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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 Bob Marley, 자메이카, 레게, 비틀즈 Ob-La-Di, Ob-La-Da

Jobs 9 2025. 4. 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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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

Bob Marley

 

본명

로버트 네스타 말리

Robert Nesta Marley

 

출생

1945년 2월 6일

영국령 자메이카 나인 마일

사망

1981년 5월 11일 (향년 36세)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신체

170cm

국적

영국 국기

 영국(영국령 자메이카) → 

자메이카 국기

 자메이카

정당

인민민족당

종교

래스터패리교 → 오리엔트 정교회(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직업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사회 운동가

장르

레게, 스카, 록스테디, 록

활동

1962년 ~ 1981년

데뷔

1965년 웨일러스 앨범 'The Wailing Wailers'

레이블

아일랜드 레코드 logo

배우자

리타 앤더슨(1966년 결혼)

 

 

 

밥 말리는 자메이카 출신 음악가이다. 그는 제3세계 음악인 레게 장르의 저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확대시킨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대마초 합법화 운동으로도 유명하다.

 

 

생애

 

영국군 장교였던 중년의 백인 아버지 노벌 싱클레어 말리(Norval Sinclair Marley)와 19세의 흑인 어머니 세델라 맬컴 부커(Cedella Malcolm Booker) 사이에서 자메이카 트렌치타운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이차를 보면 알 수 있듯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었고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고 결국 12세가 되던 해 어머니를 따라 킹스턴의 빈민가로 이사를 한다. 빈곤과 각종 범죄로 가득 찬 동네에서 제대로 된 학업을 이어가기 힘든 밥 말리는 15세가 되던 해 학교를 그만두고 용접공으로 취직한다.

 

밥 말리는 버니 웨일러, 피터 토시와 함께 16세에 가수로서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드리프터즈, 임프레션즈, 샘 쿡, 컨트리 가수 짐 리브스와 당시 자메이카의 토속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62년에 그는 Wailing Rudeboys로 알려진 Teenagers와 함께 첫번째 음반인 "Judge Not"을 발표했다. 이후, 팀명으로 웨일러스(Wailers)를 채택하고 정치적인 내용을 담은 평범하지 않은 곡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어 자메이카에 서서히 퍼지고 있던 'SKA'비트 음악을 시도했고, 그래서 "rude boy music"으로 불리기도 했다.

 

1966년에 밥 말리는 리타 앤더슨과 결혼하여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갔다가 자메이카로 돌아온다.

 

이때에 자메이카에서 급속히 성장한 래스터패리교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SKA, Rude Boy music과 더욱 발전한 형태인 "rock steady"로 그의 곡들은 더욱 갈고 다듬어졌다. 그러나 1973년 이전까지는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가 메이저 음반사였던 Island Record에서 그의 첫 음반을 만들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결과, "Stir It Up"과 Peter Tosh의 "Stop That Train"이 포함된 "Catch a Fire"를 발표하여 전 세계인들에게 처음으로 레게를 소개하게 되었다.

 

1974년 웨일러스 멤버와 결별하고 I-Threes(그의 아내 리타가 포함된 여성 보컬 트리오.)를 조직한 후, 발표되자마자 레게의 클래식이 돼버린 "No Woman, No Cry"와 "Lively Up Yourself"가 수록된 아주 뛰어난 명반, "Natty Dread"를 발표했다. 1974년 당시 밥 말리 곡 중의 하나인 "I Shot the Sheriff"는 에릭 클랩튼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는데 그 곡은 팝 싱글 1위을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한 Strictly Business라는 넘버가 EPMD에 의해 발표되기도 하였고, 이 노래의 가사는 나는 전설이다 2007년판 영화에서도 가끔 언급된다. 70년대 말, 밥 말리는 "Rastaman Vibrations"와 "Exodus"가 미국시장에서 약진하고 있을 때 또한 "Exodus", "Waiting in Vain", "Jamming" 그리고 "Is This Love"등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트랙을 갖게 되었다.

 

저항 정신과, 평등, 인권 등을 가사에 담아 노래를 부르던 밥 말리는 수 차례 위협을 받기도 했는데, 자신의 조국인 자메이카가 정치 세력의 대립으로 폭동이 일어나 비상사태가 선포된 1976년, 조국으로 돌아와 반대를 무릅쓰고 스마일 자메이카 공연을 준비한다. 공연 이틀 전에 괴한의 난입으로 자신은 물론, 가족과 매니저가 총상을 입게된다. 그럼에도 붕대를 맨 채 공연을 강행하였고 영국으로 피신한다.

 

그는 평소에 축구를 무척 즐겨 했는데 1977년 말리와 웨일러스(Marley and Wailers)의 유럽투어 때 프랑스 기자들과 함께 축구시합을 했다. 경기중에 그는 발에 부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그의 몸에 있던 암세포를 발견했다. 암 치료를 거부한 그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1978년에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을 투어 했다. 뉴욕에서의 공연을 기념하기 위하여 실황을 담은 "Babylon by Bus"를 발매했고, 뉴욕 공연은 레게 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라이브 공연으로 기록되었다. 같은 해 자메이카 킹스톤에서 평화를 위한 콘서트와 보스턴에서 흑인 자유투사를 위한 자선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무리한 투어 일정은 그의 건강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었다.

 

밥 말리의 생전 마지막 사진. 옆은 그의 어머니인 세델라 맬컴 부커

 

 

말리는 음악 활동 후반에 노래를 통해 정치적인 메시지를 표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1978년 4월 22일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자메이카 방문 12주년 기념 콘서트로 'One Love Peace Concert'를 열었는데, 이 콘서트의 마지막에 말리는 당시 자메이카의 총리였던 마이클 맨리(인민민족당)와 에드워드 시가 노동당 총재와 삼자 악수를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당시 자메이카 정계는 정치깡패들이 정적에게 거리낌없이 총을 갈겨대고 심지어 그 정도가 내전에 가까웠대던 시절인데다 말리가 공연하던 때에 자메이카 총선이 얼마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했던 말리의 뜻이 공연에 그대로 표출됐던 셈. 이후 1979년 "Survival"을 통해서 이전과 달리 공격적으로 그의 정치적인 색채를 표현했다.

 

1980년 다시 투어에 나선 그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조깅하다가 쓰러졌다. 암은 그의 뇌와 폐 그리고 심장에까지 퍼져 있었고 8달 후 사망했다. 사망하기 7달 전인 1980년 11월 4일 라스타파리 운동을 버리고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대주교 Abuna Yesehaq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았다.

 

Money can't buy life(인생은 돈으로 살 수 없단다)

밥 말리가 아들 지기 말리에게 남긴 유언

 

 

 

디스코그래피

 

정규 앨범

 

The Wailing Wailers (1965)

Soul Rebels (1970)

Soul Revolution (1971)

The Best of The Wailers (1971)

Catch a Fire (1973)

Burnin' (1973)

Natty Dread (1974)

Rastaman Vibration (1976)

Exodus (1977)

Kaya (1978)

Survival (1979)

Uprising (1980)

Confrontation (1983)

 

 

컴필레이션 앨범

 

African Herbsman (1973)

Rasta Revolution (1974)

Legend (1984)

Rebel Music (1986)

Natural Mystic: The Legend Lives On (1995)

One Love: The Very Best of Bob Marley & The Wailers (2001)

Gold (2005)

Africa Unite: The Singles Collection (2005)

 

 

라이브 앨범

 

Live! (1975)

Babylon by Bus (1978)

Talkin' Blues (1991)

Live at the Roxy (2003)

Live Forever: The Stanley Theatre, Pittsburgh, PA, September 23, 1980 (2011)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연기획자들 중에는 아직도 밥 말리가 생존해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공연 기획할 때 밥 말리 출연 섭외를 시도하기도 한다.

 

여담으로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름이 비슷한 밥 딜런과 헷갈리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다.

 

마이클 잭슨이 잭슨 파이브로 활동 당시 자메이카로 공연을 갔을 때 만난 적이 있다. 요절한데다 자메이카 출신이라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그 외에도 조지 해리슨, 믹 재거 등 당시 유명 팝스타와 찍은 사진들이 몇몇 존재한다.

 

사망한 지 40년이 지났지만 포브스 사후 수익 순위에서 꾸준히 순위권 안에 들며 아직도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최고 순위는 2015년에 4위

 

 

 

이어폰 브랜드

 

그의 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밥 말리의 이름을 딴 'The House of Marley'라는 이어폰/헤드폰을 출시했다. 중저음 성향의 음질과 친환경 소재(목재, 직물, 재활용 알루미늄 등), 구입 시 수익금 중 일부 사회단체(1Love.org)에 환원 운동을 하는 것이 이 브랜드의 특징. 높은 인지도에 비해 음색이 빈말로도 하이파이적 성향은 아니기에, 이헤갤에선 뉴비용 추천이어폰 낚시 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목재 소재를 이용한 디자인이 예뻐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다.






 

 

레게

Reggae

 

기원 장르

칼립소 음악, 록스테디, 러버즈록, Nyabinghi, Burru, R&B, 스윙 재즈, 스카, 소울 음악

지역

자메이카 

 

등장 시기

1970년대 중후기

 

파생 장르

펑크, 댄스홀, 디스코, 팝 록, 글램 록, 팝 메탈, 덥, 덥스텝, 힙합, 라가, 정글 음악, 드럼 앤 베이스, 하드코어 테크노

하위 장르

루츠 레게, 러버스 록

 

 

 

가장 유명한 자메이카 레게 가수 밥 말리의 대표곡 중 하나인 'Is This Love (1978)'

 

Rejected by society

Treated with impunity

Protected by my dignity

I search for reality

 

New wave, New craze

New wave, New wave, New phrase

 

밥 말리 'Punky Reggae Party'

 

 

 

 

일찍이 캐리비안 장르였던 칼립소(Calypso)를 연주해오며 백인 관광객 전용 음악산업의 형태로 발전해오던 자메이카의 음악의 최종진화형.

 

비틀즈와 우드스탁으로 대표되던 저항의 시대인 196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밥 말리(Bob Marley)라는 불세출의 슈퍼스타가 나타난 이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사운드트랙 역시 레게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서양 대중 음악에 최초로 레게 리듬을 도입한 곡은 비틀즈의 Ob-La-Di, Ob-La-Da이며, 전설적인 록밴드 레드 제플린도 D’yer Mak’er라는 레게 곡을 발표하고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빌보드 핫 100 탑 10에 진입한 최초의 레게 곡은 조니 내쉬의 Hold Me Tight이고,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기록한 최초의 레게 곡은 조니 내쉬의 I Can See Clearly Now이다.

 

칼립소의 자메이칸 로컬라이징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멘토(mento)로부터 자마이칸에 의한, 위한, 의해 탄생되어진 최초의 오리지날 장르인 스카(ska), '조금 느린 분위기의 스카'이자 레게 탄생의 발판을 마련하는 장르인 락스테디(Rocksteady)를 거쳐 레게 장르가 탄생하게 된다. 락스테디에서 레게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재즈 훵크 레이블이었던 스튜디오 원의 잭키 미투와 리 '스크래치' 페리 등의 뮤지션들이 크게 활약했으며, 특히 The Skataltes의 창설멤버였던 잭키 미투는 레게의 음악적 아버지로 여겨질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서브 장르로는 이쪽 계열의 몇몇 덕후들만이 구분한다는 얼리 루츠(Early Roots), 루츠 레게(Roots Reggae)가 있으며 덥(DUB)이라는 장르 역시 이에 속한다. 그리고 같은 영연방 국가인지, 영연방의 큰형님격인 영국 음악씬에도 영향을 주게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파생 장르 중에 댄스홀 레게가 있었고 이는 1990년대 올드스쿨 레이브와 결합해서 정글-드럼 앤 베이스를 낳게 된다. 후에 EDM과의 역결합 장르로서 2010년대에 뭄바톤이란 장르도 등장하게 된다. 뭄바톤은 2014년 이후로 Dillon Francis와 DJ Snake, 디플로 등의 아티스트들이 수차례 히트곡을 내면서 인기 장르가 되었다. 즉 장르가 변하기는 했지만 레게의 인기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는 주로 레게라고 하면 1990년대 초반 전 세계를 강타한 UB40류의 레게팝 정도나 자마이칸 힙합 버전인 댄스홀(Dancehall)을 지칭하는 것 같다. 실제로 한국의 많은 레게뮤지션들은 동시에 래퍼, 힙합뮤지션이다. 하지만 레게 덕후가 엄청나게 득실대는 옆동네 일본이나 본토 자메이카에서는 레게라고 하면 루츠 레게를 지칭하는 듯 하다.

 

캐러비안 음악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와 소위 떨뮤직으로 인식되는 만큼 여유가 넘치는 구성이 대부분이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에서나 게임 등에서 소소한 일상 연출에 BGM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루츠 레게에서는 라스타파리아니즘이라는 종교를 설파하거나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이야기하는 가사가 많다.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유행에 발맞춰 1980년대부터 배인숙, 이정선 등이 레게 리듬을 소개한 바가 있었다. 1991년에는 벗님들 출신의 김준기가 '사랑은 가도 추억은'이라는 본격적인 레게 장르의 노래를 발표하였고, 이후 90년대 중반 김장윤을 주축으로 결성된 닥터 레게라는 레게 밴드가 대중에게 레게라는 장르를 소개한 바 있으며, 이후 015B, 김건모, 룰라, 임종환, 투투, 마로니에 등의 가수들이 레게 장르를 표방한 곡들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허나 어느 순간 레게 붐이 다시 사그라들고 현재 남아있는 국내 레게 뮤지션은 스토니 스컹크,[ 쿤타, 김반장과 윈디시티, 스카웨이커스, 루드 페이퍼, 레게 강 같은 평화(스컬, 하하), 엠타이슨, 킹스턴 루디스카, 브라운티거. 킹콩, 뉴올, 버스타밤, 룹샨, 오운 ,신한태와 레게소울 등이 활동하고 있다.

 

자메이카의 레게 뮤지션들 중에서는 머리카락을 여러가닥으로 가늘게 땋아 늘어 뜨린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머리를 드레드락, 혹은 드레드록스라고 한다. 드레드락을 설명하자면, 자메이카의 종교 래스터패리교부터 설명을 해야 하는데, 문명으로부터 오는 사회적, 물질적 부조리함을 '바빌론'이라고 칭하고 그 세력과 싸우기 위해 부모님이 주신 머리를 자르지 않고 'Lock'을 한다고 하여 'Dreadlock'이란 명칭이 사용되었다.

 

다만 강아지에게는 레게 음악이 아주 좋다는 반응을 본다고 카더라. 레게 음악은 시끄러움과 잔잔함 사이의 중간급 음악으로 절충안이 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레게 음악을 틀면 강아지의 안정감도 올라간다는 결과가 있다.

 

 

세부 장르

 

얼리 루츠(Early Roots)

 

루츠 레게(Roots Reggae)

 

덥(Dub)

 

킹터비(King Tubby) - 덥 창시자

Lee "Scratchy" Perry

The Upsetters

Aggrovators

조셉 후 킴(Joseph Hoo Kim) - 70년대 자메이카의 킹스턴(자메이카)에서 Channel One 설립자이자 사운드 엔지니어

사이언티스트(Scientist)

King Jammy

버니 리(Bunny Lee)

The Revolutionaries

Mad professor

Roots Radics

Sly & Robbie

Dub Syndicate

알파엔오메가(Alpha and Omega)

Twilight Circus Dub Sound System

 

레게 전반은, 특히 덥 씬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틀고 스피커들을 조합하는 등의 사운드 시스템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힙스터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시절의 극초창기 덥스텝이라면 모를까 대중화된 이후의 덥스텝은 개러지(특히 2step이라 불린 UK개러지)와 일렉트로니카에 그 근본이 있고, 덥 음악의 특징인 공간감을 자아내는 요소를 활용했을 뿐이어서 덥과 크게 연관은 없다.

 

이 특유의 공간감은 앞서 언급한 정글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세부적으로는 테크노에도 영향을 미쳐서 덥 테크노라는 장르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댄스홀(Dancehall)

 

1970년대 자메이카에 등장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80년대에 들어서는 클래식한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디지털 신스 등 전자음이 들어간 트랙들과 힙합이 부흥할 시기에 어느 정도 함께 영향을 받아 마약, 강도, 살인, 성적인 가사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라가머핀(Raggamuffin)이라는 스타일의 멜로디를 얹은 랩 같은 사운드를 구사한다. 자메이카 사운드 시스템에 Deejay가 Rub-a-Dub을 Selecta가 선택한 트랙들 위에 토스팅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루츠 레게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두어야 할 게, 우리나라에서 레게라고 하면 대부분 80년대 유행하던 올드 루츠(예를 들어 밥 말리)들을 많이 떠올리고, 댄스홀 스타일의 아티스트를 보면 레게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부분은 스스로 자메이카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것을 증빙하는 것이다.

 

뭄바톤, 레게톤 등 다양한 장르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힙합과 융화되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스컬 역시 대한민국 댄스홀의 대표하는 대부. 엠타이슨과 룹샨에 이어 버스타밤이 대한민국 댄스홀 계보를 잇고 있다.

 

 

러버즈 록(Lovers Rock)

 

시기적으로 록스테디와 레게 사이에 태동한 서브장르로 이름과 같이 낭만적인 사운드를 주로 한다. 처음에는 자메이카에서 시작하였으나 런던에서 유행을 끌었다.

 

Denis Brown

John Ho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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