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낚시, 김영하, 영화이야기
굴비낚시 김영하 영화이야기
21세기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문학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 김영하의 영화 들여다보기. 그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단순히 추억속에 젖어들게 만드는 감상평이 아니다. 영화속에서 비춰지는 삶의 문제,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고, 이 사회를 비판하는 … 한마디로 속시원하면서 씁쓸한 우리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의 문체는 명쾌하면서 때론 섬뜻하고, 솔직해서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읽는 재미를 느껴지게 한다.
소설가 김영하가 영화산문집을 냈다. 그는 「당신의 나무」, 「사진관 살인 사건」,「바람은 분다」,「호출」 등의 단편소설에서 보여준 깔끔한 문체와 도시적 우울함, 재기 발랄함을 통해 이미 한국 문학의 차세대 대표작가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가 썼다면 못해도 실망할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 그의 글을 성큼 고르기에는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그의 주력 업종(?)인 소설은 아니지만, 일단 김영하의 『굴비낚시』에는 주목할만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유명한 시인 유하는 헌사를 통해 거침없이 말한다.
「김영하는 오늘도 영화를 낚는다. 이름하여 '굴비 낚시' 그러나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그가 낚는 어종들이 어떤 것이든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에 의해 낚여 올려지는 순간 모두 '김영하의 영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영화는 그만의 거침없는 입담과 유머감각, 경쾌한 사유들을 펼쳐 보이는 데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다. 여기엔 영화는 없고 영하적인 것들로 가공된 영화만 있다. 말하자면 김영하표 굴비인 셈이다. 사실 그와 난 영화 보는 취향이 많이 다르다. 그가 낚은 영화들 중에도, 내 경우엔 그저 그렇게 본 것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굴비들은 아주 맛있다.」
이를테면 '영화쟁이들은 어선에서 부려진 신선한 조기를 가져다가 지느러미를 발라내고 염장하여 일일이 꿰미에 꿰어 햇볕 좋은 바닷가에 넣어놓는 이들'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굴비가 바로 영화이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이 그에게는 굴비낚시이다. '그저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 낚이지도 않을 굴비를 상상하며 나름의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김영하식 글쓰기인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김영하가 낚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주목할만 하다. 이 글을 통하자면, 이 나라에서 이뤄지는 인터뷰란 것은 '질문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 사이에 형성된 씁쓸하기 짝이 없는 권력관계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류승완의 평범하지 않은 인터뷰는 우리 사회의 잠재된 권력관계를 은근히 균열시키면서 묘한 쾌감을 자아나게 했다는 것에 점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시네마 천국>이라는 굴비는 김영하에 있어서는 '신파'이다.
'세련을 피부 삼아 부착하고 다니는 모더니스트일지라도 혹은 카이스트의 공부벌레일지라도' 정신의 저항력이 약해졌을 때를 틈타 최루와 우울증이라는 증세를 겪게 하는 신파 말이다. 어느 날 수원 극장에서 그는 관객 두 명과 함께 <시네마 천국>의 완결편을 본다. 마침 그도 실연을 겪고 방황하던 참이라 영화 내내 눈물을 펑펑 쏟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술집에서 <시네마 천국>의 음악만 나오면 추가주문을 쏟아내곤 했다고 한다. 총 18편의 영화를 가지고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모두 이렇듯 곧은 낚시로 낚은 굴비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영화를 보았든 안 보았든, 그 영화가 재미있든 말든, 김영하의 영화산문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영화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그저 굴비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이고, 때론 유쾌하며 은근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책 속으로
한때는 왜 우리나라의 인터뷰어들은 이토록 무책임하게 무성의한 질문들을 남발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 문화에서 질문자가 갖는 권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선생님들은 '역사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같은 엉뚱한 질문을 던져놓고는 멀뚱멀뚱 앉아 있는 학생들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본 후, 흐믓한 얼굴로 '역사는 반복이다' 같은 황당한 대답을 내놓곤 했었다. ......잘 생각해 보면 이 땅에서 질문을 던지는 자들은 언제난 권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대답 잘한 궁리나 햐며 살았지 질문 잘한 궁리는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질문의 기술이 발달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날이 퇴보해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 p.28-29---pp,16-21,4-8,---
지금도 스칼렛 오하라, 하면 자동으로, 난 꼭 대학에 가야겠어, 라고 말하던 그녀가 연상된다. 내게 있어서 스칼렛 오하라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산부인과의 김 간호사다. 내 머릿속의 그녀는 산부인과가 아인 미국 남부의 어느 이름 모를 언덕빼기에 올라 치마를 휘날리고 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들은 심심찮게 내 삶과 얽혀들었다.
--- p.16
인간에 필요한 땅은 무덤의 넓이 정도라고 톨스토이는 말했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살아 있는 동안 필요한 감방의 넓이였다. 우리라고 다를 거 있나. 우리도 어쩌면 일출 때부터 일몰 때까지 죽어라고 자기가 살아갈 구덩이를 파야 하는 처지가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에 따라 그 구덩이의 넓이와 깊이는 좀 다르겠지만.
그러니 우리의 꿈이란 별 게 아니다. 그저 단 하루만이라도 저 구덩이 밖 세상(뭐 거기도 좀 더 큰 구덩이일 뿐이겠지만)으로 힘차게 탈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못하니 영화나 보고 박수나 칠 수밖에.
아, 어쨌든 한 편의 탈주극은 끝났다. 신창원은 다시 0.75평의 구덩이로 돌아갔고 우리는 오늘도 구덩이를 파야 한다. 빨리 파자. 허리라도 펴려면.
--- p.82-83
왕이 있다. 왕의 자리는 고독하다. 형제들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으며 신하들은 언제나 모반을 꿈꾼다. 암살의 위협이 상존하며 영토를 노리는 적대국의 동태도 감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왕은 냉정해야 한다. 때가 되면 운명의 승부를 걸어야 하며 가족과 국가의 안위도 책임져야 한다. 때로는 가족이라해도 살해해야 하며 적이라도 껴안아야 한다. 그게 왕의 운명이다. 왕은 한순간이라도 쉴틈이 없다.
<대부>시리즈는 한 왕국의 전설이다. <대부>에는 위에서 말한 그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그 지점에서 <대부>와 세익스피어가 만난다. 내게 있어 <대부>는 20세기의 세익스피어다. 한 외로운 인간이 온갖 역경을 디고 왕위에 오른다. 주변의 제국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합종연횡하며 신생제국의 성장을 저지한다. 결국 전쟁이다. 그 전쟁을 통해 새로운 승자가 등극한다.
그렇다고 영구한 평화는 아니다.
평화는 잠정적이다. 왕은 늙어간다. 배신자가 나타난다. 왕은 후계자에게 말한다.'누군가 네게 다가와 협상을 권하면, 그자가 바로 배신자다.' 그는 생물학적 죽음과 맞서며 동시에 사회적 죽음과도 대결한다. 자신이 건설한 왕국의 패망을 막기 위해 아들에게 사람과 조직을 다스리는 법을 전수해준다.
--- p.155-156
명동성당 언덕을 넘어서니 새로 단장한 중앙시네마. 표를 받아들고 낚지볶음을 먹고 들어간 시간이 8시 정각. 먼길을 걸어왔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매트릭스>는 흥미로운 영화였다. 그것은 모든 것의 잡탕이면서 또한 그 모든 것의 조화였다. 주윤발의 롱코트와 서극의 와이어 액션, 오우삼의 비장미, <공각기동대>의 세계관, 할리우드의 특수효과가 한데 어울려 인상적인 장면들을 버무려냈다.
이 영화에서 환상과 실재에 관한 인식론적 문제를 질문하는 건 부질없는 짓. 그건 이미 익숙한 알리바이다. '세상은 거대한 환상'이라는 <매트릭스>의 메시지는 평론가를 위한 친절한 함정이다. <매트릭스>의 진정한 메시지는 당신이 보고 있는 영화야말로 한바탕 쇼라는 것이다. 내가 <매트릭스>를 본 것은 주윤발과 오우삼과 서극과 클리늩 이스트우드와 터미네이터의 그림자였다. 다시 말해서 키아누 리브스는 영화라는 뻑적지근한 꿈속에서 그들의 이미지를 대신해 살아가는 것이다. 컴퓨터를 통해 '단기완성'된 쿵푸 실력처럼 영화 속에선 그 모든 일이 '단기완성'으로 가능하다. 두 시간 동안만 유지되면 되는 유쾌한 판타지. 그게 영화 아닌가?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건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따위의 장자적 세계관을 대입하는 것도 역시 시간 낭비, 설익은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있다.
--- pp.55-56
...영화는 비린내나는 현실 그 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콩처럼 간편하게 털어 넣을 수 있는 스낵도 아니다. 영화는 적당히 가공된 현실이다. 우리는 2차원의 스크린을 통해 3차원의 세상을 보며 4차원의 세계, 즉 과거로 혹은 미래로 거슬러 혹은 앞질러 달려간다.
--- p.10-11
...영화는 비린내나는 현실 그 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콩처럼 간편하게 털어 넣을 수 있는 스낵도 아니다. 영화는 적당히 가공된 현실이다. 우리는 2차원의 스크린을 통해 3차원의 세상을 보며 4차원의 세계, 즉 과거로 혹은 미래로 거슬러 혹은 앞질러 달려간다.
--- p.10-11
사실 영화를 업으로 하는 평론가나 감독, 배우들이 쓴 책들말고 영화라는 장르에 매혹된 사람들의 영화이야기 하면 우선 떠오르는 몇 가지 상투적인 것들이 있다. '내 인생의 영화' 혹은 '추억의 명화'라는 이름 아래 모인 몇 편의 영화를 가지고서 그 영화에 대한 해설과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약간 곁들여지는 감상, 아니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글이라는 점을 과신해서인지 글에 대한 자의식이 희박한 함량 미달의 글들... 이번에 <마음산책>에서 펴내는『굴비낚시』는 이러한 위험들을 가뿐하게 넘어선 자리에 위치해 있다. '한때는 조기였으며 모두 똑같은 태양 아래 말려졌으나' 다루어지는 방식이나 손질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인 굴비처럼 똑같은 영화를 말하더라도 누가 얘기하느냐에 따라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영화산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영하는 현재 문단과 일반 독자들 모두에게 가장 주목받고 있는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출판사 편집장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출판인들은 21세기 한국문학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작가로 소설가 김영하를 가장 많이 꼽았다. 1995년에 데뷔한 그는 두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감수성과 특유의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를 이미 선보인 바 있다.『굴비 낚시』에서 보여지는 경쾌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은 글에 탄력을 부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낡은 사고방식과 단단하게 굳어버린 고정관념을 흔들어놓는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어느새 독자들은 중력이 지배하는 일상에서 조금은 여유있고 새로운 시각으로 주변의 사물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굴비 얘기로 영화산문의 서문을 삼은 이유는 글쎄, 내게 있어 영화란 어쩌면 굴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영화쟁이들은 어선에서 부려진 신선한 조기를 가져다가 지느러미를 발라내고 염장하여 일일이 꿰미에 꿰어 햇볕 좋은 바닷가에 널어놓는 이들이다. 영화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함께 환기시킨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봐왔고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그 영화와 결합하여 내 기억 속에 물이끼처럼 들러붙어 있다. 영화들은 심심찮게 내 삶과 얽혀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하겠다는 내 기획은 내 잡스러운 일상과 상념에 관한 일기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자조적으로 이런 내 작업을 굴비 낚시라고 부른다. 누가 굴비를 낚겠는가. 생선이면서 생선도 아닌것을 어디 가서 낚겠는가. 그저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 낚이지도 않을 굴비를 상상하며 나름의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그게 내가 상정한 내 글쓰기의 모습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김영하는 오늘도 영화를 낚는다. 이름하여 '굴비 낚시'. 그러나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그가 낚는 어종들이 어떤것이든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는걸 알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화들은 그에 의해 낚여 올려지는 순간 모두 '김영하의 영화'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게 아니다. 영화는 그만의 거침없는 입담과 유머 감각, 경쾌한 사유들을 펼쳐보이는데 필요한 하나의 통로에 불과하다. 여기엔 영화는 없고 영하적인 것들로 가공된 영화만 있다. 말하자면 김영하표 굴비인 셈이다. 사실 그와 난 영화 보는 취향이 많이 다르다. 그가 낚은 영화들 중에도 내 경우엔 그저 그렇게 본 것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굴비들은 아주 맛있다.
--- 유 하 (시인)
목차
1. 수정아 사랑해/오! 수정
2. 인터뷰 감식법/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3. 새마을 운동이여 안녕/쉘 위 댄스
4. 사랑이라는 이름의 벽/러브레터
5. 아름다운 잡탕들/매트릭스
6. 동문서답/주유소 습격사건
7. 셰익스피어가 내게 속삭이기를/셰익스피어 인 러브
8. 아, 신창원/쇼생크 탈출
9. 미학적 마조히즘/아메리칸 뷰티
10. 내 마음의 신파/시네마 천국
11. 아날로그의 망령/토이스토리 2
12. 사랑은 불안의 부산물?/걸 온 더 브릿지
13. 평소에 잘하자?/유 턴
14. 바퀴와 포르노에 관한 명상/부기 나이트
15. 내 친구 오이디푸스/애널라이즈 디스
16. 축제가 좋아/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ㆍ백치
17. 베트남과 망각에 관한 농담 한마디/동사서독ㆍ다다를 수 없는 나라
18. 서정의 정치학/대부 2
저 : 김영하 (Kim Young-Ha,金英夏)
1968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잠실의 신천중학교와 잠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한 번도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초에 PC통신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여행에 관한 산문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냈고, 산문집 삼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 삼부작과 『랄랄라 하우스』 등이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해외 각국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고 있다.
"언젠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햄릿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이라는 한 독자의 질문에, “이보게, 젊은이. 햄릿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자네보다 훨씬 더 살아 있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다가 문득, 나라는 인간과 내 소설의 관계 역시 그와 비슷하지 않은가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라는 존재는 어지러이 둔갑을 거듭하는 허깨비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살아 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쓴 것들일 것이다. 그 책들이 풍랑에 흔들리는 조각배 같은 내 영혼을 저 수면 아래에서 단단히 붙들어주는 것을 느끼곤 한다."
"작가는 1인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노동하는 이들, 세상의 가치있는 재화를 생산하느라 미처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보고, 듣고, 감각하고, 표현하라고 세상이 생활비를 주는 거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자기만의 필터로 표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영화일 수도, 음악일 수도, 여행일 수도 있다."
"여행이란 포기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며,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