 투입된 이런 싱가포르의 번영은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시키는 것에 그친다고 저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2020년 싱가포르 총선거 이후로 야당이 크게 약진하면서 싱가포르의 사회 분위기가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S&P, Fitch와 Moody's에서 모두 국가신용등급 최고등급을 받은 국가이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유일하며, 중립국으로서의 안정성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돈 세탁
'아시아의 스위스'라는 경제 모델을 지향하다보니, 돈의 출처에 대해 문제삼지 않아 검은 돈이 몰려들고 있다. 돈만 있다면 이민도 쉬워서 남의 나라 경제 사범까지 받아들인다고 한다. 특히 싱가포르 정부는 타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좀처럼 맺지 않기 때문에 아시아 주변국들로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경제 사범을 숨겨주는 싱가포르에 반발해 간척에 필요한 모래 수출 중단 조치를 내린 적도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헐값에 매물로 나온 각국의 기간 은행을 대대적으로 인수해 반감을 산 적도 있다. 태국에선 싱가포르가 은행 뿐 아니라 탁신 친나왓 총리 소유의 통신 대기업을 통째로 사들이면서 싱가포르에 대한 국민 감정이 터졌다. 태국의 한 장군은 자기 부하들에게 전화 도청 우려가 있다며 사용 중지를 명했을 정도. 각국 대기업 지분 인수에는 테마섹이 이용됐다.
2023년도 들어 SGD 3billion(약 3조원대) 자금세탁 스캔들이 터졌으며20, 다른 자금세탁 사건에서도 싱가포르 로컬은행이나, Citibank 같은 글로벌 은행도 방지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데에 벌금이 매겨지고 있다. 3조원대 사건을 보면 알겠지만 주요 자금세탁 연루자들은 캄보디아, 키프로스, 터키 등 자금세탁 위험국가의 국적을 취득한 신분세탁 중국인들이다. 금융허브로서 돈을 끌어모은다는 발상은 좋으나, 그 출처를 따지지 않을 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한 수치 상으로만 불려진 싱가포르 GDP 같은 것이, 실제 싱가포르 국민의 삶의 질과는 동떨어질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복지정책과 노동정책
국민에게 주는 복지 정책의 경우, 우선 주택 문제에서 주택의 85%를 싱가포르 주택개발청이 저렴하게 분양 혹은 임대해 국민 부담을 줄이고 있다. 쉽게 말해 집 사지 말고 임대해서 반평생 살라는 것. 한국인들이 매달 국민연금을 월급에서 떼듯이, CPF라는 이름의 연금을 강제 가입하게 해서 임대주택을 청약하게 하고 있다.22 저축액에 대해서는 3~5%의 이자를 지급한다. 또 싱가포르는 의료보장정책으로 3Ms(Medisave, MediShield Life, Medifund)와 장기요양보험인(Elder Shield)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주택과 의료 복지 정책을 제외하면, 나머지 싱가포르의 복지 정책은 마냥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싱가포르 인구의 1/4인 130만 명 정도는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로 상당수는 동남아/서남아 개도국이나 빈국 출신들이다. 따라서 노조가 있긴 하지만 단순 노동력은 자국민이 아닌 개도국 외국인력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만큼 정부에 의해 강하게 통제되어있다.
단순 인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자국민이 아닌 빈국 출신이다 보니 최저임금 제도가 없고 해고와 이직, 고용 등에 있어 노동자에 대한 보호장치가 적고 고용유연성이 매우 높다 (고용유연성이 높아 실업률이 낮은 것은 그나마 위안). 게다가 무기 계약직이 성행하고 고용에 따른 기업의 준조세 부담 또한 거의 없는 수준. 쉽게 말해 (일부 분야에 한해) 시장 자율성을 최대로 올려놓고, 사회안전 보장제도는 비교적 적어 보인다.
특히 2013년 인도계 외국인 노동자들이 싱가포르에서 일으킨 폭동은 싱가포르 노동정책의 어두운 단면들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 기준이 아닌 싱가포르 국적자 기준으로 보면 국민들의 최소한의 생계에 걱정이 없도록 노력은 한다고 볼 수 있는데, 먼저 주택과 건강 보험 이야기는 앞에서도 나왔고 다른 부분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싱가포르는 무상 복지가 없는 대신 일할 의지가 있는 국민들에게는 상당히 지원을 해준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복지' 정책은 아니지만 외식을 포함한 식료품값은 정부가 책임지고 제대로 관리한다. 대놓고 요식업자들을 겨냥한 특혜 패키지까지 있다. 어차피 날씨도 덥겠다, 외식을 많이 한다? 그만큼 여가나 여유 시간이 확보된다. 대중교통망 덕분에 운전을 할 필요 자체를 없애놓은 것과 없어서 시간 그 자체를 은근히 많이 벌 수 있는 쪽으로 국가 체계가 짜여있다; 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 실직에 맞서서 정부 차원에서 재교육/재훈련 보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5. 요식업 특혜와 대중교통 이용으로 번 자투리 시간을 여기서 쓰는 것이다.
국가의 행정기관들과 종교들이 힘을 합친 대규모 푸드뱅크26 까지 굴리며, 2025년까지 식량 불안을 완전히 뿌리뽑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교육과 주거를 무상으로 제공하지는 않지만 월 50싱가포르달러에 방2개짜리 HDB를 제공한다거나 초중등교육도 소액이지만 조금은 수업료를 내게 되어있다. 동시에 에듀세이브(EduSave)라고해서 교육비로 쓸 수 있는 기본소득을 제공하기도 한다.
요컨대, 일을 하기는 해야 하고, 노조나 파업 등에 대한 규제도 얼핏 보면 굉장히 심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에 대한 소통망이 닫혀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권위주의'라고 해서 마냥 꽉 막히고 소통이 단절된 폭군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실제로 보편복지의 일환으로 CDC Voucher(Community Development Council Voucher)를 종종 시민권자 가정에게 지급한다. 2024년 1월에는 식료품 구매에 250 싱가포르달러, 호커센터 등 서민 식당에서 250 싱가포르달러를 쓸 수 있는 온라인 바우처를 지급했다.
싱가포르의 복지 원칙을 요약하자면 일단 싱가포르 국적자 기준 스스로 일할 의지가 있으면 기본적인 생활 여건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무상 복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일을하는 저소득층에게는 각종 복지혜택을 제공한다. 각주에서 이야기한 월5만원짜리 임대주택이 그 중 한 예이다. 뿐만 아니라 지체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그랩(Grab) 음식배달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지체장애인들에게도 사회생활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선진적인 장애인 정책이기도하고 동시에 무상복지 대신 조금이라도 일하는 경우에 복지를 제공한다는 싱가포르의 복지 철학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싱가포르 구성원 상당수를 차지하는 동남아, 서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 여건은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국적자 기준이면 최소 의식주 문제는 걱정없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물가
GDP를 생각하면 생각보다 물가가 비싸지는 않다. 당연히 분야에 따라선 물가가 더 비싼 부분도 있지만 편의점이나 일반 음식점 등에서의 물가는 북유럽이나 하와이 등과 같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는 아니다. 이것이 전술한 주거복지정책과 합쳐진 덕택에 봉급 수준이 선진국치고 높지 않음에도 대부분의 선진국과 달리 PPP가 GDP보다 많이 높으며, 경제적인 격차가 심하더라도 소박하게 먹고 살고 복지 혜택을 받는 데에는 지장이 없기에 정계에 큰 혼란이 없이 나라가 잘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주거비, 자동차, 주류와 담배를 재외하면 한국과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성공적인 복지라고 호평받는 공공주택도 요즘 한국부동산만큼 상승했다. 3-4억에 분양된 아파트는 재판매 시장에 올라오면 30평대 초반이 7-10억대쯤 거래되고 있고 6-7억정도에 분양된건 12-15억쯤에 거래되고 있다. 게다가 1년에 1만-1만 5천호 밖에 공급이 안되기 때문에 싱가포르인들 이거랑 자동차 만큼은 정부 욕 오지게 한다. 한국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수영장 있는 아파트는 콘도라고 불리는데 30평대에 최소 20억정도고 시내쪽이면 30억이 넘는다.
자동차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싸지말라고 만든 수준이다. 2025년 기준 아반떼 1억 8천만원 ,펠리세이드가 3억원,벤츠 E클래스가 4억원. 포르쉐 911터보 모델은 한화로 10억이 넘은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는 한화로 20억이 넘는다. 이가격도 풀옵기준이 아니라 깡통 모델기준이다. 이렇게 비싼 이유중 하나라면 COE라는 시스템 때문인데 이게 10년동안 자동차 소유할수 있게 해주는 소유증서이다. 배기량에 따라 다른데 9천만원에서 1억 2천만원 정도이고 여기에다가 관세 100-300% 추가라서 세계에서 자동차가 제일 비싼 나라이다.
맥주의 경우 마트에서 구하면 한캔에 $2-$5정도로 엄청 비싸진 않지만 식당가면 한캔에 최소 $10이고 소주의 경우 한병에 $20넘는곳도 많다
담배의 경우 한갑에 $15정도.
여기에는 무역항 및 풍부한 해산자원에 더해 결정적으로 바로 옆에 물가가 훨씬 싼 말레이시아가 붙어있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당장 싱가포르 주민들도 생활물자 등의 쇼핑은 옆동네 말레이시아로 넘어가서 잔뜩 사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니 싱가포르 내 물가도 확 뛸 수가 없다. 덕분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잇는 다리는 관광객들까지 겹쳐 항상 붐빈다. 심지어는 매일 국경을 넘나들며 거주는 말레이시아에서, 노동은 싱가포르에서 하는 경우도 상당한 편이다.
주요 산업
해운업
태평양 항로와 유럽 항로를 연계하는 말라카 해협에 있어 환적허브로 자리매김한 싱가포르항은 중국 상하이항이 부상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세계 1위의 물동량을 기록했던 항구며 상하이항에게 1위 자리를 뺏기고 난 후에도 세계 2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상하이항이 세계 최대 수출입 항만이라면 싱가포르항은 세계 최대의 환적 항만, 컨테이너 터미널이다. 전 세계 환적 화물의 20%를 싱가포르항에서 처리하며, 선박 벙커링(급유) 규모로는 1위이다. 싱가포르항을 운영하는 PSA는 세계 1, 2위를 다투는 항만 운영사이기도 하다.
제조업/항공기계 산업
흔히 금융업, 무역업,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는 인식과는 다르게 제조업이 가장 크며, 전자산업이나 석유화학, 해양 플랜트를 위시로 한 조선 기자재 산업 등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Seatrium이 있다. 2021년 기준 제조업이 GDP의 22%이고, 노동자의 12%를 고용한다. 반도체 산업이 가장 규모가 커서 혼자서 경제 규모의 7%를 차지한다.
사운드 카드였던 사운드 블래스터를 만든 크리에이티브 랩스가 싱가포르 회사. 과거에는 매킨토시 등 애플 제품도 싱가포르에서 제조된 바 있다.
미국의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의 공장 대부분이 싱가포르에 위치해 있으며 현대자동차 공장도 있다.
싱가포르 하면 비싼 인건비 덕분에 막연하게 제조업이 취약할 것이라는 인식과 달리 중공업/ 첨단 제조업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다. 특히 싱가포르는 홍콩과 말레이사와 함께 많은 외항사들이 항공기 수리/ 전자시스템/기체 개조 및 업그레이드를 하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FAA,EASA,CAAC의 기준을 충족하는 고급인력과 기술을 갖춘 기업들이 다수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SIAEC와 ST Engineering Aerospace가 있다. 특히 싱가포르의 FAA의 격인 CAAC는 엄격한 항공안전 스텐다드와 규제로 명성이 높다.
대표적인 고객으로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와 델타항공 에미레이츠항공 그리고 창사 이래 클린 레코드를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항공사로 알려진 칸타스가 있다. 싱가포르 MRO가 국제적 신용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 알수 있는 대목.
금융업
싱가포르를 먹여살리는 젖줄 그 자체. 동남아시아에서는 인니에 이어 두번째로 큰 증권거래소인 싱가포르 거래소가 있고, 자산관리와 자원거래에 특화되었다.
증권거래소는 지속 하향세이다. 상장회사 수는 2010년 782개, 2018년말 741개, 2022년말651개, 2023년말 632개로 상장폐지가 신규상장을 지속 압도하고 있다. 그나마 REITs가 조금 먹어준다.
프레친과 베르텍스 연구소의 보고서를 분석한 기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 사이에 전체 벤처 투자액이 2,060억 달러(한화 약 20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아시아 금융 허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 기업 시가총액 1,2위는 금융사인 싱가포르개발은행과 OCBC다.
아세안 지역의 벤처 투자 중 6개 펀드의 본사도 싱가포르에서 조성됐고 3억 1,360만 달러(한화 약 3,941억 원) 규모의 베르텍스 SEA & 인디아 펀드(Vertex Ventures SEA & India Fund)Ⅳ는 6개 펀드 중 가장 큰 규모의 펀드다.
아세안에 집중된 운용자산(ASEAN-focused Assets under Management)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530억 달러(한화 약 66조 6,210억 원)에 도달했고, 시장으로 투입된 운용자산 규모도 처음으로 100억 달러(한화 약 12조 5,700억 원)를 기록했다.
가변자본회사(variable capital company, "VCC") 제도 시행 후 펀드설립이 용이해지고 세제혜택이 커지면서, 자산운용업 운용자산규모(AUM)은 2021년 피크에 SGD 5.4trillion (한화 약 5400조원)을 찍었다.
국부펀드인 싱가포르 투자청하고 테마섹이 유명하다. 글로벌 리츠로 유명한 캐피탈랜드 아쎈다스 리츠가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되어 있다.
관광/도박업
싱가포르는 관광 도시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주변국 여행과 쇼핑까지 겸한 수요도 끌어들이는 편. 이런 연장선상에서 2000년대 중반부턴 복합 리조트 계획도 밀어붙이는데, 특히 2000년대 후반 세계금융위기로 싱가포르를 지탱하던 금융업이 휘청일 기미를 보이자 새 돌파구로 찾은 것이 카지노 산업이었다. 초대 총리인 리콴유를 포함해 많은 싱가포르인들이 도박 합법화에 반대했지만, 자국민의 도박 중독을 줄이기 위한 규제와 같이 도박 산업은 허용되었다.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 만들어진 2012년 전만 하더라도 싱가포르에서 관광의 비중은 매우 약했으나 현재로써는 관광의 비중이 매우 높아지고있다.
금융업이 아직까지는 대세이지만 여러모로 타격이 크고 일련의 이유로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금융업은 견뎌낼 재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라의 체급이 워낙 작으니 제조업은 도저히 활성화가 불가능한 만큼 관광업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라스베가스 샌즈 소유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은 전세계에서 카지노가 포함된 복합시설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소득
싱가포르 통계청에 의하면 싱가포르 국적, 영주권을 보유한 정규직 근로자의 중위소득은 24년 기준 월 5,500 싱가포르 달러34, 한화로 한 달에 약 590만원 버는 수준이다.
중위 가구 소득은 한달 기준 $11,297.
24년도 기준 228만원인 한국 1인가구 중위 소득과 비교했을 때 약 2.5배 정도 차이가 나는 수준이다.
비슷한 도시국가인 리히텐슈타인, 홍콩, 마카오와 비교하면 각각 장단점들은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1인당 GDP는 10만 달러가 훨씬 넘고 홍콩과 마카오의 1인당 gdp는 50,000달러 넘는다. 리히텐슈타인은 대부분의 국민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독일 등 주변국에 취직하니 침대경제라고 볼 수 있고 홍콩의 경우 금융권 위주로, 마카오는 카지노 산업 위주로 돈을 번다. 당연히 이로 인해 양극화가 극심하다. 싱가포르도 예외는 아니라서, 부가 특정 계층에 쏠리는 것이 웬만한 선진국가들보다 심한 편이다.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부실하다보니 소득이 외국계 부유층과 금융권 종사자들에 집중되어 있다. 다만 주변이 자국보다 소득이 떨어지다 보니 리히텐슈타인이나 마카오처럼 주변국에 많이들 취직하지는 않는다. 물론 싱가포르에는 다국적 기업이 많다. 다만 이유를 보면 규제가 적고 금융권, 공무원을 제외한 대부분 국민들의 임금을 낮게 주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하위계층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영상. 싱가포르의 소득 불평등을 잘 보여주니 한번쯤 시청하길 바란다.
애초에 1인당 GDP라는 것은 1인당 평균 소득과는 다른 개념이다. 싱가포르의 1인당 평균 소득이 90,000달러 정도(한화로 약 1억 3,000만원)이기 때문에 싱가폴 사람들의 평균 연소득이 30,000달러 정도인 한국인들보다 통상적으로 3배 정도라고 생각하는 한국사람들이 많지만 이것은 사실과 좀 다르다. 앞서 언급한 도시국가+ 바레인, 카타르, 브루나이, 쿠웨이트 등 국가규모는 작지만 석유가 쏟아지는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의 부의 대부분은 소수의 계층에게 편중되어 있고, 싱가포르의 부유층들은 대부분 현지 재벌, 엘리트 금융계 종사자, 외국인 기업가, 성공한 사업가들로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대다수의 현지인들은 그냥 중소기업, 하급 공무원, 버스 운전자, 택시기사 등의 일로 먹고 살며 소득도 그리 많지 않으며 우리들의 편견과는 달리 절대적 빈곤층도 꽤나 많은 편이다. 부유층들은 개인주택 아니면 최고급 콘도미니엄에 사는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낡은 아파트에 산다. 또한 한국의 영구임대아파트와는 다소 다른 개념이지만 국민의 86%는 HDB라고 하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실정이다.35
아울러 개인 소득과 가계 소득의 차이가 워낙 심한데, 이건 대부분의 경제 선진국들에서 보기 힘든 현상이다. 싱가포르의 경제통계는 국제기구에서 찾기 힘든데 그래서 직접적으로 기준을 통일하여 비교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원인일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싱가포르의 높은 가계소득은 자국의 금융권 종사자들과 고연봉 공무원 그리고 적은 규제와 세금감면 등 각종 혜택으로 인해 돈 있는 외국인 부유층이 이민을 굉장히 많이 오는데 이때 외국인 부유층들의 자산이 가계소득에 포함되기 때문에 개인소득과는 별개로 가계소득만 늘어날 수 있다.
노동시간이 상당히 긴 편이다. 2016년 기준 싱가포르 고용노동부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간 노동시간은 2,371시간이다. 그러나 주당 노동시간은 40시간 안팎이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이 2,193시간, 주당 노동시간이 43시간 이상인 것과 비교된다. 싱가포르인들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다음 투표 때 여당에 대한 지지율 변화를 주목하기 바란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2019년 실질 GDP 증가율은 전년대비 0.7%를 기록하면서 실질 국내총생산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싱가포르 무역산업부가 발표했다.
GDP
2017년 기준 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무려 300%를 상회했을 정도로 수출 주도형 경제가 갖추어졌으며, 내수 구성비가 50%에 못미칠 정도로 내수가 빈약한 편이다.
Singapore, officially Republic of Singapore, Island country, Southeast Asia. Situated off the southern tip of the Malay Peninsula, it comprises Singapore island and 60 islets. Area: 284 sq mi (735 sq km). Population: (2025 est.) 6,158,000. Capital: Singapore. Three-fourths of the people are of Chinese ethnicity; most of the rest are Malays and Indians. Languages: English, Chinese (Mandarin), Malay, Tamil (all official). Religions: Buddhism, Islam, Christianity, Daoism, Hinduism. Currency: Singapore dollar. Nearly two-thirds of the island’s hilly landscape lies below 50 ft (15 m) above sea level. It has a hot, humid climate. Although only about 2% of its land is arable, it is highly productive cropland. The economy is based largely on international trade and finance; there are more than 100 commercial banks, most of which are foreign, and the headquarters of the Asian Dollar Market is located there. The port is one of the largest in the world, and the country is one of the world’s leading petroleum refiners. Manufacturing (notably electronic equipment) is also important. Singapore is a unitary parliamentary republic with one legislative house; its head of state is the president, and the head of government is the prime minister. Long inhabited by fishermen and pirates, it was an outpost of the Sumatran empire of Shrivijaya until the 14th century, when it passed to Java and then Ayutthaya (Siam). It became part of the Malacca empire in the 15th century. In the 16th century the Portuguese controlled the area; they were followed by the Dutch in the 17th century. In 1819 it was ceded to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 becoming part of the Straits Settlements and the centre of British colonial activity in Southeast Asia. During World War II the Japanese occupied the island (1942–45). In 1946 it became a crown colony. It achieved full internal self-government in 1959, became part of Malaysia in 1963, and gained independence in 1965. Singapore is influential in the affairs of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 The country’s dominant voice in politics for 30 years after independence was Lee Kuan Yew. Singapore has become a regional economic powerhouse.
Singapore, City (pop., 2005 est.: 4,291,000), capital of the Republic of Singapore. A free port centred on the southern part of Singapore island, it so dominates the island that the republic is now commonly considered a city-state. Known as the Garden City for its many parks and tree-lined streets, it offers glimpses into the cultures brought to it by immigrants from all parts of Asia. It was traditionally founded by a Shrivijayan prince and was an important Malay city in the 13th century. Destroyed by the Javanese in the 14th century, it was refounded by Stamford Raffles of the British East India Company in 1819. It became the capital of the Straits Settlements in 1833 and developed as a port and naval base; today it is one of the world’s great commercial centres. Its thriving banking, insurance, and brokerage firms make it the chief trading and financial centre of Southeast Asia. It is home to the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