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다윈, 그리고 홀로코스트: 나치는 진화론을 어떻게 왜곡했나
Hitler, Darwin and the Holocaust: How the Nazis distorted the theory of evolution
“일반적으로 성인은 노인보다 큰 뇌를, 남자는 여자보다 큰 뇌를, 뛰어난 인간은 평범한 인간보다 큰 뇌를, 그리고 우등한 민족은 열등한 민족보다 큰 뇌를 가지고 있다” – 인류학자 폴 브로카(1861)
오늘날 “인종주의”의 의미는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자신만큼 지적이거나 정신적이지 못하다고 여기면서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890년부터 1960년 사이, 특히 1930년대와 40년대에는 이 단어가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 당시 유럽과 북미의 지식인들은 인종간의 지적, 정신적 차이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인종주의는 교육수준이 낮은 이들이나 사회적 부적응자들의 무식을 드러내는 정도로 여기지지만 히틀러의 시대에는 다수의 지도자와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개념이었습니다.
때로 인종주의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육체적 정신적 특징이라는, 곧 유전학의 관점에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곧, 다른 민족, 다른 국적, 그리고 특정 사회 계층이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르게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단지 아프리카 사람이나 아시아 사람만을 백인과 구별한 것이 아니라, 같은 백인 안에서도 스코틀랜드 사람, 스웨덴 사람, 그리스 사람, 폴란드 사람 등을 날 때부터 다른 특질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했습니다. 또한 각 사회의 하층민이 사회적 계층의 하단부를 유지하는 이유 역시 그들의 타고난 지적, 정신적 능력이 열등하기 때문으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역사를 볼 때 불평등은 인간의 조건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인이며 힘이 있는 자들은 언제나 그 힘을 남용해 왔습니다. 어떤 나라들은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고, 부유한 이들은 정치를 독점했으며,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공평한 대접을 받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서구의 인종주의는 사회적 엘리트와 강대국에게 새로운 위험한 성격을 부여했습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이, 약자를 처벌하는 이, 일반인을 학살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이론을 찾은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이것이 “자연의 법칙”을, 그리고 도덕을 알지 못하는 자연 그대로의 세계를 반영한다고 말함으로써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인종주의는 과학적 확실성이라는 압도적 권위를 동반했기에 지식인들 역시 이를 인정했습니다. 이 모든 결과는, 사람들에게 모든 인간은 태어난 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이 원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을 바꿀 수 없는 유전자의 포로라는 생각을 심었습니다. 어떠한 교육이나 정치적 압력도 민족이나 국민성을 바꿀 수 없으며, 한 집단의 특정 행동이 해로운 것이라면 그 집단은 사라져야 했습니다.
이 근대 인종주의의 지적 근거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중 특히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 영향을 끼친“과학적” 근거에 주목합니다. 인종주의에 대한 다윈의 영향을 강조하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다윈주의자들의 인종주의는 히틀러와 다른 홀로코스트의 주도자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 다윈은 후에 인종주의에 과학적 후광을 씌운 저명한 생물학자와 인류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윈주의는 전세계 어디보다도 독일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일차대전 이전 독일이 생물학 연구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며 또 독일인들의 특별히 낮았던 문맹률도 관련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윈주의자 인종주의는 여러 인종주의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습니다. 이는 다윈의 이론이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고 쉽게 설명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윈의 이론이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되자 모든 분야의 지식인들은 그 이론 속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교훈을 찾았고, 또 자신의 원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 역시 찾으려 했습니다. 소위 사회진화론은 여러 다양한 정치적 흐름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그 중 우익 사회진화론자 – 이들이 반드시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 들은 인종주의를 설파했고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을 정당화했으며 전쟁을 옹호했습니다.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지지자들이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럽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려 한 데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익 사회진화론자는 유럽과 북미의 지도층들, 특히 독일의 호전적이고 반민주적인 엘리트들에게 여러 편리하고 매력적인 개념들을 제공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은 아마 “투쟁(struggle)”이었을 겁니다. 이 단어는 모든 인간의 관계, 그리고 국가의 관계가 생존을 위한 무자비한 전투임을 암시합니다. 다윈이 발견한 자연의 법칙은 필연적으로 투쟁이라는 개념을 동반하며, 여기에 어떤 도덕적 의미도 가미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와 “너의 적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동물의 왕국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그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인간은 그저 특별히 영리한 동물에 불과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투쟁이라는 개념 위에서 극한 사회적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또 바꾸어야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자는 부자보다 그저 덜 적응했기에 가난한 것이었습니다. 가난한자에게 베푸는 자선은 사회적 부적응자를 사회속에서 계속 생존시킴으로써 사회의 유전자 풀을 낮은 지능과 정신으로 더럽히는 것이었고, 곧 인류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였습니다. 또 영원한 투쟁이라는 개념은 국가간의 반목을 정당화하고 전쟁을 미화했습니다. “우수한” 민족은 “열등한” 민족을 정복하고 이용하고 심지어 학살할 권리까지 부여받았습니다. 우수한 민족이 더 공격적으로 행동할수록 인류는 장기적으로 더 개선될 것이며 따라서 열등한 민족의 절멸은 슬퍼할 일이 아니라 축하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국가 관계에서 힘은 곧 정의였습니다. 승자는 바로 승리를 통해 자신의 민족이 더 생존에 적합한 민족임을, 따라서 승리할 자격이 있음을 보인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인종주의를 조장한 사회진화론이 가장 위험했던 것은 이들이 자신들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다윈의 저작 일부에서 영향을 받은 수많은 작가와 정치가들이 각가의 인종이나 국가가 초기 인류로부터 각각의 속도로 진화했으며 따라서 진화속도 역시 각각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거의 모든 유럽과 북미의 지식인들은 유럽의 백인을 그 진화 사다리의 최상층에 두었고, 아프리카인들을 가장 아래에 두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의 인종주의자 만화가들은 종종 흑인들을 유인원과 비슷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대중 과학 저술가들과 많은 생물학자, 인류학자들이 모든 민족과 국가에 따라 진화의 정도를 세심하게 나누었습니다. 백인들은 언제나 가장 위에 있었고, 백인 안에서도 수많은 단계를 두었습니다. 미국의 엘리트들 역시 미국으로 온 이민자 중 영국인, 독일인, 스칸디나비아인 등의 서구와 북구 유럽인을 조상으로 둔 이들이 가장 높은 지능과 직업윤리, 그리고 최고의 정신적 특성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폴란드, 그리스, 이탈리아, 러시아 유대인 등의 남유럽과 동유럽의 이민자들은 열등한 것으로 생각되어 졌고 국가의 “인종 상태(racial health)”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가상의 위협에 놀란 미국 의회는 1924년 발의한 이민법에서 이런 유럽의 “나쁜(wrong)”지역 출신의 이민자 수를 제한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의 초안에는 중국과 일본 등의 백인이 아닌 이들의 이민은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종주의적 사고는 1930년대 독일 국내 정치를 급진적으로 바꾸었고, 곧 이어 외교 정책 역시 운명적인 길로 인도합니다. 1차대전과의 결과인 평화조약은 독일인들의 반 슬라브 인종주의를 강화했고 사회진화론자들의 전쟁찬양은 이미 독일 정치지형에서 우익의 핵심주장이 되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혁명에 의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는 러시아와 유대인에 대한 인종적 적대감을 강화시켰습니다. 1차대전에 승리한 연합군이 폴란드를 독립시키면서 독일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동부 독일의 넓은 지역을 폴란드에 복속시킨 것도 문제였습니다. 어떤 독일 정부도 그들이 영토를 잃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는 우익 정치인들이 폴란드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참전용사 모임인 강철헬멧(Steel Helmet)은 공개적으로 폴란드와의 전쟁을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우익 민족주의자들의 모호한 주장인 독일민족의 늘어난 인구는 더 넓은 “삶의 공간(living space)”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1931년 민족주의자들의 회합에서 그들의 지도자 알프레드 후겐버그는 독일 민족은 “위선적 평화주의(hypocritical pacifism)”가 아닌 “적극적 자립(energetic self-help)”에 의해서만 “자유와 공간”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후겐버그는 독일도 아프리카의 식민지가 필요하며, 또한 새로운 땅을 위해 동쪽으로 “활발한 레이스”를 “과거의 독일의 경계를 넘어선, 오직 독일에 의해서만 가능한 새로운 동쪽 땅의 재구성”을 통해 펼칠 것을 주장했습니다. “적극적 자립”이란 다름 아닌 다윈주의로 미화된 전쟁의 또다른 표현입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서전 “나의 투쟁(My struggle, Mein Kampf)”에 이런 급진적 생각들에 자신의 생각을 더했습니다. 자신이 “유대적 넌센스”라고 이름 붙인 평화주의에 대한 긴 반박 끝에 그는 국제 관계에 대한 자신의 진화론적 관점을 설명합니다. “누구든 살고자 하는 이는 싸워야 하며, 이 영원한 투쟁의 세계 속에서 싸움을 거부하는 이는 살아갈 자격이 없다.” 그에게 전쟁에 대한 반대는 “경쟁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며 “인류의 진보를 위한 선결조건”인 “가장 우수한 민족의 승리를 방해하는”것이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독일은 독일인에게 너무 좁았습니다. 독일은 다른 민족의 “종 노릇”을 하느라 “지구에서 소멸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독일은 세계를 지배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다면 사라질 것이다”고 그는 썼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더 넓은 땅에 대한 욕망, 러시아인과 유대인의 열등함에 대한 확신을 자신의 외교정책에 반영했습니다. 러시아는 “멸망 직전”이었고 독일은 러시아에게 땅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열등한” 러시아는 오직 독일의 지배층의 지도를 통해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었으나 공산주의자 – 히틀러는 사실 유대인이 공산주의를 만들었으며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를 같이 취급했습니다 – 에 의해 독일적 요소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주인을 죽이는 미생물로, 곧 “영원한 기생충, 흡혈동물, 가장 널리 퍼진 세균”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러시아를 지배하는 공산주의자들은 유대인에 의해 조종되고 있으며, 안정적인 정부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고 독일이 쉽게 소련(Soviet Union)을 정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히틀러의 마음속에서 독일이 소련을 정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의 땅과 자원이 독일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조종하는 공산주의를 제거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세계 정복 계획은 본능적이며” 따라서 이 위험은 “항상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유대인은 다른 국가에 침투해 그들을 속에서부터 썩게 만드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유대인은 거짓말, 중상, 오염, 분열을 이용해 자신의 적이 피의 절멸을 겪게 만든다”고 썼습니다. 그는 또 “유대인”이 수세기에 걸쳐 다른 민족들에게 몰래 해를 끼침으로써 세계를 정복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에게 러시아 공산혁명은 그런 노력의 한 결과일 뿐이었습니다. 이때문에 히틀러는 최대 2,500만명의 사망으로 이어진 소련에 대한 집단학살을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완전한 절멸 역시 지시했습니다. 독일 군대는 그의 지시를 능동적으로 따랐습니다.
비록 히틀러의 유대인에 대한 이론을 완전히 받아들인 장교들의 수는 거의 없다 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수가 비유대주의와 슬라브족에 대한 인종주의, 그리고 반공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1941년 소련침공과 수백만명의 포로학살 및 무자비한 약탈을 반대한 장교는 거의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해 3월 침략군의 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치는 “모든 병력은 이 투쟁이 민족과 민족사이의 것이며, 따라서 잔인함(harshness)이 반드시 동반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한다”고 연설했습니다. 5월, 탱크 부대를 이끄는 에리히 회프너는 자신의 부대에게 전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러시아와의 이 전쟁은 실로 독일 민족의 생존을 위한 전쟁이다. 독일과 슬라브족의 오랜 투쟁의 연속이며 유럽 문명을 모스크바-아시아 문명과 유대 공산주의의 침략으로 부터 방어하는 것이다.” 그는 “적을 완벽하고 무자비하게 전멸시키겠다는 강철의 의지”를 통해 “전대미문의 무자비함”을 보여야한다고 말을 이었습니다.
6월,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하고 “유대-공산주의” 음모론을 격파하는 동안 “병영 편지(Bulletin fo rthe Troops)”는 이들이 사용할 잔인한 방법들을 정당화했습니다. 한 기사는 소련군의 공산당 장교들 중 유대인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저자는 유대인을 동물적이라고 묘사하며 “이것은 동물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옥을 현실화한 인간이며 모든 고상한 인간성에 대한 광신적 증오를 인격화한 것이다. 이는 고상한 혈통에 대한 아-인간(sub-human)의 반란이다.”
히틀러가 소련의 유대인만이 아니라 유럽의 모든 유대인을 학살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는 독일 시민 엘리트들이 독일군을 도와 자신의 계획을 수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수만명의 공무원, 전문가, 기업가 그리고 몇몇 학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홀로코스트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 중 다수는 나치가 아니었지만 학살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 아니 참아낼 수 있을 정도 만큼의 인종주의, 반 유대주의, 그리고 광신적 반공주의에 동의했습니다. 그들의 참여를 쉽게 만들어 준 것은 그들이 실제 살인에 손을 더럽힐 것을 요구받은 것이 아니라 그저 “책상뒤에 숨어서” 학살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희생자들은 폴란드와 소련으로 보내져 그들의 시야 바깥에서 죽어갔고, 따라서 이들은 자신이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며, 적어도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5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나치와 독일 지배층에 속하지 않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총살부대로 동원되었습니다. 이들은 매우 가까이에서 피범벅이 된 현장을 지켜보았습니다. 독일의 관료들과 다르게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양심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부인과 아이를 가진 남자였습니다. 여성과 아이를 포함한 무방비의 시민을 학살할 것을 요구받았을 때, 그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In general, the brain is larger in mature adults than in the elderly, in men than in women, in eminent men than in men of mediocre talent, in superior races than in inferior races." —Anthropologist Paul Broca in 1861
Today the word “racism” means dislike for people whose skin is colored differently from ours, usually paired with the suspicion that they are not as intelligent or morally upright as we are. Yet during the years between about 1890 and 1960, and especially in the 1930s and 1940s, racism meant a great deal more. During those years most educated people in Europe and North America believed that racial differences in intelligence and morality were proven scientific fact. Today racism is seen as the kneejerk reflex of the uneducated and socially marginal, of “losers.” In Hitler’s day it was instead a conviction shared by most of society’s leaders, and by millions of people who ranked below them.
Sometimes, but hardly always, racist belief flowed from some understanding of genetics, of the way that people can inherit physical and mental traits from their parents. Racism usually contained the notion that different races, different nationalities, and also specific classes of society, were born to behave in certain ways. Not only were people of African or Asian descent assumed to naturally act differently from white people, but even different white nationalities—Scotch, Swedes, Greeks, or Poles—were described as having different inborn traits. The poorer classes of every society were also said to have been born with inferior moral and intellectual qualities that kept them at the bottom of the social ladder.
Throughout history and also today, inequality has marked the human condition and the powerful have abused their power. Some countries are militarily stronger than others, the wealthy often monopolize the political process, and infants enter the world with drastically unequal life chances. The Western racism of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gave the actions of social elites and mighty nations some new and dangerous qualities. Men who started wars, persecuted minorities, or murdered civilians gained a new confidence in the rightness of their actions. Their deeds, no matter how violent, now escaped moral condemnation, because their actions supposedly reflected “the laws of nature,” and the natural world, the animal kingdom, knows no morality. Because the new racism enjoyed the tremendous prestige of scientific certainty, it was intellectually respectable. Finally, most human beings were now thought to be prisoners of their heredity, born to act the way they did, unable to change their own behavior even if they wanted to. No amount of education or political pressure could improve a race or nationality; if the behavior of a particular group was considered harmful, its members might therefore have to be eliminated.
Modern racism had several different intellectual sources, and only with difficulty could one say which of these was most important. I will focus here on the “scientific” strand of racism, which drew its inspiration from Charles Darwin’s theory of evolution through natural selection. Several factors dictate this emphasis on Darwinian racism. First, Darwinist racism explicitly motivated Hitler and many other leading perpetrators of the Holocaust. Second, Darwin inspired the researchers, most notably in biology and anthropology, who gave racism its aura of scientific certainty. Third, Darwinian thought may well have been more popular in Germany than anywhere else during these years, in part because Germany was the world’s leading center of biological research before World War I and the Germans were exceptionally literate. Finally, Darwinist racism was the brand of racism most easily understood by the widest number of people, in part because Darwin’s theory was astonishingly simple and easy to explain.
As Darwin’s theory gained widespread acceptance, thinkers of every stripe began to find lessons in it for understanding the politics and society of their time, using Darwinian thought to support their own agendas. This so-called Social Darwinism ran in many different political directions. The right-wing branch of Social Darwinism—which was not necessarily the most popular strand of it—promoted racism, justified social and political inequality, and glorified war. It also inspired Adolf Hitler and his ardent supporters to launch a world war and exterminate the Jews of Europe.
Right-wing Social Darwinism produced several ideas that were attractive and convenient to the ruling classes of Europe and North America, and especially to Germany’s warlike and antidemocratic elites. The most important idea may have been “struggle,” the notion that all relations between individuals and between nations were defined by a merciless battle for survival. Struggle followed inevitably from the laws of nature as discovered by Darwin, and therefore had no moral significance. The Christian injunctions to “love your neighbor” and “love your enemies” had no place in the animal kingdom; neither should they control the behavior of human beings, who were not made in the image of God, but rather counted as nothing more than an especially clever type of animal.
From these assumptions about struggle followed the argument that extreme social inequality was natural and permanent. The poor were poor because they were less fit than the rich. Charity for the poor blocked humanity from evolving to a higher plane, because it kept unfit members of society alive, allowing them to reproduce and pollute the gene pool with their inferior intelligence and moral weaknesses. The belief in permanent struggle also supported a bias toward violence between nations, a glorification of warfare. “Superior” peoples had every right to conquer, exploit, and even exterminate “inferior” ones. If such aggression let superior peoples expand and become more numerous, the entire human race would improve in the long run; the extinction of lesser races was a cause for celebration rather than pity. In international relations, might made right: by winning a war, the victor showed that he deserved his victory, because his people were more fit to survive than were the losers.
This brand of Social Darwinism fostered a racism that was all the more dangerous because it claimed a basis in scientific fact. Partly inspired by Darwin’s own writings, countless writers and politicians argued that each human population, each race or nation, had evolved from the first humans at its own pace, so that some had progressed further than others. Probably almost all educated people in Europe and North America ranked white people of European descent at the top of the evolutionary ladder, with those of African descent on the bottom rung. Perhaps for this reason, racist caricatures of the time typically represented black people with apelike features. The writers of popularized science, and many biologists and anthropologists, carefully ranked races and nationalities from lowest to highest in value, whites always at the top, and among white people in numerous gradations. American elites generally agreed that among people of European descent, those who had e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from Northern and Western Europe— English, Germans, Scandinavians, and others—were born with the highest intelligence, the strongest work ethic, and the best of other moral qualities. In contrast, immigrants from Southern and Eastern Europe—Poles, Greeks, Italians, Russian Jews, and so on—were said to be markedly inferior, and indeed a potential threat to the country’s “racial health.” Alarmed by this imagined threat, the U.S. Congress enacted an immigration law in 1924 that closed America’s borders to all but a limited number of immigrants from the “wrong” parts of Europe. Earlier laws had almost completely eliminated immigration from China and Japan, whose people, not even being white, were wholly unwanted.
Just as racist thinking radicalized German domestic policies in the 1930s, so, too, did it shape foreign policy in fateful ways. World War I and the ensuing peace settlement had further intensified the anti-Slavic racism and Social Darwinist glorification of war already established on the right wing of German politics. The terror of communism, following the Russian revolution in 1917, worsened racist hostility toward Russians and Jews. When the victorious Allies recreated an independent Poland, they awarded large regions of eastern Germany to the new Polish state, including areas with substantial German populations. No German government accepted the loss of these territories, and for many on the political Right, it was an article of faith that Poland had to disappear altogether. Leaders of the Steel Helmet, a combat veterans’ organization, openly called for war against Poland. The Steel Helmet also echoed the right-wing Nationalist party in its vague demands for expanded “living space” for Germany’s alleged surplus population. At the Nationalists’ 1931 convention, their leader, Alfred Hugenberg, declared that the German people could gain “freedom and space” only through “energetic self-help,” and not through a “hypocritical pacifism.” Hugenberg demanded a colonial empire for Germany in Africa, as well as new land for settlement of Germany’s “vigorous race” in the East, contending that “the reconstruction of the East, far beyond Germany’s old borders, is only possible by Germany.” “Energetic self-help” was a euphemism for war, praised in unmistakably Darwinian terms.
Adolf Hitler tied the strands of this radicalized thinking together in his manifesto "Mein Kampf " ("My Struggle," 1925–1926). In a lengthy tirade against pacifism, which he termed “Jewish nonsense,” Hitler explained his Darwinian view of international relations: “Whoever would live, let him fight, and he who does not want to do battle in this world of eternal struggle, does not deserve life.” To oppose war was to ignore “the laws of race” and to “prevent the victory of the best race,” which was “the precondition of all human progress.” In Hitler’s view, Germany was too small and too lacking in “living space.” It faced the danger of “perishing from the Earth” or serving other nations as a “slave people.” Consequently, “Germany will either become a world power, or cease to exist altogether.”
Hitler fused his fear of communism, his demand for living space, and his beliefs about the racial inferiority of Russians and Jews into a comprehensive vision for Germany’s foreign policy. Germany could annex its needed living space from Russia, because that country was “ripe for collapse.” The “inferior” Russians had become a great power only because they had been led by a Germanic ruling class, but the communists—who in Hitler’s mind were necessarily Jews because he believed that Jews had instigated communism—had “almost completely exterminated” this Germanic element. “The Jew,” according to Hitler, “is the eternal parasite, a bloodsucker, which spreads ever more widely like a harmful bacillus,” a microbe that kills its host. The Jews who allegedly controlled communist Russia could therefore not maintain a stable government, and Germany could easily conquer the Soviet Union.
In Hitler’s mind, Germany needed to destroy the Soviet Union not only in order to gain the land and resources that would make Germany a great power, but also in order to eliminate the threat of Jewish-inspired communism. This threat was “constantly present,” because it was “an instinctive process, i.e., the Jewish people’s drive for world domination.” “The Jew,” wrote Hitler, “follows his path, the pathof infiltrating other nations and hollowing them out, and he fights with his usual weapons, with lies and slander, pollution and disintegration, escalating the struggle to the bloody extermination of his hated opponent.” Hitler insisted that “the Jew” had always, down through the centuries, sought world domination by undermining other peoples from within. Russian communism was only the latest page in this dark history. These beliefs led Hitler to launch a genocidal war against the Soviet Union in which as many as 25 million Soviet citizens died, and they also moved him to order the complete extermination of the Jewish people. The German military would actively support both policies.
Although few officers may have fully accepted Hitler’s theories about Jews, very many embraced anti-Semitism, racist beliefs about the Slavic peoples, and militant anticommunism. Almost none registered any dissent as the German Army rolled into the Soviet Union in June 1941, murdering POWs by the millions and ruthlessly confiscating the civilian food supply. Addressing the top commanders of the invasion army in March of that year, Field Marshal Walther von Brauchitsch emphasized that “the troops must understand that this struggle is being fought race against race, and that they must proceed with the necessary harshness.” In May 1941, the tank general Erich Hoepner explained the war’s meaning to his troops: “The war against Russia is an essential chapter in the German people’s battle for survival. It is the old struggle between the Germanic peoples and the Slavs, the defense of European culture against muscovite-Asiatic invasion, the defense against Jewish communism.” The war, Hoepner continued, had to be fought “with unheard-of hardness,” inspired by “the iron will to achieve complete, merciless annihilation of the enemy.”
As German soldiers stood poised to invade the Soviet Union and crush the “Jewish-communist” conspiracy in June 1941, the army’s"Bulletin for the Troops" justified the ruthless methods soon to be used against the enemy. The article focused especially on the communist party’s political officers in the Soviet army, a high percentage of whom were supposedly Jewish. “It would be an insult to the animals,” the author remarked, to describe these Jews as animalistic. “They are the embodiment of the infernal, the personification of insane hatred against all of noble humanity,” and “the rebellion of the sub-human against noble blood.”
When Hitler subsequently decided to murder not only the Jews of the Soviet Union, but the entire Jewish population of Europe, he found that German civilian elites were willing to join their military counterparts in carrying out his plan. Without the help of tens of thousands of civil servants, university-trained professionals, corporate managers, and some academics, the Holocaust would not have been possible. Many, if not most, of these elites were not Nazis, but they shared enough of the Nazis’ racism, anti-Semitism, and paranoid anticommunism to see the murders as morally justifiable, or at least tolerable. What made their participation easier was that they were not asked to dirty their hands with the actual killing; instead, they “murdered from behind a desk.” The victims died out of their sight, in Poland and the Soviet Union, and these men could therefore deny their own responsibility, at least in their own minds. However, thousands of men who were neither Nazis nor members of Germany’s ruling class were drafted into the shooting squads that ultimately murdered 1.5 million Jews. These men would have to kill in a way that was up close, personal, and very bloody. Unlike the bureaucrats back in Germany, the members of the death squads could not ignore the moral implications of their acts. Very many were family men, with wives and children at home. When asked to murder defenseless civilians, including women and small children, what would they 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