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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흥, 金淳興, 친일파, 손녀, 이지아, 일제 거액 헌납

Jobs 9 2025. 2. 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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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흥(金淳興, 1910년 12월 28일 ~ 1981년 10월 26일)

 

일제 강점기 조선과 대한민국의 친일파이다. 본관은 광산으로 손녀는 배우 이지아다. 창씨개명 당시 이름은 金本淳興이다.

 

생애

경성부 출신으로 경성에 거주하는 대지주로서 경기도 파주 지역에 논 389정보와 밭 75정보를 소유했으며, 1937년 6월말 경 소작인 750여 명을 두고 있었다. 1940년 경 1년 소득이 11만 원이었다.

 

일제 강점기 활동

당시 1만원은 약 10억이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 국방 관련 단체에 헌금을 기부했다. 그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내역은 다음과 같다.

 

1933년 8월 조선 나 예방 협회 기금으로 1000원을 냈다.

1934년 6월 29일 조선중앙일보 감사 역을 맡았다. (사장 여운형)

1936년 2월부터 합자 회사 구정 상회 사장으로 있었다. 이때 교하간이교(校河簡易校)를 지을 땅을 1,500평을 기부하였다.

1936년 7월부터 금융 신탁 회사인 우익 상사 취체역으로 있었다.

1937년 7월 22일 국방 헌금 1만원을 종로경찰서에 헌납했다. 그는 "나라에 대한 봉사의 뜻을 표하고자 적은 돈이나 마 바치오니 받아주십시오"하고 돌아갔다. (내자정 162-2 김순흥, 내자정은 이후 내자동)

1937년 조선 군사 후원 연맹 사업비로 2500원을 냈으며, 같은 해 9월 5일 결성된 '경기도 내 군기 헌납 기성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비행기 대금 500원을 냈다.(당시 군용기 1대 75,000원) 반일 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일선융화'를 내걸고 결성된 동민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39년 11월 조선총독부가 전시 체제 강화와 유도 황민화를 위해 전 조선 유림을 동원하여 조직한 조선 유도 연합 회에서 참사를 맡았다.

1939년 9월 주식회사 쇼와 직물을 설립하여 사장을 역임.

1940년 9월 중앙 연료 주식회사 취체역을 맡았다.

1943년 8월 징병제 실시에 감격하여 국방 헌금 3000원을 헌납했다.

1944년 4월 일본 정부가 주는 감수 포장을 받았다.

해방 이후

해방 이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45년 12월 대한경제보국회 감사를 맡았다. 1948년 김구와 임시정부 계열이 지목한 숙청 대상 친일 인사들 명단 초안에도 이름이 올랐다.

 

사망

1981년 10월 26일 사망했다. 동아일보 1981년 10월 28일자에는 “학교법인 이화학원(지금의 이화여자대학교) 이사 김순흥씨가 새벽 4시 50분 서울 종로구 내자동 167-2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장례는 서울예고에서 이화학원장으로 거행된다고 밝혔다.” 이 주소는 1937년 7월 22일 일제 강점기 종로 경찰서에 국방 헌금 1만원을 헌납했던 주소와 성명이 일치한다. 1948년 김승학의 친일파 명단, 2009년 친일인명사전 경제 부문에 선정되었다.

 

가족 관계

조부: 김홍기(金弘基)

부친: 김윤석(金潤錫)

모친: 송은석(宋恩錫) (1886년 10월 7일 - 1972년 12월 4일) - 1950년 4월 자하문 밖의 13,645평 땅을 이화학당(이화여자대학교)에 기부

김순흥

김사홍(士鴻) (3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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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아 (손녀)

 

 

 

 

이지아 “친일파 조부 과오 사죄…재산 국가에 환수돼야”
350억원대 상속 분쟁엔 “부모와 연 끊어, 관련 없다”


배우 이지아가 조부의 친일파 논란에 대해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이지아(본명 김지아)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로 알려진 고 김순흥의 손녀다.

이지아는 21일 소속사 비에이치(BH)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조부의 역사적 과오를 깊이 인식하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라고 말했다. 

이지아는 “제가 두 살이 되던 해 조부께서 돌아가셔서 조부에 대한 기억이 없으며 친일 행위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자랐다”라며 “2011년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해당 사실을 접한 후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를 여러 차례 방문해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조부의 (일제) 헌납 기록을 확인하게 되었고,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지아는 최근 자신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형제들이 350억원대 토지를 두고 상속 분쟁 중이란 보도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하며 관련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저는 18살에 일찍 자립한 이후 부모로부터 어떠한 금전적 지원도 받은 적이 없다”며 “가족사로 인해 부모와 연을 끊고 지낸 지 이미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다”고 말했다. 이지아는 “이번 논란의 중심인 안양 소재 땅이 일제강점기 동안 취득된 재산이라면, 반드시 국가에 환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 매체는 이지아의 아버지가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350억원 규모 땅을 두고 형제들과 상속 분쟁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땅은 이지아의 조부인 친일파 김순흥이 남긴 재산으로 전해졌다. 김순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있다.


대지주였던 김순흥은 일제를 위해 거액을 헌납하는 등 친일 활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1937년 7월22일 동아일보는 “대지주 김순흥씨가 종로서에 찾아와 ‘나라에 대한 봉사의 뜻을 표하고자 적은 돈이나마 바치오니 받아달라'며 1만원의 거금을 국방헌금으로 내고 돌아갔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지아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에서 제가 ‘조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는 잘못된 내용이 확산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기에 바로잡고자 한다”면서 “앞으로도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는 데 겸허한 자세로 임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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