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한국사/조선

예송 논쟁, 두문자 암기, 조선 현종, 서인 남인의 효종 조대비 상복

Jobs 9 2023. 2. 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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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붕당 전개

사화→이기→예송→환국→탕평→세도

 

예송 논쟁은 무의미한 싸움 같지만 시험에 자주 출제된다.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서인과 남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였다.
정체성은 집권하느냐 마느냐의 절체절명의 문제다.

지금 야당 되면 국회의원 떨어지고 백수 되고 말지만 당시엔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

조선의 전체 붕당사를 개괄하면...

조선시대 훈구와 사림의 죽고 사는 대립 즉 사화

무갑기을 4대 사화이후 사림 집권

사림은 동서분열

동인은 다시 남북분열

동은 움직임動 있고(분열)

서인은 서서 그자리 쭉~~(광해군, 인조반정까지)

기갑 예송 이후

경기갑 환국, 서인,남인,소론 순으로 집권

이후 무신이임

무고의 옥/신임사화/이인좌 난/임호화변

이후

(영정조 탕평 잠시 있다가)

붕당의 끝, 세도정치

세도정치 끝에 조선 몰락~~

 

연산군 : 사화
선조 :  붕당 이기
현종 : 예송
경종 : 호락
영정조 : 탕평
순조 : 세도

 

두문자 표로 정리하면

조선 붕당 두문자 암기

 

 



 Q  다음 자료는 예송의 전개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가), (나) 세력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① (가)는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다. 
② (가)는 숙종 때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되었다. 
③ (나)의 주장은 1차 , 2차 예송에서 모두 채택되었다. 
④ 이 논쟁 직후 (나)에 의해 사화가 발생하여 정국이 혼란해졌다. 

【해설】 정답 ② 
자료의 (가)는 서인, (나)는 남인이다.  

1차 예송 -일기서주자 동네일기

1차 기해 서인 주자가례 왕사동례 1년설=기년설

2차 예송 - 갑남일기 달라 오례

2차 갑인 남인 1년 기년설 달라(왕사부동례) 국조오례

두문 암기로 서인과 남인만 구별하면 된다.

문제 풀이를 더하면

② 숙종 때 경신환국(1680)을 계기로 서인은 남인에 대한 처리 문제와 정책 수립 과정에서 노론(송시열)과 소론(윤증)으로 분화되었다.
① 광해군 때 명과후금 사이에 중립 외교를 펼쳤던 붕당은 북인이다.
③ 남인의 주장은 2차 예송인 갑인예송 때 1년설(기년설)이 채택되었다.
④ 사화는 훈구파와 사림세력 간의 대립으로 연산군에서 명종 때 있었다.

 


 

 

 Q  다음 두 사건에 대한 설명이 가장 옳은 것은? 

(가)효종이 승하한 후 효종의 계모(繼母)인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로 서인과 남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나)숙종 14년 소의 장씨가 아들을 낳자 숙종은 이듬해 이 아들을 원자로 삼아 정호할 것을 명하였
으나 송시열이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① (가)-서인들은 자의대비의 복상을 9개월로 정하였다. 
② (가)-남인들은 자의대비가 둘째 아들의 복상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③ (나)-서인의 몰락과 남인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④ (나)-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해설】 정답 ③ 
자료의 (가)는 현종때 효종의 복상문제로 일어난 기해예송이며 (나)는 숙종때의 기사환국의 내용이다. 
③ 기사환국의 결과 서인의 몰락과 남인의 집권이 이어졌다. 
① 기해예송때 서인들은 자의대비의 복상을 1년을 주장하였다. 
② 기해예송때 서인들은 둘째아들의 복상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④ 경신환국 직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되었다. 
기 일기서주자 동네일기 기해예송 1차 기해 서인 주자가례 왕사동례 1년설=기년설 
갑 갑남일기 달라 오례 갑인예송 갑인 남인 1년설 기년설 달라(왕사부동례) 국조오례 
경 서 경신환국 
기 남 기사환국 
갑 소 갑술환국 
신 노 신사환국(무고의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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