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고대

고구려 건국, 영토 확장

Jobs 9 2024. 12. 2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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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건국

기원전 75년 무렵 성립 → 부여의 이주민 세력을 이끈 주몽이 졸본 지방을 근거로 왕위 차지(기원전 37) → 국내성 천도 후 세력 확대

 

● 고구려의 중앙 집권 국가로의 성장

연맹 국가 > 중앙 집권 국가
  • 왕과 여러 군장(족장)들이나라를 나누어 다스림 → 왕권 미약
  • 정복 전쟁, 영토 확장
  • 통치 제도∙율령 제정
  • 불교 수용
  • 왕위의 부자 상속 확립
  • 왕권 강화됨
  • 군장(족장) 세력약화

 

1세기 후반 태조왕
  • 옥저 정복, 요동 지방으로 진출을 꾀함
  • 계루부 고씨의 왕위 독점 확립
  •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 마련
2세기 고국천왕
  • 왕위의 부자 상속 확립
  • 부족적 성격의 5부를 행정적 성격으로 개편
4세기 미천왕
  • 요동 지역으로 세력 확대, 대동강 유역 확보, 중국의 낙랑군을 몰아냄
고국원왕
  • 위기: 중국 전연의 침략(국내성 함락) + 백제 근초고왕의 침략으로 고국원왕 전사
소수림왕
  • 불교 수용: 다양한 신앙 통합 → 국민 정신 통일, 왕실 권위 향상
  • 태학 설립: 능력 있는 인재 양성, 유학 보급
  • 율령 반포: 통치 조직 정비

 

 

● 5세기, 고구려의 영토 확장

  • 동부여가 배반하여 조공을 하지 아니하므로 태왕께서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정벌하여 이들을 굴복시켰다. 태왕의 은덕이 널리 퍼져 64개의 성을 평정하고 돌아오셨다(410).- 광개토 대왕릉비 -
  • 왕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백제를 침공하여 백제의 도읍지 한성을 점령한 후, 백제 왕을 죽이고 남녀 8천 명을 생포하여 돌아왔다(475).- "삼국사기"-

 

● 광개토 대왕(재위 391~413)

▶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까지 진출

▶ 요동 지역, 만주의 대부분과 연해주 지역까지 영토 확장

▶ 신라에 침입한 왜군 격퇴 → 신라에 대한 영향력 확대, 금관가야에 타격을 입힘

▶ 광개토 대왕릉비: 장수왕이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

 

● 장수왕(재위 413~491)

▶ 평양 천도: 왕권 강화, 적극적인 남진 정책 추진을 위한 것

▶ 중국의 남조·북조와 각각 교류: 중국 세력 견제

▶ 적극적인 남진 정책 추진

  • 나·제 동맹 체결: 신라와 백제가 고구려의 남진을 견제하기 위해 협력을 도모함
  • 한강 이남까지 진출: 충주 고구려비 건립, 백제의 웅진 천도

 

● 고구려의 천하관

▶ 왕을 '태왕', '성왕'이라고 부름

▶ 광개토 대왕 때 '영락'이라는 독자 연호 사용

▶ 백제와 신라를 고구려에 종속된 나라로 여겨 낮추어 부름

 

1. 광개토 대왕릉비

  •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웠다. 시조는 북부여에서 나셨는데, 천제의 아들이다.
  • 영락 대왕의 은혜와 혜택이 하늘에까지 이르고, 대왕의 위력은 사해에 떨쳤다.

 

2. 충주 고구려비

  • 대왕(장수왕)이 신라 매금(왕)을 만나 영원토록 우호를 맺기 위해 중원(충주)에 왔다. 동이(오랑캐) 매금에게 옷을
    내려주었다.

 

3. 모두루 묘지 비문

  • 하백의 손자이며 해와 달의 아들인 추모성왕(주몽)이 북부여에서 태어나셨으니 천하 사방은 이 나라 이 고을이 가장 성스러움을 알지니…….

 

▶ 고구려는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였고, '영락'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여 고구려가 중국과 대등한 나라임을 드러냈음

▶ 신라왕을 '동이 매금'이라고 부르며 옷을 내려주는 등 주변 국가를 고구려에 종속된 나라로 여겨 낮추어 불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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