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심리학(existential psychology)
실존주의 심리학(existential psychology)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그 교리에 여러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개인의 존재 조건과 감정, 행동, 책임 그리고 사고에 집중하는 철학들을 일컫는 말이다. 19세기 초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훗날 실존주의의 아버지로 간주되는데, 그는 개인은 절망, 불안, 부조리, 소외 그리고 지루함에 이루기까지 많은 실존의 장애물과 불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삶을 열정적이고 진실되게 살아갈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나타난 실존주의 철학들은 개인에 중심을 두지만 그것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이런 차이에는 성취있는 삶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극복되어야할 장애물인가, 어떤 내외부적 요인이 관련되어 있는가, 신은 존재하는(유신론적 실존주의)가 그렇지 않는가(무신론적 실존주의) 등이 있다. 많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전통적 체계적 혹은 학계의 철학이 스타일과 내용 모두에 있어서 추상적이고 실제 인간의 경험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간주했다. 실존주의는 2차대전 이후 인간 개성과 자유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방법으로 유행하게 된다.
실존상담(實存相談, Existential Therapy)
인간의 존재 전체를 통째로(whole) 다루고자 하는 상담접근. 인간 존재의 의미, 선택, 딜레마, 한계, 도전, 장애, 문제, 용기, 개방, 겸손과 같은 인간 존재의 전체를 다루는 접근이다. 실존상담의 직접적인 뿌리는 1940~50년대 유럽의 대륙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실존주의 철학에 있다. 실존상담의 특징을 간단히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실존주의 철학에 기반한 상담
2) 관계성, 자발성, 유연성, 자유를 중심으로 둔 상담
3) 치료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상담
4) 내담자의 고유성을 받아들이는 상담
5) 내담자 실제 삶의 맥락을 탐색하는 상담
6) 상호 관계성을 핵심에 놓는 상담
7) 상담자가 동반자, 가이드 역할을 하는 상담
8) 아무런 가정이나 목표를 정하지 않는 현상학적 접근
9) 내담자의 월드뷰(세계관)를 탐색하는 상담
10) 단순한 테크닉 사용을 꺼리는 상담
실존상담은 우리나라에서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어빈 얄롬(Irvin Yalom)의 주제적 접근 방식만 자격증 시험에서 다루는 정도이다. 얄롬은 실존상담을 주제로 대중적인 책을 많이 내고 있다. 얄롬이 미국에서 실존상담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이유 때문인지, 미국에 많은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에서도 실존상담이라고 하면 곧잘 얄롬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얄롬의 죽음, 소외, 무의미, 자유와 같은 실존적 주제를 다루는 상담은 영국 실존상담자 어네스토 스피넬리에게 비판을 받는다. 그런 주제를 다루는 것은 다른 상담접근에서도 할 수 있으므로 실존상담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담의 방법론이 실존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스피넬리의 비판점이다(Spinelli, 2014, p.10). 얄롬을 실존상담자로 분류해야 되는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존재한다(Van Deurzen et al., 2019, p.283). 실존상담은 얄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다양하다.
실존상담은 다양한 방식으로 생겨나고 있다. 실존주의가 큰 주제를 공유하지만, 실존주의로 분류할만한 철학자들의 개별적 접근은 다소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처럼 실존상담 역시 하나의 고정되고 단일한 모델로 분류하기는 힘들다. 인간중심상담의 칼 로저스나 REBT의 알버트 엘리스와 같이 실존상담에는 한 명의 창시자가 있지도 않다. 영국 실존상담자 믹 쿠퍼는 실존상담은 하나의 방식으로 정의하기가 불가능하고 다양한 치료적 실제의 스펙트럼을 가진 접근이라고 말한다(Cooper, 2016, pp.3-5). 스피넬리는 한 인터뷰에서 실존상담의 특징이 뭐냐는 질문에 웃으며 "굉장히 대답하기 힘들다. 실존상담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우리(실존상담자들)가 어떤 것에도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그렇기에 오직 철학상담의 관점에서만 실존상담을 해석하고 그것이 단 하나의 정답인 것처럼 제시하려는 시도는 편협한 시각이다. 그것을 주장하고 싶다면 실존철학상담이라고 따로 부르면 된다. 미국 실존상담자 루이스 호프만의 주도로 2010년 중국 난징에서 첫 번째 세계 실존심리학 학술회의가 열린 이후 전 세계의 실존상담자들은 계속해서 교류하는 중이다(Hoffman et al., 2020; Van Deurzen et al., 2019, pp.582-585). 실존심리학이 아니라 실존상담은 2015년에 영국 런던에서 첫번째 세계 실존상담 학술회의를 열었고, 2019년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렸다. 2023년에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다. 그런 세계적 교류를 통해서 실존상담자들이 서로 동의할만한 실존상담 학파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실존상담을 현존재분석, 현상학적 실존상담, 인간중심적 실존상담, 로고테라피와 같이 4가지로 분류하는 것이다.
현존재분석은 실존상담의 시초이자 뿌리로 거칠게 환원해서 말하자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라는 틀에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채운 것이다. 실존상담의 시초이자 뿌리인 현존재분석에서 하이데거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으니 실존상담은 하이데거에 가장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존상담은 하나의 단일한 접근이 아니기에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현상학적 실존상담은 내담자의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묘사하고자 하는 현상학적인 접근이다. 보통 현상학적 실존상담은 영국에서 시작되었기에 영국 실존상담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현재는 전 세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현상학적 실존상담이 발전하는 중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멕시코의 야퀴 안드레스 마르티네스 로블레스(Yaqui Andres Marinez Robles)가 있다(Martinez Robles, 2015). 인간중심적 실존상담은 미국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보통 미국 실존상담이라고 불린다. 미국의 인간중심상담은 롤로 메이, 폴 틸리히와 같은 실존적 심리학이나 신학의 영향에서 완전히 구분하기 힘들고 인간중심상담과 실존상담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경향이 있다. 로고테라피는 보통 실존상담하면 떠올리는 빅터 프랭클이 만든 접근이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은 실존상담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고 로고테라피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각 학파의 영향력 있는 인물은 다음과 같다. 현존재분석에는 루트비히 빈스방거, 메다드 보스, 앨리스 홀제이-쿤즈(Alice Holzhey-Kunz)가 있고(Holzhey-Kunz, 2014), 현상학적 실존상담에는 R. D. 랭, 어네스토 스피넬리, 에미 반 두르젠이 있고, 인간중심적 실존상담에는 롤로 메이, 제임스 부겐탈, 커크 슈나이더가 있고, 로고테라피에는 빅터 프랭클, 알프리드 랭글이 있다.
실존주의에 기반한 실존상담의 특성상 자신의 상담접근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존상담이 체계가 없다는 비판에 맞서 세계 실존상담 학술회의를 기반으로 전 세계 실존상담자들이 협력하여 각자의 접근들을 정리하고 구조화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로 나온 책이 "The Wiley World Handbook of Existential Therapy"이다(Van Deurzen et al., 2019). 실존상담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실존상담은 오직 얄롬이다', '실존상담은 오직 빅터 프랭클이다', '실존상담은 오직 철학상담의 한 종류이다', '실존상담에 관련된 철학자는 오직 니체와 키르케고르이다'와 같은 차안대를 벗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실존상담의 기반이 되는 사상들
고대 그리스부터 19세기 실존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뿐만 아니라 노자나 유교와 같은 동양의 사상까지, 실존상담은 인간이나 삶에 대한 다양한 사상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실존상담은 다양한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특히 실존주의 철학, 실존문학, 현상학, 해석학에 뿌리를 둔다. 실존상담의 기반이 되는 사상들을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19세기 후반 ~ 20세기 철학자 중 인간의 삶, 행동, 느낌, 사고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다룬 것을 말한다. 기존의 인간에 대한 철학적 이해는 이분법(정신과 육체의 분리)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등이 대표적인 이분법자이다. 이러한 추상적 인지 개념들로 이루어진 이분법적 철학 사조는 감정적인 개인의 경험에 관한 관심으로 변화한다. 그런 변화의 흐름이 실존주의 철학이다. 실존주의는 소크라테스적 태도로 미지인 삶을 탐험하는 태도를 보인다.
실존문학
실존 문학자로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죄와 벌,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지하로부터 수기 등), 헨리크 입센(인형의 집 등) 등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문학작품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인간의 삶을 다루고, 이것은 실존철학자에 영향을 끼친다.
해석학
해석학은 숨겨진 의미나 깊은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맥락에 맞는 의미를 드러내고, 모호한 걸 명백하게 만드는 것이다. 19세기 독일 신학자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해석학적 순환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해석학이라는 분야를 따로 독립시킨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의 전기작가이면서, 역사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빌헬름 딜타이는 해석학을 좀 더 발전시킨다. 딜타이는 삶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 살아 있는 우리의 실제 경험의 의미에 집중한다. 그의 사상은 20세기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칼 야스퍼스, 마르틴 부버, 마르틴 하이데거에게 영향을 준다.
현상학
현상학은 있는 그대로의 앎을 추구한다. 기존에 가진 선입견, 편견, 믿음, 도그마, 관습, 역사, 정치, 문화, 숨겨진 동기 등 모든 것을 제외하고, 지금 일어나는 경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현상학의 선구자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프란츠 브렌타노와 현상학자 에드문트 후설이다. 프란츠 브렌타노는 비엔나 대학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에드문트 후설에게 철학을 가르치던 사람이다. 브렌타노는 프로이트와 후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브렌타노는 현상학의 시초격인 묘사적인 심리학이라는 걸 주장한다. 중세의 지향성이라는 개념을 재조명하고, 그것을 자신의 이론에 포함한다. 모든 인간의 의식에는 객체가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에드문트 후설은 묘사적 접근, 지향성 등 브렌타노의 영향을 받아서, 현상학적 심리학을 발전시킨다. 후설은 노에시스와 노에마를 통해서 데카르트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한다. 노에시스는 타자를 인식하는 과정이고, 노에마는 그렇게 인식된 타자를 지칭한다. 후설은 현상을 지각함에 있어서 직접적이고 주관적인 방식으로 세상이 드러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입견을 유보하는 에포케(괄호치기)가 필요하다. 현상학은 드러난 현상 그 자체로 돌아가는 작업이다. 괄호치기를 한 상태에서, 노에마를 묘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현상학의 방법론이다.
쇠렌 키르케고르
키르케고르는 과학만능주의에 맞서서, 자신의 주관적 깊이를 찾고자 한 사람이다. 그는 실존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심미적 향유에서 윤리적 정직함으로, 궁극적 진실의 기반이 되는 신에 대한 헌신으로 나아가는 인생의 단계를 제시한다. 자신의 불안을 통해서 삶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그것에 응답해야 하는 책임을 진 개인을 강조한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이 아닌,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따라가는 삶이다. 그는 주관적 자유를 추구하며, 국가나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진실에서 오는 두려움과 함께 사는 것을 강조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통해서 인간이 자신을 초월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것은 영적인 깨달음과 진실을 향한 탐구를 포함한다. 니체는 고통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니체에게 인간은 계속해서 경계를 넘나들며 여기저기 여행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고통의 심연을 들여다 볼때, 삶에 대해 배울 수 있다고 본다. 실존상담자는 이런 니체의 영향을 받아서, 내담자가 고통받고 있다면 그들이 그 고통에 직면할 용기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니체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보다 개인 자신의 기준에 따르는 삶을 강조한다. 자유, 책임, 선택, 용기와 개인의 주관적 세상을 중요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를 탐구한다. 다자인(현존재), 사실성, 피투성, 세계-내-존재, 관심, 유정성, 일상성, 시간으로 존재함, 공간 안에 존재함, 죽음을-향한-존재 등등 다양한 자신만의 표현을 만들어낸다. 하이데거는 존재가 얼마나 세계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관점으로 하이데거는 기존의 인식론적인 이분법의 사고(정신과 몸, 자기와 세계, 주체와 객체)를 넘어선다. 이런 세계관은 심리상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이데거는 미리 구성된 이론에 의한 틀보다는 주관적인 체험을 앎의 방법으로 사용한다.
칼 야스퍼스
야스퍼스는 후설의 저서를 읽고 현상학을 심리학에 접목하기로 한다. 야스퍼스는 자신의 책 “정신병리학 총론”에서 기존의 정신 질환의 개념을 바꾸고자 하고, 현상학적으로 경험을 탐구하고자 한다. 야스퍼스는 기존 심리학의 수상쩍은 면이나 검증되지 않은 이론들, 신비화된 면에 도전한다.
장폴 사르트르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완전한 자유, 완전한 무를 주장한다. 우리는 정해져 있는 존재가 아니며, 자유로운 존재임을 주장한다. 자신이 뭔가 정해진 무언가라 여기는 사람들을 '자기기만'에 빠져 산다고 본다. 사르트르는 그것을 웨이터의 비유로 설명한다. 웨이터는 알맞은 움직임과 행동으로 완벽히 움직이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 그는 웨이터라는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웨이터라는 고정된 역할에 너무 빠져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기기만의 상태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자기기만의 삶이 아닌, 선택의 자유가 있는 진정한 삶을 강조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을 통해서 여성으로 사는 삶이 사회의 압력으로 인해 어떻게 어려워지는지 말한다. "당신은 구부러진 공간에서 직선을 그을 수 없다. 당신은 올바르지 않은 사회에서 올바른 삶을 살 수 없다. 당신이 무얼 할 때마다 당신은 사회에 붙잡힐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통해서 사회적 압력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이야기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심리학과 현상학을 통해 인간의 신체에 집중한다. 어떻게 인간의 몸과 세계가 모호한 존재로서 상호 관계를 맺는지를 다룬다. 우리가 세계에 무언가를 할 때, 세계는 동시에 우리에게 무언가를 한다. 이것은 주체와 객체가 모호해진 상호 관계이다. 메를로퐁티는 이러한 관계를 맺는 몸의 감각에 집중한다.
막스 셸러
셸러는 타인과의 관계는 상호관계적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이것은 타인을 객체로 보고 그 사람을 공감해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관성으로 타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관계 속에 있다.
마르틴 부버
부버는 상호관계를 강조한다. 그는 '나-그것', '나-너' 관계를 통해서 우리 관계를 되돌아본다. 부버는 관계는 '나'와 '너' 이런 식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관계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타인을 객체나 도구로 보는 것을 '나-그것' 관계라고 한다. 타인을 주체로 보고, 판단하지 않고, 조작하지 않은 채로 관계 맺는 것을 '나-너' 관계라 한다. 나-그것 관계에서는 우리 자신도 객체가 된다. 나-너 관계에서 우리는 연결된 하나, 전체로서 존재한다. 나-너 관계는 친밀하고 개방되고 사랑이 있다. 부버는 나-너 관계가 없어서 실존적 불안, 고독, 의미 없음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본다. 부버는 자아보다 타인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는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부버는 심리적 치유를 위해 친밀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부버는 단순히 문제행동을 바꾸거나 심리적 고통을 제거하는 것에 반대한다. 부버는 내담자를 진정한 인간으로 대하고 그 사람의 관점에서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본다.
- 지금까지 우리는 사람들이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경향성을 지니고 있고, 자기 삶의 진로를 조정하는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으며, 불일치의 지각을 방어하고, 성장 동기가 동기 위계의 최정상에 위치한다는 낙관적 아이디어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성장과 인간 잠재력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자기실현의 가능성에는 비용이 있다. 즉, 그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이것이 실존주의 심리학(existential psychology)의 주요 원칙이다.
실존주의(existential)라는 용어는 존재(existence)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존재는 누구나 지니고 있는 모든 것임을 주장하는 철학적 관점과 관련된다. 각 사람은 측량할 수 없는 우주에서 누구나 혼자다. 이러한 관점은 개개인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저마다의 독특한 현실 경험이 중요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현상학적인 지향과 일치한다.
1. 실존적 딜레마
- 실존주의적 관점의 중심 개념은 현 존재(Dasein)다. 이 독일어는 종종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번역된다. 현 존재라는 용어는 자율적이고 개별적이고 진화하는 실체로서의 자기가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전체를 의미한다. 현 존재는 또한 사람들이 세상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고, 세계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분리되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강조한다. 실존주의자의 기본 쟁점은 인생은 불가피하게 죽음으로 끝나고, 그 죽음은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점이다. 죽음은 당신의 경험이 자기실현적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한 자각은 자기의 불일치에 기인한 불안보다 훨씬 더 깊은 고통인 실존적 불안을 유발한다. 단지 존재와 비존재만이 존재하며, 우리는 끊임없이 그 사이의 양극단에 직면한다.
- 당신은 이러한 깨달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실존주의자에게는 이것이 인생의 핵심 질문이다. 그 선택은 무로 후퇴하느냐, 아니면 존재할 용기를 갖느냐다. 극단적인 선택은 자살하느냐 않느냐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어차피 죽음으로 끝나 버릴 인생의 모순을 피하는 것이다. 자신을 죽이는 것은 무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덜 극단적인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정직하게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일부인 목표와 책임에 개입하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그들은 표류하거나 군중에 묻혀서 살아갈 수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삶을 책임지기를 포기할 때, 그들은 무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하기로 선택하는 것에는 무엇이 내포되어 있는가? 실존주의자에게 인생은 당신이 창조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을 스스로 창조하려는 용기를 지닌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당신은 참다운 자신으로 존재함으로써, 즉 정직하게 행동함으로써 당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실존적 딜레마에 대한 바로 그 인식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중요한 걸음이다. May(1958)가 말한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이런 자유를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당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어려울 수 있고, 죽음을 정면으로 직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흔히 다른 사람이 무엇이 옳고 적합한지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실존주의 심리학자는 모든 사람이 자기 존재의 매 순간에 최상의 것을 만들 책임이 있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기 존재를 완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책임은 회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이 있지만, 정직한 선택조차 항상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당신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항상 완벽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때때로 자연과의 연결을 잃어버릴 것이다. 비록 당신의 선택이 현명했을지라도, 당신은 자신의 가능성을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여전히 실존적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런 죄책감은 선택할 자유가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가장 강해진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를 의식하고 있는 사람도 죄책감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든 가능성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한 역량을 깨달을 때, 그것은 다른 역량이 표현되는 것을 막는다. 그래서 실존주의적 죄책감은 불가피하다. 그것은 존재가 치러야 할 대가의 일부다.
2. 공허감
- 실존주의자는 인생의 공허감 문제에도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많은 현대인이 가치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은 정부와 대기업과 같은 거대 권력에 영향력을 미치기에는 그들 스스로가 무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 품위와 가치감을 갖지 못하게 된다. 지구는 뜨거워지고, 지금 우리에게는 그것을 막을 힘이 없다. 은행과 기업체는 심각한 재정 위기로 인한 긴급 구제금으로 수십 억 달러가 필요하고, 우리 모두는 그 청구서 때문에 굳어진다. 국가의 지도자는 왜 전쟁을 하는지에 대해 정당한 이유도 대지 않거나 전쟁이라고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서 우리는 전쟁으로 내몬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 사람들은 가치에 대한 헌신을 잃었을 때 공허와 무의미감을 경험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때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거기에도 답은 없다. 왜냐하면 문제가 바로 자기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한번 실존주의적 주제를 보여 주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하며, 진리는 오로지 당신 내부와 행동에서 나올 수 있다'는 주제다.
3. 공포 관리
- 실존심리학의 아이디어는 공포관리 이론에서도 드러난다. 이 이론은 우리가 인간은 결국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실존적 불안이나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 공포에 반응해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이 명제는 실존주의 심리학에서 우리가 이미 말했던 것과 잘 들어맞는다.
그러나 공포관리 이론은 대부분의 사람이 삶의 의미를 스스로 규정하지 못한다고 제안한다. 그러기보다 그들은 이를 위해 사회문화적인 합의 과정을 사용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기 삶의 가치를 어떻게 확인하는지에서 집단 정체성이 중요한 역할을 함을 의미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신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문화적 가치를 보호하도록 행동하게 만든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지속될 의미 있는 문화적 조직망 속에서 자신을 긴밀히 짜 넣음으로써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
- 이 이론은 지난 20여 년간 엄청나게 많은 연구를 생산하게 했다. 그중 일부는 사람에게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부각하면, 사람은 자신의 세계관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더 호의적이 되고 지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거부적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죽을 운명의 부각은 사람으로 하여금 문화적 규범 자체에 더 집착하게 만들기도 한다. 미국인은 더 애국자가 되고, 지하드 주의자는 자신의 대의에 더 헌신적이게 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부각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 이타적으로 행동하게도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자선단체를 지원함으로써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그런 이타적 행동은 오로지 그 자선이 자신의 문화와 관련 있을 때에만 그렇다. 관계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당신의 세계관에 대한 위협은 거꾸로 죽음에 대한 사고를 유도한다.
- 이 주제에 관한 많은 연구는 죽을 운명을 상기한 후,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적 세계관을 어떻게 확인하는가를 검토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자기의 가치관을 어떻게 확인하는가를 살펴보았다. 죽을 운명을 두드러지도록 조작한 후, 연구 참여자는 정체감 추구 척도와 임박한 장래의 목표에 대해 답했다. 죽을 운명을 생각했던 연구 참여자는 다른 사람보다 정체감 추구 척도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들은 또 다른 사람이 보고한 프로젝트보다 더 자기 일치적인 프로젝트에 더 많이 참여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였다.
- 공포관리 이론은 수많은 다른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발전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공포 관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다른 동물과 구별된 존재로 보게 되는 이유라는 것이다. 자신을 동물로 생각하는 것은 죽음을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은 죽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과 일관되게, 죽을 운명을 부각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이 동물과 구별된 존재라는 생각을 더 강하게 선호하도록 만든다.
- 이러한 관점은 성적 활동과도 관련이 있다. 성은 당신의 동물적 본성을 기억나게 하는 또 다른 것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성에 대해 과민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죽을 운명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많은 방식으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신호를 회피하게 된다. 그들은 성행위에 대해 심미적인 가치를 귀속한다. 그들은 성행위를 둘러싼 로맨스를 창조하여 동물적 특성에서 자신의 주의를 돌리려고 한다. 그들은 이상화되고 상징화된 미에 대한 문화적 기준을 창조한다. 그렇게 해서 그 동물은 정신적인 것으로 변환된다.
- 사람들은 많은 방식으로 필멸이라는 실존적 공포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공포관리 이론에 따르면, 자존감을 지탱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감을 형성할 수 있고 실존적 불안을 피할 수 있게 해 준다. 최근 연구를 보면, 죽을 운명에 직면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도록 동기화한다. 사실상 유친을 향한 이런 압력은 문화적 가치에 대한 친애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이 이론은 많은 연구를 자극하여 여러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현재 논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공포관리 이론을 다시 실존주의와 연결하여 보자. 그 연구는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상기시키면 그들은 자기 삶의 가치를 확인하려고 노력하게 됨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속한 문화의 가치를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삶의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 오로지 소수의 증거만이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 의미를 창조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 이런 사실이 대부분의 사람이 실존적 불안에 대한 반응으로 다른 사람이 무엇이 옳은지를 결정하게 하고 자신은 그저 그 결정에 따라가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이것은 실존주의 심리학자를 당황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가치라는 것이 실존주의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개인이 아닌 집단에 의해 자연스럽게 정의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