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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 해학, 풍자, 골계미

Jobs 9 2023. 7. 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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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학과 풍자의 개념 및 차이

일반적으로 해학과 풍자는 같은 골계의 범주에 들면서, 한편으로는 서로 대립되는 양상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둘은 현실에서의 갈등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갈등을 해소하려 시도한다는 점에서 그 근원을 같이하지만, 해소의 방식에서는 상반된 길로 나아간다. 이동근과 황형식은 둘의 개념을 정의함에 있어 풍자와 해학은 어떤 대상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거기에 재미․멸시․분노․냉소 등의 태도를 환기시켜 그것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문학적 기법으로, 풍자문학은 비판과 교훈에 주안점을 두는 공격적 태도의 조소(嘲笑)문학이고 해학문학은 웃음과 즐거움에 주안점을 두는 쾌락(快樂)문학으로 보았다.


. 해학과 풍자의 두드러지는 차이에 있어서는 나병철의 다음과 같은 설명이 어느 정도 명쾌한 해답이 될 것 같다.

해학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대상을 내려다본다는 점에서 풍자․기지․반어와 함께 동일한 골계의 범주에 속하지만, 대상과 대립하여 적대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동정과 사랑으로써 대상을 포용한다는 점에서 풍자와 근본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한다. 다시 말하면 풍자는 동시대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나 인간성의 결함을 지적하여 조소함으로써 골계의 효과를 나타내는 점에서 해학과 같은 범주에 속하지만, 대상을 파악하는 태도에서 해학과는 다르다. 즉 해학은 부정된 대상 속에 자기 자신까지도 포함시키는 경우이고, 풍자는 부정된 현실 속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 말은 항상 옳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풍자의 수법 속에서는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비판 및 공격의 대상으로 보고 웃음거리로 설정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그와 같은 ‘부끄러운 자신’을 공격하고 비판하는 ‘또 하나의 좀 더 고등한 자신’을 설정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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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풍자문학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윤리관 및 가치관이 정리되지 못한 폐쇄적 사회환경 속에서 주로 나타나는 문학양식이고, 해학문학은 비교적 안정되고 개방된 시대의 환경 속에서 많이 나타나는 문학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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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 문학 텍스트 속에서는 이와 같은 개념적 정의와 달리, 해학과 풍자의 분별이 분명하지 않으며, 이는 앞서 밝힌 것처럼 이 글에서 해학을 다루려 하면서도 풍자에 대해서 함께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웃음이란 본래 해학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풍자를 경유하게 마련이다.
. 즉 문학에서 골계미의 효과를 뒷받침할 때에는 매우 유사하게 작용한다는 것인데, 풍자는 현실에 있어 항상 부정적 태도를 취하지만 그 뒷면에는 익살과 웃음을 내포하여 해학적 특색을 띄는 것이 흔하고, 단순한 해학도 우의적 뜻을 품음으로써 내용 충실을 꾀하거나 혹은 그 발화자나 창작자의 의도 및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에 넣을 때 현실 비판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모든 웃음은 그것이 순수한 웃음이든 아니면 비웃음이든 어떤 의미에서는 풍자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게 된다. 웃음은 일탈되는 것을 대상으로 삼으며, 따라서 ‘일탈되는 것’과 ‘일탈되지 않는 것’이라는 일정한 우열의 관계(후자가 위에 있는)를 설정하게 된다. 이 때 해학은 대상에 대한 포용 혹은 적어도 공격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접근하지만, 풍자의 경우 날카로운 공격과 비판을 통해 대상의 위치를 격하시킨다는 것은 앞서 살핀 바와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우열의 관계를 설정하고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상대를 격하하고 깔보는 풍자의 개념을 전제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웃음이 성립하기 위해 우열을 가린다는 행위 자체가 웃음의 대상을 하위에 놓음으로써 자연히 공격과 비판의 여지를 남기는, 혹은 그것들을 시작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우리가 풍자의 범주를 설정할 때에도 그것은 종종 골계의 하위항목으로서의 위치를 벗어나고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고전소설에서의 한 예로 「홍길동전」을 들 수 있겠는데, 종종 풍자소설의 하나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그러나 한편 골계미를 표출하는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른바 문학에서의 풍자라 함은 반드시 웃음을 유발하지 않더라도 성립되고 있다. 그렇다면 방금 앞에서 정의된 풍자의 개념은, 광의와 협의의 조건이 따로 있어 전체적인 문학에서의 풍자가 아니라 골계미에 포함될 때의 하위 개념으로 한정될 것이다. 
하지만 해학과 풍자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힘들다고 하여, 그 양립하는 개념 자체를 무너뜨리는 데에까지 나아가는 것은 지나친 확장이 아닌가 한다 이상근, 위 책과 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시도도 이루어진 바 있다. 
. 두 개념 사이의 접점이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그 양 극단에서는 뚜렷하다 할 만한 대비가 이루어지는 경우 또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적어도 개념상의 위치에서 그 분단을 이룰 때는 일정 수준의 명확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학과 풍자 개념의 양분법의 불명확함은, 일반적으로 문학 방면에서의 많은 개념들이 실제 작품에 적용할 때에는 논리상의 정의와는 달리 그다지 명쾌한 양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례에 포함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몇 가지 문제들은 해학과 풍자를 마치 서로 전혀 다른 것처럼 구분하여 정의하거나 관련하여 다룰 수는 없음을 뚜렷하게 하는 데에는 충분하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를 우리 고전소설의 해학을 다루고자 하는 취지에서 글을 쓰면서도 결국은 풍자 또한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음을 변명하는 근거로 삼고자 한다. 

 

 

 고전소설에 나타난 해학과 풍자

(1) 작품군 구분의 준거

이 장에서 고전소설들을 분류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작품군의 분류 이외에도, 각각의 작품군에서 해학과 풍자가 드러나는 양상이 어떤 것인가에 의한 것인가를 또한 기준으로 삼는다. 작품군에 따라 해학과 풍자는 특별히 더 강화되거나, 혹은 양자 중 어느 한 면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반적인 성향을 볼 때, 초기에는 뚜렷하지 않던 해학과 풍자는 후기 작품들에서 하나의 당연한 문학 표현으로서 명백해지고 있음을, 그리고 소설 이외의 서사 갈래로 외연을 확대할 때 초기에는 해학이 풍자보다 두드러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째서 소설 외까지 다루는 것인지는 잠시 뒤에 다시 설명하겠다.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의 이유를 알기 위해, 먼저 앞에서 인용한 나병철의 글을 생각해 보자. 그의 견해처럼 해학과 풍자는 각각 상대적으로 사회가 안정된 시대와 안정되지 못한 시대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것을 고전소설에 대입한다면, 사회적 혼란상이 극심했던 시기와 상대적으로 덜한 시기의 구분이 시대에 따른 작품군에서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상황에 이 이론을 대입하였을 때, 그 양상은 서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음을 알게 된다. 
고전소설에서 해학과 풍자, 그 중에서도 특히 풍자가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작품군을 꼽으라면 역시 판소리계 소설을 빼놓을 수 없고, 그것은 조선조 말기라는 혼란한 시대의 산물이다. 그 이전 작품들에서는 박지원의 몇몇 단편소설들이나 허균의 「홍길동전」(그러나 이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학’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리고 판소리계 소설의 시대에 가까운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이처럼 두드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전 시대 또한 혼란스럽지 않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단적인 예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막 거쳤을 시기와 비교한다면 오히려 양 병란의 시대가 훨씬 혼란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조선조 후기로 갈수록 양 병란의 충격이 내면화되었기에 문학적으로는 그와 같은 더 풍자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양란 직후에 소설이 발달하기 시작했음을 고려한다면 문학의 변천을 불러온 충격이 반드시 그 후에 내면화되었다고 보기도 힘든 것 같다. 따라서 그보다는 문학을 향유하는 담당층의 변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것이 타당하다. 어느 시대에나 풍자문학을 창출하기에 충분한, 사회나 다른 계층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주로 하층민들)은 존재해 왔지만 그들에게 문학을 향유할 만한 여건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고전소설은 전기소설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시습이나 「홍길동전」을 쓴 허균 등을 거쳐 양반 혹은 그에 준하는 재력을 가진 부녀자들에 의해 활성화되었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서민층의 사상을 받아들여 판소리계 소설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서민층이 참여하기 이전까지 고전소설의 창작 및 향유층은 김시습이나 허균, 박지원 등을 제외하면 방금 언급한 양반 혹은 그에 준하는 재력을 가진 이들로, 사회에 강한 반발의식을 가진 계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당대 사회의 기득권층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풍자문학의 창출은 강한 불만을 가진 서민층의 적극적 참여에 의해 활성화되었다고 해도, 해학문학이 그 이전에는 다소 미진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담당층의 변화가 풍자문학의 강화를 불러왔다면, 반대로 풍자문학을 강화시킨 담당층의 등장 이전에는 해학이 풍자보다 우위에 있는 실례를 볼 수 있어야 그 가설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현전하는 소설작품들 중에서는, 특히 판소리계 소설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그처럼 해학만을 중심으로 하는 작품군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소설의 범주를 넘어 설화의 범주에 드는 골계전들을 함께 다룰 때 이 문제는 해명될 수 있다. 설화와 소설이 같은 서사문학의 부류로서 서로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녔음을 새삼 자세하게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며, 설화가 소설의 원류 혹은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갈래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골계전들은 당대 사회의 지배층이자 가장 큰 기득권자들인 양반층들에 의해 수집되고 쓰여졌으며, 풍부한 해학성과 상대적으로 약한 풍자성을 담고 있다. 이는 해학과 풍자의 갈림이 문학담당층의 성향에 따라 실제 문학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여준다. 골계전은 엄밀히 말해 양반층의 창작이라기보다는 시중의 떠도는 이야기들을 모은, 즉 서민을 비롯한 하층민들의 성향이 드러나는 갈래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을 편찬한 것은 사대부들인 만큼 적어도 풍자보다 해학을 중시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그들의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대부들이 기득권층으로서 서민들이나 다른 계층들만큼 현실과의 갈등을 심하게 겪지 않았음에도 골계전류를 창출하고 향유한 것은 사대부들 스스로 그들의 엄격한 관습으로부터 잠시나마 일탈하여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해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어느 정도 현실과의 갈등은 있되 그것이 다른 계층들에는 비할 수 없는 미약한 수준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의 규칙을 공격하거나 부정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골계전문학은 해학과 풍자를 다루되 포용적인 해학을 중심으로 하는 데 머물렀던 것이다.
아직 해명하지 않은 해학과 풍자문학 전체가 상대적으로 후기에 비해 전기가 미진한 이유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해학과 풍자는 둘 모두 현실에서의 갈등에서 유래하며, 따라서 담당층들이 상대적으로 사회의 기득권층에 가까웠던 이전 시기, 즉 당대 사회 및 현실과 극심한 갈등을 겪지 않았던 시기에는 둘 모두 상대적으로 미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소설이란 갈래 자체가 현실과의 갈등에서 창출되었고 그것이 심해질수록 발달하는 만큼, 아직 발전의 초기단계에 있었던 소설에서 해학과 풍자 전체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당연해 보인다. 결국 이 또한 소설의 외적 갈래이지만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 골계전류를 끌어와 고려할 만한 근거가 되겠다. 현실과의 갈등이 미약한, 따라서 소설의 발달이 미약했던 시기에 그 원류가 되는 서사문학에서의 해학과 풍자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고전소설에서 나타나는 해학과 풍자가 작품군별로 그 저울추의 기울어짐에 차이가 나는 것은, 그리고 소설사적으로 전기에 비해 후기에 양자가 강화되는 것은 결국 그 담당층이 누구인가에 따라서임을 알 수 있겠다. 물론 그 담당층의 변화 자체가 시대적 혼란에 기인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한 그것은 그때까지 점층되어 온 발전의 산물이기도 하므로, 시대상의 혼란과 문학에서의 해학과 풍자를 직접적으로 연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를 듯하다.
이에 따라 다음 항목들에서는 소설 형성 이전의 시대, 판소리계 소설 이전의 소설시대, 그리고 판소리계 소설 시대 세 가지로 고전소설의 시기를 나누고, 이에 따라 각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군들인 골계전류, 박지원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기타 작품들, 그리고 가장 두드러진 골계로 잘 알려진 판소리계 소설들에 나타난 해학과 풍자를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골계전(滑稽傳)류에 나타난 해학과 풍자

골계전류와 해학 및 풍자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핵심적인 이야기를 끝내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골계전류는 소설시대 이전의 갈래로서 소설의 원류가 되는 설화 갈래 중의 한 부류이고, 그러나 해학과 풍자를 중심으로 하는 만큼 고전소설에 나타나는 해학과 풍자를 다룰 때, 특히 시기에 따른 해학과 풍자의 차이를 고려할 때에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갈래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양반층의 창작이라기보다는 시중의 떠도는 이야기들을 모은, 즉 서민을 비롯한 하층민들의 성향이 드러나는 갈래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그것을 편찬한 것은 사대부들인 만큼 그들 자신의 성향을 중점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사대부들이 기득권층으로서 서민들이나 다른 계층들만큼 현실과의 갈등을 심하게 겪지 않았음에도 골계전문학을 창출하고 향유한 것은 사대부들 스스로 그들의 엄격한 관습으로부터 잠시나마 일탈하여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해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그러나 그들 자신의 규칙을 공격하거나 부정할 수 없었다. 따라서 골계전문학은 해학과 풍자를 다루되 포용적인 해학을 골자로 하고, 이른바 소설이라 불릴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도 않았다. 골계전문학은 소설이 형성되기 직전의 시기에 존재하면서 소설에 드러나는 해학과 풍자의 원류를 살필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서사문학 전체에서의 해학과 풍자의 흐름을 드러나게 해 준다. 그리고 서민층의 참여가 분명히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다음에 다룰 판소리계 소설 이전 시기의 소설 작품군보다 더욱 해학성과 풍자성이 두드러지는 갈래로 평가할 수도 있다.
잘 알려진 골계전 작품집으로는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이나 홍만종(洪萬宗)의 『명엽지해(蓂葉志諧)』, 성현(成俔)의 『용제총화(傭齊叢話)』, 송세림(宋世琳)의 『어면순(御眠楯)』 강희맹(姜希孟)의 『촌담해이(村談解)』, 성여학(成汝學)의 『속어면순(續禦眠楯)』 등이 있다. 장덕순은 이를 바탕으로 골계전에 드러나는 주류적인 인간군상을 몇 가지로 분류한 바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덕순, 「한국의 해학」(『동양학』 4권,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74)
: 1) 부부, 2) 부부와 그 사이에 개입한 여비, 과객, 승려, 어린아이 등 제3자, 3) 보통 양반인 주인과 노비, 4) 양반과 기녀 혹은 승려와 과부. 이것만으로는 골계전류의 내용의 면면까지 살피기 어렵지만, 보통 남녀 사이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해학적인 설화가 가장 많은 축에 든다. 한편 남편이나 양반, 승려의 경우 골계전에 등장할 때는 해학과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해학성이 잘 드러나는 실례로 양반 남편과 아내 사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호색적인 양반이 있었다. 밤에 그 아내가 잠들기만 하면 몰래 방을 나와서 여비가 자는 방으로 들어 그 여인과 자고 나오곤 했다. 이를 눈치챈 아내가 어느날 밤 자는 체하고 있다가 남편이 방을 나가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밟았다. 남편은 여종이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서는 이런 대화가 들렸다.
“절병부인 인절미떡, 귀족의 음식으로 간주하여 본처를 상징함.
은 어데 두고 이렇게 더러운 계집종을 찾아왔습니까?”
“나는 그대를 갓김치로 알고 왔노라.”
이 광경을 엿듣고 있던 본처는 그냥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여비와 동침하고 나온 양반은 큰 돌 위에 앉아서 그 궁둥이를 차게 얼려서 아내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내의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궁둥이를 아내에게 들이대며 “배가 아파서 변소에 다녀왔더니 궁둥이가 이렇게 얼었구려.”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가 “이렇게 배가 아픈데 왜 갓김치만 자꾸 잡수십니까?” 하고 응수했다 「호색양반(好色兩班)」, 이륙(李陸)의 『청파극담(靑坡劇談)』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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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장덕순의 분류를 따른다면, 2)와 3)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떡을 먹었으니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합리적인 말로, 자기의 종을 범하려는 비리를 정당화하려는 수작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번번이 아내에게 들키고 약점을 잡히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얕은 수작으로 속여넘기려다 들키는 양반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이며, 또한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노골적으로 공격하기보다는 배가 아픈데 왜 자꾸 갓김치만 먹느냐는 말로 재치있게 비꼬는 아내의 태도가 한편으로는 웃음을 유발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대상을 날카롭게 공격하는 대신 너그럽게 감싸안는 해학의 태도를 느끼게 한다 이동근․황형식, 위 책, pp. 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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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태평한화골계전』에 실린 또 한 예이다.

삼봉 정선생과 도은 이선생과 양촌 권선생이 모여 서로 평생에 스스로 즐기는 것을 담론하고 있었다. 삼봉이 왈 “삭설(朔雪) 북쪽 땅의 눈을 말한다.
이 처음 날릴 적에 담비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준마를 타고 평원에 달리면서 수렵하면 이 즐거움이 될 만하오.” 도은이 왈 “산방정실(山房靜室)과 명창정궤(明窓淨几) 밝은 창에 깨끗한 책상이라는 뜻으로, 검소하고 깨끗하게 꾸민 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에 향을 피우고 차를 다리며, 시구를 찾으면 이 즐거움이 될 만하오.” 양촌이 왈 “백설이 만정하고 홍일(紅日)이 창을 비치고 있는데 뜨뜻한 온돌에 병풍을 두르고 화로를 끼고 손에 책 한 권을 잡고 그 사이에 누워 볼 때 미인이 섬섬옥수로 수를 놓다가 가끔 바늘을 멈추고 밤을 구워 먹으면 이 즐거움이 될 만하오.” 하니 정, 이 두 선생이 크게 웃으며 “그대의 즐거움을 들으니 나도 그랬으면 좋겠소.” 하였다 「세 사람의 즐거움」,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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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순의 분류에는 들어맞지 않는 한 예라 하겠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양촌(陽村) 권근(權近)은 모두 조선 건국 초기의 이름난 문신이자 학자들이다. 골계전의 사실 여부를 떠나 책을 편찬한 장본인이 서거정 자신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의미가 더욱 크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제도를 주창하고 지켜나가던 양반층 자신들조차도 그러한 구속으로부터 일탈하고자 하는 욕구를 보여주어 웃음을 유발하게 하며, 나아가 마냥 관습에만 얽매이지 않고 나름대로의 풍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자칫 비판과 공격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소재를 점잖은 어투와 웃음으로 풀어나간, 앞서의 예시와 마찬가지로 골계전류에서의 해학을 엿볼 수 있는 한 대목이다. 
하지만 다음의 승려와 과부 이야기는 그 성격이 풍자에 가깝다.

어떤 절의 상좌놈이 자기 스승인 중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이웃에 사는 젊은 과부가 저에게 절 뜰 안에 있는 감을 스님이 혼자 잡수시냐고 묻기에 그렇지 않고 모두 나누어 먹는다고 했더니 그 부인이 자기도 좀 달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들은 중은 대단히 기뻐서 감을 그 여인에게 보내 주라고 명했다. 상좌놈은 감을 모두 따서 자기 부모에게 바치고 또 말하기를
“그 여인이 대단히 감사하다고 하면서 재를 올릴 때의 떡도 먹고 싶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중은 또 떡을 보냈다. 그러나 이 떡도 상좌놈의 부모의 입으로 모두 들어갔다. 상좌놈은 또 중에게
“그 예쁜 과부여인이 스님을 꼭 뵙겠다고 그러던데요.”
라고 거짓말을 했다. 중은 하도 반가워서 날짜를 정하여 만나기로 했다. 상좌놈은 과부의 집에 가서 자기 스승이 폐(肺)를 앓고 있는데 의사의 말이 여인의 신발을 따뜻하게 해서 가슴에 대면 낫는다고 하니 신발 한 짝만 빌려달라고 했다. 영문을 모르는 과부는 선뜻 자기의 신발 한 짝을 내 주었다. 신발을 얻은 상좌는 절에 돌아와서 문밖에서 몰래 중이 있는 선실을 들여다보았다. 중은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자리를 깔고는 혼자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여기 앉고, 그녀는 조기 앉고 내가 그녀에게 음식을 권하여 먹은 후에 나는 그 여인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서 은근한 재미를 보게 되었군.”
이 때 상좌놈이 문을 왈칵 열고 들어와 신발을 던지며 말하기를
“일은 모두 끝났습니다. 내가 그 여인을 데리고 문에 이르러 스님의 하는 짓을 보고는 여인이 크게 노하여 너의 스승은 미쳤구나 하면서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나는 뒤를 쫓아갔으나 미치지 못하고 그녀가 버리고 간 신 한 짝만 이렇게 주워 왔습니다.”
중은 머리를 푹 숙이고 뉘우치면서
“너는 내 입을 쳐 달라.”
하였다. 상좌는 곧 목침을 들어 중의 입을 갈겼다. 중의 이빨이 모두 부러지고 말았다 성현의 『용제총화』 소재.
.

장덕순의 분류 중 4)에 해당하는 것으로, 앞서의 이야기들과는 달리 공격적인 풍자가 잘 드러나 있다. 스승인 중이 지니고 있는 은근한 색욕을 이용하여 자기 잇속을 차리면서, 마지막에는 이빨을 모두 부러뜨리는 징벌자의 역할을 하는 상좌의 행동과 기지, 그리고 여색에 눈이 멀어 그 속임수에 넘어가버리는 스님의 어리석은 행동이 대조를 이루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에서 스승인 중은 설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관련하여 타락한 불교의 위선적 속성을 비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으며, 따라서 중에 대한 공격은 곧 불교에 대한 공격이 된다. 앞서 양반들에 대한 웃음이 포용적인 해학이었던 데 반해 중에 대한 웃음은 비판과 공격의 풍자라는 점이 두드러지며, 유학자였던 성현이 편찬과정에서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넣은 이야기로도 해석해볼 만하다. 조선시대는 고려시대 말기에 대두한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유교가 고려의 불교를 밀어내고 독보적인 이념으로서 자리잡은 시대였으며, 따라서 불교는 양반 지배층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고려시대에 귀족세력과 결탁하면서 하층민의 수탈자로 타락했던 불교는 서민층에게도 마찬가지로 비판의 대상이었으며,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은 골계전집인 만큼 이러한 서민층의 성향이 편찬자들인 양반층의 사상과 맞아떨어지면서 불교에 대한 웃음은 날카로운 풍자의 형태가 자주 드러나게 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특히 상좌는 스승과 같은 타락에 물들어있지 않은 인물로 자기 잇속을 차린다는 것도 사실은 부모를 위한 효행이어서 일정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는 소위 한국문학에서의 방자(房子)형 인물, 즉 서사구조 속에서 웃음의 대상보다 낮거나 천박한 위치에 있으면서 사실은 도덕적으로 더 우위에 있거나 정당한 위치를 갖고 공격 및 비판의 주체가 되는 인물의 한 유형이다. 만약 상좌의 행동이 어찌 되었건 스승을 기만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해도, 상좌 자신 또한 불법에 몸을 담고 있으므로 역시 불교에 대한 풍자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좌와 비슷한 유형의 인물들은 후에 판소리계 소설의 「배비장전」 같은 작품들에서도 등장하면서 그 대를 꾸준히 이어 풍자적 수법의 매개 역할을 한다.
골계전류는 비록 소설의 범주에 들 수는 없더라도, 그 원류가 되는 설화에 속하며 특히 고전소설에 나타나는 해학과 풍자의 전범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골계의 수법은 후에 담당층이 바뀌고 설화로부터 소설시대의 전환을 겪었음에도 반복되고 더 발전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전하는 골계전들을 수집한 계층은 역시 양반 담당층이었기에 풍자, 특히 양반계층을 대상으로 한 풍자의 수법에서는 어느 정도 부족한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3) 판소리계 이전의 소설들에 나타난 해학과 풍자

판소리계 소설 이전의 소설들, 즉 서민층이 담당층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본격화되기 이전의 시기의 작품군으로 눈을 돌려보자. 앞선 골계전이 서민층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이 시기의 소설 작품군들 또한 서민층의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본적으로 그 담당층은 상대적으로 기득권층에 더 가까웠던 만큼 분명한 간극이 존재한다. 심지어 이 시기의 작품들은 전체적인 조망에서는 오히려 소설 이전의 단계인 골계전문학보다도 해학이나 풍자가 전체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연암(燕巖) 박지원의 한문단편소설들을 비롯한 몇몇 작품들에서는 분명한 해학과 풍자가 드러나고 있고, 특히 박지원의 작품들은 오히려 판소리계 소설과 대등하거나 더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 또한 박지원 자신이 당대 현실에 강한 불만을 가진 비판자이자 개혁가였다는 점에서, 담당층의 변화야말로 고전소설의 해학과 풍자의 변화에 주축이 되는 요인임을 입증해 준다.


소설의 등장에서부터 박지원의 한문단편소설 및 판소리계 소설에 이르기까지, 사실 해학과 풍자의 수법만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은 많지 않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불교적 상상력에서 파생된 작품들 가운데 비교적 후기에 속하는 「당태종전」의 경우 생전에는 위대한 황제였던 당태종이 죽어서는 살아있던 중에 남에게 적선한 것이 없어 겨우 짚 한 단의 재물을 가지고 살게 되어, 저승에서 봉변을 당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곽정식, 고소설에 나타난 명부의 형상과 작중 역할
. 특히 그는 생전에는 미천하고 가난하였으나 선행을 많이 쌓아 저승에서는 많은 재물을 쌓은 장삼과 대비되면서 풍자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한편 박지원이 살았던 시기와 비슷한, 혹은 그 전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사횡입황천기」는 이른바 세태소설의 한 부류로서, 저승에 잘못 잡혀간 세 선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선비들을 ‘죽지는 않았으나 염라지부에 잡혀 들어갈 경과가 있다고 하여’ 데리고 온다던가, 이 때문에 염왕이 옥황상제의 벌을 받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 이를 기회로 세 선비가 생떼를 쓰며 자기 소원을 들어달라는 말에 염왕이 허락하는 모습 등이 희화적으로 그려져 있어 해학의 수법이 드러났다고 할 만하다. 염라부라는 절대적인 권위를 실수도 하고 인간의 소망에 따라 판결이 바뀔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 선비의 소원 중에 근심걱정없이 풍족한 재산으로 잘 살게 해달라는 소원에 염왕이 벌컥 화를 내면서 골계적인 어조의 대사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여, 단순한 희화화가 아니라 세상살이의 가멸참을 풍자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다음으로 박지원의 작품들을 보자.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을 일으키게 한 주역으로 잘 알려진 박지원은 중세적 이념을 수호하고자 하는 집권층과 그것을 해체하고 근대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비판적 지식인들 및 서민층의 대결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 박지원은 몇몇 한계도 지적되지만 이러한 시기에 반중세적 입장을 취하고 개혁을 꾀하는 실학파의 선구자로서 이른바 ‘실학하는 선비’를 내세워 사회개혁을 실천하고자 했다. 당대 사회의 무능과 위선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타개책을 내놓았던 그의 사상은 박지원이 쓴 한문단편소설들을 중심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해학 및 풍자와 관련해서는 「양반전(兩班傳)」과 「호질(虎叱)」, 「허생전(許生傳)」을 꼽을 만하다. 「양반전」은 양반을 사고 파는 행태를 중심으로, 「호질」은 양반이라 잘난 체하는 이가 사실은 간통을 저지르는 등 금수만도 못한 짓을 저지르는 행태를 중심으로 하여 양반 계층의 무능과 허위를 해학과 풍자의 수법으로 풀어낸 작품이며, 「허생전」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경제․정치 분야에 걸친 문제점들을 웃음과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장에서는 「허생전」 한 작품만을 중심으로 다루도록 하겠는데, 사실 「양반전」과 「호질」에서의 표현이 좀 더 골계스럽다 하겠으나, 대신 「허생전」은 다른 두 작품과 비교할 때 저자인 박지원의 사상을 작중에서 드러나는 해학과 풍자의 수법에 보다 두드러지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생전」은 앞서 언급한 ‘실학하는 선비’의 표상인 허생을 내세워 당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공격한 작품이다. 그 공격의 방향은 주로 사회․경제․정치적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김일렬은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해학과 풍자를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구조에 맞추어 해석한 바 있다.
. 그에 따르면 먼저 작품을 도적들과 함께 살던 섬에서 돌아와 변씨에게 돈을 갚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고, 전반부에서는 글을 읽다가 아내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구박받는 장면에서부터 변씨에게 돈을 빌리러 갈 때의 거렁뱅이에 준하는 행색, 상거래의 허점을 이용하여 막대한 돈을 번 다음 도적들과 대화를 나누고 교화시키는 장면 등에서 웃음을 유발하지만 상대를 동정하고 따뜻하게 포용하는 해학의 표현미가, 후반부에서는 실존인물인 어영대장 이완이 허생을 등용하고자 찾아왔을 때 그와 대화한 끝에 크게 노해 내쫓는 장면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상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공격하는 풍자의 표현미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구체적인 분석을 보자.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글은 읽어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결국 아내의 등쌀에 밀려 글공부를 계속하는 것을 포기한 허생은 이 직후에 변씨 부자에게 장사 밑천을 위해 돈을 빌리러 가게 된다. 부부싸움, 그것도 아내의 거의 일방적인 우위에서 이루어지는 과정과, 아내의 추궁에 대한 허생의 변명이 ‘어찌하겠소’에 그친다는 점에서 골계미를 표출한다. 가난에 시달리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어떤 비판이나 공격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동정의 대상이 되는 해학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녔다. 전체 작품에서 드러나는 허생의 모습을 고려할 때에는 실제로는 단지 아내만이 동정어린 웃음을 유발하는 대상이 되고 ‘실학하는 선비’인 허생은 큰 뜻을 품고 공부를 계속한 것이므로 사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으며, 또 이들의 가난 자체가 당대 사회가 지닌 모순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므로 그 본질을 따지면 오히려 풍자와 연결된다고도 할 수 있으나, 일단 겉으로 두드러지는 모습은 명백히 포용적인 웃음인 해학에 해당한다. 또한 이는 기존의 골계전문학에서 보여준 부부의 대화와도 연결되어, 그 영향력이 후대에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지원 자신이 골계전류를 편찬한 사대부 계층에 속한다는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양상은 작중의 후반부에 가면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다음의 장면을 보자.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이 대장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대장이오." 
<중략>
이 대장은 힘없이 말했다.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뽑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喪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번오기(樊於期)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소매 넓은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이 대장은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높은 벼슬에 있는 이와 은거한 선비의 만남이건만, 처음부터 허생이 높은 위치에서 훈계하는 입장에 있는 것부터가 풍자의 대상이다. 박지원이 생각한 ‘실학하는 선비’가 사실은 집권층보다도 훨씬 높은 위치에 있음을, 혹은 집권층 전체가 사실은 일개 선비보다도 못한 이들임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허생이 방책을 내놓을 때마다 이완은 실행하기 어렵다고 하고, 이러한 태도를 비웃고 핀잔을 주던 허생은 끝내 허례허식을 지키려고 실리를 취할 줄 모르는 양반층의 행태에 크게 노해 이완을 크게 꾸짖으며 칼을 찾아 찌르려 해 도망치게 만든다. 당대의 세도가였던 이완이 허생 같은 일개 선비에게 쫓겨 도망치는, 집권층의 무능과 허위가 가장 크게 폭로되는 극적인 풍자의 장면이다. 더욱이 허생이 마지막에 양반층의 허례허식을 오랑캐의 습속에 비유해 야단치는 것은 기존 사대부들이 그토록 중시했던 가치들이 기실은 허망하고 천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골계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를 통해 볼 때, 「허생전」의 전반부에 나타난 해학은 풍자를 준비하는 한 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으며, 후반부, 특히 종결부에 와서 이완을 쫓아내는, 즉 풍자를 통해 대상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함으로써 한 편의 풍자문학으로서 작품을 완결시키게 된다.
이처럼 「허생전」을 비롯한 박지원의 한문단편소설들에서는 이전의 골계전문학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거나, 혹은 더욱 강화된 풍자문학으로서의 특징이 드러난다. 그것은 박지원이라는 한 개인이 지닌 강렬한 사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식의 반영이며, 따라서 이전의 골계전문학에서 보여준 골계를 계승하면서도 풍자적인 방향에서 그것을 더욱 극대화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4) 판소리계 소설들에 나타난 해학과 풍자

기본적으로 소설이란 문자화된 기록문학의 형태이므로, 문맹의 단계에 있었던 서민층의 직접적인 참여가 가능한 갈래는 아니었다. 그러나 판소리계 소설들은 판소리라는 서민연행예술(물론 양반층의 참여도 이루어졌으므로, 이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다)에 기반하는 만큼, 서민층의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하였다. 따라서 판소리계 소설들은 그 담당층을, 혹은 그에 준하는 역할을 당대 현실과 체제에 강한 불만을 가진 서민들이 맡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는 판소리계 소설들에서 현실과의 갈등을 기초로 하는 해학과 풍자가 강화되고, 특히 이전 시기의 골계전문학에 비해 풍자성이 두드러지게 된 결과를 낳았다. 다만 여기서 풍자성이 두드러졌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전 시기와 비교했을 때의 경우이며, 판소리계 소설 자체 내에서는 양자가 어느 한 면이 우위에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이 장에서는 판소리계 소설 가운데 「흥부전」과 「배비장전」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흥부전」을 보면, 잘 알려진 것처럼 가난하지만 심성은 착한 흥부와 부자이고 욕심이 많은 형 놀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작품이 전개된다. 작품의 결말은 흥부가 복을 받고 놀부는 벌을 받으나 흥부에게 도움을 받고 개심하는 권선징악의 형태이나,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는 오히려 착하기만 한 흥부보다는 악인이지만 뛰어난 처세술로 부를 쌓은 놀부의 행각이 두드러지는 등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는 면모가 있다.


. 또한 작품 여러 군데에서 당대 사회상을 반영하고 풍자하기도 한 대목들이 눈에 띈다.
악역으로서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 끝내 망하고 마는 놀부의 행각은 대단히 익살스럽게 표현된다. 그는 분명히 악인이고, 행동 또한 그에 걸맞는 것이지만 작중에서는 그것을 밉살스럽거나 적개심을 느끼게끔 하기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놀부 심사를 볼작시면, 초상난데 춤추기, 불붙는데 부채질하기, 해산한데 개닭 잡기, 우는 아이 볼기치기, 갓난아기 똥 먹이기, 무죄한 놈 뺨치기, 빗값에 계집 뺏기, 늙은 영감 덜미 잡기, 아해 밴 계집 배차기, 우물밑에 똥누기, 오려논에 물 터놓기, 자친 밥에 돌퍼붓기, 패논 곡식 이삭 자르기, 논두렁에 구멍뚫기, 호박에 말뚝박기, 곱사등이 엎어놓고 발꿈치로 탕탕치기....

심술 사나운 놀부의 성격을 묘사한 이 대목은 그러나 그 심술궂은 행동을 반복하는 수법으로 독자에게 적개심보다는 먼저 웃게 만들며, 특히 함께 서술되는 흥부의 선행 대목과 대조를 이루면서 극단적인 과장을 보여 그 웃음을 더한다. 이는 사실은 마땅히 적개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인물과 행동을 희화화함으로써 부드럽게 포용하는 해학의 수법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후에도 머슴에게 새경을 주지 않는다거나 동생의 미첩과 재산을 탐내고,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려 막대한 재산을 얻으려는 등 계속 이어지는 놀부의 밉살스런 행동은 그 묘사에서 여전히 해학이 스며 있어 마땅히 느껴야 할 적개심을 잊게 한다. 한편으로 여기에서 사용된 반복과 점증의 수법은 「흥부전」 곳곳에서 발견되는 골계의 표출 수법이다. 
흥부의 경우에는 놀부와 반대의 의미에서 해학스럽다. 전 재산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린 후 많은 식구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흥부의 삶은 사실은 지독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중에서의 묘사는 그것이 비참함으로 남게끔 하지 않는다. 놀부 아내에게 밥을 달라고 찾아갔다가 뺨을 맞는 다음의 장면을 보자. 

형수나 보고 가려고 엉금엉금 기어 부엌 근처로 가니 놀부 아내가 마침 밥을 푸는지라 흥부가 매맞은 것은 고사하고 여러 날 굶은 창자에 밥냄새 맡더니 오장이 뒤집히어
“애고 형수씨! 밥 한술만 주오, 이 동생 좀 살려주오.”
하며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니 이년 또한 몹쓸 년이라 와락 돌아서며 하는 말이
“남녀가 유별한데 어데를 들어오노.”
하며 밥 푸는 주걱으로 흥부의 마른 뺨을 지끈 때리니 흥부가 그 뺨 한 번을 맞은즉 두 눈에 불이 화끈하여 어찔하다가 뺨을 슬며시 만져보니 밥이 볼따귀에 붙었는지라 일변 입으로 훔쳐 넣으며 하는 말이
“아주머님은 뺨을 쳐도 먹여가며 치시니 감사한 말을 어찌 다 하오리까는 수고스럽지마는 이뺨마저 쳐주시오. 밥 좀 많이 붙은 주걱으로. 그 밥 갖다가 아이들 구경이나 시키겠소.” 
이 몹쓸 년이 밥주걱을 놓고 부지깽이로 흥부를 흠씬 때려놓으니...

뺨을 맞는 것이 오히려 밥알 몇 풀이라도 건질 수 있어 고맙다는, 현실에서는 지독히 비참한 상황이지만 작중에서는 철저히 희화화되어 독자에게 웃음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밥주걱으로 맞는 것이 거꾸로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길이 된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 이 정도의 굶주림도 면할 수 없게 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우회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풍자의 맥락에 닿아 있다고 하겠으나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위의 장면과 비슷한 것으로 다음의 장면이 있다.

이때 본읍 김좌수가 흥부를 불러 하는 말이, 
"돈 삼십냥을 줄 것이니 내 대신으로 감영에 가 매를 맞고 오라." 
하니, 흥부 생각하되, 삼십냥을 받아 열냥어치 양식 팔고, 닷냥어치 반찬 사고, 닷냥어치 나무 사고 열냥이 남거든 매 맞고 와서 몸조섭을 하리라 하고 감영으로 가려 할 제, 흥부 아내 하는 말이, 
"가지 마오. 부모 혈육을 가지고 매삯이란 말이 우엔 말이요." 
하고, 아무리 만류하되 종시 듣지 아니하고 감영으로 내려가더니, 아니 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마침 나라에서 사가 내려 죄인을 방송하시니, 흥부 매품도 못 팔고 그저 온다. 흥부아내 내달아 하는 말이, 
"매를 맞고 왔읍나." "아니 맞고 왔읍네." "애고 좋쇠. 부모유체로 매품이 무슨일고." 
흥부 울며 하는 말이, 
"애고애고 설운지고, 매품팔아 여차여차하자 하였더니 이를 어찌하잔 말고."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찾아가서 매를 맞는 상황이다. 앞선 대목처럼 비극을 희화화시켜 포용하는 해학성 이외에도,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엄중하게 집행되어야 할 형벌이 금력으로 무마되는 사회상을 풍자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결국 매를 맞는 것은 무산되지만, 매를 맞게 되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맞지 못해서 운다는 역설 속에서 이 대목은 일단락된다.
이처럼 작중에서 흥부는 동정어린 웃음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풍자의 대상으로서 비판과 공격을 받기도 한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키워 열매가 열린 박을 차례로 열면서 부자가 되는 중에, 예쁜 첩을 얻는 다음의 대목을 보자.

"그러하면 어찌하여 왔소." 
"강남 황제가 날더러 그대의 첩이 되라 하시기에 왔으니 귀히 보소서." 
하니, 흥부는 좋아하되 흥부 아내 내색하여 하는 말이, 
"애고 저 꼴을 뉘가 볼꼬. 내 언제부터 켜지 말자 하였지." 
“염려말게. 조강지처는 불하당(不下堂)이라니 내가 자네를 괄세할 것인가.”

지난날 무능력했던 흥부가 나름대로 위세를 부려보려는 마지막의 대사가 풍자어린 웃음을 자아낸다.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은 하지만 축첩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흥부의 아내는 결국 피해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 동정의 대상이었던 흥부는 적어도 이 대목에서만큼은 가부장제 사회의 대변자로서 공격을 받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흥부전」을 관통하는 웃음의 수법은 풍자보다는 해학 쪽에 기울어져 있다. 선역인 흥부는 물론이요, 악역인 놀부도 그 행동이 시종일관 포용적인 웃음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데다 마지막에는 개심하여 함께 행복하게 사는 길이 열려 있다. 이와는 반대로 다음에 다룰 「배비장전」은 그 웃음의 성격이 해학보다는 풍자가 훨씬 두드러지며, 그것은 주로 양반 계층의 허위를 공격의 목표로 삼고 있다.
「배비장전」은 부임지인 제주도에서 떠나는 정비장이 애랑에게 온갖 것을 빼앗기는 장면과, 새로 부임해 온 배비장이 애랑과 방자에게 봉변을 당하는 장면의 2부작의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이동근․황형식, 위 책, p. 170.
. 정비장은 애랑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거꾸로 이용당하여 가진 것을 전부 뺏기고 나체가 되어 버리지만,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체면을 지키려고 애를 쓴다. 알몸뚱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위세를 부리며 방자를 불러서 그 치부를 가리는 여유와, 옷을 입지 않아서 엄습하는 추위를 바다 탓으로 돌린다. 그런 우스운 몰골을 보면서 배비장은 방자에게 자신은 만고절색의 계집이라도 눈 한 번 까닥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위세를 부린다. 이에 방자는 배비장에게 그가 애랑에게 넘어갈 것인지 아니면 넘어가지 않을 것인지를 놓고 내기를 걸면서 두 번째의 서사가 시작된다.
자세한 전개과정은 생략하고, 결국 애랑과 방자는 서로 짜고 계획을 실행하여 배비장을 함정에 빠트린다. 유부녀로 분장한 애랑을 겁탈하려다가 남편으로 분장한 방자에게 몰린 배비장은 거문고 자루에 숨었다가 인간 거문고가 되는 수난을 당한다.

“응 거문고냐! 그러면 좀 쳐 보세.”
하며 대꼭지로 배부른 통을 탁 치니 배비장이 질색하여, 아프기 측량없으되 참 거문고인 체하고 자루 속에서
“둥덩둥덩.”
“그 거문고 소리 장히 웅장하고 좋다. 대현을 쳤으니 소현을 또 쳐 보리라.”
하고 냅다 코를 탁 치니
“두덩지덩.”

남편으로 분장한 방자가 짐짓 진짜 거문고로 아는 척 하고 배비장을 두들기자, 배비장도 그에 장단을 맞춰 거문고 흉내를 내는 장면이다. 절대로 여색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자신하던 양반관료의 위엄이 부녀자를 겁탈하려 뛰어드는 데 이어서 허망하게 무너지는 순간이며, 그로써 풍자가 극대화된 웃음을 유발한다.
잠시 방자가 밖에 나간 사이 궤짝에 숨은 배비장은 그러나 이를 짊어지고 바다에 버리고 오겠다는 방자의 말을 듣고, 이제 죽었구나 하는 심정을 품은 채 궤짝채로 옮겨진다. 그러나 꼼짝없이 바다에 빠질 것이라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그가 옮겨진 것은 방자와 한통속이었던 사또와 사령들이 모여 있는 동헌이었다.

  사공이 쇠를 덜커덕 열어놓자, 배비장은 알몸으로 쑥 나와서 두 눈을 잔뜩 감고 이를 악물고 와락 두 손을 짚으면서 허우적거렸다. 
  한참을 이 모양으로 헤엄쳐 가다가 동헌 댓돌에다가 대가리를 부딪치니 배비장은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나서 두 눈을 번쩍 떴다. 자세히 살펴보니 동헌에 사또가 앉고 전후 좌우에 관속들과 기생, 노비들이 늘어서서 웃음을 참느라고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사또가 웃으면서 물었다. 
  "자네, 그 꼴이 웬일인고?" 
  배비장은 어이가 없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배비장전」의 풍자적 특성은 무엇보다도 봉건사회 말기의 민중 속에서 싹트기 시작한 근대적 지향의 시점에서, 양반관료들의 추악한 허위를 밝히고 조소한 데 있다 이동근․황형식, 위 책, p. 172.
. 주인공인 배비장과, 전반부의 정비장은 한갓 기녀에 불과한 애랑과 노비인 방자에게 철저히 농락당하고 수모를 겪으면서 그들 자신의 위선적 특성을 적나라하게 밝히게 된다. 더욱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한갓 사공에까지 핀잔을 들으면서 그 위신이 끝갈 데 없이 떨어진다.

“이 배가 어디로 가는 배여?”
“물로 가는 배여.”
원래 비장이 사공더러 위대하기는 초라하고 해라 하자니 제 모양 보고 받을는지 몰라 어중벙벙이 말을 내놓다가 사공의 대답이 한층 더 올라가는 것을 보고 한숨을 휘 쉬며,
“허! 내가 춘몽을 못 깨고 또 실수를 하였구나.”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보다 훨씬 못한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듯 자꾸 수모와 면박을 당하는 것으로 기실은 양반 계층이 지위만 높았지 다른 계층들보다 훨씬 못한 이들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역전의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웃음을 자아내며, 또한 그것은 다분히 풍자적이다. 거기에 문체 자체의 골계스러움과,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거들먹거리며 체면을 차리려 드는 양반들의 거동이 더해져 더욱 큰 풍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배비장전」은 앞서 살핀 「흥부전」과 비교할 때 풍자적 성격이 보다 강한 작품이라 하겠다.
판소리계 소설에서는 기존의 골계전문학과 소설들에서 보여준 해학과 풍자의 수법들을 계승하여 더욱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것은 당대 사회에 큰 불만이 없는 기득권층이나 사회적 불만을 갖고는 있지만 일개 개인 혹은 소수집단에 불과한 박지원 같은 이들이 아닌, 다수의 서민층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참여로 가능해진 현상이었다. 「흥부전」이나 「배비장전」에서 보여준 웃음의 수법들은 수세기 전의 골계전문학과 비교할 때 그 계승의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한편으로는 풍자의 수법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박지원의 작품들과 비교해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딱히 풍자의 수법이 더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일반화’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것은 판소리계 소설에서는 분명히 풍자의 수법이 드러나고는 있으나, 그것이 극단적인 공격이나 비판으로 치닫는 대신 마지막에는 풍자의 대상까지도 포용하거나 혹은 파멸에 이르도록 몰아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흥부전」의 놀부는 결국에는 개과천선하였고, 「배비장전」의 정비장이나 배비장도 수모를 겪긴 했지만 끝내 파멸에 이르지는 않고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그 결말을 맞고 있다. 이는 앞서 살핀 박지원의 작품들이나 다른 고전소설들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고전소설에 나타난 해학과 풍자 중에서는 역시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풍자보다는 상대를 포용하고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해학 쪽이 보다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더욱이 사회의 부조리와 악덕 혹은 그에 핍박받는 비참한 상황을 해학과 풍자를 통해 그려낼 때에도, 그것은 지극히 희화화되는 형태로 나아간다. 앞선 「흥부전」에서의 흥부의 궁핍한 삶이나 놀부의 욕심 등을 그려낼 때의 수법이 그것이다. 그 해학을 중시하고 현실의 날카로움을 평안한 방향으로 희화화시키는 전통은 심지어 기존 사회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담당층이 참여하여 해학과 풍자의 칼날을 휘두를 때에도 여전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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