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를 시작으로 펴내는 책마다 전 세계의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문제적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기존의 투사 이미지를 벗고, 우주의 비밀부터 유전자의 세계까지 과학 전반의 이야기를 펼친다. 과학은 우리에게 수많은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그것을 추구하는 합리적 인간상을 제시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내려는 노력이 종교에 대한 의존보다 숭고하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전공 분야인 진화생물학뿐 아니라 과학 전반에 걸쳐 이야기를 쏟아낸다. 광활한 우주에서 바로 지금 우리가 지구에 살게 된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수십 가지 악기의 소리가 뒤섞인 오케스트라 공연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악기들 각각의 소리를 구별하는지 등 과학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또한 사람들이 불가사의한 존재와 미신에 빠져드는 이유를 논리적 전개와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파헤치며, 우리가 초능력이나 신의 계시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통계학적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확률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임을 밝힌다.
책 속에서 한 문장
먼 은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 수십억 년이 걸린 빛의 과거와 시선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희미해진 정도를 갖고 얼마나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서 도착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은하가 다른 은하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스펙트럼을 붉은 쪽으로 이동시키는 효과가 나타났다.
거리와 멀어지는 속도의 관계는 허블의 법칙을 따른다. 이러한 정량적 관계를 역으로 계산함으로써 우주가 언제 팽창하기 시작했는지 측정할 수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폭발 이론의 설명에 따르면, 우주는 100억에서 200억 년 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시작됐다.
이 모든 것은 무지개 풀어헤치기의 지혜로부터 얻은 것들이다. 이 이론을 발전시킨 후속 연구가 제시하는 증거에 따르면 시간 자체도 이 대사건과 함께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시간이 어떤 특정 순간에 시작됐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그것은 모든 사건에 선행 사건이 존재하는 아프리카의 사바나처럼 느리고 커다란 물체에 맞도록 디자인 된 우리 정신의 한계이다. 선행하는 것이 없는 그 무엇은 우리의 불쌍한 이성을 공포에 휩싸이게 한다. 어쩌면 오직 시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키츠, 당신은 지금 살아 있어야 하오. (107~108쪽, ‘3 별빛의 바코드’ 중에서)
'무지개를 풀며Unweaving the Rainbow'라는 제목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가 장편시 〈라미아Lamia〉에서 아이작 뉴턴이 분광학을 통해 무지개를 풀어헤치는 바람에 무지개의 사라져 버렸다고 이야기한 데서 따온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과학기술에 대한 키츠의 이런 불만은 당시의 낭만주의자들에게는 흔한 것이었다.
수수께끼와 신비로움, 신의 기적으로만 여겨졌던 많은 자연 현상을 분석하고, 거기에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무지개를 풀어헤치는' 작업을 낭만주의 시인들은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보았던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로 '무지개를 풀어헤치는' 일은 세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앗아가는 것일까?
리처드 도킨스는 존 키츠의 이런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뉴턴이 프리즘의 색으로 무지개를 풀어헤치면서 분광학이 탄생했고, 분광학은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아는 거의 모든 것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아인슈타인, 허블, 호킹 등의 과학자들이 나와 우주의 비밀과 그 본질을 설명해 주었다. 이제 우리는 그 옛날 막연히 멀고 거대하다고만 느꼈던 우주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도킨스의 말대로, 키츠가 뉴턴 이후의 과학자들이 밝혀낸 많은 성과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그는 분명 우주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었을 것이고, 그의 시는 훨씬 더 풍부해졌을 것이다. 과학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경이로움의 감정은 인간 정신이 닿을 수 있는 최상의 경험이며, 그 예술적 감동은 최상의 음악과 시가 가져다주는 것과 비견된다. 시인은 과학에서 제공하는 영감을 더 잘 사용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과학자는 더 많은 시인들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
과학과 문학의 진정한 통섭을 제시하는 도킨스의 역작
이 책은 10년 전인 1998년에 출간된 책으로, 도킨스는 과학은 차갑고 딱딱하며, 낭만이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출간 목적을 밝혔다. 그래서인지 《이기적 유전자》를 시작으로 출간하는 책마다 논쟁의 정점에 위치했던 도킨스였지만, 이 책에는 다른 저작들과는 달리 유려한 문장과 비유가 넘쳐나고, 공격적인 모습보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더 눈에 띈다. 출간 당시 외국의 주요 언론으로부터 “과학을 시적으로 표현한 책이 있다면, 이 책이 바로 그 책이다”라는 찬사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도 쇄를 거듭하며 캐나다와 일본 등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출간되고 있다.
도킨스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 자신의 첫 책《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소개했는데, 대부분 허무함을 호소하는 반응이었다. 그 책 때문에 인생이 공허하고 허무해졌다는 것이다. 20년 뒤 출간된《만들어진 신》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의 시각에서 종교의 허구성을 폭로한 그 책은 출간 이후 많은 무신론자들의 호응을 얻었으나 그보다 더 많은 종교인들의 비난에 직면했고,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허무함을 호소했다.
《만들어진 신》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한 이후 도킨스는 과학이 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자칫 과학지상주의로 오해될 수 있는 언급이지만 신의 빈자리를 대신한 과학은 결코 차갑고 딱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재단하지 않는다. 이 책에 따르면, 과학은 우리에게 수많은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합리적 인간상을 제시하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내려는 노력이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보다 훨씬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번역자인 최재천 교수는 "《만들어진 신》을 읽으며 마음 상한 독자"가 있다면 "가장 도킨스다운 책"인 이 책으로 "어수선해진 마음을 다스리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과학과 문학, 과학과 예술이 만났을 때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으며, 이 책이야말로 진정한 '통섭' 실례를 보여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가 쓰고 최재천이 번역한 최고의 과학 교양서
이 책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진화생물학뿐 아니라 과학 전반에 걸쳐 다채로운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바로 지금 우리가 지구에 살게 된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지, 수십 가지 악기의 소리가 뒤섞인 오케스트라 공연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악기들 각각의 소리를 구별하는지 등 과학의 소소한 이야기를 밝고 경쾌하게 전개한다. 또한 사람들이 불가사의한 존재와 미신에 빠져드는 이유를 특유의 논리적 전개와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파헤치며, 우리가 초능력이나 신의 계시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통계학적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확률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임을 밝혀낸다.
아울러 오랜 경쟁자이자 사이비 과학에 맞서 싸운 동지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이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실려 있다. 이 외에도 유전자는 그 '이기적' 본성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다른 유전자와 협조를 한다는 주장, 끝으로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가장 고유한 개성인 두뇌의 폭발적 진화 과정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소개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국내에 도킨스를 알리고, 도킨스의 이론을 전파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가 직접 번역했다는 것이다. 통섭원을 설립하여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주도해 온 최재천 교수는 그동안 수많은 강연과 저술에서 도킨스의 이론을 알리는 데 공헌했지만, 정작 도킨스의 책을 번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사회의 과학 무관심과 과학 경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 책의 번역을 결심했다는 최재천 교수는 그만큼 남다른 애정과 정성으로 번역에 임하였다. 또한 함께 번역한 김산하 씨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자바 긴팔원숭이의 생태를 연구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장류학자이자 만화책도 펴낸 적이 있는 예술적 감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과학자이다. 이처럼 과학계의 거장과 젊은 과학자의 공역으로 이 책의 가치는 한층 더 높아졌다.
제1장 익숙함이라는 마취제
도킨스는 먼저 지금까지 누구도 그 의미를 새겨보지 않았던 “우리가 지구에 살게 된 엄청난 우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무나 익숙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이 광활한 우주, 그리고 숫자로 헤아리기 힘든 어마어마한 시간 속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곳 지구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이러한 놀라움을 알게 된 것 역시 과학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과학 덕분에 우리는 우주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지구를 제외한 공간의 가혹한 환경 조건을 알게 되었고, 지구의 나이를 비롯해 우주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몇 만 년만 일찍 태어나거나 몇 백 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지금과 같은 안락함을 누리지 못했을 것임을 알게 된다. 과학에는 익숙함이라는 마취제에서 깨어나려는 노력, 항상 새로운 시작으로 세상을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제2장 귀족들의 응접실
영국의 시인 W. H. 오든은 과학자들과 함께 있으면 마치 귀족들이 모여 있는 응접실에 있는 것처럼 어색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정말로 과학과 시가 그렇게 이질적인 것일까? 만약 시인들이 과학에 대해 조금만 더 열린 마음을 가졌다면, 그들의 예술적 감수성은 훨씬 더 풍부해졌을 것이다. 시인은 과학에서 제공하는 영감을 더 잘 사용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도 과학자는 더 많은 시인들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과학 본연의 특징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과학은 시인과 예술가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분명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억지로 쉽게 포장하려는 “계산된 하향평준화”와 과학의 유용성만을 강조하려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과학은 끊임없이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고 바로잡으면서 발전하는 유기체로, 고정된 끝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추구하고 좇아야 할 삶의 태도 그 자체이다. 실용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탐색, 원초적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제4장 공중의 바코드
커다란 오케스트라 콘서트 홀. 수십 가지의 악기가 저마다 소리를 내고, 옆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 뒷사람의 과자 봉지 만지는 소리, 저 멀리 문을 여닫는 소리가 한 번에 밀려온다. 말 그대로 소리의 대폭발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도 각각의 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 심지어 훈련된 청중이라면 악기의 소리까지 하나하나 모두 구별할 수 있다. 우리의 귀는 두 개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바로 공기의 특정한 울림으로 전달되는 “소리”라는 것에는 특유의 진동수, 즉 공중을 날아다니는 특유의 바코드가 있기 때문이다.
소리에는 또한 메시지를 담는 능력이 있는데, 이 메시지는 수신자의 신체리듬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성교 시의 신음소리는 상대방의 호르몬을 분비시키고, 마찬가지로 새들이 짝짓기를 위해 내는 소리에도 상대방 새들의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즉 소리는 정보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약물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제7장 불가사의 풀어헤치기
텔레비전에 나온 초능력자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시계가 멈춰버린다. 손목시계도, 벽시계도, 심지어 이 방송의 광고를 본 어제 이미 멈춰 버린 시계도 있다. 어느 초능력자는 오래전 책상 서랍에 넣어둔 멈춰 버린 손목시계를 꺼내 손에 꼭 쥐고 화면을 응시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 시계가 다시 움직인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와 생일이 같거나 이름이 같은 경우, 우연의 일치에 열광하고, 이것들에 불가사의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것들은 그저 통계학적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시계는 언제든 멈출 수 있고, 멈추었던 시계는 손에 꼭 쥐고 열을 가하면 잠시나마 다시 움직인다.
이와 관련하여 리처드 파인먼의 가슴 아픈 일화가 있다. 1998년에 출간된 파인먼의 책을 보면 1963년 그의 아내가 죽은 오후 9시 22분에 정확히 시계가 멈추어 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 일에 호들갑을 떨었지만, 뛰어난 과학자였던 파인먼은 이를 담담해서 풀어준다. 그 시계는 워낙 자주 고장이 났고, 수평이 맞지 않으면 곧잘 멈추었으며, 본인도 몇 차례 직접 수리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사망한 시각을 기록하기 위해 간호사가 시계를 기울여 보는(밤이었고, 시계는 어두운 곳에 있었다) 순간에 시계가 멈춘 것이다.
제8장 고매한 낭만의 거대하고 흐릿한 상징들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임스 굴드는 생물학계를 도킨스주의와 굴드주의로 나눌 정도로 광범위하고도 첨예한 이론적 대립을 전개해 왔다. 물론 사이비 과학에 맞서 싸운 전선에서는 둘도 없는 의견일치를 보였지만, 이들의 이론적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굴드의 과학을 “나쁜 시적 과학”이라고, 즉 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기는 하였으나 자칫 사람들의 과학적 상상력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위험한” 과학이라고 비판한다. 굴드는 거대 돌연변이를 통한 비점전적 진화론을 이야기했는데, 이 이론은 진화 과정의 점진적인 속성과 돌연변이의 적응성을 고려하지 못한 이론이다. 여기에 굴드 특유의 박학함과 작가적 능력이 덧붙여져 사람들은 굴드의 과학을 “믿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제10장 죽은 자의 유전자 책
지금 현재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는 과거의 정보를 담고 있다. 즉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 몸에 남기 위해 수많은 다른 유전자들과의 싸움을 헤치고 살아남은 우성 유전자들이며, 이 유전자들에 숨겨진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우리는 개체의 기원과 변화 양태, 그리고 개체가 생존했던 때의 환경 조건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유전자는 간접적인 의미에서 고대의 환경을 표현한다. 조상의 환경을 담는 것은 전체의 유전자군이며, 그래서 종을 평균값을 계산하는 기구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DNA는 조상이 살던 세계에 대한 암호화된 설명이고, 우리는 플라이오세 아프리카, 데본기 바다의 디지털 기록이며, 오래된 지혜의 걸어 다니는 보고이다.
제12장 마음의 풍선
어느 생물학자는 최근 수백만 년 동안 일어난 인간 뇌의 진화가 “생물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빠르게 진화한 복잡한 기관”이라고 말한다. 다른 동물, 심지어 유인원과 비교했을 때도 인간의 큰 뇌는 유독 풍선처럼 부풀어져 있다. 많은 생명체 중 어째서 유독 우리 인간만이 뇌를 풍선처럼 부풀리며 진화하게 되었을까? 큰 뇌와 그 뇌를 채우고 있는 사고 능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공진화를 추동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대체로 몇 가지 이론이 제기되는데, 가장 많은 것은 언어의 발달이다. 육체적 능력이 약한 인간은 무리 생활을 통한 안전을 기하기 위해 의사소통 능력을 극대화시켜야 했고, 여기서 언어에 대한 필요와 발달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복잡한 언어 능력을 소화하기 위해 뇌의 급격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론은 “지도 보기”이다. 언어 능력보다 먼저 발생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지도 그리기, 지도 보기” 능력은 공간 능력뿐 아니라 고도의 시간 능력과 예측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사냥과 채집을 위해 끝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던 인간들의 뇌는 지도와 함께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도킨스는 던지기와 모방자meme 이론을 제기한다. 무언가를 던져 목표물을 맞힌다는 행위는 사실 고도의 탄도학적 지식이 필요하거나 신경조직에 특별한 연산 능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지만, 인간은 이를 본능적으로 능숙하게 해낸다. 본래 사냥을 위해 생긴 이 능력이 그 부산물로 다른 기능(뇌의 발달)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거리, 방향, 각도, 속도, 힘, 타이밍, 바람 등 수많은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던지기”가 뇌의 폭발적 진화를 추동했다는 것이다.
대니얼 데넷과 수전 블랙모어가 창안한 모방자meme라는 개념은 말 그대로 생물의 본성에 숨어 있는 모방하려는 본능과 기제를 말한다. 생존을 위한 기술의 전수와 언어, 예술 등이 모방자에 의해 전파되고 전달되는 것이다. 데넷은 인간의 정신을 펄펄 끓는 모방자의 바다로 묘사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들, 이 많은 자극과 충동, 발생의 결과로 우리 인간은 다른 어느 생물종에게서도 발견하기 힘든 커다랗고 기능적인 뇌를 가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