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고전문학

사씨남정기, 김만중

Jobs9 2023. 8. 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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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

김만중

줄거리

 명나라 가정연간 금릉 순천부에 사는 유현이라는 명신은 늦게야 아들 연수(延壽)를 얻는다. 유공의 부인 최씨는 연수를 낳고 세상을 떠난다. 연수는 15세에 한림학사를 제수받으나 연소하므로 10년을 더 수학하고 나서 출사하겠다고 한다. 천자는 특별 히 본직을 띠고 6년 동안의 여가를 준다. 유 한림은 덕성과 재학을 겸비한 사씨와 결혼한다.  

 사씨는 유 한림과의 금슬은 좋으나 9년이 지나도 출산을 못한다. 이에 사씨는 남편에게 새로이 여자를 얻기를 권한다. 유 한림은 거절하나 여러 번 권하니 마지못해 교씨를 맞아들인다. 교씨는 천성이 간악하고 질투와 시기심이 강한 여자로, 겉으로는 사씨를 존경하는 척하나 속으로는 증오한다. 그러다가 잉태하여 아들을 출산하고는 자기가 정실이 되려고 마음먹고, 문객 동청과 모의하여 남편 유 한림에게 온갖 참소를 다한다.  

 유 한림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교씨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이고 죄를 사씨에게 뒤집어씌우니, 사씨를 폐출시키고 교씨를 정실로 맞아들인다.  

 교씨의 간악함은 이에 그치지 않고 문객 동청과 간통하면서 유 한림의 전 재산을 탈취해 도망가서 살기로 약속하고, 유 한림을 천자에게 참소하여 유배시키는 데 성공한다. 유 한림을 고발한 공로로 지방관이 된 동청은 교씨와 함께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이때 조정에서는 유 한림에 대한 혐의를 풀어 소환하고, 충신을 참소한 동청을 처형한다. 정배를 당한 유 한림은 비로소 교씨와 동청의 간계에 속은 줄 알고 전죄를 뉘우친다.  

 정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온 유 한림은 사방으로 탐문하여 사씨의 행방을 찾는다. 

 한편 남편 유 한림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사씨는 산사에서 나와 남편을 찾아 나선다. 사씨와 유 한림은 도중에 해후한다. 그리고 유 한림은 사씨에게 전죄를 사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간악한 교씨를 처형하고 사씨를 다시 정실로 맞아들인다.  


  본문 읽기
 명나라 가정연간에 금릉순천부에 유현이란 명인이 있으니, 현명 정직하고 문장과 풍채가 뛰어나 소년 등과하여 벼슬이 이부시랑 참지정사에 이르러 명망이 조야에 진동했다.  

 일찍이 시랑 최모의 딸을 아내로 삼으매 최씨 부덕이 있어 금슬은 좋으나 슬하에 자녀 없음을 근심하더니, 늦게야 한 아들을 낳았으나 오래지 않아 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공은 원래 공명에 뜻이 없는데다 소인배들이 조정에서 힘을 쓰므로 병을 핑계하고 벼슬을 사양하고 집에 돌아와 세월을 보낼 새, 성품이 유순하고 얌전한 누이가 하나 있으나 일찍이 선비 두강의 아내 되었다가 과부가 되어 공이 한 집에 있게 하고 우애 극진히 대했다.  

 유공자의 이름은 연수였다. 차차 자라매 얼굴이 관옥 같고 재기 또한 숙성하여 문장재화 십여 세에 다 이루니, 공이 기특히 여겨 사랑하되 다만 부인에게 보이지 못함을 한탄했다. 연수 14세에 초시에 장원으로 뽑혔다가 15세에 급제하니 천자께서 그 문장과 위인을 보시고 한림학사를 제수하시매 한림이 연소하므로 십 년을 더 학문에 힘쓰다가 다시 출사하기를 청하니, 천자 그 뜻을 아름다이 여기사 특별히 본직을 드개로 지니도록 하면서 5년 말미를 주시더라.  

 한림이 급제한 후 구혼하는 이가 많으매 주파라 하는 매파가 고하여 가로되, "모든 소문과 말이 공번되지 아니하오니 진실로 바른 대로 고하오면, 노옹께서 만일 부귀를 탐하시면 엄 승상의 손녀만한 이가 없고, 반드시 요조한 숙녀를 구하시려면 신성현의 사 급사(謝給事) 댁 소저 외에 또다시 없사오니, 청컨대 이 두 곳 중에서 하나를 가리옵소서."  

 이에 공이 물어 가로되, “부귀는 본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어진 이를 택하려하오. 사 급사는 본대 대간벼슬을 하다가 적소에서 죽은 진실로 강직한 선비나 그 댁의 소저는 어떠하뇨."  

 주파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소저의 용모와 덕행이 일세에 희한하오니 어찌 다 형언하오리까. 소인이 매파로 나선 지 삼십 여년에 왕공, 재상의 모든 댁을 다니며 많은 신부를 보았으되, 이같이 요조 현철한 소저는 처음이오니 두 번 묻지 마옵소서."  

 이에 매파가 돌아간 후 공이 매파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어 사씨의 덕행을 알아보고자 두 부인과 상의하여 물어본즉, 두 부인의 말이 “남녀의 덕행은 필법에 나타나는 것이라 묘책을 내어, 집에 간수해오고 있는 남해관음화상을 우화암에 시주코자하였던바, 이제 우화암 여증 묘혜를 사씨 댁에 보내 화상에 처자의 친필로 관음찬을 받아오도록 하면 그 재덕을 알 것이며 묘혜 또한 그 얼굴을 보고 올 것입니다. 묘혜는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하고 말하니 공이 옳히 여겨 묘혜를 불러 사씨 댁에 가서 관음찬을 받아오기를 청하니, 묘혜가 급사 댁에 가서 불사에 쓰고 자 관음화상에 찬을 써주기를 부탁하니 사씨 부인이 말하기를, “우리 아이가 비록 고금시문에 능통하다 하나 이만한 글을 지을 수 있을는지 그저 시험이나 해보리라."  

하고 시녀로 하여금 소저를 부르니, 소저 나와 모친께 뵈오니 용모 빼어남이 짐짓 관음보살님이 강림하신 듯 한지라. 묘혜, 심중에 놀라 헤아려 보되, ‘진세에 어찌 이런 사람이 있으리오.' 하고 있을 때 부인이 소저에게 능히 관음찬을 지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소저가 처음에는 노둔한 재주를 들어 거절하는지라, 부인이 웃으며 다시 지어보라 하니 소저 한동안 주저하며 망설이다 손을 씻고 족자를 받아 걸고 분향 배례한 후 공경 앞에 나아가 관음한 수백서를 가늘게 족자 위에 쓰고 ‘모년 월 일에 사씨 정옥이 재배서'라 하였더라. 묘혜 족자를 다시 받아가지고 돌아와 공에게 드리거늘, 공이 물어 가로되 “사소저의 용모와 재주가 어떠한가 물으니 묘혜 답하되 ‘족자 가운데 사람과 같더이다." 하니 공이 크게 기뻐하여 족자를 걸고 보니 필법이 정묘하여 한 곳도 구차함이 없고 온화 유순한 덕행이 글씨에 나타나서 즉시 매파를 불러 사가에 청혼했다.  

 원래 사소저는 사후영의 딸이라, 후영 청렴강직하여 조정의 간신들이 작란함을 분히 여겨 상소하다 도리어 간신의 모해를 입어 소주 땅에 귀양갔다가 적소에서 돌아가니, 부인이 천만가지 설움을 참고 소저를 데리고 고향 본댁에 돌아와 세월을 보내고 있더니 소저가 모친을 지성으로 봉양하나 출가할 연기를 당하였으되 주혼함이 없고 근심하더니 매파가 들어와 소년 등과한 유 한림에게서 청혼이 온 것을 알리니 부인이 유 한림의 출중함을 익히 아는 바라 허혼을 하니, 유공이 크게 기뻐하여 택일하니, 유공은 최부인이 보지 못함을 못내 슬퍼했다. 

 사씨 이로부터 효도를 다하여 존구를 받들고 공손함으로써 군자를 섬기고, 정성으로서 제사를 받들고 은혜로써 비복을 부리니, 규문이 화락하고, 화기가 애애했다. 하루는 유공이 우연히 병을 얻어 날마다 짙어가니, 한림 부부 밤낮으로 시탕하되 백약이 무효한지라, 공이 일어나지 못하고 마침내 별세하니, 한림 부부 호천 애통함이 비할 데 없고 두 부인도 못내 애통했다. 

 세월이 흘러 삼상을 마치고, 군명을 받자와 조정에 나아가 소인을 배척하고 몸가짐을 강직케 하니, 천자께서 사랑하사 벼슬을 돋우고자 하시나 승상 엄승이 꺼리어 저어하므로 여러 해가 지나도록 직품이 오르지 못했다.  

 유 한림이 부부 성친한 지 벌써 십 년이 넘고 연기가 삼십에 가까웠으나 한낱 자녀가 없으니 부인이 깊이 근심하여 한림을 대하여 어진 여자를 택하여 아들 얻기를 누차 간청하니 유 한림이 매번 뿌리치다 마지못해 허락하니 매파를 통해 널리 첩을 구해 본래 벼슬하던 집 딸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의 집에 의탁하고 있는 교채란 여자를 첩으로 들여오니 나이 16세였다. 

 세월이 흘러 삼삭이 차매 교씨 과연 순산하여 아들을 얻으니 이름을 장주라 하니, 한림과 사씨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비복들까지도 서로 치하했다. 교씨 아들을 낳으매 한림의 대접이 더욱 두터워져 사랑이 비할 데 없는데다 노래와 탄금에 능해 한림은 교씨가 거처하는 백자당을 떠날 날이 없고 사씨 부인의 침소는 날로 멀어지더라.  

 이때 사부인 성친한 후 십 년 지나 태기가 있으니, 온 집안이 모두 기뻐하되 교씨 홀로 시기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앙앙불락하며 남매와 짜고 낙태할 약을 여러 번 사부인 먹는 약에 타서 드렸으나 어쩐 일인지 부인이 그 약만 마시면 구역이 나서 토해버리니, 이는 천지신명의 도우심이라. 간악한 수단을 쓸 도리가 없더라. 부인이 만삭이 되어 아들을 낳으니 골격이 비범하고 신체가 준일한지라. 한림이 크게 기꺼하야 이름을 인아라. 인하 차차 자라나 장주와 같이 한 곳에서 놀되, 비록 어리나 씩씩한 기상이 장주의 잔약함과는 현저히 다른지라, 교씨 내심 애를 태워 생각하되, “내 용모와 자질이 모두 사씨에게 미치지 못하고 나는 아들이 있고 저는 아들이 없어 내가 상공의 은총을 받았으나 이제 저도 아들을 낳았으니 내 아들은 쓸데없는 군것에 불과한지라. 부인이 좋은 낯으로 나를 대하나 속은 알 수 없으니 상공의 마음이 변하면 나는 어찌될 지 알 수 없다."하고 십랑과 의논하니 십랑은 교씨로부터 금은주옥을 많이 받은 터라 심복이 되어 교씨의 못된 꾀를 내었다.  

 이때 급사 댁에서 급사 부인의 환후 위중하다는 편지 왔거늘, 사부인이 크게 놀라 한림께 고하여 가로되, “모친의 병환이 위중하시다니 지금 뵈옵지 못하면 평생의 한이 될지라, 상공의 허하심을 바라나이다." 한림이 가로되, “장모님의 환후가 위중하시면 일찍 가서 뵈오심이 옳거늘 어찌 만류하리오. 나도 틈을 타서 한번 문안하리이다." 

 부인은 교씨를 불러 가사를 부탁하고 인아를 데리고 신성현 친정에 갔다. 부인이 모친의 환후가 위중하심을 보고 쉽게 돌아오지 못하고 수개월이 지났다. 이때 흉년이 들어 백성의 질고를 살피라는 천자의 명을 받들어 한림이 산동지방으로 갈 때 미처 부인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한림이 집을 떠나자 교씨는 집에 서사로 있던 동청과 눈이 맞아 사통하면서 사부인을 없앨 계교를 의논했다. 사씨의 시비 설매는 납매의 동생이라 그년을 달래어 사씨가 아끼는 보물을 얻으면 일이 쉽게 이루어지리라 하고 계획대로 진행하니, 설매 납매의 설득에 넘어가 열쇠로 상자에서 옥지환을 도적하여 교씨에게 드려 가로되, "이 물건은 유씨 댁의 세전지물로 가장 중히 여기더이다." 하니 교씨 크게 기뻐하여 설매에게 큰 상을 주고 동청과 함께 꾀를 행했다. 

 이때 한림이 산동지방에 이르러 냉진이라는 풍채가 훌륭한 청년을 주점에서 만나 동행하게 되었는데 한림이 보니 냉진의 속옷 고름에 옥지환이 매였거늘 한림이 이상히 여겨 그것을 자세히 보기를 청하니 그 청년이 끌러주거늘, 받아보니 완연히 사씨의 옥지환과 같은지라, 한림이 냉진에게 어디서 구했느냐 물으니 마지못해 대답했다. 

 “정든 사람의 정표로만 알고 비웃지 말아주게. 이것이 사랑하던 소저와의 정사이매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하거늘, 한림이 옥지환을 한 번 보고 천사만념으로 심사가 늘 수란하더니 반년 만에 서울로 돌아와 홀연 냉진의 옥지환을 생각하고 사씨더러 물어 가로되, “부인은 전일 선인이 주신 옥지환을 어디 두었느뇨." 하고 물으니 사씨 부인 대답했다. 

 “저 상자 속에 있거니와 어이 물으시느뇨." 부인이 괴이하여 상자를 가져와 열어보니 다른 것은 다 그대로 있으되 옥지환만 없는지라 사씨 크게 놀라, “분명히 여기 두었더니 어이 없는고." 사씨 가로되, “옥지환 간 곳을 상공이 아시나이까?" 한림이 화를 내며 가로되, “그대가 남을 주고 날더러 물음은 어쩐 일이뇨." 사씨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분하여 말문이 막히는데 홀연 시비 고하되, 두 부인이 오심을 아뢰니 한림이 옥지환 없어진 자초지종을 말하니 두 부인이 듣기를 다하매 크게 성을 내어 말했다. 

 “선형이 본대 지감이 있고 천하 일을 모를 것이 없이 지내었으나 매양 사씨를 칭찬하되 그의 선행 숙덕을 아심이라. 하물며 선형의 지감과 사씨의 절행으로 이같이 누명을 입게 하여 옥 같은 아내를 의심하나뇨. 이는 반드시 집안에 악인이 있어 도적함이니 어찌 엄중히 조사하지 아니하고 이같이 말을 하느뇨." 하니 한림이 “고모의 말씀이 지당하여이다." 했다. 

 즉시 형장기구를 갖추고 시비 등을 문초하니 애매한 시비는 죽어도 모르노라 하고 설매는 바로 고하면 죽을까 겁내어 한결같이 항복하지 아니하니, 마침내 종적을 알지 못했다. 이때 교녀 두 번째 아이를 낳으니 한림이 기뻐하여 이름을 봉추라 하고 두 아이를 사랑함이 장중보옥 같았다. 

 이때 두 부인이 옥가락지의 출처를 캐고자 하나 찾지 못하고, 심중에 교씨의 간계인 듯하나 잡지 못하고 마음이 답답히 지내더니, 아들 두억이 장사부 총관을 하매 두 부인이 아들 따라 장사로 가게 되었는지라. 교녀 심중에 기뻐하여 동청을 청하여 사씨 없앨 꾀를 다시 의논하니 동청이 가로되 당나라『사기』를 일러 측천무후를 얘기하며 장주 죽임을 꾀했다. 교녀 사씨의 시비 춘방을 시켜 약을 달이게 한 후 몰래 독약을 썼었다. 아들 장주는 약을 먹고 즉사하니 교녀 가슴을 치며 대성통 곡하니 한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여 사유를 물으니, 납매가 가로되, 

 “소비가 문 앞을 지나다 우연히 바라본즉 춘방과 설매가 손짓을 하더니만 돌아가는 것을 보았으니 이 둘을 불러 물으면 짐작하실 듯하여이다." 

 한림이 두 사람을 잡아들여 설매를 문초하매, 매질하기 십여 차에 설매 고함질러 가로되, 

 “소비 죽으리로소이다. 죽을 바에야 무슨 말을 못하오리까. 부인이 소비에게 이르시기를, 인아와 장주 둘이 같이 있을 수 없으니 누구든지 장주를 해하는 자가 있으면 큰 상을 주리라 하시옵기로 소비 등이 여러 날을 틈타던 차 마침 공이 마루에서 혼자 자고 있기에 소비는 간이 서늘하고 손이 떨려 앞장서지 못하고 실상 공자를 눌러죽이기는 춘방이로소이다." 

 한림이 크게 노하여 춘방을 국문하매 춘방이 설매를 꾸짖으며 매를 이기지 못하고 종시 무함한 말은 하지 않고 죽으니라. 이튿날 한림이 일가 친척을 청해놓고 사씨의 전후 죄상을 이르고 쫓아내니 사씨 영위에 나아가 사배 하직할 새, 눈물이 비오듯 하니 일가들이 문 밖에서 절하고 이별하며 모두 눈물을 흘렸다. 

 쫓겨난 사씨 시부모 묘전 수간 초옥을 지어놓고 살 때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잠깐 졸더니 문득 한 사람이 이르되, 사씨 눈을 들어보니 생시의 모습과 조금도 변함 없는 시부모님이라. 이르시되, “부는 칠 년 재액이니 남방으로 빨리 떠나라. 다만 육 년 후의 사월 십오일 배를 백빈주에 매었다가 급한 사람을 구하라. 이것은 명심 불망할지어다." 하시니 사씨 생각하기를 이는 반드시 두 부인을 찾아가 의탁하라 하심이라 하고 존묘에 나아가 재배 하직하고 유모와 차환, 늙은 창두 한 사람을 데리고 남방으로 향하니라. 수로 5천리 길이 하도 험하여 모두 죽기를 소원하나 참고 길을 가다 홀연 보니 숲 속에 한 사당이 있어 보니 ‘황릉묘'라 하였으니 이는 곧 두 왕비의 사당이라. 사씨 절하고 축원하고 나오니 달빛은 몽롱한데 의지할 바가 없게 되니 죽는 것이 상책이라. 이때 뜻밖에 사당문 앞으로 두 사람이 들어오는데 놀라 눈을 들어보니 하나가 늙은 여승이요, 하나는 여동이라. 여승이 황망히 예하고 말했다. 

 “소승은 동정 군산사에 있더니, 아까 비몽사몽간에 관음 현몽하사 어진 여인이 환난을 만나 갈 바를 모르고 물에 빠지려 하니 빨리 황릉묘로 가서 구하라 하시매 급히 배를 저어왔더니, 과연 부인을 만나매 부처님 영험하심이 신기하도소이다." 

 “우리는 죽게 된 사람이러니, 존자의 구원을 만나매 실로 감격하나 존자의 암자 멀고 또 귀 암자에 폐가 될까 하나이다." 

 “부처님의 지시로 뫼시러 왔는데 무슨 말씀이시오니까." 세 사람은 여승을 따라 배를 타고 동정호 가운데 있는 군산사 암자 수월암에 이르니, 종일 고통스러웠던지라 깊은 잠에 빠져 날이 밝아옴을 몰랐더니 여승이 불당을 소쇄하고 향을 피워놓고 예불하라 하거늘, 법당에 올라 분향 배례할 새, 눈을 들어 부처를 보니, 십육년 전 자기가 찬을 지어 썼던 백의 관음화상이라. 놀라 슬픈 회포를 금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매 여승이 괴이히 여겨 물은즉, “화상 위에 쓴 것이 내 아이 때 지은 찬이니 여기 와보매 자연 비희를 금치 못하겠노라” 하니 여승이 크게 놀라며 “그러실진대 분명히 신성현 땅의 사급사댁 소저가 아니십니까"하고 물었다. 

 “스님께서 어찌 내 신분을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여승이 대답했다. 

 “소승은 저 관음화상의 찬을 받아간 우화암의 묘혜입니다. 한데 부인은 어찌 이러한 고생을 하십니까." 

 사씨 유씨 댁의 부인이 된 이후의 전후 사정을 자세히 들려주더라. 이에 묘혜는 당부하기를 유 소사는 본대 공명정대하신 어른이니 그때를 기다려 어기지 말고 구하라고 말했다. 

 이때 교녀 정당을 차지하여 가사를 총찰하매 악독함이 날마다 더하여 비복들이 그녀의 혹독한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사씨를 생각했다. 교녀 이에 동청과 더불어 한림을 해할 궁리를 하다가 동청이 우연히 한림의 책상 위에서 한 글을 얻어내니 두어 번 읽어보고 문득 기뻐 날뛰며 교녀에게 말했다. 

 “저적에 천자 조서를 내리사 ‘나의 기도하는 것을 간하는 신하는 죽이리라' 하셨는데 지금 이 글을 보매, 시적 두고 기롱하여 엄 승상을 간악한 소인에 비하였으니, 이 글을 엄 승상께 뵈면 엄 승상이 천자께 아뢰어 법으로 다스리리니, 우리 두 사람이 어찌 백년해로를 못하리오." 

 동청이 유 한림의 글을 엄 승상에게 전하니 엄 승상은 황제께 보이니 황제 대로하여 극형에 처하려고 하였으나 태우서세가 상소하여 귀양을 가게 되니, 교녀 비복을 거느려 상 밖에 나아가 짐짓 슬피 통곡하는 체 이별하였다. 

 “첩이 어찌 혼자 있으리요. 상공을 쫓아 생사를 한 가지로 하려 하나이다." 

하니 한림이 가로되, “그대는 집을 잘 지키고 제사를 받들고 아이들을 잘 길러주시오. 인아, 비록 사나운 어미의 소생이나 골격이 비범하니 거두어 잘 기르면 내 죽어도 눈을 감으리로다." 교녀 가로되, “상공의 자식이 곧 첩의 자식이라, 어찌 봉추와 달리하여 백대하오리까." 한림이 재삼 부탁하고 떠났다. 

 그 후 동청은 엄 승상의 세력으로 진유현 현령으로 출세하여 부임하게 되니 교녀 매우 기뻐하며 사촌 형이 죽어 시골 간다 하고 봉추와 인아와 심복 시비만 데리고 길을 떠나니 교녀 인아 원수의 자식이거늘, 죽여 마땅하다 하고 설매를 시켜 물 속에 넣어 죽이도록 하였다. 설매는 차마 죽일 수 없어 강가 수풀 속에 고이 누이고 교녀에게 거짓 고하여, “아이를 물 속에 넣으니 물결 속에 들락날락하더니 필경 보이지 않더이다." 

 이적에 천자께서 태자를 책봉하시고 온 천하의 모든 죄인을 모두 놓아 유 한림이 은사를 얻었으니 친척이 있는 무창으로 갈 새 ......
(하략)

 

  핵심정리
* 갈래: 고전 소설, 가정 소설, 풍간(諷諫) 소설, 목적 소설
*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문어체, 산문체
* 배경:  시간 - 명나라 초기
         공간 - 중국 북경 금릉 순천부
* 구성:  성혼(成婚 ; 유연수와 사씨의 결혼 및 후사의 단절)
         요망한 첩(첩 교씨의 흉포함)
         간악한 문객(문객 동청과의 음모 및 유한림에 대한 참소)
         가화(家禍 ; 사씨의 폐출 및 유한림의 유배)
         남정(南征 ; 사씨의 시련)
         가운 회복(사씨와의 해후 및 교씨 처형)
* 주제: 사씨의 부덕(婦德)과 사필귀정
* 출전: 경판본(목판본) 사씨남정기


  등장인물
* 사씨: 현모양처로서 성품이 곱고 착한 여인의 전형. 
* 교씨: 위선적이며 교활하고 표독스런 악인의 전형.
* 유연수: 판단력이 없고, 양반사대부가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봉건적 사고방식을 지닌 전형적 인물. 그러나 본성은 착하다.
* 동청: 교씨의 정부(情夫)로써 악인의 전형
* 엄숭: 유한림을 제거하는데 앞장을 서는 간신.
* 국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조선조의 일부다처제가 빚어졌던 처첩 간의 갈등을 소설화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단 그 의의가 인정된다. 영웅소설이 고전소설의 큰 흐름이라면 이 작품은 가정의 문제를 다루는 가정소설의 영역을 개척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선조에서 대한 장편 소설의 창작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 작품이다.

 
  해설 1
 서포의 종손(從孫)인 북헌(北軒) 김춘택(金春澤)이 

“서포는 한글로 소설을 많이 지었다. 그 중 《사씨남정기》는 보통 소설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소설이란 한결같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백성을 계몽하고 세상을 교화하는 데에는 이 《사씨남정기》가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다."

라 했고, 이규경이 《오주연문》에서 《사씨남정기》를 쓴 동기를 

 “숙종이 인현왕후를 내쫓고 장희빈을 맞아들인 처사를 못마땅히 여기고 왕을 깨우쳐 뉘우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라고 풀이했다. 즉 이 작품이 일종의 ‘목적소설'임을 암시하는 말들이다. 이 소설이 숙종의 이후의 행동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품이 숙종의 손에 들어갔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서포의 형은 김만기인데 그의 딸이 숙종의 첫 부인인 인경왕후였다. 즉 김만기는 임금의 장인(부원군)이다. 당시는 당쟁이 치열했는데, 그들은 서인당의 핵심 인물들이었으므로, 남인당과 극심히 대립하고 있었다. 인경왕후가 죽자 인현왕후(민비)가 계비로 들어왔다. 그러나 인현왕후는 아들을 못 낳고, 희빈 장씨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균>으로 뒤에 <경종>이 되는 인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포는 숙종에게 ‘장씨가 천첩 소생이라는 말도 있으니, 너무 가까이하지 말고 수양하라'고 아뢰자 화가 난 숙종은 김만중의 관직을 빼앗고 귀양 보낸다. 드디어 인현왕후 폐비사건이 발생하고 <균>이 왕세자로 책봉되며, 희빈 장씨가 왕비로 승격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 유배지에서 이 작품을 완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의 제목을 분석해 보면, 사씨가 남쪽으로 쫓겨갔다는 뜻으로 결국 진실이 밝혀져 명예회복을 하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데, 혹자는 ‘남정(南征)'의 의미를 ‘남인 정벌'의 의미로 해석, 인현왕후를 편들던 서인의 거물 김만중이 자신의 정치적 복권을 노리고 썼을지도 모른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속의 허구의 세계와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들과를 혼동해선 안 된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현실로부터 유추된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일어난 사건'을 사실대로 기술할 뿐이며, 소설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숙종은 서포가 죽은 뒤 인현왕후를 실제로 복위시킨다.

《사씨남정기》는 양반사대부 가문인 유한림의 가정과 서로 다른 양반사대부들의 생활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는 사정옥과 교채란 사이의 갈등을 통해 축첩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고 있으며 동시에 양반가정의 추악한 내막을 드러내고 있다. 구성은 ‘성혼', ‘요망한 첩', ‘간악한 문객', ‘가화', ‘남정', ‘가운회복' 등 제목을 단 몇 개의 장들로 나뉘어 있는데 이야기줄거리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앞부분은 ‘성혼'부터 ‘가화'까지이다.

금릉 순천부의 명 가문에 한림 학사 유연수와 아내 사정옥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10년이 지났어도 둘 사이에는 가문의 대를 이어줄 자식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씨는 어느 날 남편에게 첩을 맞아들일 것을 간청한다. 유한림이

 “어찌 일시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여 첩을 얻겠소. 첩이 들어오면 집안이 어지러워지는 법인데, 부인은 왜 화를 자청하시오? 천부당만부당하니 그런 생각 마시오."

라고 반대하지만 사씨는 끝내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마침내 교채란이 첩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제 스스로 늘 말하기를,

 “가난한 집 선비의 아내가 되느니보다는 공후 부귀가의 첩이 되는 것이 좋다."

고 말해온 여인이다. 이때 교씨의 나이는 이팔청춘이었으나 성품이 교활하여 유한림의 비위를 잘 맞춰주었고 사씨를 섬기는 것도 극진해 보였다. 유씨 가문엔 전에 없던 기쁨과 화기가 떠도는 듯하였다. 사씨는 두말할 것도 없고 유한림도 이제 자식을 보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이며 피상적인 것이었다. 교씨는 유한림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노래와 탄금(彈琴)으로 그의 마음을 유혹하는 한편, 동청이라는 한량을 끌어들여 그와 함께 남몰래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갖가지 흉계를 꾸미다 마침내 자기 소생인 장지까지 죽이고 그 죄를 사씨에게 덮어씌운다. 간계에 속은 유한림은 십 년 세월 함께 살아온 사씨를

 “천지간에 용납 못할 죄를 저지른 음부, 방자하고 음흉한……"

운운하면서 집에서 내쫓는다. 이때부터 서글프고 괴로운 사씨의 ‘남정'이 시작된다.

 소설의 뒷부분은 ‘남정'부터 '가운회복'까지이다.

 집에서 쫓겨난 사씨는 시부모 선산에서 초가집을 얻어 여생을 마치려 한다. 그러나 행방을 알아낸 교씨는 동청과 함께 또다시 흉계를 꾸며 냉진이라는 사나이를 보내어 사씨의 절개를 꺾으려 하지만 사씨가 먼저 떠났기에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유한림도 자신들의 죄상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교씨와 동청의 모함으로 간신 엄승의 손을 빌려 ‘임금을 기롱한' 죄로 귀양가게 된다. 유씨가문은 마침내 파산몰락의 운명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곧 황제의 은사령으로 유한림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기를 모함한 원수들의 행차와 마주친다. 이를 안 교씨와 동청은

 “그놈이 죽어 타향 귀신이 될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오다니, 만일 다시 득의(得意)한다면 우리는 살지 못할 것이다."

하고 건장한 관졸 수십 명을 뽑아 유한림의 목을 베어오면 천금의 상을 주겠노라고 한다. 쫓기던 유한림은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쪽배 한 척을 발견하고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그 배에는 소복단장한 부인이 그를 맞이하는데 그녀는 바로 사씨였다. 이 무렵 조정에선 전횡을 일삼던 엄승상이 처형되고 동청과 냉진도 차례로 처단된다. 교씨는 낙양땅에 도망쳐서 창루의 창기로 타락한다. 예부상서로 복위된 유연수는 사씨부인을 데리고 서울로 가던 중에 교씨를 만나 그녀를 처단한다.

 전반부는 유연수 가문 내에서의 갈등을 주로 다루었고 후반부는 조정에서의 정치적인 사건의 해결을 주로 다루었다. 임진왜란 이후 양반사대부들 내에서 첩을 맞아들이는 일이 더욱 빈번해짐에 따라서 그것이 빚어내는 악덕은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축첩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착한 것은 승리하고 악한 것은 망한다는 궁극적인 도덕윤리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작품 내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다양한 묘사를 통해 인간의 성격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많은 시비들과 창두. 유모 그리고 배장사꾼 등이 교씨. 동청. 냉진을 ‘하늘 땅에 용납 못할' 사람으로 증오하고 사씨부인의 비극적 운명을 동정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민중들의 도덕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사씨는 집에서 쫓겨났지만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승리하고 만다는 결말 처리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유연수는 가장으로서 언뜻 보기에는 학식이 있고 사리에 밝은 사람으로 조정에서는 간신 엄승상의 박해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본질적으로 수신제가를 못 이룬 무능한 양반관료에 불과하다. 그는 교씨의 흉계에 속아 사씨를 내쫓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똑같은 궁한 처지에 빠진다. 눈여겨 볼만한 인물로 유한림의 고모인 두부인이 있다. 그녀는 유씨 가정의 어른으로서 오랜 생활체험을 통해 축첩제도의 불합리성을 깨달은 인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씨가 자진해서 첩을 맞아들인다고 했을 때, 속담에 이르기를 한 말에 두 안장이 없고 한 밥 그릇에 두 숟가락이 없다 하더라, 지금 시속이 예전과 다르고, 성인이 아닌 범인으로서 어찌 투기가 생기지 않으리라고 장담하랴. 공연히 옛날의 미명(美名)을 사모하여 화근의 씨를 뿌리지 않도록 함이 좋다고 타이른다. 이러한 인물의 설정은 작가가 축첩제도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씨남정기》는 특히 교씨. 동청. 냉진 등 부정적 인물들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에서 매우 사실주의적이다. 동청과 냉진은 전형적인 악인이다. 그들은 모두 양반가의 자손들로 주색과 사기, 모략과 아부를 일삼는 패륜아들이다. 그들은 교씨와 한 짝이 되어 음탕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작품에서는 이들을 간신 엄승상과 연계시켜 놓고 그들의 성격을 사회관계 속에서 밝히고 있다.

 작품은 또한 까다로운 한문투의 표현을 피하고 구어체에 접근하여 속담이나 격언 등을 적절히 이용하여 우리 말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은 권선징악적 관념과 봉건적인 각도에서 사씨부인의 성격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묘사한 한계를 갖고 있다. 사씨는 양반가문에서 자라났고 유씨 가문에 시집온 후에도 전통적인 유교의 윤리규범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여인이다. 그녀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자진해서 첩을 맞아들이는 것, 누명을 뒤집어쓰고 유씨 가문에서 쫓겨난 다음에도 남편의 선산에 가서 살려는 것 등이 다 '착하고 현숙한'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다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그녀의 이러한 판단과 처신은 유교적인 삼종지의(三從之義)를 따르는 것으로 작가 자신의 가치관이 봉건적 도덕성을 옹호하고자 하는 한계성을 지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 작품은 후대 소설 창작의 모범이 되면서, 이후 많은 모방작들이 나타났다. 그런 의미에서 17세기 중. 후반기에 들어 본격적인 소설시대를 연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최근 이 작품과 매우 유사한 구성이나 지향, 주제의식을 보이는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을 중심으로 이러한 초기 장편소설 발생의 측면에 주목해 '규방소설'이라는 유형을 새롭게 설정하기도 한다.

 서포는 작품을 통해서, 진실은 언젠간 드러나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교훈을 주려 했으며, 시대적 상황을 작가적 안목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당시 천대받던 한글로 작품을 완성한 점도 높이 평가해야 하겠다.


해설 2
 이 작품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 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사건에 대하여 숙종의 昏心을 회오하게 하여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권선징악의 수법을 고도로 원용하여 쓴 폭로, 諷諫(풍간) 소설이다. 주제를 쟁총으로 보기도 하고 德으로 보기도 한다. 德의 입장에서 보면, 쟁총형의 가정 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에 있어서의 덕성을 강조함으로써 민비폐출의 부당성을 풍간하기 위한 풍간 소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인물 구성을 보면, 사 부인은 고매한 부덕의 소유자로 설정해 놓은 반면, 첩 교씨는 간교한 여인으로 등장시켜 악녀와 선녀의 대립으로 여주인공의 인격을 강조하고 있다. 유한림의 숙모인 두 부인은 선악을 판단하는 사리 판별자로서 기능하며, 또한 다가올 일을 암시하는 복선의 기교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소설의 구성면에 있어서는 天佑神助가 사건 전개에 큰 구실을 한다. 즉 사 부인의 곤경은 꿈의 계시에 의해서 구출되는 등 모든 고난은 현몽의 덕분으로 극복한다. 이처럼 꿈을 지나치게 과용한 것이 이 작품의 구성상 한계라 하겠으며 이는 또한 현실감을 크게 감퇴시키고 있다. 이 소설의 사실상 역사적 배경은 인현왕후 폐출 사건에 있으나 소설적 배경은 중국 명나라 시대를 취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로운 저항 의식을 가리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이 소설이 지닌 목적 의식은 인물의 배치나 사건의 전개에 한계를 가져와 작품의 문학성이 위축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만중의 작가적 역량은 이를 극복하고 뛰어난 작품성을 발휘하고 있다.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구운몽>에서는 이처육첩이 화목하게 지내는데,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사씨남정기>에서는 처첩간의 불화가 심각하게 나타나서 선악과 생사를 건 싸움을 전개했다. 제목부터 사건 설정에 관심을 보인다. 즉 '사씨가 남쪽 지방으로 가서 고초를 겪은 이야기'라는 뜻으로 왜 남쪽으로 갔는지, 고초를 겪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인다. 

 사대부 가문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처첩 사이의 갈등을 충격을 줄만큼 극단화해서 나타낸 것만은 아니다. 유한림을 임금으로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궁중에서 벌어지는 사태의 간접적인 표현이거나 충신과 간신 사이의 싸움과 상응된다. 그러기에 숙종이 인현왕후를 내치고 장희빈을 맞아들였던 일을 두고서 숙종이 마음을 돌리게 하고자 지었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는 <인현왕후전> 같이 읽으면 독자로서는 한층 흥미를 더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목적문학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작품의 결말에서는 모든 문제가 일단 해결되었지만 결국은 선이 승리하고 악이 패망한다는 소박한 신념만 가지고 나서기에는 세태가 너무나도 험난하다는 것을 유한림을 통해 보여준 의의가 있다. <구운몽>이 이상주의적 방향을 택하고 있다면, <사씨남정기>는 삶의 실제 양상이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작품의 공통적인 성과는 구성이 치밀하고 성격 묘사나 심리 묘사의 방법이 적절한 것이다. 우아한 문체로 흥미로운 사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도 소설이 격조를 높이면서 독자층을 확대할 수 있는 기여를 했다. 나아가 이 두 작품, <구운몽>의 남성 행적과 <사씨남정기>의 여성 수난을 합쳐서 새로운 소설을 만들어 내는 길을 열 수 있다. 이러한 예로 <창선감의록>은 <사씨남정기>에서 볼 수 잇는 설정을 더욱 복잡하게 해 놓은 작품이다.  


해설 3
   이 작품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사건에 대하여 숙종의 혼심(昏心)을 회오하게 하여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권선징악의 수법을 고도로 원용하여 쓴 폭로, 풍간(諷諫)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쟁총(爭寵)으로 보고 있으나, 오히려 덕(德)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성혼 과정에서 매파가 사소저의 미색을 칭찬하자 유현은 덕을 강조하여 말했고, 또 사부인이 남편 유한림에게 소실을 얻도록 주선해주는 것으로 부덕(婦德)의 소치이다. 그리고 교씨의 간교로 인해 시가에서 쫓겨난 사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부모의 산소에서 지내는 것은 끝까지 덕을 실행해 보려는 강인한 의지의 발로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쟁총형의 가정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에 있어서의 덕성을 강조함으로써 민비폐출의 부당성을 풍간하기 위한 풍간 소설이다. 인물 구성을 보면, 사부인은 고매한 부덕의 소유자로 설정해 놓은 반면, 첩은 간교한 여인으로 등장시켜 악녀를 선녀에 대립시키으로써 여주인공의 인격을 강조하고 있다. 유한림의 숙모인 두부인은 선악을 판단하는 사리 판별자로서 기능하며, 또한 다가올 일을 암시하는 복선의 기교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소설의 구성면에 있어서는, 다른 고전소설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사건전개에 큰 구실을 한다. 사부인이 시부모 묘하에 쫓겨나 있을 무렵 두부인의 위조편지를 받고, 비몽사몽간에 최부인이 현몽하여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여승 묘혜가 사부인과 상봉하여 사부인의 곤경을 벗어나게 해준 것도 역시 꿈의 계시에 의해서였으며 유연수의 중병을 고치는 일, 위기에서 구출되는 일등 모두가 현몽의 덕분이다. 이처럼 꿈을 지나치게 과용한 것이 이 작품의 구성상의 흠이라 하겠으며 이는 또한 실감을 크게 감퇴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사실상의 배경은 숙종의 인현왕후 폐출사건에 있으나 소설 내용상의 배경은 중국 명나라 시대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로운 저항의식을 가리기 위함일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러한 목적의식 때문에 인물의 배치나 사건의 전개에 어떤 한계를 주어 작품의 문학성이 위축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나, 김만중의 작가적 능력은 이를 훌륭히 극복하여 작품적 성과를 발휘하였다.  


해설 4
 이 작품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사건에 대하여 숙종의 혼심을 회오하게 하여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권선징악의 수법을 고도로 원용하여 쓴 폭로․풍간(諷諫)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가 김만중이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는 일반적으로 쟁총(爭寵으로 보고 있으나, 오히려 덕(德)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성혼 과정에서 매파가 사소저의 미색을 칭찬하자 유현은 덕을 강조하여 말했고, 또 사부인이 남편 유한림에게 소실을 얻도록 주선해주는 것은 부덕(婦德)의 소치이다. 그리고 교씨의 간교로 인해 시가에서 쫓겨난 사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부모의 산소에서 지내는 것은 끝까지 덕을 실행 해보려는 강인한 의지의 발로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쟁총형의 가정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에 있어서의 덕성을 강조함으로써 민비폐출의 부당성을 풍간하기 위한 풍간소설이다. 인물구성을 보면, 사부인은 고매한 부덕의 소유자로 설정해 놓은 반면, 첩은 간교한 여인으로 등장시켜 악녀를 선녀에 대립시킴으로써 여주인공의 인격을 강조하고 있다 유한림의 숙모인 두부만은 선악을 판단하는 사리 판별자로서 기능하며, 또한 다가올 일을 암시하는 복선의 기교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 소설의 구성면에 있어서는, 다른 고전소설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우신조(天佑神助)가 사건전개에 큰 구실을 한다. 사부인이 시부모 묘하에 쫓겨나 있을 무렵 두부인의 위조 편지를 받고, 비몽사몽간에 최부인이 현몽하여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여승 묘혜가 사부인과 상봉하여 사부인의 곤경을 벗어나게 해준 것도 역시 꿈의 계시에 의해서였으며 유연수의 중병을 고치는 일, 위기에서 구출되는 일등 모두가 현몽의 덕분이다. 이처럼 꿈을 지나치게 과용한 것이 이 작품의 구성상의 흠이라 하겠으며 이는 또한 실감을 크게 감퇴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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