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뉴노멀, 열돔, 지구 열대화
벌써 '46도' 역대급 폭염 덮친 유럽
유럽이 여름 초입부터 역대급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남유럽 일부 도시는 기온이 섭씨 46도를 넘어서 6월 기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가 하면, 고온건조한 고기압 '열돔'의 영향으로 산불 피해도 확산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의 기후변화·보건 전문가 마리솔 이글레시아스 곤잘레스는 유럽 각국이 즉각 대응하지 않는다면 수만명이 대체로 예방할 수 있는 원인으로 불필요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 일부 국가의 기온이 40도선을 넘어서면서 온열질환이나 탈진, 지병악화로 인한 인명피해가 빈번히 발생할 수 있어서다.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통계학자 피에르 마셀로는 유럽을 덮친 폭염 때문에 지난달 30일에서 이달 3일까지 나흘 사이에만 4500명이 넘는 초과사망(excess death·통상 수준을 초과해 발생한 사망자수)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 올해 초 발표된 유럽 854개 도시의 폭염 관련 사망자 발생 현황 분석 결과를 보면 매년 17만5000명 이상이 폭염의 직간접적인 영향 아래 목숨을 잃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곤잘레스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가시화하면서 폭염이 극단적 현상이 아닌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5도 상승한 것으로 관측됐다. 이는 2015년 세계 각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서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설정한 한계선을 처음 넘어선 것이다.
"역대급 6월 기온…46도 넘었다"
실제 유럽 곳곳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포르투갈 도시 모라의 기온이 46.6도에 이르러 6월 기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바로 전날에 수립된 기존 기록(45.4도)을 하루 만에 갈아치웠다.
스페인 남부 엘그라나도에서도 수은주가 46도를 찍어 6월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을 새로 세웠다. 바르셀로나 역시 100년 넘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을 기록했다고 스페인 기상청이 1일 밝혔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스페인 북동부 모서리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폭염을 피하는 지역이지만, 올해는 지난달 30일 기온이 37.9도까지 치솟았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프랑스는 1일 유럽 본토 96개 권역 중 16곳에 폭염 적색경보, 68곳에 주황색 경보가 발령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을 것으로 예보됐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이날부터 2일까지 1350곳의 공립 학교가 전체 또는 부분 휴교한다.
이탈리아도 16개 도시에 '레벨3' 폭염경보를 발령했다. 고령자 등 고위험군뿐 아니라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들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정도의 폭염을 의미하는 경보다. 이탈리아 보건부는 인기 TV진행자를 내세워 더위 대응 요령을 홍보하고 있다.
더위의 주범은 아프리카에서 형성된 '열돔'으로 파악된다. 고온건조한 열돔은 최근 북아프리카부터 남부 유럽까지 영향을 끼치고, 그 세력을 북부 유럽까지 확장하고 있다. 열돔의 발원지와 가까운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알제리는 이미 가뭄을 겪고 있다.
고온 건조한 대기의 영향에 산불도 잇따랐다. 그리스에선 산불이 수도 아테네 인근 해안 마을들을 덮치면서 비상사태가 발령됐다. 튀르키예에서도 이즈미르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 때문에 5만명 이상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극한 폭염…온난화 넘어 뉴노멀이 된 지구 열대화
세계기상기구 “역사상 지표면 가장 뜨거운 7월”
한국은 기후대응 최하위권, 위기 불감증 없애야
지난 주말 11명이 온열 질환으로 사망했다. 역대급 장마가 끝난 뒤 갑자기 찾아온 폭염으로 온 국민의 건강에 비상이 걸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26~28일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178명이다. 더욱 뜨거워진 주말 상황을 반영하면 환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오늘도 전국이 최고기온 35도까지 오르내리며 찜통더위가 계속될 전망이다. 어제부터 이미 전국에 폭염특보가 발효됐다. 이번 주에 간간이 비 소식이 있긴 하지만 무더위를 식힐 수준은 되지 못한다. 열대야도 계속돼 8월 한낮의 최고기온이 기존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극한폭염은 전 지구적 현상이다.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선 많은 도시가 40도 이상으로 치솟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최근 50도를 훌쩍 넘기며 110년 만의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미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억7000만 명이 폭염 주의보·경보의 영향권에 들어섰다.
실제로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7월 1∼23일 지표면의 평균 온도는 16.95도로 역사상 가장 뜨거웠다. 역대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된 2019년 7월(16.63도)을 0.32도 뛰어넘었다. WMO는 올해 7월보다 더 뜨거운 날씨가 5년 안에 찾아올 확률이 98%라고 전망했다.
“지구온난화의 시대는 끝났다. 이젠 지구열대화다”라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극한 폭염은 이미 뉴노멀이 됐다. 그는 “현재 기후변화는 공포스러운 상황이지만 시작에 불과하다”며 “모든 국가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9위인 한국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기후대응 순위는 탄소배출량의 90%를 차지하는 60개국 중 57위에 불과하다(뉴클라이밋연구소).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 극한폭염을 뉴노멀로 받아들이고 선제대책을 세워야 한다. 극한 호우 때처럼 손 놓고 있다가 피해를 키워선 안 된다. 폭염에 취약한 노인과 어린이 등을 위한 맞춤형 대책을 마련하고, 쪽방과 반지하 등 열악한 주거환경을 미리 점검해야 한다. 범정부적으로 문제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컨트롤 타워도 필요하다.
그레타 툰베리(20)는 기후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성세대를 향해 “어른이 아이의 미래를 빼앗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책 결정권을 가진 기성세대는 기후위기에 불감증을 갖고 있지만, 10~20대에겐 존립과 직결된 문제다. 극한폭염·호우를 뉴노멀로 받아들이고 기후대응을 시민의 의무로 되새기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 때다.